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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5년 5월 21일 오전 10시
장소 : 밴쿠버 소망교회(5825 nelson ave, Burnaby)
강사 : 이재철 목사
화두 : 어떤 목사가 살아남겠는가?
구약의 중심 메시지 : 그날이 온다. 그날은 심판의 날이다. 먼저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심판 대상이다.
목회자(목사)의 위치 : 목사는 스님이나 신부와는 어떤 차별성을 갖느냐?
1) 목사 사모의 편지 : 14살때 부터 반주자로, 26살에 목회자와 만나 결혼, 두번의 유산(남편의 무관심), 전임사역, 남편의 욕설, 아내의 잘못은?(사랑받기 원하는, 제대로 목회하기를 바라고 내조하는...)
- 유영모 : 사람이 모이면 삶이 되고, 이 삶이 터지면(열매가 터지듯) 사랑으로 터진다. 목회자는 삶의 전문가이다. 그럴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다.
자기 아내를 모르는 이 목사가 교인들의 삶을 알 수 있겠는가? 성경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2) 젊은 목사 부인 : 이상한 팝업창, 계속 성인 사이트에 접속(집, 교회), 아내의 꿈, 강단을 걸고 약속, 목사에게 설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진정한 설교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다. 목사와 세상 남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돌중, 신부(땡신부), 땡목사 / 목사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있다. 목사는 자기 삶을 구별하는 사람이다. 요즘 왠만한 목사 다 그래(교육, 세습, 포르노), 내가 다른 사람을 아는 만큼 나를 알아야 한다. 내 욕망의 산물이 되는 이유는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교인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3) 여집사 : 설교 표절, 주일 설교를 준비하지 못한 목회자의 메마름, 설교를 표절했을때의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가? 설교 도용을 멈추는 것, 하나님을 모르는 목사(고후 2:17-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께 전하는 자세), 내가 설교하는 장소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지, 복음의 통로가 되고 있는지. 자신의 야망을 위한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지
4) 하와이에서 사역하는 목사 : 10명정도의 개척목사, 식당에서 일하며 사역중, 자신이 설교를 도용했다는 것을 회개,
주님 오실때 나는 목사로 살아남겠는가? 나는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겠는가?
- 목회자의 이중직 : 콜링의 문제(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냐 내가 찾아가는 것이냐), 출발점이 중요한 것이지 이중직은 문제가 아니다. 이 한분을 위해서 인생을 던질수 있는가? 이중직을 갖는 동기가 무엇인가?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이 아닐때, 한사람에게라도 내 인생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 확신이라면 이중직은 아무 문제 없다. 그것을 믿는 전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책임지심을 믿지 못하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항상 왜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 목회자의 자기 관리 : 그리스도인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구별이다. 이것이 숙명인 동시에 삶 자체가 되어야 한다. 큰문제가 생겼을때 큰 이득이 관계되어 있을때 이것을 어떻게 노우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들을 주셨다. 하난님께서 왜 우리에게 눈들을 주셨을까? 어떤 큰 유혹이 있어도 현재를 보는 눈과 미래를 보는 눈, 하나님의 심판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유혹에 빠질 수 없다. 한 눈이기 때문에 돈, 섹스의 문제에 빠딘다. 보이는 것을 보는 눈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가? 이것이 동시에 작동하는가?
- 설교준비 & 세월호 사건 : 순서 설교, 주일 설교만 하게 되면 목회자 자신이 좋아하는, 혹은 필요한 본문을 설교하게 된다. 구절 설교를 하지만 나머지 본문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설교 본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spiritual insight를 얻는다. / 세월호 : 방사선 치료(홍천-이시형, 요양마을), 스파의 옷장(소쿠리), 속옷을 접어놓는 사람이 없다. 세월호 자체의 문제로 보면 세월호는 또 터질 수 밖에 없다. 우리 국민의 준법, 공익 정신,
- 주님의 사랑, 주님의 교회 / 교회 개혁을 위한 제안 / 이상과 현실의 괴리 : 교회 개혁을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다. 단지 목사라면, 교회라면 이렇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주님의 도를 좇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이런 모습이 개혁으로 보여졌다. 한경직 / 이성철 스님 / 법정 / 김수환 추기경 : 이들의 공통점을 자신의 종교의 기득권을 누리지 않았다. 자신의 교회가 커지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많은 목사들이 있다. 개혁은 내가 당연히 누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득권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면 교인들은 그 목사를 신뢰한다. 내가 목사로서 개척교회의 목사로서 내가 이정도는 누릴 수 있어라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개혁은 시작된다. 우리의 이상은 나의 이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사는 것이다. 목사는 교인들 앞장서서 선봉장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자녀들 교육 : 세상의 KS마크를 달지 않아도 주님의 터치를 경험하게 된다.
해야된다는 것이 싫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그 현실을 수용해 주는 것이고 그 토대위에 그의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듣지 않아도 미래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현존하는 미래”를 위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해주어야 한다.(학교, 정부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교회마저...)
- 본문연구 / 기도생활 : 한주간 그 본문을 묵상한다. 월요일에 원문 연구를 마쳐진다. 이 원문의 내용을 가지고 한주간 묵상한다. 무릎꿇고, “주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기도한다. 그분의 관점에서 살아가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 국제 시장 / 이민 목회의 통합(1세대, 2세대) : 이민 역사이후 60년대 이민, 국제시장(시체 딱기, 독일 탄광 사고 현장), 광부, 간호사 출신의 장로 권사님들이 이민 교회의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기득권을 놓치 못하기 때문에, 갑질이 심하다.) 당한만큼 교회에서 행한다. 미국 동부의 교회(네비게이션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장로님들), 노인이 아니라 어른으로 세워드려야 한다. 목회자들에게 지혜가 필요하다. 갑질하는 행태 자체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은 상처와 한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 백주년 기념교회 : 본당은 500석, 19지역에서 설교, 39세 미만이 62%이다. 바르게 성령의 통로가 된다면 연령을 초월한다.
- 목회자가 가져야하는 2개의 눈, 미래 목회의 패러다임 : 각자 자신이 살던 시대가 과학이 발달하고 타락한 시대였다. SNS의 발달(정보의 속도), 2000년전 원형 경기장의 잔인함, 성경에 죄성이 가지고 있는 인간이 저지를수 있는 모든 죄악이 들어있다. 모양만 다르게 반복된다. 성경 어디에도 절대다수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었던 시대는 없다. 언제나 당신의 그루터기, 좁은문을 걸어가는 소수들을 사용하셨다. 성경은 지금에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김교신(차전도사) : 1920년대상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이라고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 교회의 본질, 교회다움을 알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앵글리칸 성공회, 루터란 처치, 루마니안 정교회 : 민족주의에 빠져서 보편적이지 않은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면 지금 사람이 많다가 언젠가는 줄어들게 된다.
-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의 본질 :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리가 놀랐다. 권위가 있고 서기관들이 가르치는것과 같지 않았다. 예수님의 가르침, 설교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분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분이 말씀을 하시자 무리들이 놀라는 것이다. 이것은 노하우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의 삶의 자리에 충실한 것이다.
- 동성애 : 성경적인 관점으로 분명히 안되는 것이다. 조계종 이성철 스님 : 스님들이 육식을 하는 것의 문제,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명을 폐하면 불교의 집이 무너진다. 불교 신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살생하지 말라는 계명때문이다. 그 계명만 무너지겠는가? 세월지나면 모든 계명이 무너지는 것이다. 서구사회 교회가 무력해진 것은 현실과 타협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하나씩 무력화하였다. 그 순간부터 교회는 비는 것이다. 동성애를 무너뜨리면 그것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약자, 소수자에 대한 배려에서 말한다. 인권을 존중하는 것에 동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가 나쁘다는 것은 케이스에 표시해서 흡연이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관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것의 문제(항문 성교의 문제점), 동성애자들 포용하는 것 적극적으로 해야함과 공시에 유해성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신랑 아버님이 결혼 사진을 찍는데 한 청년을 부름(청년의 큰형이 동성애자) 공개장소에서 그를 며느리로 인정할것인지 고민했던 것이다. / 성경적으로 목사로서의 입장은 분명해야하지만 유해성도 정확히 알려야 한다. 무조건 포용만하자는 것은 안된다.
- 주님의 교회 사역, 가정생활 : 교회와 교인을 위해서 목회자가 희생하는 부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직업적인 목사만은 아니다. 내가 무언가 희생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의 열매가 맺히겠는가? 아내와 자식들도 대상에 포함된다. 가족들과의 시간은 시간의 양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짦은 시간이라도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하라. 넥타이도 풀기전에 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가 있다고 아버지의 자리가 빈자리가 되지 않도록 아내가 노력한다. 지금쯤은 아빠가 성경연구할꺼야, 지금쯤 아빠가 심방중일꺼야. “애들아 아빠 오셨다.” 아이들과 아빠의 벽이 없게 만드는 것은 아내의 역항이 중요하다. 시간적인 길이는 짧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교회의 쇠퇴현상, 기독교의 생명력 :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다. 영이신 하나님께는 손과 발이 없다. 그 생명을 전하는 통로가 바로 우리들이다. 하나님께서 육체의 생명을 주실때 여자의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생명은 희생없이는 전해지지 않는다. 희생은 봉사하고 다르다. 좋은 교회는 봉사자가 많은 교회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이다. 희생하면 반드시 생명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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