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Now Lot went up out of Zoar and mlived in the hills with his two daughters, for he was afraid to live in Zoar. So he lived in a cave with his two daughters. 31 And the firstborn said to the younger, “Our father is old, and there is not a man on earth to come in to us after the manner of all the earth. 32 Come, let us make our father drink wine, and we will lie with him, that we may preserve offspring from our father.” 33 So they made their father drink wine that night. And the firstborn went in and lay with her father. He did not know when she lay down or when she arose.
34 The next day, the firstborn said to the younger, “Behold, I lay last night with my father. Let us make him drink wine tonight also. Then you go in and lie with him, that we may preserve offspring from our father.” 35 So they made their father drink wine that night also. And the younger arose and lay with him, and he did not know when she lay down or when she arose. 36 Thus both the daughters of Lot became pregnant by their father. 37 The firstborn bore a son and called his name Moab.2 nHe is the father of the Moabites to this day. 38 The younger also bore a son and called his name Ben-ammi.3 oHe is the father of the Ammonites to this day.
m ver. 17, 19
2 Moab sounds like the Hebrew for from father
n Deut. 2:9
3 Ben-ammi means son of my people
o Deut. 2: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9:30–38.
본문은 롯이 술에 취하여 자신의 딸들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는 내용을 다룬다. 이 사건은 이전의 노아의 술 취함과 비슷한 점을 지닌다.
첫번째, 두 사건 모두 심판(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심판) 후에 일어났으며
두번째, 술취함과 관련이 있고
세번째, 모두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30절)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여 도망하던 중 산 정상까지 갈 수 없어서 인근의 소알 성에 도피하기를 요청했고 그곳에서 심판을 모면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목도하고 아내를 잃은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렇다면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소알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언젠가 주님의 심판이 타락한 소알에 임할 것을 두려워한 것일까?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과정을 가까운 곳에서 목도한 나머지 그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이찌되었건 그는 두려움에 압도되었고 이로 인해서 두 딸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굴에 거주하였다. 이전의 롯의 모습을 통해서 볼때는 그는 도시의 화려함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그는 소돔의 화려함을, 그 도시가 제공하는 편안함을 선택했었는데 또한 임박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음에도 소돔을 떠나는 것을 주저했었는데 심판의 참상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 그는 소알에 있는 것 마저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 굴에 두 딸과 함께 거주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두 딸을 도시의 죄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31-32절) 롯과 두 딸이 산속의 굴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해 주변에 있는 동굴들이 실제로 피난처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속세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생활하는 것으로 인해서 롯의 딸들은 자신들이 결혼하지 못할 것을 염려했다. 롯이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두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굴을 선택했지만 도리어 이 두 딸은 자신들이 결혼하지 못하여 자식을 낳지 못할까봐, 그래서 당시 자녀 없음으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거나 이후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였다.
언니가 동생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늙었고 우리의 남편될 사람들이 없으니 우리가 아버지를 술취하게 하여 동침하여 후손을 이어갈 것을 권한다.
아이를 낳아 집안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최악이었다. 물론 레위기의 규례나 이후의 유다가 다말을 취한 일들이 이후에 기록된 일이기는 하다. 당시의 상황속에서 롯의 딸들이 그런 선택을 한데는 롯의 책임이 크다. 롯은 자신의 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롯이나 그의 딸은 여전히 소돔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앞서 롯은 자신의 손님을 범하려는 소돔의 사람들에게 딸들을 내놓겠다라고 했었는데 결국 그가 자신의 딸을 범하고 말았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롯의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의 고대 근동 세계에서도 근친상간은 부정적인 관계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시내산 율법이 근친상간을 정죄한 최초의 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함무라비 법전중에 보면 154조에는 '만약 남자가 자기 딸과 성적으로 관계를 가지면, 그 사람을 그 도시에서 추방하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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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is exonerated in that the daughters realize they have to get him drunk in order to carry out their intentions. This implies that he would not have agreed to the course of action they propose. In fact, by this period, incest is already viewed in negative terms in the ancient world. The Sinaitic law is not the first to condemn it. There are, for example, a number of paragraphs treating incest in Hammurabi’s laws. Paragraph 154 dictates that “if a man should carnally know his daughter, they shall banish that man from the city.”5 Of course, such a punishment would mean little in this case since Lot’s family is already in self-imposed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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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 Roth, Law Collections From Mesopotamia and Asia Minor (Atlanta: Scholars, 1995),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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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481.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네 어머니의 하체는 곧 네 아버지의 하체이니 너는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어머니인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너는 네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아버지의 하체니라 너는 네 자매 곧 네 아버지의 딸이나 네 어머니의 딸이나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 출생하였음을 막론하고 그들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네 손녀나 네 외손녀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하체니라 네 아버지의 아내가 네 아버지에게 낳은 딸은 네 누이니 너는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너는 네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아버지의 살붙이니라 너는 네 이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어머니의 살붙이니라 너는 네 아버지 형제의 아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숙모니라 너는 네 며느리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아들의 아내이니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 너는 여인과 그 여인의 딸의 하체를 아울러 범하지 말며 또 그 여인의 손녀나 외손녀를 아울러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들은 그의 살붙이이니 이는 악행이니라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의 자매를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여 그로 질투하게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18:6–18, NKRV)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38:13–26, NKRV)
33-35절) 두 딸은 이제 그 밤에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자신의 아버지로 하여금 술에 취하게 하여 먼저 큰 딸이 들어가서 아버지와 동침하고 다음날 작은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였다. 이 사건에서 큰 딸이 적극적으로 이 일을 계획하고 자신의 동생을 이 일에 동참시키고 있다. 죄의 영향력은 그것의 전염성, 오염성에 있다. 본인들도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았기에 혼자만 죄를 저지를 수 없었고 동생도 이것에 함께 동참시키고 있는 것이다. 믈론 자손을 이어가자는 좋은 의도였지만 그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롯은 무력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들의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과연 정말 몰랐을까? 딸들이 이런 계략을 꾸미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눈 감았던 것은 아닐까? 물론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롯의 두 딸로 인하여 모압과 암몬 자손이 일어나게 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발목을 잡게 된다.
36-38절) 이 딸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계략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목적대로 두 딸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된다. 큰 딸이 나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인데 이 모압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from father'와 같은데 '아버지로부터 유래한 자'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작은 딸의 아들의 이름은 벤암미로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 벤암미는 'son of my people'로 내 백성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암몬은 같은 족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런 연고로 시작된 이 두 족속을 유난히 싫어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을 미워하신 것을 그들의 출생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훼방했기 때문이다.(신 23:3-6) 하지만 훗날 하나님께서는 모압에서 룻을 불러내신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신명기 23:3–6, NKRV)
우리는 본문의 사건, 두 딸이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여 동침함으로 아들을 낳은 사건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본문은 근친상간을 비난하거나 추앙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분명 모압과 암몬은 롯의 계보로 아브라함의 자손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 덕분에(19:2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심으로 롯을 구원하셨고 이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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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ust see, however, that the point of the passage is not to provide anecdotal material in order to address the evils of incest. Whether they are innocent or guilty, justified or culpable, the account focuses not intrinsically on the act but on the result of the act: the Moabites and Ammonites. As the offspring of Lot, they are related to Abraham; but since Lot is a nephew, these are not among the many nations of whom Abraham is the father. Lot and his offspring are not among those through whom the nations will be blessed; rather, they are among those who will receive blessing through Abraham and his off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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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s, it is here, as the text indicates, that Lot is spared because the Lord remembers Abraham by acting favorably toward him (19:29). The Moabites and Ammonites only receive the chance to exist because the Lord has remembered Abraham. In this case the narrator’s main point is not that the Moabites and Ammonites owe their existence to incestuous acts but that they owe their existence to Abraham. This gives the audience of Moses insight into the status of those who live around the land they are ent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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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484–485.
또한 우리는 본문속에서 두려움이 사람들을 압도할 때 얼마나 비정상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롯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굴에 거주하였으며 두 딸은 자신들이 결혼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술에 취하게 하여 동침한다.
우리는 순간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죄를 지을 수 있다. 이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다가 점점 더 문제가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들을 눈 멀게 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우리는 삶의 두려움 가운데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해야한다. 바로 그런 믿음이 있을때 우리는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온전히 믿음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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