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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able of the Tenants
12 bAnd he began to speak to them in parables. “A man planted ca vineyard dand put a fence around it and dug a pit for the winepress and built a tower, and eleased it to tenants and fwent into another country. When the season came, he sent a servant1 to the tenants to get from them some of the fruit of the vineyard. gAnd they took him and beat him and sent him away empty-handed. gAgain hhe sent to them another servant, and ithey struck him on the head and jtreated him shamefully. gAnd he sent another, and him they killed. And so with many others: some they beat, and some they killed. He had still one other, ka beloved son. lFinally he sent him to them, saying, ‘They will respect my son.’ But those tenants said to one another, m‘This is the heir. Come, n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And they took him and killed him and othrew him out of the vineyard. What will the owner of the vineyard do? pHe will qcome and destroy the tenants and rgive the vineyard to others. 10 sHave you not read tthis Scripture:
u“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2
11 this was the Lord’s doing,
and it is marvelous in our eyes’?”
12 And vthey were seeking to arrest him wbut feared the people, for they perceived that he had told the parable against them. So they xleft him and went away.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한 자들을 향해서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인가를 물으신 주님께서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본문의 포도원의 농부들을 진멸하는 것이 하나님께 반역한 이스라엘, 성전을 허무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2절) 비유로 말씀하시는 주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울타리를 세우고 포도주짜는 구멍을 파고 망대를 세우고나서 이를 관리하도록 농부들에게 세로주고 다른 나라를 갔다. 주인은 많은 비용과 수고로 포도원을 세웠고 농부들에게 이를 맡겼다. 주인이 이 농부들에게 포도 열매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요구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 The landlord goes to great expense, which justifies his rightful expectation for a share in the profit. The allusion to Isa. 5:1–5 (vineyard, fence, tower) suggests that Jesus continues the theme of “fruit of worship and righteousness for God” (see note on Mark 11:13–14). Immense Herodian-era manor houses with walls, towers, and a winepress have been excavated near Caesarea Maritima.
이에 열매 맺는 때가 되어서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을 얻고자 주인은 한 종을 대리인으로 농부들에게 보냈다. 

본문의 비유는 분명하게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울타리는 동물을 막기 위한 것이고, 포도주를 짜는 틀은 포도를 짓이겨서 그 즙을 만드는 장치, 구멍이고 망대는 동물이나 도적을 감시하기 위한 높은 감시대를 의미했다. 이사야가 제기한 문제는 열매 없음이었다. 하지만 현재 비유에서 강조하는 것은 농부들의 완악함이다. 말할것도 없이 이 농부들은 사두개인, 기득권을 지닌 제사장들을 의미한다. 
  • The allusion is to Isa 5:1–7, where the vineyard clearly is Israel, and the owner is God. The same identifications are to be made in the parable here. No attempt should be made, however, to identify the wall, the pit, or the tower as the law, the altar, and the temple, respectively, as did the medieval church in its excessive allegorical interpretations. They simply are part of the apparatus of the story. They do accurately describe a first-century Palestinian vineyard. The wall (“hedge,” RSV, NKJV; but not “fence,” NRSV, GNB) was to keep animals rather than people out. The “pit for the winepress” was actually a trough into which the juice ran after having been crushed from the grapes. The tower was to provide an elevated observation point and shelter for those who kept watch against animals and thieves.
  • In Isaiah the problem is a fruitless vineyard, i.e., a nation that failed to produce the fruits of righteousness. In the present parable the emphasis is on the wickedness (greed, dishonesty, violence, murder) of the tenants, who seem to represent the leaders of the nation. Unfortunately such things actually characterized the Sadducees, the priestly aristocracy.

3-5절) 그런데 농부들이 주인의 종을 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다. 이어 다른 종이 왔으나 이제는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모욕을 주었다. 이어 다른 종을 보내자 농부들은 그 종을 죽였고 그 외에 많은 종들을 이어 보내었는데 그들을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본문에서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단어들을 보면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종들을 잡아(물리적으로 포박하여) 때리고 그들을 빈손으로 보냈다. 이어서 다른 종를 보내자 그의 머리를 때리고 모욕을 주었다. 이제 또다른 종을 보내자 그를 죽였다. 이후에 보낸 종들은 때리고 죽였다. 
본문 4절에 머리에 상처를 내고라는 단어는 ‘케팔리오’라는 단어로 뒤에 나오는 모퉁이의 머릿돌에서 나오는 ‘케팔레’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유대인들은 본문을 들으면서 농부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을 때리고 함부로 대했다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6절) 이제 주인은 오직 한 사람,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최후로 보내면서 자신의 아들은 존경할 것을 바랬다. 본문의 아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The “son, whom he loved” is of course Jesus (see 1:11; 9:7). Whether the original hearers of the parable realized this is unlikely, but the original readers/hearers of Mark’s Gospel certainly did. The Greek could be translated simply, “He still had one beloved son.” Commentators and lexicographers differ, however, on whether in context the word means “beloved” (RSV, NASB, REB; cf. NEB) or “only” (NEB, REB margin). The NIV (as well as the GNB) attempts to convey both ideas. Etymologically the word is related to the word “love,” but in Gen 22:2, 12, 16 LXX it means only, in the sense that Isaac was certainly the only child of the promise.

7-8절) 이에 농부들은 주인이 죽고 아들을 보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인이 죽으면 그 포도원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으로 여기고 주인의 아들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그 시체를 포도원 밖에 내던졌다. 이처럼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행동이다. 
  • The ultimate insult was to leave a corpse unburied. That was not the fate of Jesus, and again the early church does not appear to have invented the parable on the basis of what had happened previously. Jesus, rather, suffered outside the city (cf. Heb 13:12).

9절) 포도원 주인은 이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것이다. 본문의 다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것을 거부했다. 이제 이 약속은 이방인들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는 새 이스라엘이고 진정한 이스라엘이다. 주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교회에 이 사명을 맡기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 The origin of this verse has been denied to Jesus because elsewhere he did not answer his own questions. He may not have done so in the present instance, as Matt 21:41 indicates. Mark simply was not concerned to identify who gave the answer. The “others” to whom the vineyard was given were, of course, the Gentile church. The church is the inheritor of the position formerly held by Israel, the recipient of many of the promises originally made to Israel. It is the new Israel, the true Israel. By recording the statement of Jesus, Mark may have wanted to make that point.

10-11절) 이제 마가는 포도원 비유에서 건물의 비유로 관심을 돌린다. 건축자(이스라엘의 지도자들)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머릿돌(the cornerstone)은 건물의 건축시에 첫번째로 놓는 돌로 건물 외벽의 코너, 즉 두 벽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지는 돌을 의미한다. 원어로 ‘케팔레 고니아’로 케팔레는 머리를 의미하고 고니아는 모퉁이, 코너를 의미한다. 이는 모퉁이의 머리리는 의미라 말그대로 모퉁이의 머릿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약에는 5번 등장하는데 마 21:42, 막 12:10, 눅 20:17, 행 4:11, 벧전 2:7이다. 
  • Here the metaphor changes from a vineyard to a building. The quotation is from Ps 118:22–23, a passage quoted two other times in the New Testament in addition to the parallels in Matt 21:42 and Luke 20:17 (Acts 4:11; 1 Pet 2:7). The Jews understood the stone to be their own nation, which was rejected by other nations but which would be restored by the Lord. The early Christians understood it to be Jesus Christ (note especially Eph 2:20). Other “stone” passages are Rom 9:33 and 1 Pet 2:8, which quote Isa 8:14, and 1 Pet 2:6, which quotes Isa 28:16. As the NIV note indicates, the Greek word Mark used can mean either the capstone of an arch or the cornerstone of a wall.
또한 머리를 상한 선지자는 세례 요한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6:27)

실제로 유다의 멸망이후에 예루살렘은 훼파되었다. 성전은 파괴되고 성문은 불타버렸다. 실제로 솔로몬의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 쓰레기더미안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후에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버려졌던 건축재료들은 찾아냈고 사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된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나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헤게모니에 관심이 없으셨다. 그분의 비전은 하나님과의 화해였다. 

예수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라고 묻는 무리들의 질문에 대해서 주님은 답하지 않으시고 비유를 말씀하신다. 복음서의 비유는 흔히 심판의 사인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지속적으로 실패한 결과이다. 
  • Jesus had declined to give the leaders of Jerusalem a direct answer about his authority, but as he began to speak in parables, he gave them an indirect one. In this Gospel parables are often a sign of judgment. They indicate that someone has stopped listening to God. A parable is the first consequence of a persistent failure to listen. A parable makes understanding what God is saying more difficult, and the parable brings with it a set of new conditions. In order to understand God it is necessary to see oneself through the lens of the parable, something that is typically unflattering. Parables are a witness that a profound alienation has occurred, and repentance in some form becomes a requirement for understanding what God says. Speaking in parables was not, then, a concession to Jesus’ opponents. It was an escalation of the argument.

마가는 사 5장의 포도원 비유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첫번째 이사야의 비유에서 사랑받는 자는 하나님인데 예수님의 비유에는 사랑받는 자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다. 마가는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가난한자를 착취한 유다의 지도자에게 죄를 물은 것처럼 하지 않으신다. 이사야는 쓴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서 경고했다면 예수님의 비유는 포도원의 소산을 농부들이 정당하게 주인에게 드리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다. 주님이 대리인, 종들을 통해서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이를 거절한 것이다. 도리어 그들은 그러한 요구를 하는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나아가 아들을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세번째로 이사야의 비유는 포도원이 황무지가 될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마쳐진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농부들을 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비유는 포도원은 파괴되지 않고 단지 농부만이 바뀔 것을 말하고 있다. 
  • The parable of the tenants is a revision of the parable of the vineyard found in Isaiah 5:1–17. In the original parable the vineyard represented the people of God. When God came to gather fruit from the vineyard, there were no sweet grapes to pick—only bitter ones. The bitter grapes symbolize the bloodshed and oppression that the people of Israel and Judah had produced instead of the justice and righteousness God had hoped to harvest. Isaiah’s parable ends with a pronouncement of judgment against the people; the fertile land of Judah would become a wasteland.
  • Although Jesus borrowed the themes of the vineyard, the beloved, the winepress and the watchtower from Isaiah’s parable, he made three fundamental changes that give his parable a different focus. Isaiah’s parable is set as a song to the beloved one, that is, to God. In Jesus’ parable the beloved one is the son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In the Gospel of Mark the term beloved occurs in two other places. At both the baptism of Jesus an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God called Jesus the son whom I love. Reading the parable in the broader context of Mark, it appears that Jesus has put himself inside this parable.
  • Second, Jesus did not charge the rulers of Judah with exploiting the poor, as Isaiah did. The thrust of this parable is not that the vineyard produces bitter fruit. The problem is that the tenants will not give the owner any of the vineyard’s produce. These tenants refuse to recognize the owner’s rights and the authority of his representatives. They are guilty of robbery, the same charge Jesus made in Mark 11:17, and ultimately of murder. There is plenty of bloodshed in this parable, but this violence is not exercised by the rich and powerful against those beneath them. In killing first the servants and finally the beloved son, the tenants attacked the owner. This is more like a rebellion—violence from the bottom upward.
  • Third, Isaiah’s parable ends with a warning that the vineyard would become a wasteland. His parable was a prophecy of doom for the people of Judah. Jesus’ parable ends with a different scenario: the owner will destroy the tenants and give the vineyard to others. This parable envisions the destruction of only the tenants. The vineyard is not to be destroyed, but the tenants will be replaced.

본문은 분명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비유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포도원 주인께서 이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실 것이고 이제 이것을 관리하고 열매를 맺게해서 주인에게 바칠 책임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인이 열매를 요구할때 우리는 어떤 열매를 그분께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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