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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nd we urge you, brothers, admonish pthe idle,3 qencourage the fainthearted, rhelp the weak, sbe patient with them all. 15 See that tno one repays anyone evil for evil, but always useek to do good to one another and to everyone.
p 2 Thess. 3:6, 7, 11
3 Or disorderly, or undisciplined
q Isa. 35:4; [Heb. 12:12]
r Acts 20:35; See Rom. 15:1
s See 1 Cor. 13:4
t 1 Pet. 3:9; See Rom. 12:17
u [Rom. 12:9]; See Gal. 6:1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살전 5:14–15.
 
데살로니가전서 5:14–15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4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본문의 게으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탁투스’로 이 원형인 ‘아탁토스’는 부정접두사 ‘아’와 ‘배열하다, 배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탓소’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원어의 의미는 '대열을 벗어난, 이탈한’이라는 의미로 행군중 대열에서 이탈하여 낙오한 병사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이들이 대열에서 벗어난 것은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규율에 대한 반항과 게으름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무질서한, 규율이 없는’의 의미의 형용사형으로 신약성경에서 해당 본문에서만 한번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 표현이 부사로 사용된 곳은 2곳(살후 3:6. 11)이다.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규율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전통을 따르지 않고 게을러 일하기를 싫어하고 문제를 만들기만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런 이들을 권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권계하며’라고 번역된 ‘누데테이테’는 ‘누테테오’의 현재 명령형이다. 앞서 12절에서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권하는’일이었는데 이와 같은 표현이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마음이 약한’으로 번역된 ‘올리곱쉬코스’는 ‘규모가 작은’을 의미하는 ‘올리고스’와 ‘영혼, 마음’을 뜻하는 ‘프쉬케’의 합성어로 ‘마음이 작은, 용기없는 심약한’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의 반대말은 ‘메갈롭쉬코스’로 ‘기가 센, 자기 충족적인, 확신이 넘치는’의 의미를 가진다. 이들이 마음이 약한 이유는 박해(살전 3:3-4)나 주의 재림때에 죽은 자들에 대한 생각때문(4:13~5:11)이었다. 결국 이러한 박해나 재림에 대한 온전한 소망없음으로 인해서 마음이 약해진 이들을 격려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박해나 재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다. 주님의 부활을 목도하기전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모두가 순교의 길을 갔다. 바울도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이전에 추구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전히 헌신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이를 온전히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의 격려하다라는 표현은 ‘파라뮈데오마이’로 위로하고 확신의 말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힘이 없는’으로 번역된 ‘아스데논’의 원형은 ‘아스데네스’로 부정어 ‘아’와 ‘힘셈’아리는 의미를 지닌 ‘스데노스’의 합성어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연약한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본문에서는 단지 육체적으로 힘이 없는 상태라기 보다는 영적으로 연약한 자들로 여러가지 어려움과 유혹에 넘어지기 쉬운 이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힘 없는 자들은 외부의 충격에 쉽게 넘어지게 된다.(노약자) 이런 이들을 붙들어주라는 것이다. 
‘붙들어 주며’에 해당하는 ‘안테케스데’의 원형’안테코’는 ‘헌신하다, 참석하다, 지키다, 붙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마 6:24; 눅 16:13; 딛 1:9)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동한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압제하고 빼앗는 것이 당연한 세상가운데서 교회는 이에 대한 대안 문화로서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롬 5:6) 그렇게 주님께서는 본을 보이셨고 이 본을 따르며 실천하며 사는 공동체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오래 참으라’로 번역된 ‘마크로뒤메이테’의 원형 ‘마크로뒤메오’는 불행과 고생과 같은 어려운 상황중에도 끈기 있고 용기 있게 참는 것, 복수할 일에 대해서도 온화하게 참아주는 것(마 18:28, 벧후 3:9)을 의미한다. 특히 멸망받을 죄인에 대해서 속히 진노하여 징계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오래 참으심’은 힘이 없어서나 죄를 미워하지 않으시거나 징계하실줄 몰라서가 아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그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고전 13:4에서 말하는대로 사랑의 속성은 바로 ‘오래 참음’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아 우리들을 향해서도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공동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내가 불편해 하는 더욱 나아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이들에 대해서도 사랑으로써 참아주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서 그 영혼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오래참음으로 옷을 입는 것은 필수적이다.(골 3:12) 
 
5:14 The introductory formula “we exhort you, brothers [and sisters]” marks v. 14 as introducing a new topic. The formula is reproduced from v. 12 except that the synonymous term παρακαλοῦμεν is substituted for ἐρωτῶμεν. With Findlay (124) and others, it is tempting to see v. 14 as addressed to the leaders of the community because νουθετεῖν (“to admonish”) was used in v. 12 of the leadership function and in this verse Paul instructs those who are addressed to “admonish.” Against this is the fact that nothing in the text itself hints that any particular group is being spoken to (cf. Best, 229). As Holmberg (Paul and Power, 117f.) recognizes, although the whole church is addressed in v. 14 (cf. 4:18; 5:11), Paul does differentiate functions within the community, as 5:12f. and 1 Cor. 16:15f. show, and therefore some were more responsible than others for the sorts of actions Paul calls for in v. 14.
First Paul urges his readers: νουθετεῖτε τοὺς ἀτάκτους (“admonish the idle”). ἀτάκτους has two possible meanings, either of which is appropriate to the context. The original denotation of the word concerned undisciplined or disorderly actions or persons, but in papyri from the Hellenistic period it is used of idle or lazy individuals as well. If we accept the Pauline authorship of 2 Thessalonians, then the latter meaning is the more likely here. The verb ἠτακτήσαμεν (“we were not idle”) occurs in 2 Thes. 3:7 and the adverb ἀτάκτως appears in 3:6 and 11. While both meanings might fit for 2 Thes. 3:6, in 3:7 and 11 the concern is clearly idle behavior, and it can be assumed that the same is true of 3:6 as well. When this is coupled with the reminder in 1 Thes. 4:11 that the Thessalonians should work with their own hands, a strong case appears for understanding ἀτάκτους in 1 Thes. 5:14 as those who were idle or lazy. Nevertheless,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laziness and disorderly behavior should not be ignored. In 4:11 not only does Paul call for people to work with their hands, but he also exhorts them to aspire to live quietly and mind their own business. The same point applies in 2 Thes. 3:11, where Paul says, “For we hear some among you are living idly, not working, but being busybodies.” He goes on to order such people to work quietly (μετὰ ἡσυχίας), an obvious verbal link with the exhortation in 1 Thes. 4:11 “to aspire to live quietly” (φιλοτιμεῖσθαι ἡσυχάζειν).
The connection between the exhortation to admonish the idle in v. 14 and 2 Thes. 3:6–15 has significance in another important way. The instruction to admonish the idle in 1 Thes. 5:14 reads like a reminder to do something the community has previously been instructed to do (see 4:11). In 2 Thes. 3:10f., on the other hand, it looks as though Paul has only just heard of the problem of the idle, and in fact it would appear that the emerging problem of indolence was one of the main reasons why 2 Thessalonians was written in the first place. The apparent relation between 2 Thes. 3:6–15, which treats the problem of the idle as a new one, and 1 Thes. 5:14, which treats it as an existing problem, favors my view that 2 Thessalonians was written before 1 Thessalonians.
Paul also urges his readers in v. 14: παραμυθεῖσθε τοὺς ὀλιγοψύχους (“encourage the faint-hearted”). The verb παραμυθεῖσθε can be used in the general sense of “to encourage” (cf. 2:12) or in the more specific sense of “to console” or “to comfort” in the face of death or a tragic event. The adjective ὀλιγοψύχους is rather indefinite in meaning and could apply to worry, fear, or discouragement, according to Best (230). Paul could have in mind those who were shaken by the persecutions experienced by the community (cf. 2:14) or those who had doubts and anxiety regarding various aspects of the parousia (cf. 4:13–5:10). Obviously, Paul was concerned for any who struggled with worry or doubt regarding their new faith, or feared rejection or persecution because of it. Such people, Paul recognized, needed encouragement from the stronger and more confident members of the community to enable them to persevere.
The same sort of imprecision also characterizes the next exhortation. Paul summons his readers to a third task: ἀντέχεσθε τῶν ἀσθενῶν (“help the weak”). Best (230f.) suggests that “the weak” are to be understood as Christians who sought guidelines on how to indicate their rejection of paganism. He bases his view on such texts as 1 Corinthians 8 and 10 and Rom. 14:1–15:6. Marshall (151) argues that Paul has in mind those who are susceptible to temptation and sin, on the strength of passages like Rom. 4:19; 5:6; 8:3, 26; 1 Cor. 2:3; and 2 Cor. 12:5, 9f. Linguistically it could also refer to the physically weak or to the economically needy. This latter deserves some consideration since προϊσταμένους (“those who care for”) from v. 12 might allude to caring for the needy. Perhaps Paul left these exhortations intentionally vague knowing that his readers would recognize whom he was speaking about and then try to meet whatever their particular needs were, a view Best (231f.) appears to have some sympathy for. If this is what Paul was attempting to do, he sought to give the whole community a sense of pastoral responsibility.
The final charge, μακροθυμεῖτε πρὸς πάντας (“be patient toward everyone”), is probably intended to enjoin patience on those who admonish, encourage, and help fellow Christians. Patience is an important virtue for the Christian according to Paul (Gal. 5:22) and is in fact a manifestation of love (1 Cor. 13:4). The need for patience in dealing with the sorts of people Paul has in mind in v. 14 is obvious since such people often become irritating and burdensome to those who seek to care for them.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96–198.
 
15절)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갚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아포도’의 원형 ‘아포디도미’는 ‘~로부터, ~때문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아포’와 ‘주다’라는 뜻의 동사 ‘디도미’의 합성어로 받은 만큼 충분하게 되돌려 주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는 어떤 받을 자격이 있는 바에 따라 보상하거나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 악을 행했을때 그것에 보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동일 보복의 원리에 해당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를 승화시키셔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주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 위해서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하셨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동족들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다.(2:14) 그래서 인간적인 복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복수에 대한 금지를 명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악은 ‘카코스’로 도덕적으로 부당한 행동을 의미하며, 선은 ‘아가토스’로 도덕적 탁월함이나 우수성을 의미한다.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이제 마지막 여섯번째 권면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라 더욱 나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따르라’로 번역된 ‘디오케테’는 사냥개가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과 같이 필사적으로 추구하라는 의미이다. 그냥 '착하게 살라’ 정도가 아니라 악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대적하는 이들을 향해서 선한 것으로 갚으라는 의미인 것이다. 
 
유대교 전통은 선민 사상에 입각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고 구분하는 입장에 서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에 대해서 선을 행하라는 명령이 그들에게는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기독교는 끊임없이 이 부분을 강조한다. 
 
5:15 A tendency exists among commentators to link the negative and positive statements of this verse with the general injunction at the end of v. 14 calling for patience toward everyone (cf. Frame, 198f.; Best, 233; Marshall, 152). This is unnecessary. Paul is merely presenting a series of exhortations loosely connected by the fact that they prescribe (or in v. 15a, proscribe) certain types of conduct among members of the community. These exhortations are intended to encourage the cohesion of the community. Only within a stable community could the plausibility of people’s faith and commitment be maintained. As Berger (Social Reality, 55) has pointed out, “The reality of the Christian world depends upon the presence of social structures within which this reality is taken for granted.…” By his exhortations in 1 Thessalonians Paul sought to shape the Christian community into a stable environment in order to ensure that Christianity would remain real to his converts.
In v. 15 the exhortation takes the form of an aphorism with general applicability for regulating relations both inside and outside the community, as εἰς ἀλλήλους καὶ εἰς πάντας (“toward one another and toward everyone”) at the end of the verse demonstrates. The whole sentence, ὁρᾶτε μή τις κακὸν ἀντὶ κακοῦ τινι ἀποδῷ, ἀλλὰ πάντοτε τὸ ἀγαθὸν διώκετε [καὶ] εἰς ἀλλήλους καὶ εἰς πάντας (“See that no one returns evil for evil, but always pursue what is good toward one another and toward everyone”), contains several unusual features. First, it is the only instance of Paul using ὁρᾶτε (“see”) as a parenetic verb. Second, a shift occurs from second person ὁρᾶτε to the indefinite pronoun τις, the subject of the negated aorist subjunctive verb ἀποδῷ (“returns”), which itself has the force of an imperative. The indefiniteness of the subject in the negative statement after the definiteness of the second person plural ὁρᾶτε and the shift back to the second person plural in the second half of the verse suggest that Paul is quoting an aphorism.
The proscription of retaliation has its roots in the sapiential tradition of Judaism that rejected the lex talionis of Israelite religion (cf. Pr. 20:22; Sir. 28:1–7). But Paul does not merely forbid any form of retaliation, he goes on by way of contrast to say, “but pursue what is good toward one another and everyone.” This further imperative gives the impression that Paul believed in and inculcated an unqualified selflessness on the part of Christians. Such an impression stands in tension with other statements in Paul where an underlying motive is mentioned that undermines the high moral tone of v. 15b. In Rom. 12:17–21 Paul expresses the same thought as in 1 Thes. 5:15 when he urges: “Repay no one evil for evil, but have regard for what is noble in the eyes of everyone.” He then motivates this on the grounds that God’s wrath will exact retribution in the judgment so that it is unnecessary for Christians to avenge themselves in the here and now. The same idea of God’s judgment as revenge is to be found in 2 Thes. 1:6, where Paul declares that God will afflict in turn those who afflict the Thessalonians at the time of the judgment.
While Christianity was a tremendous force for what we today would call the humanizing of its world and the humanizing of relations between people, its roots in the apocalyptic tradition of Judaism also carried with it the seeds of a “loveless Christianity” toward those who were outsiders. Paul himself, whether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reflects that tension, and when 1 Thes. 5:15 is read alongside 2:14–16 and 2 Thessalonians 1 it is clear that the tension existed in his teaching to the Thessalonians. Nevertheless, in 1 Thes. 5:15 the apostle demands an unqualified concern on the part of all his readers for the well-being of both those within and outside the community without offering either negative or positive motivation. For this reason it seems likely that Paul is reiterating here what he had previously taught the Thessalonians. Whatever may have been his explicit motivation, the underlying motives probably reflect his desire to foster solidarity in the community and to encourage the sort of behavior toward those outside that might lead to their conversion and inclusion in it, even among those who had been responsible for afflicting the community at an earlier stage.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98–199.
 
형제들을 위한 권면
1)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
2)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
3)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라. 
4)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5)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6) 항상 선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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