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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람(시 39:5-6)





밴쿠버 교민연합집회

2015년 5월 22일(금), 밴쿠버 순복음교회



다윗의 수명 : 70세. 당시 굉장히 장수했다. 70을 살고 그의 삶을 한뼘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 테파흐(손바닥) 다윗에게 70인생은 그렇게 짧았다. 인생은 오래 살수록 짧게 느껴진다. 


그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것 같다. 100년전의 조상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든든히 서있다.(나차브, 인생의 최전성기) 로마, 바벨론의 영광은 허사이다. 

첼렘, 환영-그림자. 있는것 같은데 실은 없는것, 얼마나 많은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200만 밴쿠버, 200명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할때 99.99%가 우리에게는 그림자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헛된 일(헤벨, 공허한 숨) 으르렁거리는 삶을 묘사하는 동사(하마), 진리를 위해 으르렁 거리며 살지 않는다. 

절대 권력자 : 박정희(72)
이병철 : 돈병철(78), 재산이 그들의 삶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어머니(86세)까지 사셨다. 
우리가 더 으르렁 거리며 살면 더 모을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부모 재산 놓고 싸우는 자식들. 

세월이 흐른뒤에 그렇게 모은 재산이 누구의 재산이 될지 알지 못한다. 휘트니 휴스턴의 2000만불이 그녀의 18살(바비 크리스티나) 딸에게 물려졌는데 현재 21살에 엄마와 똑같은 상태로 호텔 욕조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었다.(동거남, 남편, 친정 어머니의 진흙탕 싸움)

GE만이 130년을 견뎠다. 
삼성과 엘지만 남아있다. 
세계 경제사. 남아있는 기업이 얼마 없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하나님앞에서 없는것과 같고 다른이에게 환영과 같고 재산이 누구것이 될는지 일지 못한다. 
- 솔로몬의 헛되다(헤벨) 헤벨의 5제곱
- 매우 덥다. 덥다 덥다는 히브리어 표현

인생이 이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시 39:7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인생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허사로 끝나기에 우리의 소망을 주께두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는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때 주체가 내가 된다(주님을 콘트롤하려한다) 내가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때 주체(주어)가 주님이 되는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불이익이 예상되고 모함을 당해도 주님의 사람이라면 그길을 갈 수 있다. 

내가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1. 테바(방주)의 사람이 되는 것.
- 홍수 심판 가운데 노아를 부르심. 창 6:15절. 방주의 사이즈를 알려주심 32800톤. 큰 페리호가 3000톤 정도이다. 테바는 거대함의 상징이다. 
- 애굽이 히브리인의 장자를 죽임. 출 2:3. 갈대상자안에 아기를 두고 나일강에 띄움. 이 갈대상자가 테바이다. 
- 축구장 vs 갈대상자. 하나님의 테바의 특징은 무동력에 있다. 제어시스템이 없다. 방향, 석도, 멈춤 찰저하게 하나님께 맞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의한 구원의 테바. 
- 테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인셍의 방향, 속도, 멈춤. 하나님께 끌려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지족과 자족 : 지금 나의 삶이 족함을 아는 것. 웅덩이와 가시덤불이 내 인생에 필요함을 알고 인정하는 것. 족한 줄 모른다. 과거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가?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떤가? 교회에서 지족의 싦을 가르치지 않고 욕망의 삶을 부추긴다. 
- 요셉 : 채색옷에 만족하지 못하던 삶. 광야 웅덩이에 빠짐. 창 37:22-24 하나님이 예비하신 웅덩이. 물이 없었다.(익사) 이 웅덩이가 그에게 테바였다. 하나님의 도구로 준비됨
- 아브라함 : 모리아산. 가시덤불, 창 22:13 수풀(세바크, 가시덤불) 이 장애물이 수양을 준비한 것이다. 
- 나는 지금 웅덩이에 빠져 있는가? 그럼에도 테바의 사람이 되라. 

2. 엑소도스의 사람이 되는 것
탈출의 의미. 엑소 밖으로, 도스 그길. 이집트는 죄와 어둠과 사망의 상징이었다. 홍해를 열어주셔서 건너가게 하셨다. 
갈라진 홍해가 갈라진 채로 있지 않았다. 애굽로 돌아갈 길을 차단하신 것이다. 되돌아갈 길이 없어진 것이다. 
-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다. 벗어나게 하신것이 은혜라면 성화의 삶은 우리의 의지이다. 
- 광야에서 헤벨이 되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던, 미련을 가진 히브리인. 
- 아이스호도스, 주님의 길을 가야한다. 
- 퇴장의 의미가 있다. 연극 무대의 배우들. 인생이라는 무대도 마찬가지다. 밤에 화장을 지운다. 인생의 화장을 지울때가 온다. 인생의 스폿라이트를 받을때가 있지만 안젠가 꺼진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 천년만년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
- 퇴장을 아는 사람이 최선을 다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기 원했던 내일이다."
- 오늘도 평생 처음 맞는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무의미한 삶을 살겠는가. 
- 변화산의 모습 : 모세와 엘리야. 이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가 눅 9:29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심. 이 죽음이 엑소도스다. 엑소도스의 세번째 의미. 왜 이 메시지를 주시는가? 내가 십자가에 죽지만 이 죽음이 끝이 아니다. 저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온 하늘의 출입문이다. 
- 외과의사 : 예수믿는 사람일수록 안죽으려한다. 기를 쓰고 안죽으려한다. 입에 발린 영생이 아니라 죽음이 영원과 접속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죽음을 통해서만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이 없다면 바울이 어떻게 참수형을 당할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진짜 믿지 않는다. 

3. 에네의 사람이 되는것 
시 19:8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  이세상을 바로 보게하는 눈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메. 눈들이다. 
- 우리말은 단수로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개의 눈을 주셨다. 이세상은 평면이 아니다. 
- 문명의 발달과 역사의 미래를 볼줄 아는 두눈이 필요하다. 
- 본질이 아니라 외형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두눈이 필요하다. 두눈을 가진 사람은 어둠 속에서 새벽을 본다. 폭풍속에서 정적을. 모함 속에서 진실을 본다. 
본질을 꿰뚫어 봐야한다. 두눈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속에서 있음을 본다. 유럽의 몽블랑 4807미터. 3842미터. 케이블카. 1905년시작. 1,2차 대전으로 중단. 알프스의 눈덮힌 산. 노약자, 장애인들도 오를 수 있다. 110년전에 보았다. 몽블랑에서 없음에서 있음을 보았다. 
수에즈 운하 192킬로미터. 150년전에. 두눈을 가진 사람들이 이 청년들의 제안을 도왔다. 
- 교회는 이런 청년들을 키우고 밀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두눈을 가진 청년들을 외눈박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 미국의 독립. 1776년. 하와이(미국 동부에서 8500키로)?
- 1897년 일본이 유큐왕국을 합병했다. 4000키로. 
- 역사의 두눈을가지고 미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땅을 넓히던 시대에 조선땅에서는 부정부패로 땅을 일제에게 빼았겼다. 
- 한국의 청년들은 두눈을 가져야 한다
- 두눈을 가진 사람만 주님의 사람이 될수 있다. 변화산에서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라고 보여주는데 베드로는 외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님을 꾸짖고 있다. 외눈을 가진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심. 
- 롯과 아브라함. 먼저 선택하게 함. 롯이 보니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 동산 같았다. 한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인다. 멋지고 화려해 보였다. 
- 바울의 고향 다소. 소위 바울의 생가라는 유적터. 우리가 주목하는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 눈에 보이는 것은 쇠퇴하고 사라진다. 건축하는 순간 쇠퇴가 시작된다. 인생은 가는 것이다. 

테바, 엑소도스, 에네의 시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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