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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e Son Is the Christ?
35 fAnd as gJesus taught in the temple, he said, “How can the scribes say that hthe Christ is the son of David? 36 David himself, iin the Holy Spirit, declared,
j“ ‘The Lord said to my Lord,
“Sit at my right hand,
until I put your enemies kunder your feet.” ’
37 David himself calls him Lord. So lhow is he his son?” And the great throng mheard him gladly.
Beware of the Scribes
38 nAnd in his teaching he said, “Beware of the scribes, who like to walk around in long robes and like greetings in the marketplaces 39 and have the best seats in the synagogues and othe places of honor at feasts, 40 pwho devour widows’ houses and qfor a pretense make long prayers. They will receive the greater condemnation.”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Mk 12:35–40.

예수님의 목적은 서기관들의 메시야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마가의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기록을 통해서 진정한 메시야의 성격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 Jesus’ purpose probably was to expose the inadequacy of the scribes’ interpretation in general but especially their concept of the Messiah. Certainly Mark’s purpose in recording the incident was to give insight into the true nature of the Messiah.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199.

- The question arises, What did Jesus and/or Mark mean? Some have claimed the passage denies that the Messiah was to be of Davidic descent. The idea of a Davidic origin of the Messiah, or at least an ideal king, is so firmly established in the Old Testament, however, that such a denial either on the part of Jesus or Mark is most unlikely. The most important Old Testament passages that speak to the Davidic origin of the Messiah are: 2 Sam 7:11–16; 22:51; Pss 18:50; 89; Isa 9:6–7; 11:1–9; 16:5; Jer 23:5–6; 30:8–9; 33:15, 17, 22; Ezek 34:23–24; 37:24; Hos 3:5; Amos 9:11.20 In the New Testament the title “Son of David” appears outside of Mark in Matt 1:1; 9:27; 12:23; 15:22; 20:30–31; 21:9, 15; Luke 18:38–39; 20:41. The concept is present in Luke 2:4; Rom 1:3; 2 Tim 2:8. The first certain Christian denial of Davidic descent is the so-called Epistle of Barnabas 12:10–11 (ca. a.d. 130), and that denial was forged in the heat of controversies with Jews. For Jesus to have denied the Davidic descent of the Messiah would have subjected him to attack, but there is no trace of such an attack in any Gospel. For Mark to have denied Davidic descent would have contradicted his earlier “acceptance” of the term (10:47–48, which, if it can be accepted at face value, indicates that Jesus accepted it as well). The best conclusion therefore is Jesus and Mark intended to correct an inadequate Jewish concept of the Messiah.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199–200.

35-37절) 지금까지 질문을 받으시던 주님께서 이제 성전에서 이들을 향해서 묻고 계신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 다윗은 구약을 통해서 성령에 감동되어 주님께서 나의 원수를 나의 발 아래에 둘때까지 주님의 우편에 앉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칭해는데 어찌하여 그리스도가 그분의 후손이 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 가르침을 많은 사람이 즐겁게 들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개역개정)
36절에 언급된 표현은 시편 110:1의 내용인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첫번째 단어는 '야훼'로 두번째 주는 '아도나이'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두번째 주, 아도나이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본문을 "하나님께서 나의 상관에게 말했다(God said to my superior.)"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헬라 표현에서 큐리오스, 주는 모두 다 사용된다.
- The quotation is of Ps 110:1.21 In the Hebrew the first word meaning “Lord” is Yahweh, which always refers to God; but the second is Adonai, which sometimes refers to God and sometimes not—as in the psalm where it originally referred to a king, whoever and whenever he was. One might paraphrase, “God said to my superior.” In Greek, however, the same word (kyrios, lord) is used in both places.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200.

당시의 문화적으로 자신의 아들이나 먼 후손을 주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다윗이 후손을 그의 주라고 말한것은 그가 육체적인 후손 그 이상임을 언급한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윗의 후손, 혹은 메시야임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 본문의 이슈는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시다. 하지만 그 한계에 제한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이상으로 사람의 아들, 인자이시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지 유대인들을 대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대표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결국 본문속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혁명가, 정복자, 승리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가가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종으로, 섬기는 자로(10:45)로 오셨다.

38-40절)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을 삼갈 것을 가르치신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상석을 원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기도를 길게 하는 자들이다.
이 본문은 앞서 8:15절을 기억나게 한다. 앞서 서기관들의 가르침이 도전받았다면 이제 그들의 행동이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38절의 긴 옷은 회당에서 기도를 하거나 제의를 드릴때 입는 예복이었다. 그런데 어떤 서기관들은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 시장에서 사람들의 존경의 인사를 받기 위해서 이러한 복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회당에서 높은 자리, 가장 중요한 자리는 회중들을 마주보는 자리나 성경의 두루마리를 담고있는 궤 앞을 말한다. 잔치의 윗자리는 주최자의 좌우나 그가 배석한 테이블을 말한다.
- The “most important seats in the synagogues” were on the bench facing the congregation and in front of the chest that contained the biblical scrolls. The “places of honor at banquets” were on the right and left of the host or at least at his table.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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