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가르치기(알버트 그린)
서론
- 교육의 공식적인 통로 : 가정(사랑을 배우는 곳), 교회(죄로부터의 구원을), 학교(주위의 세계를)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로 학교의 영향을 점차 교회나 가정의 영향과 일치되지 않는 경향을 보여왔다.
- 또한 또래 집단의 압력과 문화의 영향은 어린이들의 마음과 지성을 배양하는 비공식적인 기관이다.
1부 이시대를 이해하기
1장 계몽주의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대상 12:32; 엡 5:15-17)
- 르네상스 : 유럽에서 중세와 현대 사이에 일어난 변천 운동으로, 이태리에서 14세기에 시작하여 17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예술과 문확의 번성ㅇ로 표현되는 고전의 영향으로 인한 인본주의적 부활과 현대 과학의 시작에 의해 특징지어진다.(p.23) 르테상스는 교회와 성경과 관련해서 긍정,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 종교개혁
- 과학혁명 : 코페르니쿠스, 데카르트, 뉴턴과 로크 / 초기 과학자들의 작업은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과학과 기독교 신앙이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계몽주의 : 과학에서 세계관으로의 전이, 성경적 계시에 대한 믿음을 중립화 해 버리고 무시해 버림으로 이성주의 세계관을 발달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우주와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겨났는데 이는 동양종교나 기독교 신앙보다 더욱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 이러한 계몽주의 의식은 사실들이 중립적이며 진리를 제공한다고 여기게 되면서 신을 변두리로 몰아내어 버렸다./ 이러한 결과로 인간의 세계는 과학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공적인 영역과 개인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목적, 가치, 도덕성, 윤리라는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되었고 이 과정에서 공적인 사고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종교를 개인적인 영역으로 제한시켜버렸다.(변두리로 쫓겨난 신)
- 인간의 능력에 대한 비관주의(동양의 순환론, 업보, 무방향)로부터 하나님의 영향 없이도 이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낙관주의로의 이동은 인간의 권리를 강조하게 되었다.(p.28)
- 교육의 목적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인생에서의 성공, 특별히 경제적인 면에서의 성공으로 옮겨갔다.
2장 포스트모더니즘
계몽주의의 낙관론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무너져버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떠한 궁극적인 진리의 존재를 부정한다.
“모더니즘은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자기 확신적이었다.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아상은 수동적이며 회의적이고 불안정하다.”(42) /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짓는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 of Suspicion)
3장. 대안 의식
- 예언자적 상상력 : 대안의식 : 세계관을 대신하는 작업(세계관이 의식의 수준으로 떠오르고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활동하게 될때 우리는 철학을 갖는다.(51)
- 기독교 학교의 목표 : 학생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봉사의 반응을 깊게 하는 창조세계의 탐색이다.(58)
5장. 기독교 학교에서의 찬양과 감사
하나님께서 창조계를 만드신 이유 : 하나님이 그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계속 붙들고 계셔서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제할 수 있도록(86)
-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계시이고 그에게 반응하는 통로가 된다면 우리가 그것을 연구하는 것과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드리고 찬양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2부. 기독교 철학의 기초
6장. 기독교 철학
세계관이란 일반적으로 의식 수준 아래에 있기에 학교 설립에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어떤 세계관의 기초위에 시작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히브리인들의 신앙이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원론적인 견해가 들어오게 되었다. 아퀴나스는 실재를 자연과 은총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이후에 종교개혁자들마저도 교회를 이러한 이원론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다. 이후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의 영향으로 은혜에 대한 관심은 약화되어 갔다. 프란시스 쉐퍼는 자연이 은혜를 삼켜버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구사회는 과학과 자유의 두개의 축을 고수하게 된다.
- 계몽주의 = 낭만주의 / 20세기 철학자들의 관심분야가 형이상학에서 인식론(존 듀이)과 가치론(실존주의)으로 옮겨졌다.
- 포스트모더니즘 :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를 부정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인격자체가 독립적 존재라는 확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 계몽주의는 이성주의를 강조하여 신을 사실이라는 논증 가능한 공공의 영역에서 개인적 가치의 영역으로 밀어내 버렸다.(97)
- 기독교인들이 철학을 회피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 : 1) 교회는 초기부터 철학과 더불어 지내왔다. 2)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위미한다.(잠 8:10-11) 3)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이시다. 4) 여러세계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들을 의식의 수면위로 끌어 올려서 그것들을 사고체계(철학)으로 만들어 내게 된다.
- 철학연구의 기본 범주 :
1) 형이상학 : 실재의 본성에 관한 연구(우주론, 신학, 인류학, 존재론)
2) 인식론 : 진리와 지식의 본질에 관한 연구와 이러한 것들이 습득되는 방법
3) 가치론 : 가치의 질문에 대한 연구(윤리학과 심미학)
7장 하나님의 말씀
- “우리의 의식은 왜곡된 인식의 영역과 언어와 수사학이라고 하는 우상숭배적인 제도에 의해 장악되어 왔다.”(107)
- 북미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107-8)
- 하나님의 말씀(삼상 3:9; 히 4:12, 1:3)
-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들을 보존하시는 것은 하나의 계속적인 창조와 완전히 동등한 것이며, 또는 매 순간마다 무에서 또는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계속해서 창조하고 있는 것과 완벽하게 동등한 것이다.”(112)
- 실재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기독교 철학적 대답은 다음과 같다. 즉 자연주의 철학이 주장하는 것 같이 그것은 질료의 원자나 분자가 아니다. 이상주의자들이 지니고 있는 진리에 대한 영원한 개념도 아니다. 물질적인 것은 인간 이성에 의해서, 영적인 것은 신앙에 의해서 이해된다고 주장하는 신스콜라주의의 진리 강령도 아니다. 사물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이며, 그대로 계속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계속적으로 존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그를 힘임어 “살고 기동하고”(행 17:28) 있다. (119)
8장 창조
창조는 1) 하나님의 말씀사역이다. 2) 창조는 단회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개념으로 섭리를 통해서 진행된다.(골 1:17; 히 1:3)
- 창조의 특성 :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수단, 계시적 특성(롬 1:20; 사 6:3; 시 8:1; 시 19; 욥 42:5-6) / 에덴동산(이름 붙임), 구약성경, 예수그리스도
2) 우리가 찬양과 경배와 헌신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수단, 성례전(모든 피조물이 성례전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롬 12:1-2; 고전 10:31; 골 3:17
- 헤르만 도여베르트의 분류(15가지 양상)(132)
- 장님 코끼리 만지기 : 마르크스(경제적 측면), 스키너(생물학적 측면), 프로이트(감각)(134)
-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창조는 우리의 구원의 근거일 뿐 아니라 우주론의 근거가 된다.
9장 인류학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사실(엡 4:24; 골 3:10)
- 문화명령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 :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해 사용하고 그리고 이것을 향유하기 위해서 부름받았다.(140)
* 타락 : 인간의 독립선언
- 창 3장; 마 4장; 요일 2:16
* 구속 : 복음(좋은 소식), 범죄한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를 우리 자신들의 대표로 받아들임으로 그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을 깨끗하게 할 능력이 없다. 인간은 모두 나약함과 죄성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있고 깨끗하며 구원하는 손길에 자신을 위임해야 함다.(146-7) 신비한 연합(요일 5:4, 요 15장 포도나무비유)
10장 지식
인식론 : 지식을 다루는 철학의 분야
- 계몽주의의 아버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물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사색은 그만두고 단순히 사실만을 추구하라고 말했다.
* 현대 인식론의 문제 : 계몽주의는 새로운 빛의 시대로 18세기 이전에는 미신을 믿는 암흑속에 있다고 여겼다. 과학적 지식의 한계로 인해 자연과 자유가 분리되었다.(151)
- 우리는 계시의 빛 안에서만 세상을 자유롭게 선택된 창조의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란 신앙과 학문이 분리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신앙이 없는 학문은 존재할 수 없다. 토마스 쿤(패러다임 쉬프트)과 마이클 폴라니는 개인적으로 편견적인 요소를 갖지 않는 과학적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히 11:3을 “믿음으로 ….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한다.
* 지식의 본질 :
1) 참된 지식은 언제나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고 유지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피조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응답과 반응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2) 사랑이 담기지 않은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3) 지식은 인격적이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차이)
11장. 가치와 아름다움
12장. 우상숭배, 이원론, 영지주의
-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때 우리는 복음의 형식만 취하고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 우상숭배는 실로 피조물이 창조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 우상숭배
1) 우리들의 우상을 없애야 한다. 2) 우상숭배는 다른 사람의 손해를 끼치는 우리 생활의 한 측면만을 언제나 강조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3)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우리 생활의 모든 면들을 다시 살펴봐야만 한다. 4) 그리스도인들은 첫 세가지 과정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갱신을 추구해야 한다.
3부. 기독교 학교의 내용
13장. 창조와 언약
- 우리가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며, 구원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히 1:3; 골 1:17; 행 17:28)
14장 학교 공부의 회복된 의미
- 그리스도인 교사는 공부에 대한 의미를 복원하고, 일반 교사는 중립적인 사실들에 어더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 계몽주의(가치로부터 사실을 분리 / 과학이 바뀔때 진리가 바뀌는 문제가 발생)
- 기독교 학교의 목적은 창조세계를 탐구하는 것이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창조세계에 접근하여야 한다.
-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한 학생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 학생이 탐구 행위에서 그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돕는 것이다.(218)
- 블룸버그 : 문화적, 언어적, 사회적, 경제적, 심미적, 법적, 윤리적, 고백적 앎
- 사실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의미를 회복하는 것
15장 인간의 경험과 학과 교과목
- 존재하는 실재를 아는 두가지 방법 1) 실험과 관찰에 의한 분석(과학적인 방법) 2) 경험을 통한 방법
양상들 | 교과목 | ||
신탁의 | 신학 | 선험적(생활의 의미와 방향을 표현) | |
윤리의 | 윤리학, 도덕 | 옳고 그름(절대적 & 임시적 자유) | |
공정한 | 시정학 | 법률, 판단의 측면(보상과 보복) / 국가 | |
심미적인 | 예술 | 창조, 상상, 독창성의 영역(우뇌) | |
경제적 | 경제학 | 부족한 물건을 관리, 돈의 사용 | |
사회적 | 사회학 | 사회적 교제 | |
언어적 | 언어 | 상징적인 의미 | |
역사적 | 역사, 문화 | 인간문화의 형성 능력 | |
논리적(분석적) | 이성, 논리 | 구별할 수 있는 능력 | |
감각적 | 심리학 | 시각, 청각, 미각, 촉각 | |
생물의 | 생물학 | 생명력 | |
물질적인 | 화학 | 물질, 에너지, 원자, 분자 | |
운동학적인 | 물리학 | 동작을 위해 공간이 필수적 | |
공간의 | 지리학 | ||
양적인 | 수학 |
- 도여베르트의 15가지 양상, 각 양상들은 아래의 양상들, 경험들과 의존적인 관계를 가진다.(아래의 6가지 양상은 법칙을, 위의 9가지 양상은 규범(경험의 인간적인 측면)을 다룬다.)
16장 더 많은 양상들과 학교 교과목들
- 공간적, 운동적, 물리적, 생물학적, 감성적 측면
17장 규범적인 교과목들
4부. 기독교 학교의 방법
18장 성령과 함께 걷기
- 육신의 생각 : 1) 즐거움에 대한 추구, 2) 소유에 대한 추구, 3) 존재나 능력을 추구(육신의 정욕, 안목, 이생의 자랑)
- 행복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라면 겸손은 회개의 결과이다. 그리고 회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계속적인 특성이고, 회개 없이는 우리의 가르침의 노력에 하나님의 축북을 기대할 수 없다.(270)
- 겸손은 성령의 마음인 사랑이라는 또 다른 특성에 도달하게 한다.(271)
- 희망 : 계몽주의의 약속은 거짓으로 판명되었고 그 어느때보다 희망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19장 학습에서 사랑의 위치
- 루이스의 4가지 사랑 : 애정(affection), 우정(friendship), 에로스(eros, sexual love), 자비(charity, love for God)
* 사랑과 학습의 본질적인 관계의 세가지 개념 : 1)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피조물이 유일하게 참이다. 2) 사랑없이는 참 인간의 지식은 불가능하다.(빌 1:9-11; 엡 3:17-19; 골 2:3) 3) 사랑은 학습에서 형성능력을 갖는다.
- 루이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불필요한 피조물들을 사랑하셔서 존재케 하신 것은 그가 그들을 사항하고 완전케 하기 위함이다."
- 교사들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창조된 과목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은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과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그들은 진정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20장 가르침에서의 환대
- 헨리 나우엔(영적 발돋움) : 외로움으로부터 고독, 적대로부터 환대, 환영(illusion)으로부터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영적 생활의 세 측면이다.(294)
- 교사의 목표 : 정신적이며 정서적인 발달이 일어날 수 있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295)
21장 자기 지식을 통해 가르칠 자유
- 기독교적으로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한 자신을 아는 지식을 갖는 것이다.
22장 의미있는 가르침
-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중심이 고요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대해 준비되도록 교과과정을 조직하는 것이다. 교과과정은 모든 만물이 창조주를 선포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그들의 전 생애를 통해 창조주에게 반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나타낼 수 있도록 조직되어야 한다.(321)
- 평가의 방법 : 공식적인 시험, 포트폴리오, 자기 평가, 프로젝트, 전시
23장 기독교 학교에서의 공동체
- 기독교 학교의 목적은 반응적인 제자도가 되는 것 : 학생들의 재틍을 이끌어 내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평안을 구하는 것
- 집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을 내어주는 특성을 전달한다. 경쟁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헌신을 하도록 한다. 사랑은 언제나 주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부인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재능을 자기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즐기려고 노력한다. 또한 공동체를 향한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받은 사람은 회계할 것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도와준다.(329)
24장
- 인간 경험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창조된 세계에 제한되어 있다. 이 제외는 하나님과 만나는 인간의 능력이다. 기독교적 가르침을 다르게 만드는 이 요소는 성경적인 계시이고 피조물에 대한 공부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잘 섬길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된다.(336)
- 기독교 학교 교육 과정의 세가지 목표 : 1) 창조와 구원을 조화시키거나 화해시키는 것, 2) 창조아 타락, 그리고 구원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삶에서 보여주는 화목한 생활을 격려하는 것, 3) 학교 공부를 통해 하나님르 깊이 경외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섬기는 생활을 하도록 양육하는 것(339)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측면 : 1) 창조세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이고 본질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깊은 깨달음은 그를 더욱 경외하게 한다. 2)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깊게 하는 것, 3)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준을 깊게 할 것, 4) 하나님을 섬기려는 깊은 열망(343-6)
- 결론 : 기독교 학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성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성장은 창조와 구원이 화해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삶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표현되는 가운데,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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