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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해 기록을 남깁니다. 

로잔대회이후 서울 선언문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지만 수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차 복음주의자들의 의견을 모아서 회담을 제안한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h-avQGdgrTXh4fXxDW82H6SbUQPcgnHN99SfFrDuHuU/edit?usp=sharing

 

제4차 로잔 대회 서울선언문에 대한 우리의 의견과 제안

제4차 로잔 대회 서울선언문에 대한 우리의 의견과 제안 2025.05.07 작성자: 김종호, 문지웅, 오형국, 이강일, 조샘 배경 Background 우리는 선교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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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로잔 대회 서울선언문에 대한 우리의 의견과 제안

2025.05.07

작성자: 김종호, 문지웅, 오형국, 이강일, 조샘

 

배경 Background

우리는 선교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로잔 운동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20대 청년 시절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사회로 가던 혼란기였습니다.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제시한 제1차 로잔 대회(1974년)의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과 이후의 보고서와 간행물들은 청년이었던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교회는 본격적으로 타문화권 선교사를 보내는 해외선교 운동을 시작했고, 1989년 마닐라에서 열렸던 제2차 로잔 대회와 마닐라 선언 Manila Manifesto 이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2010년 제3차 로잔 대회가 정리한 케이프타운 서약Cape Town Commitment과 지난 2-30년간 발행된 로잔 주제 보고서Lausanne Occasional Paper들은 복음과 선교의 총체성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여 세계와 한국 교회에 지속적인 자양분을 주었습니다.

제4차 로잔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소식은 기대와 염려를 동시에 일으켰습니다. 우선 한국교회가 로잔 대회를 개최하며 온전한 복음과 선교에 대한 이해로 새롭게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한편, 이 대회를 섬기게 된 대형 교회들의 감사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에서는 복음의 사회적 함의를 기독교 패권주의로 해석하거나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들도 있었기에, 총체성을 지향해 온 로잔 운동의 정신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에 2023년 초부터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서 로잔 대회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함께 학습과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이 논의를 한국 내 그리스도인 리더들의 모임으로 확장하면서 “총체적 선교를 추구하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 그룹이 형성되었습니다. 또 2023년말부터 4차 대회의 방향성에 대해서 로잔 운동 본부와 다양한 모습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로잔 본부와 소통하며 제출했던 질의서와 입장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naver.me/5ZJekUAS

이런 의견제시에도 불구하고 2024년 9월 23일 로잔 대회 첫날 서울선언문이 공개되었을 때, 우리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 전세계 65명의 리더들은 대회 기간 중 수요일 저녁에 자발적으로 모여 토론하며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날 나온 논점을 종합해 우리는 서울선언문에 대한 입장문을 만들었고, 대회 참석자 286 명의 서명까지 받아 9월 26일 로잔 신학위원회에 선언문의 내용 수정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로잔 본부는 대회 마지막날인 9월 28일, 서울선언문에 대한 의견을 온라인으로 모으기로 하였고, 우리는 지금까지 수정된 서울선언문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 어떤 응답도 로잔 본부로부터 받지 못했습니다. 침묵이 길어지고 있기에 우리는 서울선언문을 다시 검토하였고 그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로잔 본부에 전달합니다. 아래 내용을 반영하여 선언문이 개정되길 기대합니다.

 

서한의 목적 Purpose of the Letter

우리는 첫째로 로잔 신학분과가 서울선언문에 관련된 공청회를 개최하고 개정작업에 착수하기를 희망합니다. 1974년 제1차 로잔 대회 때에 남미 선교 지도자들과 존 스토트가 복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수의견을 발표했을 때, 이들의 관점이 묵살되지 않고 점차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어 로잔 언약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로잔 운동을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간 모든 로잔 대회의 선언문은 이후의 세계 선교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한 몸된 교회로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정직하게 소통하고 경청하는 가운데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세계 선교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좋은 문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로잔 본부가 기꺼이 경청하고 겸손히 자기 수정을 하는 모습은 선교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복음주의 교회가 공공성을 외면하고 기득권 수호에 집착하는 태도를 극복하기를 촉구합니다. 로잔 4차 대회가 끝나고 한 달만인 2024년 10월 27일, 다수의 한국 교회가 서울 도심에서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사회 경제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이 행사에 로잔 대회를 주도했던 대형 교회 지도자들이 대부분 참여하였습니다. 서울선언문에는 동성애를 경계하는 내용이 과도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회 직후 열린 이 집회가 선언문의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였습니다. 같은 해 12월 3일에는 현직 대통령이 불법 계엄과 내란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는데, 이어지는 혼란 가운데 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 불의를 지지하거나 침묵했습니다. 로잔 대회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한국 교회의 모습은 현재 세계 복음주의 교회 가운데 나타나는 정치적 극우화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흐름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교회의 자기 중심성으로 여기며 경계합니다.

 

서울선언문의 문제점 Problems in the Seoul Statement

우리는 서울선언문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아래의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하나님의 선교를 지역 교회의 제자 훈련으로 축소하였습니다.

이번 선언문은 7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III항은 지역교회를, V항은 제자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함께 연결되어 지역 교회가 교회론의 중심으로 정리되었고, 선교가 지역교회에서의 제자훈련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는 지역 교회의 선교로만 축소될 수 없고, 제자도는 제자훈련으로 동일시 될 수 없습니다. 로잔은 출발점부터 지금까지 복음전도 및 교회개척과 함께 사회적 책임과 변혁을 선교 과제로 수용해 왔습니다.  특히 제3차 로잔 대회의 케이프타운 서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성경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케이프타운 서약 1부 10항). 그러나, 서울선언문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강조를 생략하고 지역 교회를 선교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닌 교회 중심의 선교관은 로잔 운동 이전의 복음주의 선교론으로 퇴행한 것입니다.

서울선언문은 지역교회를 보편교회의 유일한 가시적 표현이며(31항) 인류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라고 단언합니다(72항). 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5장 3항)은 가시적 교회가 복음을 고백하는 사람들과 자녀들이며, 온 세상의 신자들의 연합이라고 고백합니다. 로잔은 그동안 교회와 선교단체의 동반자 관계를 특별히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서울선언문은 선교기관들을 “지역교회 밖의 사역자”로 칭하며 이들이 지역교회의 사역을 반영해야 하며, 지역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연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76항)고 선언합니다. 이는 지역교회만 하나님의 교회라는 왜곡된 이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선교 단체들도  교회의 또 다른 축임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V항의 핵심 주제는 제자도입니다. 제자도가 현대 선교에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제자도를 지역교회의 제자훈련으로 환원하는 것은 제자도의 본질을 흐립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삶의 상황 속에서 약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고 악과 싸우며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들과 동행하며 제자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도는 당시의 종교 제도였던 유대교 회당이나 성전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이뤄졌습니다. 만약 선교가 지역교회의 제자훈련으로 축소될 경우, 성도들의 삶은 세상 속에서 펼쳐지는 선교로 연결되지 못하고, 제도적 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생활로 전락할 것이 우려됩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그동안 저지른 과오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재정과 시간 대부분이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며 교회 안의 다양한 제자훈련을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복음적으로 해석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개신교는 사회적으로는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는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사회 속 이웃과 함께 하는 구체적 실천의 장에서 자라납니다.

서울선언문이 지역교회와 제자훈련 중심으로 선교를 축소시킨 동기는, III항 교회론 서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바른 교회론이 부족할 경우 “비정상적인 형태의 교회에 길을 열어주고” “신자들 가운데 환멸이 커져서 제도적 교회와 거리를 두게 되는 것”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거나 제도적 교회를 떠나는 것은 교회론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훈련 프로그램의 결여 때문이 아닙니다. 다양한 통계 자료들은 교회의 건강치 않은 거버넌스, 리더십 스캔들,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문화, 성도들의 삶과 사회 경험을 설명하지 못하는 신앙의 공공성 결여가 그 이유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단의 성장과 교인 감소 현상의 근본 원인을 간과하고 교회론을 강조하여 교회로 사람들을 다시 모으는 제자훈련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으면 오산입니다. 서울선언문의 관점이 한국교회의 과오를 세계교회가 반복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 동성애자들에 관한 서술은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적 태도를 드러냅니다.

서울선언문의 일곱 주제 중,  “IV. 인간,” “VI. 열방의 가족,” “VII. 기술” 세 부분은 세상의 상황을 다루고, 나머지 4개 주제는 “복음,” “성경,” “교회,” “제자도”로 복음과 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 대회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 미문의 환경적 재난, 국가 패권주의의 등장과 전쟁, 가속화되고 있는 정치, 경제적 양극화라는 다양한 세계적 변화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서울선언문은 이런 중요한 세상의 변화와 혼란에 대한 대응보다 기독교적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로잔 운동이 세상을 변혁하려는 선교적 지향보다는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 흐름은 “IV. 인간” 의 주제를 다룰 때 더 분명해집니다. “인간됨”과 “성”은 신학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 복잡하고 방대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선언문은 이 주제를 “성 정체성”에 한정해서 다뤘고, 동성 성관계와 동성혼이 왜 죄인가를 규정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와 동성애자들과의 선을 긋게 되었고, 죄인들과 우정을 나눴던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적인 모습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생명의 복음을 나누기 원한다면,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역사적 고통에 대한 공감, 이를 간과했던 교회의 회개를 먼저 성찰했어야 합니다. 이런 언급이 결여된 선언문에 유감을 표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는 성육신으로 시작해 세상 속에서 갈릴리 청년들과 나눈 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역은 삶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서울선언문이 온전한 신앙을 증거하지 못하고, 교회를 세상과 분리하고 복음을 종교로 전락시키는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합니다. 

 

3, 서울선언문 작성 과정은 로잔 운동의 제도화된 태도를 드러냅니다.

이번 대회 과도했던 등록비는 우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대회 운영 경비 대부분을 부담하는데도 불구하고 등록비가 $2,000로 책정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후에 탄력적으로 적용되긴 했지만, 여전히 높게 책정된 등록비로 인해서 다수 세계의 많은 이들이 대회 참석을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로 북미에서 뒤늦게 더 많은 이들이 등록하게 되었고 이들이 전체 참석자 중 20% 가량을 차지하며, 북미 지역이 과잉 대표되고 로잔의 다양성과 세계성은 약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로잔이 제도화, 관료화 되고 있다고 느꼈고, 조직의 운영과 확장을 위해서 수익을 남기려 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잔이 글로벌 선교 운동으로서의 정체성보다 로잔 조직 자체의 운영을 더 중요하게 여긴 행보에 유감을 표명합니다.  

서울선언문 작성과 발표 과정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문제를 봅니다. 서울선언문은 로잔 대회 첫날 저녁 이메일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대회 중 어느 순서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커녕 발표 자체가 없었습니다. 선언문에 대한 논의는 과거 로잔 대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이번 대회는 대중 연설과 전략 제시와 로잔의 브랜딩으로 채워졌습니다. 대회 기간 중 선언문에 문제의식을 느낀 참석자들 286명의 서명을 받아 선언문의 내용과 과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지만, 이에 대한 어떤 공식적 답변도 없었고 지금까지 선언문은 수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로잔은 선교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상상력을 담은 선언문들을 발표했고, 이는 다양한 상황 속에 있는 수많은 공동체가 선교적 시도를 하고 성장하게 하는 선교적 DNA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로잔 본부는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신학 및 선교학적 성찰을 나누기 보다는, 정해져 있는 선교적 과업을 전략적으로 끝내고자 지휘하는 기업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희 한국 복음주의자들 중 몇 명은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관한 컨설테이션”이라는 프리 로잔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7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분단과 갈등이 지속되는 한반도에서 열리는 로잔 대회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갈등과 전쟁 가운데, 이런 모임은 시의적절 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모임에 대해 미리 참석자들에게 알리는 일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로잔 국제 본부에 거듭 요청했음에도 전체 참석자들에게 메일로 공지해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또한 로잔 대회 기간 중에 본부가 정한 GAP 그룹 외에 다른 비공식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로잔 대회는 다양한 이슈 그룹들과 풀뿌리 모임들이 생겨나기에 좋은 광장입니다. 그럼에도 로잔 본부는 자신들이 대회기간 중 공식적으로 조직한 그룹 모임 외에는 자발적 모임을 격려하거나 돕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성령의 강림, 초대교회의 시작을 계기로 과거 이스라엘의 구심적Centripetal선교에서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을 통한 원심적Centrifugal선교로 변했습니다. 또 현대의 선교는 특정한 나라나 민족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과 공동체들이 자발적으로 선교를 실천하는 다중심적Polycentric선교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로잔 운동은 과거에 최소한의 조직만 유지하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 모임을 장려하고, 그들의 경험을 듣고 성찰하고 정리하고 소통함으로 선교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계선교에 공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언문 발표와 소통 과정 가운데 드러난 로잔 운동은 구심적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살아있는 선교를 인위적인 제도 안에 담으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제안 Our Proposal

우리는 이상의 문제들을 생각하며 로잔 본부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1.    이번 서한을 로잔 운동과 복음주의권의 리더들에게 공개하고, 선언문에 관한 공청회 개최를 요청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다양한 그룹들을 초청하여 함께 토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    이번 서울선언문의 내용에 신학분과의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동의가 있었는지 묻습니다. 선언문 작성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주시고, 신학분과의 모든 사람들의 동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여 답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3.    서울선언문의 전면 개정을 요청합니다. 풀뿌리 그룹들로부터 나온 의견을 경청하고 재고함으로써 로잔의 선언문을 시대적, 성경적 요구에 맞게 개정하는 일은, 이 시대의 선교적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로잔의 교회적 권위도 높여줄 것이라고 우리들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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