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별이 없는 한 백성
제 1장 한 백성 신학의 정립
지난 교회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 교회는 줄곧 두 부류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역을 하는 주체와 사역의 대상이 되는 객체다.
정작 필요한 것은 교회 내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포괄적인 성경적 기초를 놓는 일이다. 가정주부, 간호사, 의사, 하수도 수리공, 증권 중개인, 정치가, 농부 등을 위한 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1. 하나님의 온백성의 신학 : 성직자 중심의 신학을 넘어서
총체적인 교회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몇가지 오해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평신도 신학을 찾으려는 것은 헛수고 일뿐이다. 평신도(laos)는 하나님의 온 백성이 누리는 엄청난 특권과 사명을 내포하는 대단히 영예로운 호칭이다. 성직자(clergy)란 단어는 클레로스라는 헬라어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지명된 혹은 상속받은 자들이란 뜻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는 그 구성원가운데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평신도는 없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직자, 곧 세상에서 하나님의 봉사와 사명을 계속하도록 임명되고, 상속받고, 사명을 받은자들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한명의 사역자를 갇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역 곧 하나님의 사역체인것이다. 교회는 한가지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명이다. 그리고 한백성, 하나의 삼위일체적인 백성,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한 백성만 있을 뿐이다.
둘째, 이와같은 유감스러운 현실로 인해서 소위 평신도 신학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보통 보충적인 과업에 해당된다. 우리가 정립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의미의 성직주의, 곧 기능상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차별이 없는 한 백성, 기존의 성직주의를 초월하는 한 백성의 신학이다.
셋째, 하나님의 온 백성의 신학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하는 삶뿐 아니라, 직장, 정부기관, 사무실, 학교, 가정 등 세상에서의 흩어진 삶을 포함해야 한다.
끝으로, 하나님의 온 백성의 신학은 당대의 상황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마땅하다.
2. 하나님의 온 백성을 위한 신학 : 비실천 신학을 넘어서
하나님의 온백성을 위한 신학을 회복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신학의 실천성에는 신학 이론의 적실성 이상의 것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에 나오는 궁극적인 실재는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실재에 부합되는 것은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 단계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단일한 행동에 의해서이다.
둘째,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통틀어서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키는 행습은 최근에야 생겨난 것이다.
셋째, 우리는 신학이 실천적인 지혜의 위상을 회복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데 해방신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현대 신학자들과 세계 전역에 걸친 토착화된 신학들에게서 뚜렷이 드러난다.
3. 하나님의 온 백성에 의한 신학 : 학문적인 신학으 넘어서
비판적인 사고라는 시험을 통과한 훌륭한 신학이냐, 검토되지 않는 개념과 편견과 느낌으로 뒤죽박죽된 신학이냐.
첫째, 일상 생활은 신학적 성찰을 필요로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신학적 과업이란 성경을 해석할 뿐 아니라 삶을 해석하고 이 두가지를 함께 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 역사를 통틀어서 많은 중요한 신학자들이 비성직자, 비전문인 신학자였다.
셋째, 오늘날에도 신학은 보통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 아래로부터 하는 신학, 토착신학, 즉흥적인 신학은 종종 일종의 반작용으로 등장하지만 기도교 진리의 미지의 측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넷째, 이 아래로부터의 신학은 그저 호기심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신학세계 전체에서 근본이 된다.
- 정규적인 교의학 : 멜랑히통, 칼빈
- 비정규적인 교의학 : 아타나시우스, 루터
다섯째, 하나님의 온 백성에 의한 신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학의 과업을 재설정해야 한다.
여섯째, 온백성의 신학을 회복하는 데는 전문적인 신학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제2장 평신도와 성직자 개념의 재정립
1. 평신도가 없는 한 백성
평신도는 기능, 지위, 장소, 교육, 보수, 생활 방식등의 견지에서 규정되는데 "-하지 않는자"와 같이 부정적인 말로 정의된다.
부정적으로 평신도란 1) 교회의 성직자 계층에 속하지 않은, 법적으로는 예배의식과 관련해서든 적절한 권한이 없는 사람, 2) 수도사와 수녀처럼 서약을 통해 종교인의 삶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을 지칭
긍정적으로 평신도란 1) 세상에 남아 사회속에서 구체적인 과업을 가진자로서 그로 인해 교회 내의 위상이 정해지는 자, 2) 부름 받고 입양되고 사명받은 축복된 자로서, 세례와 견진으로 인해 교회 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일에 완전히 함께 하는 동역자를 지칭한다.
신약성경은 새 언약하의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할때 두가지 용어를 거부했다.
첫째는 '라이코스'인데 평범한 무리에 속한 자 라는 뜻이다.
둘째는 '이디오테스'인데 바보라는 영어의 어근으로 전문가나 전공자에 대비되는 범인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라오스'
라오스는 군중, 한 국가의 백성을 의미했다.
백성됨과 관련해서는 옛 언약하의 하나님의 백성과 놀라운 연속성이 있지만,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구약과 뚜렷한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즉 옛 언약하에서는 성직자들이 있었지만 새언약하에서는 그 기능이 폐지되었다는 것,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속으로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2. 성직자가 없는 한 백성
현대적인 성직자 개념에는 네가지 차원이 내재되어 있다. 1) 대리적인 기능, 2) 절대적인 안수와 연계된 존재론적 차이, 3) 성례전적 기능, 4) 전문가적 지위
성직자로 가득찬 교회
성직자(clergy)의 어원인 클레오스는 분깃, 몫, 누군가에게 할당된 것이라는 의미였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성경의 기업이 이제 모든 신자 사이에 공유되었다. 신약성경의 교회에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평신도가 없었고, 진정한 의미의 성직자로 가득 차 있었다.
구약 성경의 근거
백성 됨에서는 신구약간에 연속성이 있으나, 리더십에서는 철저한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구약성경에는 보편적인 (백성의) 사역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물론이다.
구약 성경에 암시된 성직주의
모세의 이야기속에서 성직을 찬성하는 듯한 이야기들은 모세의 리더십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것이지 성직 계급의 정당성을 옹호하는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구약성경에 암시된 성직주의를 인정할 때는 제사장의 기능이 배타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구약 성경의 성취
그리스도의 주되심, 성령의 강림, 종말의 시작이 구약의 라오스를 새로이 제정된 백성으로 변모시켰다.
사역하는 백성으로서의 교회
전 교회가 참 사역체 곧 일주일 내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공동체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성직자인데 하나님의 기업으로 존귀케 되고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하나님의 임명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성직자인 셈이다. 모두가 성령의 시대에 속한 능력과 복의 분깃을 공유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 됨에 뿌리를 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평신도인 셈이다. 모든 이가 사역을 베푼다. 모든 이가 사역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속성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에 들어서면 우리는 이와 매우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3. 성직자의 출현
1세기는 성직자나 평신도의 구별이 없는 한 백성의 시대대였던 데 비해, 2-3세기는 대체적으로 성직자-평신도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1) 헬라-로마 세계의 세속 구조의 모방, 2) 구약의 제사장직 모델을 교회의 리더십에 전이함, 3) 주의 만찬을 신비로 격상시켜 제사장의 집전이 필수인것처럼 만듦
교부들
제사장직 내의 제사장들
사역이 지닌 신비
크리소스텀의 말에서도 신플라톤 주의가 교회에 침투하여 육신을 벗어난 영성을 부추기는 이단적인 영향을 간파하게 된다.
서방은 성직자 리더십의 위계적 원칙을 강조한 반면, 동방은 공동체적 원리를 강조한다.
점진적인 성직주의화 현상
4-16세기 동안 성직자-평신도의 구별은 더욱 심화되었다. 개신교 종교개혁이 만인 제사장직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를 존귀한 백성의 지위로 되돌려 놓는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불완전한 개신교 종교개혁
- 종교개혁은 교회론 보다는 구원론에 더 치중했다.
- 설교자가 사제를 대치했다.
- 갱신에 부적합한 구조
- 가톨릭의 신학교 체제가 결국에는 채용되었다.
-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교회 사역에 의해 거의 완전히 잠식당했다.
- 안수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보수를 받는 교회의 전임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형편이고, 사회에서 하는 평신도 사역을 제대로 공인하는 절차는 전무하다.
- 적절한 평신도 영성을 가르치거나 촉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큰 발걸음을 내디딜 기회는, 마치 우리 선조들이 성경 읽기를 보통 그리스도인에게 열어 주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통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열어 주는 데 놓여있다. 이것을 하는 것은 일면 새로운 종교개혁의 개시를 의미하고, 다른 면에서는 이전의 종교개혁을 논리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을 뜻한다.
제3장 한 하나님, 한 백성
1. 두 백성인가, 한 백성인가?
성직주의란 보통 그리스도인이 특권과 권력을 가진 훈련받고 안수받은 자들에 의해 지배받는 것을 뜻한다. 로렌스는 말하기를 "평신도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예배당처럼 보이는 건물을 원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복장을 한 성직자를 원하며, 익숙한 방식의 예배를 원한다. 그리고 자기들은 홀로 가만두기를 원한다."
반성직주의란 평신도에 대한 지배 그리고 안수받은 교회 리더십을 배척하는 것을 뜻한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공존 관계가 더 일반적인 현상이다. 즉 성직자와 평신도가 상호 보완적으로 각각 자기 위치와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미지들
- 교회
- 성도
- 택하신 자
- 왕 같은 제사장
- 하나님의 집
- 하나님의 이스라엘
- 그리스도의 몸
- 주 안에서의 성전
- 하늘의 시민 / 하나님의 국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은유들
하나님은 포도원지기요, 목자요, 아버지, 건축가, 머리이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마디로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은 없다는 것이다.
2. 한 하나님, 세 위격
라오스의 정체성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그 소명 역시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나온다.
삼위일체적 정체성과 소명
라오스의 사역은 백성이 단독으로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통하여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성부는 창조하고, 섭리하며, 모든 존재를 위한 언약적 틀을 만드신다. 성자는 육신이 되고, 중보하고, 변형되고, 구속하신다. 성령은 능력을 부여하고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케 하신다. 하지만 각 위격은 다른 위격의 사역에 동참하므로 각 위격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부적합하다.
편향된 강조
|
백성됨 |
소명 |
리더십 |
성부 |
언약 공동체 |
창조적 청지기직 |
계층적 |
성자 |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
그리스도 지배적인 섬김 |
종 |
성령 |
은사적 공동체 |
은사 사용 능력 부여 |
은사 중심적 |
페리코레시스
하나님의 본질이 관계적이라고, 하나님은 상호 교통으로 하나님된 채 차별성 있는 위격의 복수성 가운데 존재하신다고 가르쳤다. 집합주의와 개별주의 둘다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페리코레시스'(상호성, 상호교환, 차별성을 없애지 않는 가운데 주고 받음)에 관해 말했다.
페리코레시스 교리는 셋 됨을 하나됨으로 축소시키거나 하나됨을 셋 됨 속에 용해시키지 않으면서, 셋 됨과 한됨을 탁월한 방식으로 함께 연결한다.
3. 교통인가, 합일인가?
라오스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체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 교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에 의해 생명을 얻고 생기를 받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는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다.
다양성을 통한 하나됨
라오스는 사람들이 때때로 주장하듯이 개성이 완전히 무시되는 하나됨이 아니라 풍성한 사회적 하나됨을 갖고 있는데, 그 안에서 각 지체는 자신을 초월한 공동체적 삶을 경험함으로써 더욱더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다. 하나됨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하나됨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목표요, 사역이다.
페리코레시스적 교회
첫째, 개별적인 지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사역의 위계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의 라오스의 모든 지체는 서로에게 속하고, 서로에게 사역하며, 서로를 필요로 하고, 풍성한 하나됨과 전체 사역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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