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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ing Taxes to Caesar
13 yAnd they sent to him some of zthe Pharisees and some of zthe Herodians, to atrap him in his talk. 14 And they came and said to him, “Teacher, bwe know that you are true and do not care about anyone’s opinion. For cyou are not swayed by appearances,3 but truly teach dthe way of God. Is it lawful to pay etaxes to fCaesar, or not? Should we pay them, or should we not?” 15 But, knowing gtheir hypocrisy, he said to them, “Why hput me to the test? Bring me ia denarius4 and let me look at it.” 16 And they brought one. And he said to them, “Whose likeness and inscription is this?” They said to him, “Caesar’s.” 17 Jesus said to them, jRender 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And they marveled at him.

13절)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서로 공모하여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하였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로마권력에 반대하는 무리였다면 헤롯당원들은 종교세력이라기 보다는 헤롯을 등에 업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무리들이었기에 이 두 그룹은 둘은 앙숙에 가까왔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이 서로 힘을 합쳐서 예수를 올무에 빠뜨리려고 나아온 것이다. 본문 처음의 그들은 앞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11:18)이다. 
  • The pronoun “they” must refer again to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11:18). For the identity of the “Herodians” and their relationship to the “Pharisees,” see the comments on 3:6. The word translated “catch” (“entrap,” RSV; “trap,” NRSV, NEB, REB, NASB, GNB) often was used to refer to catching an animal in a snare or hooking a fish. The use of the word implies deceit and treachery.

14절) 이들이 가지고 온 질문은 바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이었다. 먼저 이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예수님 당신은 참되시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인데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예수님에 대한 진술이 모두 옳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도는 그분을 예배하고 높이기 보다는 그런 주님께 매우 곤란한 질문을 해서 그분을 올무에, 덫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다. 
본문의 세금이라고 표현된 헬라어는 ‘켄소스’라는 단어로 직접세로 이단어라 라틴어로 ‘센서스(sensus)’로 자역되었다. 이는 로마에 의해 당시 그 지역에 부과된 세금으로 1년에 한 데나리온을 바치게 되어있었다. 한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으로 그 액수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이방세력의 압제를 싫어했고 그 동전에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있어서 이를 반대했던 것이다. 이는 일종의 인두세(poll tax)였다. (Mt 17:25; 22:17, 19; Mk 12:14+)
  • The Greek word translated “taxes” (it is singular in Greek) is kēnsos and is a transliteration of the Latin word census. The reference is to the census, poll, or head tax that was imposed on all residents of Judea, Idumea, and Samaria in a.d. 6. At that time Archelaus (cf. Matt 2:22), the Jewish client-king (actually his modest title was “ethnarch”) of that part of Palestine, was deposed by Rome. It was annexed as an imperial province, and a legate was appointed by the emperor to govern it.11 The tax amounted to only a “denarius” a year (v. 15), i.e., a day’s wage of an agricultural laborer. It was opposed at its inception by Judas the Galilean (cf. Acts 5:37), who led an abortive revolt,12 and it was still deeply resented in Jesus’ time. The tax was hated not because of its amount but because it was a symbol of foreign domination and because it had to be paid with a coin that bore an image of the emperor and an offensive inscription (see the comments on v. 16). The “Caesar” or emperor at the time was Tiberius (a.d. 14–37).

15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외식함을 아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하시며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질문에서 예수님께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하면 로마에 반역을 행하는 것이고,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 라고 말하면 로마의 세력을 추종하는 매국노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예수님을 매장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 Identical in intent to their earlier question on divorce (see note on 10:2), the Pharisees calculate that Jesus’ answer will either alienate the crowds (11:8–10) or enable them to denounce Jesus to the Roman authorities as a rebel.
본문에서는 시험(페이라조)라는 단어를, 13절에서는 책잡다(아그레우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13절의 단어는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할때 주로 사용하던 단어이다. 15절의 페이라조는 예수님이 시험받으실때 주로 사용된 단어이다. 

16-17절) 이에 예수님께서 데나리온에 새겨져있는 글과 형상이 누구의 것인지를 물으신다. 무리들이 가이사의 것이다라고 대답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시자 무리들은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라워했다. 데나리온의 한 면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다른 한면에는 ‘Son of divine Augustus’라고 적혀 있었다. 
  • Jesus rejects their either-or approach. Obligations to God and state are not necessarily in conflict (e.g., Rom 13:1–7; 1 Tim 2:1–3; Titus 3:1–2; 1 Pet 2:13–17), though obedience to God takes unquestioned priority (1 Sam 13:13–14; 2 Sam 12:1–15; 1 Kgs 13:1–3; Jer 20:3–6; Acts 5:29). Jesus might also imply, as he had earlier (see note on 3:27), that Israel’s fundamental problem is not Rome but their own need to give God his due, namely, repentance (1:4–5, 15) coming from wholehearted love (12:30) of the one whose image they bear (in contrast to image on the coin, cf. note on v. 16).

우리는 본문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정부의 요구, 국민으로서의 책무를 어떻게 감당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다. 본문은 단지 정치와 종교, 세속 정부와 교회로 나누는 이원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권력이 우리의 신앙이나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충돌되지 않을때 세속 권력에 따를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처럼 국가 권력, 권제잡은 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설명한다. 
  • This famous statement by Jesus does not provide a full account of the Christian’s obligation to the state. It does not justify the medieval concept of two empires, the ecclesiastical and secular, each supreme in its own sphere. It does not justify the modern dichotomy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It simply affirms that obedience to a secular power does not necessarily conflict with obligation to God. The lesser obligation may be included in the greater. Other passages on the subject are Rom 13:1–7; 1 Tim 2:1–3; Titus 3:1–2; 1 Pet 2:13–17.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인가? 동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 넣으면 하나님의 것일까? 성경은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 것을 명했다. 또한 성경은 만물이 그에게로부터 나오고 그에게로 돌아간다라고 말한다. 한시적으로 이땅의 권세에게 맡기신 것이다. 우리는 이땅의 권력을 절대화해서도 안되고 주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이땅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그들을 세우시고 허용하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온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그러한 창조신앙이 우리가운데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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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e went out again beside the sea, and dall the crowd was coming to him, and he was teaching them. 14 eAnd as he passed by, he saw fLevi the son of Alphaeus sitting at the tax booth, and he said to him, “Follow me.” And he rose and followed him. 15 And as he reclined at table in his house, many gtax collectors and sinners were reclining with Jesus and his disciples, for there were many who followed him. 16 And hthe scribes of1 the Pharisees, when they saw that he was eating with sinners and tax collectors, said to his disciples, g“Why does he eat2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17 
And when Jesus heard it, he said to them, “Those who are well have no need of a physician, but those who are sick. iI came not to call the righteous, jbut sinners.”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막 2:13–17.

13-14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셨을때 큰 무리가 나아왔고 예수는 그들을 가르치셨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셨다. 이에 그의 부름에 응답하여 레위가 주님을 따랐다. 
본문의 알패오의 아들은 레위, 다른 이름으로는 마태로 주님의 제자이다. 

15절) 그의 집(레위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 세리와 죄인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앉아서 식사를 했다. 본문의 제자들은 마가복음에서 58번 사용되는데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다. 제자의 어원상 의미는 학습자라는 의미인데 예수의 제자들은 그 이상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른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들중에 일부는 예수를 따랐다. 제자됨에 있어서 선생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누구를, 무엇을 따르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세리로서 돈을 따르는 것보다, 죄인으로 죄를 따르는 것보다 예수를 따를때 그들의 인생은 변화될 것이다. 

16절) 바리새인중에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비난한다. 어찌하여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바리새인은 분리주의자라는 어원을 가진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고 서기관들에 의해 가르쳐진 구전해석을 중시했다. 그래서 죄인들로 여거지는 무리들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Here Mark mentioned the Pharisees for the first of twelve times. They were a party of laymen that developed during the period of Hasmonean independence (142–63 b.c.) and devoted themselves to keeping the law, especially its oral interpretation, as taught by the scribes. The name probably means separatists, and they may have been called such because of their separation from the common people, the “sinners” of the present passage. Despite the very close relationship of the groups, not all scribes were Pharisees; and only a few Pharisees were scribes. Mark indicated that fact by his unique expression “scribes of the Pharisees,” which the NIV renders “teachers of the law who were Pharisees.”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62–63.

17절)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의인을 부르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의사가 병든자들과 분리되어서는 그들을 고치고 치료할 수 없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음같이 주님의 이땅가운데 오심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계신 가장 고결하고 정결하신 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악되고 연락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다. 
- The love of Jesus for all kinds of sinners, his initiative in seeking them, his giving them full acceptance, and his desire to have close fellowship with them was a new and revolutionary element in religion and morals. Mark intended to convey the message that the disciples of Jesus should have the same attitude.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63.

이 시대의 교회는 약하고 소외받는 이들보다 강하고 주목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주변의 레위인, 세리는 누구인가?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이러한 죄인들과 세리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고 이들에게도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임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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