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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비봉출판사) / Progress and Poverty

 

 

역자의 글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리고 주기적으로 경제불황이 닥치는 이유는 토지사유제로 인해 지대가 지주에게 불로소득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지대를 징수하여 최우선적인 세원으로 삼아야 한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에 사회를 풍미하던 통설, 즉 인구의 증가가 빈곤의 원인이라는 견해를 반박하고, 사회가 고도로 진보하는 가운데 극심한 가난이 존재하는 원인은 토지의 사유에 있다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지대를 조셀 징수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이후 많은 이상주의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각국의 토지제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도입부 : 문제의 제기

금세기(19세기)의 특징은 부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거했다는 점이다. 증기와 전기의 이용, 개선된 생산공정과 노동 절약적 기계의 도입, 고도의 분업과 거대한 생산 규모, 교환의 눈부신 발전 등으로 인해 노동의 효율성이 대폭 높아졌다. 

새로운 힘에 의해 사회가 근본에서부터 개선됨으로써 극빈층도 전혀 부족함을 느낄 수 없고 최하층도 생활물자의 결핍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상상의 눈으로 내다보았을 것이다….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못 크는 일이 없고, 노인이 물자 부족으로 시달리는 일이 없으며, 젊은이는 열심히 일하는 한편 찬란한 별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인다. 악은 사라지고 불화는 조화로 변한다. 모든 것이 풍족한 곳에 어찌 탐욕이 있을 것인가? 빈곤이 사라진 세상에, 빈곤 또는 빈곤에 대한 두려움의 산물인 죄악이나 범죄나 무지나 잔인함이 어찌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자유인인데 누가 굽실거리며 살 것인가?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곳에 어찌 압제자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꼬리를 무는 발견과 발명도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의 고된 일을 덜어 주지 않았고 빈민에게 생활의 여유를 주지도 않았다…. 문명 세계의 모든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불황, 비자발적 실업, 자본의 낭비, 기업인의 자금 부족, 노동자 계층의 빈곤과 불안이다.(29) 

 

산업불황이라고 묶어서 이야기하는 각종 현상은 물질적 진보에 항상 수반하며 물질적 진보가 진전될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어떤 현상이 강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진보가 이루어지는 곳에 빈곤, 빈부격차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떠한 논점도 피해가지 말고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기로 하자. 우리는 진정한 법칙을 찾아야할 책임이 있다. 오늘날 우리 문명의 한 가운데서 여인들은 생기를 잃고, 어린이들은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법칙이 어떤 내용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못된다.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이 우리의 편견과 충돌하더라도 움츠리지 말자. 그 결론이 오랫동안 현명하고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여 온 제도를 부정하더라도 되돌아서지 말자.”

 

 

제 1권. 임금과 자본

1장. 현재의 임금학설-그 불충분성

“생산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왜 임금은 생존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가?”

현 정치경제학에서는 임금은 노동자의 수와 자본의 양 사이의 비율에 의해 정해지는데 노동자 수는 자본이 증가하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임금은 노동자의 생존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최저 금액으로 낙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 임금기금설 : 임금으로 지급되는 자본이 정해져 있다라는 이론이다.

 

임금이론을 지지하는 여러 연구의 논리를 귀납이 아니라 연역(임금이 자본에서 나온다는 이론)적인 접근에서 나왔다. 

 

헨리 조지가 증명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온다.”

 

현대의 복잡한 생산과정을 단순화시켜보면 사회의 모든 생산은 각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두가 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각자가 자기 노력에 대해 받는 보상은 원시인이 그랬던 것과 같이 노력의 결과로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임을 알 수 있다.(48) 

 

 

2장. 용어의 정의

임금 : 고용된 사람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대가

노동 : 부를 생산하는 모든 인적 노력을 말하고, 임금은 생산물 중에서 노동에 돌아가는 부분으로서 인적 노력에 대한 모든 대가를 포함한다. 

 

생산의 3요소 : 토지, 노동, 자본

- 토지 : 물이나 공기와 구별되는 지구의 표면만이 아니라 인간 이외의 물질적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자연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자본으로 분류될 수 없다. 

- 노동 : 모든 인적 노력

- 자본 : 토지나 노동을 제외한 것으로 이 두가지의 결헙에 의해 생산된 것. 

모든 자본은 부이지만 모든 부가 자본인 것은 아니다. 

 

자본을 교환 과정에 있는 부라고 정의한다면, 그리고 이때의 교환이 단지 거래뿐만 아니라 자연의 재생산력 내지 변형력을 통해 부를 증가시키는 것과 같은 변환까지도 포함한다면, 일반적으로 자본이라고 하는 내용을 모두 포괄할 수 있으며 자본이 아닌 것을 모두 배제할 수 있다.(67)

 

 

3장.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언제나 생산은 임금의 어머니이다. 생산이 없으면 임금은 생기지도 않고 생길 수도 없다. 임금의 원천은 자본이 아니라 노동생산물이다.(75)

- 헨리 조지는 ‘임금은 자본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아담 스미스의 명제를 공격한다. 

 

가치는 생산물이 완성되어야만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가치 창조는 생산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노동 투입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발생하며 따라서 생산 과정이 아무리 길더라도 노동은 자본으로부터 임금을 받기 전에 자본을 증가시킨다.(83)

 

임금 지불의 조건은 언제나 노동의 제공이며, 생산 과정이 아무리 길더라도 임금 지불은 자본의 선불이 아니고 잠시라도 자본을 줄이지 않는다.(84)

 

 

4장. 노동자의 생계비도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 존 스튜어트 밀은 “한 나라의 국민은 현재 노동의 생산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거 노동의 생산물에서 생활물자를 공급받는다”라고 말했다. 헨리 조지는 이 명제가 자본에 대한 잘못된 정의로부터 기인하였다고 주장한다. 

 

음식이나 옷 등 모든 종류의 부는 이를 소비하지 않고 다른 상품 내지 생산적 서비스와 교환하려는 사람이 보유하고 있을 때에만 자본이며, 소비할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면 자본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다른 부를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보유하는 부에서부터 욕구 충족의 목적으로 보유하는 부로 바뀌기 때문이다.(90)

 

“소비에 대한 수요가 생산에 투입될 노동의 방향을 결정한다.”(94)

 

 

5장. 자본의 진정한 기능

자본이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나 생산 기간 중 노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다면 자본의 기능은 무엇인가? 

자본은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되는 부로서 욕구의 직접적 만족을 위해 사용되는 부와 구별된다. 혹은 교환과정에 있는 부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자본은 통설과 달리 노동에 의해 부로 전환되는 원료를 공급하지 않는다. 부의 원료는 자연에 의해 공급된다. 그러나 일부 가공된 원료와 교환 과정에 있는 원료는 자본이다. 

자본은 통설과 달리 임금을 공급하거나 선불하지 않는다. 임금은 노동의 생산물 중에서 노동자가 획득하는 부분이다. 

자본은 통설과 달리 작업 기간 동안 노동자의 생계를 유지시켜주지 않는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의해 생계가 유지되며, 자신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물자와 교환될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은 사실상 자신의 생계용 물자를 생산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통설과 달리 산업을 제약하지 않으며 산업에 대한 유일한 제약은 천연 원료에 대한 접근의 제약이다. 그러나 자본도 도구 사용과 노동 분업을 제약함으로써 산업의 형태와 생산성을 제약할 수는 있다.(99)

 

정치경제학에서 ‘자본은 산업을 제약한다’고 하는 격언은 자본이 노동의 형태나 노동의 생산성을 제약한다는 뜻이 아니고 노동의 투입을 제약한다는 의미이다. 이 명제가 타당하려면 자본이 노동에 원료와 유지비용을 공급한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가정에 근거가 없다는 점은 이미 검토하였다. 자본은 노동에 의해 생산되며 따라서 자본이 존재하려면 노동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가정이 명백히 앞뒤가 맞지 않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자본은 산업의 형태와 산업의 생산성을 제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자본 없이는 산업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100)

 

임금이 자본에서가 아니라 노동생산성에서 나온다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현재의 이론은 틀렸으며,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 내놓는 각종 처방들, 예를 들면 자본 증대, 노동자 수 제한, 노동자 작업 능률 향상 등은, 정치경제학 교수들이 내놓은 것이든 노동자가 내놓은 것이든 폐기되어야 한다. 개별 노동자가 진실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임금이 나오는 기금을 창출한다면 노동자가 증가한다고 해서 임금이 줄어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노동자 수가 많아질수록 노동의 능률이 분명히 증가하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임금은 노동자 수와 더불어 오히려 증가히야 한다.(106) - 임금기금설에 대한 비판

 

 

제 2 권. 인구와 생존물자

제 1장. 맬서스 이론, 그 발생과 지지

맬서스(Thomas R.  Malthus, 1766-1834)의 이론은 ‘인구는 자연히 생존물자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이고 생존물자의 생산은 산술 급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맬서스의 결론은 인구의 무한 증가 경향은 인간의 출산력에 대한 도덕적 절제 또는 사망률을 높이는 여러 요인에 의해 억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결국 세상은 악하고 비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금이론 :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 자본을 지금보다 더 잘게 나눠야 하므로 임금이 하락한다는 것이고, 이에 맬서스의 인구론은 인구의 증가로 인해 생존물자를 더 나눠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빈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맬서스의 인구론과 다윈의 진화론(적자생존 원리)의 결합

 

제 2장. 사실로부터의 추론

저자는 인구가 생존물자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은 경험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이유가 없음을 지적한다. 

 

인구론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물자는 산술적 비율로 증가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데 이 가정은 강아지 꼬리가 두배가 되는 시간에 몸무게가 2파운드 불어나는 사실을 보고 꼬리는 기하적 비율로, 몸무게는 산술적 비율로 불어난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비율을 따르자면 개가 50파운드가 자랐을때 꼬리는 1마일이 넘게 된다는 것이다. 

 

- 인도와 중국의 예를 통해서 볼 때 기근의 이유는 조밀한 인구 때문이 아니라 사회조직이 자연스럽게 발전하지 못하고 노동이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잘못된 제도에 기인한다. 표면적으로 인구의 과잉으로부터 빈곤이 온 것처럼 보이는 결과도 그 원인을 추적하면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 아일랜드의 빈곤과 기근의 진정한 원인은 토지가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압제가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희소한 브라질의 기근의 원인이 인구 과잉이 아니듯이, 인도, 중국, 아일랜드의 기근의 원인도 인구과잉이 아닌 것이다. 결핍에서 오는 죄악과 비참의 원인은 자연이 인색해서가 아니다.(145) 

 

제 3장. 비유로부터의 추론

인간에게 식품을 공급하는 자연은 인간보다 재생산력이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일체의 생물 중에서 인간은 자연의 재생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식품 증가가 인구 증가의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인구 증가가 식품 증가의 원인이다. 

동식물세계에서는 어느 동식물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그 동식물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존물자의 한계는 토지, 공기, 물, 햇빛의 궁극적 한계 내에서라면 인간 자신에 달려있다. 

 

생산성 체감의 법칙 : 어떤 점 이상에서 노동과 자본의 추가 투입에 대한 토지의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외견상으로만 그럴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자연이 베푸는 물자가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그 중에서 한정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것만을 취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동물적 욕구가 충족되면 즉시 다른 욕구가 싹튼다. 인간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먼저 음식을 원하고 다음에는 집을 원하고 그 다음에는 생식 본능이 일어난다. 그러나 짐승은 여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지만 사람은 무한한 진행 단계의 다음 단계를 향한다. 인간은 양이 충족되고 나면 그 이후 질을 추구한다. 그리고 나아가 미(멋)을 추구한다…. 마음의 눈이 열리고 무언가를 알고 싶어한다. 불타는 사막이나 살을 에는 북극의 바람 속을 탐험하는 것은 음식 때문이 아니다. 

 

음식이 풍족해지고 생활의 조건이 풍요해진다면 동식물은 증식할 뿐이지만 인간은 발전한다. 

 

제 4장. 맬서스 이론의 부정

문명 수준이 일정할 때 많은 인구는 적은 인구보다 물자를 더 많이 마련할 수 있다. 빈곤과 비참함의 원인은-현재의 이론은 인구 증가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연의 인색이 아니라 사회의 부정의에 있다. 인구 증가로 생겨나는 새로운 입은 과거의 입보다 더 많은 식품을 소비하지 않지만 새로운 손은 자연스러운 질서 속에서는 더 많은 물자를 생산해낸다.

 

생산력이 풍부하고 부의 생산이 최대가 되는 사회에서 빈곤이 발생한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문명세계를 당황하게하는 수수께끼이며 우리가 해명하려고 하는 문제이다. 빈곤의 원인이 생산력 감소에 있다고 하는 맬서스 이론은 이를 해명하지 못한다. 

 

 

제 3 권. 분배의 법칙

제 1장. 분배의 법칙과 법칙 간의 필연적 관계

물질적 진보와 더불어 임금이 상승하지 않고 오히려 하락하는 현상은 노동자 수아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임금 지불의 원천이 되는 자본총액 중에서 노동자 일인당의 몫이 줄어든다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생산력의 대폭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생산자가 얻는 대가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도에 국한되는 원인이 자본의 제약 또는 노동에 대응하는 자연력의 제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원인은 부의 생산을 제약하는 법칙에서 찾아서는 안 되고 분배에 관한 법칙에서 찾아야 한다.(170)

 

토지, 노동, 자본이 결합하여 부를 생산하므로 생산물도 세 요소에 분배될 수 밖에 없다. 지대는 토지 소유자에게, 임금은 노동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데 자본의 대가가 되는 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난해하다. 이는 부가 지대, 임금, 이윤으로 나뉘어진다고 설명하는 것은 마치 인류가 남자, 여자, 인간으로 나뉘어진다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한다.(173) 

 

임금은 노동의 임금과 생존물자에 충당할 자본의 양과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자의 수 간의 비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는 경작의 한계에 의해 결정된다. 어느 토지의 지대는 동일한 노동과 자본의 투입으로 사용 토지 중 최열등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는 부분이다. 

이자는 자본 차용자의 수요와 대여자의 공급이 일치하는 점에서 결정된다. 한편 이윤법칙이라는 것에 의하면 이윤은 임금에 의해 결정된다. 임금이 상승하면 이윤이 하락하고 임금이 하락하면 이윤이 상승한다.(176)

 

생산 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토지라는 용어는 자연이 제공하는 모든 기회와 힘을 의미한다. 노동이라는 용어는 모든 인적 노력을 의미한다. 자본이라는 용어는 더 많은 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부를 의미한다.(177)

 

자본은 노동의 결과이고, 노동의 생산을 돕기 위해 노동에 의해 사용된다. 노동은 적극적이고 원초적인 힘이며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의 사용자가 된다. 노동은 토지가 있어야만 실행될 수 있고 노동에 의해 부로 전환될 물자는 토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토지는 노동의 선행조건이며, 노동의 장소이고, 노동에 필요한 원료이다. 세 요소의 자연스러운 순서는 토지, 노동, 자본의 순이 된다. 

 

 

제 2장. 지대와 지대법칙

지대(rent)는 생산물중 토지 기타 자연 능력의 소유자에게 그 소유권에 귀속되는 부분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토지 기타 자연 능력의 사용에 대해 지불되는 대가 이외에도 건물, 기계, 기타 고정 시설물의 사용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도 일반적으로 렌트라고 부른다.(180)

 

지대는 독접가격이고 인적 노력에 의해 생산할 수도 증가시킬 수도 없는 자연 요소를 개인 소유권의 대상으로 삼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토지의 지대는 동일한 투입으로 사용되고 있는 토지들 중에서 생산성이 가장 낮은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는 생산물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 법칙은 생산물이 지대와 임금으로만 나누어진다면 바로 임금법칙이 되며 지대, 임금, 이자로 나누어진다면 바로 임금과 이자를 합한 것의 법칙이 된다. 

* 생산량 = 지대 + 임금 + 이자

* 생산량 - 지대 = 임금 + 이자

 

이와 같이 임금과 이자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를 공제하고 난 후의 잔여에 의해, 즉 무지대토지에서의 생산물 또는 사용 토지 중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의 생산물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므로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186) 지대 상승이, 진보하는 지역에서 생산력이 증대됨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 

 

 

제 3장. 이자와 그 발생 원인

이자는 자본 사용에 대한 모든 대가를 포함하며, 차용자가 대여자에게 지불하는 것이 국한되지 않는다. 또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은 제외된다.(188)

 

* 대패 이야기

 

돈을 가만 내버려 둔다면 돈은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도주를 가만 내버려둔다면 1년이 지나면 포도주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에 가치도 증가한다… 이런 경우 증가의 원인은 노동과는 다른 그 무엇이며 이를 자연의 능동적 힘이라고 할 수 있다.(195-저자는 이 힘을 이자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생산에는 세 가지 방식, 적응(Adapting), 키우기(Glowing), 교환하기(Exchanging)가 있다. 자본을 사용하는 방식(나무와 쇠를 이용해서 대패를 만드는 것)의 이익은 노동에 돌아가고 증가(땅에 씨를 뿌리고 포도주를 저장하는 것)에서 나오는 이익은 자본에 돌아간다고 보았다.(201) 이렇게 해서 이자는 자연의 새생산력과 그에 준하는 효과를 가진 교환의 능력에 의해 자본이 갖게 되는 증가력에서 나온다. 

 

 

제 4장. 의사자본과 흔히 이자로 오인되는 이윤

자본의 대가에 포함되는 지대, 발전하는 사회에서 총생산 중의 비율이 계속 커지는 지대는 자본의 대가가 아니므로 이자와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자본의 힘을 건설적이라고 한다면 집중(독점)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하여 생기는 힘은 파괴적이다.

 

흔히 이자라고 착각하는 이윤의 대부분이 실은 자본의 힘에 의해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집중된 자본에 의해 또는 집중된 자본이 나쁜 사회제도와 결합함으로써 생긴다는 사실(207) 

 

 

제 5장. 이자법칙

자연의 생명력이 시간 요소에 주는 이익이 이자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이자율의 최고한도는 이 생명력이 생산에 기여하는 강도와 정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정상적인 이자 수준은 자본 대가의 필연적인 최고한도와 필연적인 최저한도 사이의 어느점에 놓이는데 모든 사정을 고려하면 자본의 대가와 노동의 대가는 동일하게 된다.(212)

 

임금과 이자 간에는 어떤 관계 내지 비율이 존재하며, 이 관계 내지 비율은 매우 서서히 변화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 관계 내지 비율에 따라 노동이 자본으로 전환되어 당시의 지식 정도, 기술 상태, 인구밀도, 직업의 특성, 교환의 다양성과 범위 및 신속성에 비추어 생산에 필요한 만큼의 자본을 공급한다. 이러한 관계 내지 비율은 노동과 자본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지되며 따라서 이자는 임금의 등락과 함께 등락하게 된다.(214) 

 

“임금과 이자 간의 관계는 자본이 재생산 형태로 사용될 때 그 자본이 가지는 평균적인 증가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가 상승하면 이자는 임금과 더불어 하락한다. 즉 이자는 경작의 한계에 의해 결정된다.”

 

 

제 6장. 임금과 임금법칙

인간 행동의 기본 원리는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는 토지와 노동이라는 두 생산요소의 산물이다. 

 

고용주가 지불해야 하는 임금은 생산이 이루어지는 자연적 생산력의 최저점에 의해 정해지고, 임금은 이 최저점의 등락에 따라 등락한다.(218)

 

임금은 경작의 한계에 의존하고, 임금의 크기는 노동에 개방된 최고의 자연적 기회로부터 노동이 얻을 수 있는 생산물의 크기에 의해 정해지며, 이는 인간이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원리에서 나온다.(220)

 

“임금은 생산의 한계, 즉 지대를 지불할 필요 없이 개방된 자연의 최고생산점에서 노동이 얻을 수 있는 생산물에 의존한다.” 

 

저자는 아담 스미스와 같은 정치경제학 학자들이 임금법칙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제 7장. 법칙 간의 연관성과 일관성

인간은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것으로서, 생산요소 중의 하나와 관련지으면 지대법칙이 되고, 다른 요소와 관련지으면 이자법칙이 되고, 또 하나의 요소와 관련지으면 임금법칙이 된다.(229)

 

 

제 8장. 문제의 정태적 측면은 해명되었다. 

현 이론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천문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 이론처럼 단순성과 조화성을 갖춘 정치경제학 이론을 고려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233) 

 

임금이 생산력 증가에 맞추어 증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대의 증가 때문이다.

 

생산력이 증가한다고 해서 임금이 증가하는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생산력의 증가가 토지의 가치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지대가 모든 이익을 흡수하므로 빈곤이 진보와 동반하게 된다. 

 

 

제 4권.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형제여, 저 울음이 들리는가? 슬퍼할 나이도 안 된 아이들의 울음이.

머리를 엄마에게 기대어도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어린 양은 목장에서 노래하고

어린 새는 둥지에서 지저귀고

어린 사슴은 그늘에서 뛰놀고

어린 꽃은 서쪽으로 바람에 흩날리는데 -

형제여, 어리디 어린 우리 아이들이 슬피 울고 있다. 

모두들 즐거이 노는 시간에 울고 있다. 이 자유의 나라에서.

- 브라우닝 부인

 

 

제 1장. 문제의 동태적 측면에 대한 검토

지대 상승의 원인은 무엇인가?

리카도는 지대 상승의 원인으로 인구 증가만을 들었다. 

 

물질적 진보의 원인 세 가지

1) 인구의 증가

2) 생산과 교환의 기술 개선

3) 부의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진 지식, 교육, 정부, 치안, 예절, 도덕등의 개선

 

 

제 2장. 인구 증가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맬서스의 이론에 의하면 생존 물자에 대한 인구의 압력은 인구 증가와 더불어 심해지며, 입 하나에 손 둘이 세상에 태어나는데도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 손은 새 입을 먹여 살리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리카도의 지대법칙에 의하면 사용 토지의 생산성 차이에서 지대가 발생하며, 리카도 내지 그를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경험상 인구 증가에 지대 상승이 동행하는 것은 비용을 더 들이지 않으면 식품을 더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추가 인구는 더 낮은 생산점으로 밀려나고 그만큼 지대가 상승한다라고 말한다.(243)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성이 높아져서 노동의 효율이 향상되므로, 새로 경작되는 토지의 토질이 종전보다 열등하더라도 같은 양의 노동에 의해 생산할 수 있는 부는 종전보다 많아진다. 인구 증가의 효과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이미 경작되고 있던 더 좋은 토지에서도 부의 생산력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비율로서의 임금은 하락하더라도 양으로서의 임금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부의 평균생산은 증가한다…. 인구 증가로 인해 더 질이 낮은 토지를 추가 사용하게 되지만 동시에 모든 노동의 효율성도 향상되어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우수한 토지에서의 생산 증가는 새로 사용되는 토지의 생산성 하락을 보충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총투입에 비한 부의 총생산은 많아지지만 부의 분배는 더 불공평해진다. 

 

- 광대한 평원에 처음 이주해서 정착한 가정, 뭐든지 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혼자 살 때는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만족감을 이제는 얻을 수 있게 된다. 그의 토지에서 수확되는 밀이나 옥수수나 감자의 양은 전만 못하겠지만 이 토지로 인해 생기는 생활필수품과 편리품은 훨씬 많다. 그 토지에 노동을 투입해서 더 많은 수확을 얻는 것도 아니고 더 가치있는 곡물을 얻는 것도 아니자만, 노동의 목적인 온갖 다른 물자는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인근 주민이 존재한다는 사실, 즉 인구가 증가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런 물자를 얻기 위한 노동 생산성이 높아졌고, 그 때문에 토질이 동일하더라도 주민이 없는 땅보다 우등한 토지가 되었다. 이 토지는 농업 생산성에 있어서는 처음보다 못하지만 그보다 높은 종류의 생산성이 발전하기 시작한다.(250)

 

이 토지에 결부되는 모든 유리함은 이 토지가 아닌 곳에서는 누릴 수 없다. 이곳이 인구의 중심이고 교환의 초점이고 고급 산업이 입지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구 밀집으로 인해 이 토지에 결보된 생산력은 토지의 비옥도가 수백 배, 수천 배 증가한 것과 맞먹는다…. 지구에서 가장 비싼 토지, 지대가 제일 높은 토지는 자연적 비옥도가 특히 높은 토지가 아니라 인구 증가로 인해 생긴 효용이 특히 높은 토지이다.(253)

 

인구 증가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지대를 상승시키고 그 결과 총생산 중 자본과 노동의 대가로 귀속되는 비율을 감소시킨다. 첫째는 경작의 한계를 낮추는 방식, 둘째는 잠재해 있던 특별한 능력을 토지에 발현시키고 이 특별한 능력을 특정 토지에 결부시키는 과정.

 

 

제 3장. 기술 개선이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인구 증가는 노동생산성을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향상시킴으로써 지대를 상승시킨다. 인구 증가와 관계 없이 생산과 교환 방법이 개선 될 때 지대가 상승된다.(255) 

 

부의 생산을 위해서는 두 가지, 즉 노동과 토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노동 절약적 개선은 토지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며 사용 토지의 질이 한계에 다다른 곳에서는 자연의 생산성이 더 못한 토지가 새로 경작된다. 이렇게 해서 노동 절약적 개선의 일차적 효과는 노동의 힘의 증대이지만, 이차적인 효과는 경작의 확장이고 이로인해 경작의 한계가 낮아지면 지대가 상승한다.(256)

 

모든 노동 절약적 발명은 - 농기이건, 전신이건, 향상된 제련 공정이건, 완벽해지는 인쇄기이건, 재봉들이건 - 지대를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다. 

 

“모든 형태의 부는 토지에 투입된 노동의 생산물이거나 토지의 생산물이다. 부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으므로 노동의 힘의 증가는 더 많은 부를 마련하는 데 활용될 것이고 그리하여 토지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발명과 개선이 진행되면 인구가 일정하더라도 노동 능률은 계속 향상되고 생산의 한계는 더 낮은 곳으로 밀려 나가고 지대는 계속 늘어난다. 

 

증기 동력으로 움직이는 쟁기와 수확기가 등장하면서 고대 이탈리아에서 외국 전쟁을 통해 노예가 들어옴으로써 성립된 것과 같은 종류의 대토지를 현대 세계에 조성하고 있다. 마치 로마의 농민이 대도시의 빈민으로 밀려나거나 군대에 지원하여 피로써 빵을 구했던 것처럼 정든 고향에서 밀려나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노동 절약적 발명 자체를 저주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오늘날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는 것이 그 자체로 소망스러운 것처럼 말하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263) 

 

 

제 4장. 물질적 진보에 의해 생기는 기대의 효과

인구 증가는 지대를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고 진보하는 사회에서 노동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모든 원인은 지대를 상승시킬 뿐 임금과 이자는 증가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미래의 토지 가치 상승에 대한 확실한 기대이다. 이러한 기대는 모든 진보하는 지역에서 지대가 꾸준히 상승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서 토지투기, 즉 정상적으로 형성될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바라면서 토지를 보유하는 행위를 야기한다.(265) 

 

성장하는 도시의 내부 유휴지가 존재하는 이유를 개발할 능력이 없거나 개발을 원하지 않는 토지소유자가 토지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에서 현재 토지를 개발하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대가보다 더 높은 대가를 받기 위해서 토지 개발을 보류하기 때문이다.(267-알박기)

또 도시의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토지도 앞으로 도시용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투기적 가치를 갖게 된다. 

 

진보하는 사회에서는 토지 가치가 일반적이고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사실로 인해 추가적인 상승이 발생한다…. 토지는 그 존재량이 고정되어 있어 인간이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은 존재하지 않는다.(269)

 

 

제 5권. 문제의 해결

제 1장. 반복적으로 발작하는 산업불황의 근본 원인

토지 가치의 투기적 상승이 경작 내지 생산의 한계를 그 정상적인 위치 밖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노동과 자본은 더 적은 대가로 만족하거나 생산을 중단-생산 중단은 그에 대한 유일한 저항 방법이다- 할 수 밖에 없다. 

 

투기가 불황을 초래하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번째는 투기가 과잉생산을 야기함으로써 불황이 조성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투기가 과잉소비를 야기함으로써 불황을 조성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두 이론은 일반적 진실의 한 면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서 두 이론은 모두 실격이다.(276) 

 

산업 활황기마다 토지가치가 꾸준히 상승함으로써 결국 토지투기가 생기고 그로 인해 토지가치가 도약하였다. 그 후에는 예외 없이 일부 생산 중단 및 그와 관련된 유휴수요 중단 내지 거래 부진이 뒤따랐고 여기에 대체로 상업의 파탄이 동반하였다.(277)

 

노동이 이런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토지다. 노동이 부를 창조한다는 말은 비유일 뿐이다. 인간은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다. 전 인류가 끝없이 노동한다고 해도 햇살 속에 떠다니는 작은 티끌 하나도 창조할 수 없다. 인간은 우주 속에 항해하는 이 지구를 한 푼도 더 무겁게나 가볍게 할 수 없다. 부의 생산이란 이미 존재하는 물질을 노동을 통해 필요한 형태로 바꾸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에 부를 생산하려면 반드시 이 물질, 즉 토지를 사용해야 한다. 토지는 모든 부의 원천이다. 토지는 노동이 가공할 광물을 캐내는 광산이며., 노동이 형태를 부여할 원료이다. 그러므로 노동이 필요한 물자를 얻지 못한다면 노동의 토지 사용이 거부되고 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281)

 

토지가치 상승의 의미를 이해하고 철도 건설이 토지투기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급속한 철도 건설과 산업불황간에는 관련성이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철도가 건설되거나 계획되는 곳에서는 토지가치가 투기의 영향으로 크게 튀었고 자본과 노동이 부를 생산하기 위해 토지를 사용하는 대가로서 -일시불로 또는 분납으로- 지불해야하는 명목적인 금액에 수십억 달러가 더 추가되었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 생산의 제약이었으며, 생산 제약은 수요 중단으로 파급되고 그로 인해 다시 생산을 제약하게 된다.(284)

 

 

제 2장. 부의 증가 속에 영속되는 빈곤

노동에 필요한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전락하여,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면 모두 지대 -노동이 자신의 힘을 적용하는 기회의 사용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상승으로 흡수된다. 이리하여 계속되는 진보에 의해 생기는 모든 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들어가고 임금은 증가하지 않는다. 임금이 증가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회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 노동 생산의 증가에 동반하여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생산력 향상이 이루어져도 단순노동자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노동은 생산력 향상의 모든 혜택을 박탈당하고 문명 발달의 부작용에 희생된다. 노동은 문명 발달에 자연스럽게 수반하는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자유노동은 노예처럼 무기력하고 비천한 상태로 전락한다.(292)

 

오늘날의 세계를 보라. 각국은 정부, 산업, 관세, 통화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층의 고난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풍요 속에 고난과 궁핍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반드시 토지가 독점되어 있고, 토지가 전체 국민의 공동재산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재산처럼 취급되며, 노동이 토지를 사용할 때 고액의 사용료를 소득에서 징수당하고 있다. 세계 여러나라를 비교해 보면 임금의 고저는 자본의 양이나 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토지 독점 계층이 노동의 소득 중에서 지대로 가져가는 정도에 의해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부의 총량이 적고 토지가격이 싼 신생 지역은, 부유하지만 토지가 비싼 지역에 비해, 노동자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은 무식한 사람도 잘 아는 사실 아닌가? 토지가 싼 신개척지에서는 거지도 없고 생활의 불평등도 거의 없다. 토지가 비싼 대도시에서는 극단적인 빈곤과 사치가 병존한다.(297)

 

지금까지의 기나긴 논의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진리에 도달하였다. 노동을 투입해서 부를 생산하려면 토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에 필요한 토지를 장악하면 노동의 열매 중에서 노도자의 생존에 소요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장악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적진 속을 행군하듯이, 걸음마다 확인하고 위치마다 경계를 강화하고 길목마다 수색하였다. 사회적 또는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서 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문명세계를 압박하고 위협하는 악을 해명하기 위해 갖가지 측면을 다 검토하면서도 이 진리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또 사고의 오류와 잘못된 사고 습관 때문에, 단 한 가지, 즉 정답만을 빠뜨린다. 이와 같은 오류와 잘못된 이론의 배경에는 어떤 강력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이 힘은 정치 체제에 관계없이 모든 나라의 법을 제정하고 사상을 형성하는 힘이자 거대하고 지배적인 물직적 이해관계의 힘이다.(303) 

 

인류 문명 발달의 불평등을 설명해주는 원리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관한 원리가 아니며, 인구가 생존물자에 압력을 가한다는 원리도 아니다.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큰 원인은 토지소유의 불평등에 있다. 토지소유는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지적, 도덕적 상황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커다란 기본 요인이다. 이점은 틀림이 없다. 토지는 인간의 삶터이고, 인간이 필요한 물자를 꺼내 쓰는 창고이며, 욕구를 충족시킬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노동을 투입하는 대상이 되는 원료이다… 우리는 토지에서 태어나 토지로부터 물자를 얻어 살다가 토지로 돌아간다 인간은 들의 풀이나 꽃과 마찬가지로 흙의 자녀이다. 사람에게서 토지에 속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면 사람은 육체 없는 영혼에 불과할 것이다. 물질적 진보는 인간의 토지에 대한 의존성을 없애 주지 않는다. 물질적 진보는 토지에서 부를 생산하는 힘을 보태줄 뿐이다. 다라서 토지가 독점되면 물질적 진보가 고도로 이루어지더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으며, 노동밖에 가진 것이 없는 계층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물질적 진보는 토지가치를 올리고 토지 소유의 힘을 강하게 해 줄 뿐이다.(304)

 

 

 

제 6 권. 해결책

제 1장. 현재 옹호되는 해결책의 불충분성

 

1) 정부의 절약

사회의 총생산 중 조세로 징수하는 액수를 줄이는 것은 사회의 순생산력이 늘어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인구밀도의 증가나 기술의 개선처럼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갖는다. 어느 경우든 이익은 지대 상승을 통해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될 뿐이다. 

정부의 경비를 줄인다고 해서 그 자체로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생기는 악을 치유하거나 완화시킬 수는 없다. 

 

2) 교육의 확산 및 근면, 절약의 습관

노동자 계층의 물질적 생활이 개선된 곳에서는 반드시 인간적 품성도 향상되었고 물질적 생활이 악화된 곳에서는 반드시 인간적 품성도 타락하는 결과를 빚었다. 그러나 힘들게 벌어야 겨우 최저생활을 하는 계층의 근면, 기술, 절제, 지적 능력이 늘어났다고 해서 이들의 물질적 생활이 개선된 곳은 어디에도 없다. 

 

3) 노동자의 단결

임금률이 일부 업종에서 변할 경우에 노동에 대한 상대적 수요를 변화시키기는 하지만 총수요를 변호하시키지는 못한다… 어느 한 나라의 모든 임금이 두 배가 되더라도 수출과 수입의 품목과 비율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교환은 절대생산비가 아니라 상대생산비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단결로 토지소유자도 불편을 겪기는 하겠지만 그들이 불편할 정도이면 자본은 파괴되고 노동자는 굶주리는 정도에 이른다. 

 

4) 협동조합

협동조합이 목적하는 바는 생산, 교환 방법과 기계 개선의 효과와 같다. 즉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노동의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선의 이익은 지대를 올릴 뿐이다. 

 

5) 정부의 지시와 간섭

규제와 제약이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말아야할 방법이다. 

누진소득세의 경우에 세무조사권을 가진 많은 공무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조세가 효과를 낼 수록 부의 축적에 대한 유인이 작아진다.

 

6) 토지 분배의 확산

소유 면적 제한을 통해 부의 공정한 분배를 확보하려는 노력에는 분배의 총량을 감소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토지 소유 면적을 제한하더라도 생산물의 공정한 분배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지 독점이라는 악은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토지의 균등한 분배는 불가능하고 그보다 못한 모든 수단은 치유책이 아니라 완화책이며 치유를 방해하는 완화책일 뿐이다.

 

 

제 2장. 진정한 해결책

현대 문명을 저주가호 위협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인은 토지사유제에 있다. 이 제도가 존재하는 한 생산력이 향상되더라도 대중에게 지속적인 혜택을 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대중의 생활을 악화시킨다. 또 빈곤을 구제하고 부의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추진되고 있거나 제시되는 해결책을, 토지사유제 철폐만 제외하고 모두 검토하였지만 효과가 없거나 실제적이지 못하다. 

악을 제거하는 방법은 단 하나,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 뿐이다. 부가 증가하는데도 빈곤이 심화되고 생산력이 커지는데도 임금이 억제되는 이유는 모든 부의 근원이자 모든 노동의 터전인 토지가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빈곤을 타파하고 임금이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 즉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전부가 되도록 하려면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소유로 바꾸어야 한다.

 

 

제 7권. 해결책의 정의성

 

제 1장. 토지사유제의 부정의성

토지사유제가 정의로운 것이라면 내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틀린 것이 되고, 반대로 토지사유제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나의 해결책은 옳은 것이 된다. 

 

소유에 대한 모든 정당한 권원은 모두 생산자의 권원과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연권에서 도출된다. 그 밖에는 정당한 권원의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첫째 이유는 다른 정당한 권원을 도출할 수 있는 자연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는 만일 다른 권원이 존재한다면 두 권원이 상호 모순되어 이 근거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에 대해

“자연은 노력의 결과 이외에는 인간에게 어떠한 소유나 통제력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이 없으면 자연의 보물을 채취할 수 없고, 자연의 힘을 다스리고 활용하고 통제할 수 없다. 자연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자연은 주인과 노예를 구분하지 않으며, 황과 신하를 구분하지 않으며, 성자와 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자격이 있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자연은 노동의 결과 외에는 인정하지 않으며, 노동의 결과라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인정한다. 해적의 배에도 바람은 불어주고 평화로운 상인이나 선교사의 배에도 바람은 불어준다. 왕과 백성이 같이 바다에 빠져도 헤엄을 치지 않으면 아무도 물 밖으로 머리를 내놓을 수 없다. 새는 밀렵꾼의 총보다 토지소유자의 총에 먼저 맞아주지 않는다. 물고기도 주일학교에 다니는 착한 소년의 낚시나 못된 결석쟁이 소년의 낚시를 구별하지 않고 문다. 곡식도 밭을 갈고 씨를뿌려야 자란다. 광석이 광산에서 채취되는 것도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해는 골고루 비치고 비도 골고루 온다. 자연의 법칙은 창조주의 뜻이다. 자연법은 노동의 구너리 외에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법에는 모든 인간이 자연을 사용하고 향유할 권리, 노력을 자연에 투입할 권리, 자연으로부터의 대가를 수취하여 소유할 권리의 평등성이 폭넓게 그리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자연은 노동에게만 주므로 노동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배타적 보유의 유일한 권원이다. 

 

둘째 이유에 대해

노동에 근거하는 소유권은 다른 종류의 소유권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사람이 자기 노동의 생산물에 대해 정당한 소유권을 갖는다면, 어느 누구도 자기 노동의 생산물이 아닌 것 또는 노동의 생산물로서 자기에게 정당하게 이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토지사유제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자연이 보장하지 않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토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터전이자 환경이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 창고이며 노동에 필수 불가결한 원료이자 힘이다.(344) 

 

토지의 배타적 소유를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합의하여 토지에 대한 자기들의 평등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후세대의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345)

 

물질적 진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연이 먹여 살리지 못할 아이를 탄생시키는 것도 아니다. 물질적 진보가 쓰디쓴 열매를 낳는 것이 창조주가 인간의 마음으로도 승복할 수 없는 부정의한 오점을 자연법에 남겼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고도 문명 속에서 결핍으로 인해 인간이 쓰러지고 죽어가는 것은 자연의 인색함이 아니라 인간의 부정의에 기인한 것이다. 죄악과 비참, 빈곤과 궁핍은 인구 증가와 산업 발전의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이런 결과가 인구 증가와 산업 발전에 뒤따르는 이유는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자연이 모든 인간을 위해 제공한 것을 일부 인간이 배타적으로 보유함으로써 최고의 정의의 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347) 

 

 

제 2장. 토지사유제의 궁극적 결과는 노동자의 노예화

노예사유제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토지사유제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해야 하는 토지의 소유는 사실상 인간 자체를 소유하는 것이고, 일부가 토지를 배타적으로 사용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면 다른 사람을 자기 사유재산으로 만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노동과 토지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사람이 살면서 반드시 사용해야하는 토지를 소유하면 그 사람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갖게 된다…. 토지 소유는 귀족제의 근거가 된다. 귀족 신분이 토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토지가 귀족 신분을 만들어 준다.(356)

 

노예 해방 이후 토지 소유자들은 노동에 대한 책임에서 면제되었다.(360) 

 

토지사유제를 인정하는 한 우리가 자랑하는 자유는 필연적으로 노예제도로 연결된다. 토지사유제가 철폐되기 전에는 미국의 독립선언서도 노예해방법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토지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며 노예 상태가 조성될 것이고 물질적 진보가 진행될 수록 그 정도가 반드시 심해진다.(362)

 

 

제 3장. 토지소유자의 보상 요구

토지소유자의 이익이 보존되면 일반 국민의 이익과 권리는 그만큼 무시되며 토지소유자가 특권을 잃지 않으면 일반 국민은 얻는 것이 없게 된다. 

 

지대는 과거의 생산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생산물에서 나온다. 지대는 지속적으로 노동에 부과되는 부담이다. 해머를 칠 때마다 곡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직기가 움직일 때마다 증기기관이 고동칠 때마다 지대에 공물을 바친다. 지대는 깊은 지하에서 생명을 걸고 일하는 사람에게도, 배를 타고 세찬 파도를 무릅쓰며 일하는 사람에게도 부과된다. 이런 절도는 자본가의 정당한 부수와 발명가의 인내 어린 노력의 열매를 가져간다. 어린이에게서 놀이와 학교를 빼앗으며 뼈가 단단해지고 근육이 튼튼해지기도 전에 어린이를 일터로 몰아낸다.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서 온기를, 배고픈 사람에게서 음식을, 병자에게서 약품을, 불안한 사람에게서 평온을 빼앗는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포악하게 하며 비참하게 만든다. 열 식구가 지저분한 단칸방에서 살도록 한다. 농촌의 소년 소녀들을 돼지처럼 자라게 한다. 가정에서 위안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로 술집이 붐비도록 한다. 유망한 젊은이를 감옥이나 보호감호소에 갈 후보자로 만든다. 순수한 모성을 누려야할 소녀들로 매음굴을 채운다. 매서운 겨울이 이리를 마을로 내몰듯이 탐욕과 죄악을 사회에 퍼뜨린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믿음을 흐리게 하며, 힘들고 어둡고 잔인한 운명이라는 베일로 정의롭고 자비로운 창조주의 영상을 가린다. 이는 과거에 발생했던 절도일 뿐만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는 절도이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어린이에게서 천부적인 권리를 빼앗는 행위이다.(369)

 

 

제 4장. 토지사유제의 역사적 고찰

무제한적인 개인 소유가 자유롭게 채택된 곳은 없었음이 입증된다. 역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토지사유제는 강탈에 의해 생겼다. 토지사유제가 계약에 의해 생긴 경우는 없고 정의와 효율을 고려하여 생긴 경우도 없다. 어느 곳에서나 전쟁과 정복 또는 교활한 자들이 미신과 법률이라는 수단을 이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생겼다.(375)

 

“모든 원시사회에서 토지는 부족의 공동재산이었고, 주기적으로 여러 가족 간에 배분되었으며, 누구나 자연의 혜택을 입어 노동으로 먹고 살았다. 그러므로 각자 얼마나 편한 생활을 하느냐는 자신의 힘과 머리에 비례하였다. 어느 누구도 생존 수단이 박탈되지 않았고, 대를 거듭하면서 불평등이 누적되는 경우도 없었다.”(드 라블리에, 375)

 

평등한 인간적 권리가 부인되고 특권층이 생성된 원인

1) 소수 권력자 내지 군부로의 권력 집중, 전쟁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공동의 토지를 독점

2) 정복의 결과, 피정복민은 농노 상태로 전락하였고 토지는 정복자들끼리 너누어 가짐

3) 성직자 계층 및 전문 법률가 계층의 형성과 영향력, 이들은 토지에 대한 공동의 권리 대신 배타적 권리를 확립함으로써 이익을 취했다.

 

토지 제도의 변천

1) 원시 체제 : 경작지를 평등하게 분배하고, 비경작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

2) 봉건 제도 : 봉토는 본질적으로 신탁이었고 봉토의 향유는 의무와 연계되었다. 봉건제도 하에서 군주의 토지로부터 오늘날 국민 일반이 부담하는 공공경비를 조달하였고, 교회의 토지로부터 신도의 예배와 교화에 드는 비용, 병약자를 돌보는 비용, 성직자처럼 사회적 선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계층을 지원하는 비용등을 조달하였다. 군대 토지로부터는 국방 비용을 조달하였다. 

3) 토지 사유제

 

과거에는 토지소유제도가 최고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외관상으로도 확실히 드러났지만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그 외관이 사라지거나 다소 불분명하게 되었다. 토지 소유의 문제는 전보다 악화되었지만 잠재화됨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목하지 못하고 토지소유자는 용이하게 토지 재산권을 다른 재산권과 같이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제 5장. 미국의 토지사유제

미국의 경우 광대한 토지가 있었고 처음에는 토지를 절대 사유재산으로 하여도 별다른 해가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이 원하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토지가 남아 있었고 사적인 토지 소유가 계속될 경우에는 그 필연적 결과로 노예제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감지하지 못했다.(391)

간단히 말해서 미국 국민은 토지사유제의 악영향을 충분히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 본질적 부정의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서부 개척 시대를 지나면서 점점 토지가 귀해지고 노동이 생산을 하는 데 불가결한 자연의 기회를 획득하는 조건이 점점 엄해졌다. 

 

 

제 8권. 해결책의 응용

 

제 1장. 토지사유제는 토지의 최선 사용에 어긋난다.

우연과 본질을 혼동하여 생긴 착각이 하나 있다. 그 착각이란 토지를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토지사유제가 필요하며 토지를 공동소유하면 문명이 파괴되고 야만상태로 회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돼지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집을 불태울 필요가 없듯이, 토지를 개량하기 위해 토지의 절대적, 배타적 소유자가 될 필요가 없다. 돼지고기를 굽기 위해 집을 불태우는 것이 부적절하고 낭비적이며 불확실한 수단이듯이, 토지사유제는 토지개량물의 보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부적절하고 낭비적이며 불확실한 수단이다. 

 

토지 사용에 필요한 것은 토지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 개량물에 대한 보장이다. 토지의 경작과 개량을 유도하기 위해서 ‘이 땅은 당신의 것’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이땅에서 당신이 노동과 자본을 들여 생산한 것은 당신의 것’이라고 하면 족하다.(402)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하면 적절한 사용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토지를 공공재산으로 하면 필요가 있을 때 즉시 사용 내지 개량할 수 있다. 그러나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하면 토지소유자 스스로 사용 내지 개량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경우네도 타인의 사용 내지 개량을 못하게 할 수 있는 권리를 토지소유자가 갖는다.(405)

 

 

제 2장.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하고 보장하는 방법

도처에서 노동자 계층이 겪는 빈곤과 고통, 불황이라는 반복적인 마비 현상, 일자리 부족, 자본 불경기, 기아선상의 임금 등의 현상이 물질적 진보가 진행될수록 더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 원인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생활의 터전인 토지가 일부 사람의 배타적인 사유재산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있다.

 

지대를 모두 조세로 징수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최상의 해결책이다. 임금을 올려주고 자본 소득도 높여 준다. 빈민층을 해소하고 빈곤도 추방한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높은 보수의 일자리를 주고 인간의 힘을 자유스럽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범죄를 줄이고 도덕과 취향과 지성을 고양시키며, 정부를 깨끗하게 하고 문명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 형식상 토지소유권은 지금처럼 개인의 수중에 그대로 있다. 아무도 토지소유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토지 소유량에 대한 제한도 없다. 그러나 국가가 지대를 조세로 걷기 때문에 토지 소유가 누구의 명의로 되어 있건 토지 소유량이 얼마가 되건 간에 토지는 실질적으로 공동재산이 되며, 사회이 모든 구성원이 토지 소유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토지가치 이외의 대상에 부과하는 모든 조세를 철폐하자.

(To abolish all taxation save that upon land values.)

 

 

제 3장. 조세의 원칙에 대한 검토

1) 조세가 생산에 주는 부담이 가능한 적을 것

2) 조세의 징수가 쉽고 징수 비용이 저렴하며 조세가 가능한 한 궁극적인 납세자에게 직접적으로 부과될 것

3) 조세가 확실성을 가질 것

4) 조세 부담이 공평할 것

 

1) 조세가 생산에 미치는 영향

모든 조세는 분명히 토지와 노동의 생산물에서 납부된다. 자연의 물질과 힘에 인간의 노동을 가하는 것 외에 부의 근원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의 보수를 줄이는 조세는 반드시 생산 의욕을 줄인다. 적절한 방식으로 부과하면 별 어려움없이 부담할 수 있는 조세도 잘못 부과하면 국민을 궁핍하게 하고 부의 생산력을 파괴할 수 있다.(414)

 

생산을 저해하지 않고 정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조세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점에 대한 조세이다.(415)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연 독점의 성격을 가진 사업은 정부의 기능에 속하며 정부가 맡아서 운영하여야 한다. 정부가 체산사업을 하듯이 전신사업도 맡아야 하며 일반도로처럼 철도도 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그러나 토지 독점에 비하면 다른 독점은 아무 것도 아니다…. 토지가치에 부과되는 조세는 그 금액이 지대, 즉 연간 토지가치를 초과하지 않는 한 생산을 전혀 제약하지 않는다.(417)

 

공업에 과세하면 공업을 억제하는 효과가 생기고, 토지개량물에 과세하면 토지 개량을 줄이는 효과가 생기며, 상업에 과세하면 교환을 막는 효과가 생기고, 자본에 과세하면 자본 투입을 방해하는 효과가 생긴다. 그러나 토지가치는 전액을 징수할 수 있으며, 그 효과는 산업을 진흥하고 자본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며 부의 생산을 중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2) 징세의 용이성과 저렴성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 이외의 모든 다른 조세를 없앤다면 다른 조세를 징수하던 비용은 모두 절약할 수 있다.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는 물가를 올리지 않으며 부과되는 사람이 직접 조세를 부담한다…. 조세는 생산비를 올리고 공급을 억제함으로써 가격을 상승시킨다. 그러나 토지는 인간의 생산 대상이 아니며 지대에 매기는 조세는 토지 공급을 억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조세로 인해 토지소유자의 세액이 늘어나더라도 토지소유자가 토지 사용대가를 올릴 힘이 없다.

 

3) 조세의 확실성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는 재량의 여지가 가장 적고, 최상의 확실성을 갖는 조세이다. 토지는 이동시킬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는 만큼 토지에 대한 조세의 평가와 징수도 확정적이다. 

토지개량물을 제외한 순수토지의 가치에만 조세를 부과한다면 조세체계가 단순하고 명확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 조세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므로 당국의 과세액 평가도 일반 부동산 중개인이 거래가격을 매기는 것과 같은 정도의 확실성을 갖게 될 것이다.

 

4) 조세의 공평성

자연은 노동에게 베풀며 그리고 노동에게만 베푼다. 에덴동산에서도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굶는 수밖에 없다. 동일한 소득을 가진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의 소득은 노동소득이고 다른 사람의 소득은 지대소득이라고 하자. 이 두사람이 국가의 경비를 똑같이 부담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소득은 그 스스로 창출한 부이자 사회적 부의 총량을 증가시킨 부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소득은 단지 이미 생산된 물자 중에서 취하는 것일뿐이며, 그 대가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소득을 향유하는 권리는 노동의 대가로 부를 준다고 하는 자연의 보장에 근거를 둔 권리이다. 그러나 지대소득자가 소득을 향유하는 권리는 허구적인 권리이고 인간의 제도가 만든 권리일 뿐이며 자연은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지대가 과세되어 사회의 필요경비에 충당되면, 자연이 예정하는 평등이 성취된다. 각 국민은 개인적인 근면, 기술, 지적 능력에 의한 이익 이외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이익을 받는 일이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게 번 것을 갖게 된다. 그 때가 되면, 그리고 그 때가 되어야 노동은 정당한 보수를 받고 자본은 자연적인 대가를 받는다. 

 

 

제 4장. 여러가지 지지와 반대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가 정부 수입의 수단으로 그토록 장점이 많다고 하면, 어째서 모든 정부가 수많은 다른 조세를 부과하는가? 그 대답은 명백하다.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는 비중있는 조세 중에서 남에게 떠넘길 수 없는 유일한 조세이기 때문이다.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는 토지소유자에게 귀착되며 이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킬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토지소유자라고 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계층은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를 낮게 유지하면서 다른 조세를 수입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직접적인 이익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토지가치에 과세하는 것을 반대하는 쪽에는 확실하고 강력한 이익집단이 존재하지만 현대 정부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다른 조세에 대해서는 특별한 반대세력이 없다. 머리 좋은 정치인들은 교묘한 조세제도를 고안하여 흡혈박쥐가 살아있는 생명체의 피를 빨아먹듯이 노동 임금과 자본 이자를 뽑아내었다. 

 

 

제 9권. 해결책의 효과

 

제 1장. 부의 생산이 미치는 효과

현재 산업을 압박하고 교환을 저해하는 모든 부담을 제거하면 부의 생산이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하는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토지가치도 상승할 것이다. 

현재 부과되는 조세는 인간의 노력, 근면, 기술, 절약에 벌금을 물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자연의 기회가 노동에 개방되고, 자본과 토지개량물에 대한 조세가 면제되고, 교환이 제약을 벗음으로써, 일하려 하는데도 자신의 노동으로 필요한 물자를 구하지 못하는 비참한 광경은 볼 수 없게 된다. 산업을 마비시키는 주기적 공황이 사라진다. 모든 부문의 생산이 활기를 띤다. 수요는 공급과 보조를 맞추고 공급은 수요와 보조를 맞춘다. 모든 방향에서 거래가 증가하며 모든 사람의 부가 늘어난다. 

 

 

제 2장. 분배에 미치는 효과 및 이를 통해 생산에 미치는 효과

물질적 진보가 지대를 상승시키는 만큼 사회가 지대를 취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해 쓰인다면, 현재 물질적 진보에 따라 불평등을 야기하는 그 동일한 원인이 이제는 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새로운 균형이 형성되면 생산력이 더 향상되고 이러한 방향의 변화가 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지대는 계속 상승하지만 임금과 이자의 희생 위에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 증가에 의해 상승한다. 사회가 지대를 징수하여 공공의 용도로 사용하면 지대 상승분은 모든 구성원의 이익으로 돌아간다.(446) 

 

 

제 3장. 개인과 계층에 미치는 효과

생산력이 대폭 증가함에 따라 노동과 자본은 토지사유제에서 입을 손실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고, 이러한 이익 외에도 사회가 건강해짐으로써 생기는 더 큰 이익을 토지소유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회가 같이 누리게 된다. 

 

자신이 소득이 자본 소득에서부터 나오는 사람과 토지 이외의 대상에 대한 투자에서 나오는 사람의 소득도 증가할 것이 명백하다.(452)

 

스스로 일하는 농민은 노동자이자 자본가인 동시에 토지소유자이며, 노동과 자본에 의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농민의 손실은 명목적일 뿐이며 이익은 실질적이고 크다.(455)

 

부의 총량이 엄청나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평등하게 분배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양의 부를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각자의 힘과 욕구가 서로 다른 경우에 평등한 분배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부가 각자 근면, 기술, 지식, 절제를 통해 공동의 부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분배된다는 뜻이다. 생산하는 사람에게서 생산하지 않는 소수의 수중으로 부를 집중시키는 큰 원인이 사라질 것이다…. 토지 독점이 사라지면 엄청난 부자가 생길 염려도 없다. 부자의 재산은 문자 그대로 노동 생산물인 부로 구성될 것이고 부는 계속해서 소모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제 4장. 사회조직과 사회생활에 나타날 변화

정부가 대폭 간소화된다. 사법부의 업무도 한결 줄어든다. 정부의 입법, 사법, 행정 기능도 대폭 간소화 된다. 

 

물질적 진보가 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지대가 꾸준히 상승할 것이므로 토지세 수입은 점점 많아진다. 공동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은 스파르타에서처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다. 공공의 식당을 운영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공의 화장실, 박물관, 도서관, 정원, 강연회장, 음악무용회관, 극장, 대학교, 기술학교, 실내사격장, 운동장, 체육관 등은 설립할 수 있다. 난방, 전기, 동력 등도 공공의 비용으로 도로를 따라 공급할 수 있다. 도로에는 과일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수 있다. 발명과 발견에 보상을 하고 과학적 연구를 지원할 수 있다. 공공이익을 위한 노력을 장려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공공수입을 사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의 이상은 이렇게 달성할 수 있을뿐 정부의 압제를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정부의 성격도 변화하여 사회라는 거대한 협동조합의 관리를 맡는 기관이 된다. 정부는 단지 공동의 재산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리하는 주체가 된다.(460)

 

노동에게 자유로운 일터와 완전한 대가를 주고, 사회의 성장으로 인해 생긴 기금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징수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궁핍 내지 궁핍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생산이라는 용추철은 자유롭게 튀어오르고 부가 엄청나게 증가하여 최하층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숨 쉴 공기에 대해 염려하지 않듯이 일자리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게 된다. 들에 핀 백합처럼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과학이 발전하고 발명이 계속되고 지식이 보급되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된다. 궁핍 내지 궁핍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면 부에 대한 동경도 수그러들고, 부의 획득과 과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타인의 존경과 인정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적인 문제의 처리나 공적인 자금의 관리에 있어서도 사익을 추구할 때처럼 신경을 써서 기술을 발휘하고 정성을 들이게 된다.(465)

 

사람이 음식에 욕심을 부리는 경우는 음식의 분배가 공정하지 않아서 모두에게 충분한 양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할 때이다. 그러나 공정한 분배와 충분한 음식이 보장되면 아무도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게 된다. 현재의 사회에서는 분배 상태가 매우 불공정해서 각자에게 충분한 부가 돌아가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궁핍하게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에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면 모든 사람이 궁핍에 대한 두려움에서 풀려나므로, 품위 있는 상류사회에서 음식을 탐하지 않는 것처럼 부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468)

 

인간은 건설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건설하고, 개량하고, 발명하고, 조립하며, 무엇인가를 이룰 때마다 더 큰 것을 성취하려고 한다. 인간은 동물 이상의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이다.(470)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며 인간에게 저주스러운 것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대가가 생기지 않는 노동과 결과가 나오지 않는 노력을 혐오할 뿐이다. 매일 매일 힘들여 일해서 겨우 연명한다면 이는 정말로 고된 노동이다. 이것은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펌프질을 계속하거나, 깔려 죽지 않기 위해 바퀴를 계속 밟는 지옥 같은 형벌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의미한 일에서 해방된다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더 열심히, 더 훌륭히 일하게 되며, 그럴 때 자신을 위해서 또는 타인을 위해 무언가 일다운 일을 하게 된다…. 인류의 생활을 개선하는 일, 예를 들면 지식을 확대하고 힘을 증가시키고 문예를 풍부하게 하고 사상을 고양시키는 일은 생계를 위해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채찍질이나 동물적 욕구에 의해 강제되는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할 뿐, 더 많이 먹고 마시고 입고 과시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 궁핍이 사라지면 이러한 종류의 일이 대폭 증가할 것이다.(471) 

 

궁핍 내지 궁핍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고 모든 계층에게 여가, 편안함, 독립, 점잖고 세련된 생활, 정신적-도덕적 발전의 기회를 주면 사막에 물을 대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불모의 황무지에 신록이 덮이고, 생명이 없는 몹쓸 땅에 오래지 않아 수목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새의 노랫소리가 들릴 것이다. 지금은 감추어진 자질, 있을 것 같지 않은 능력이 나타나서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고 충실하고 행복하고 고상하게 해 줄 것이다. 세모는 자리에 밀려들어가는 둥근 사람이나 둥근 자리에 쑤셔 넣어진 세모난 사람, 부자가 되려는 경쟁에 힘을  낭비하는 사람, 공장에서 기계와 다름없이 일하면서 연명하기 위해 일에 묶인 사람, 악하고 무지한 빈민가에서 자라는 어린이 등, 그 누구에게나 높은 수준의 힘과 빛나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과 재능은 기회만 주어지면 발휘될 수 있다…. 도덕이 향상되고 지적활동이 활발해지고, 사회 생활이 개선될 것이다. 모든 사회의 주민은 상호 긴밀한 연결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474)

 

 

제 10권. 인간 진보의 법칙

 

제 1장. 인간 진보에 관한 현재의 이론-그 불충분성

“인간 진보의 법칙은 무엇인가?

 

비버는 댐을 만들고, 새는 둥지를 틀고, 벌도 집을 짓지만 동물의 집은 언제나 같은 방법,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의 집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지은 집에서부터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저택으로까지 변화되어 왔다. 개는 사물의 인과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몇 가지 재주도 읽힐 수 있지만 개선할 줄 아는 인간과 더불어 생활해오면서도 이런 능력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또 문명인과 가이 사는 개라고 해서 떠돌이 미개인과 같이 사는 개보다 더 수준이 높거나 지식이 더 많지도 않다. 동물 중에는 옷을 입거나 요리를 하거나 도구와 무기를 만들거나 다른 짐승을 사육해서 잡아먹거나 분명한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우속 속이 아니고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에다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보태는 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자질이 없다면 태평양의 일부 작은 섬을 제외하고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481)

인간은 다른 인간과 같이 삶으로써만 원시적인 단계를 넘어 개선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인간의 문명화는 곧 사회 속에서 협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이를 통해 개선이 이루어진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인간은 새로운 노력과 발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개선 및 개선능력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며, 또 가장 잘 적응했거나 가장 많이 개량된 사람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는 경향과, 가장 잘 적응했거나 가장 많이 개량된 부족, 민족, 인종이 사회집단 간 투쟁에서 살아남는 경향에 의해 확대된다” - 저자는 이 진보에 대한 통속적인 설명을 거부한다. 

 

문명을 자연의 선택이라는 원리가 작용하여 인간의 힘을 개선하고 고양한 결과로 보는 진화론적 견해는 세계사에 나타나는 이런 사실을 도저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문명이 여러 시대, 여러 장소에서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발달했다는 사실은 진화론적 견해와 배치되지 않는다. 추진력과 제어력의 배합이 동일하지 않으면 그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하던 모든 문명이 지속되지 않고 반드시 정체 내지 퇴보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진화론적 견해와 완전히 배치된다. 진보가 있으면 인간의 본성이 개선되고 개선된 본성은 다시 진보를 초래한다는 진화론적 견해가 맞다면, 부분적인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원칙으로는 진보는 계속되며 발전은 또 다른 발전을 낳아 문명이 계속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 현상이 일반원칙 정도가 아니라 보편원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는 죽은 자의 무덤이자 멸망한 제국의 무덤이다. 진보가 인간을 개조하여 더 큰 진보를 낳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현재의 서구문명처럼 활기차고 번성했던 모든 문명이 저절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499)

 

사회의 진보를 중단시키는 장애는 진보의 과정속에서 생기며, 과거의 모든 문명을 파괴한 원인도 문명의 성장 그 자체에 의해 조성되었다.(492)

 

 

제 2장. 문명의 차이와 그 원인

인간 진보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첫 단계로, 문명 간의 차이가 있다고 할 때 그 차이의 본질적 성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전 세계에 걸쳐 동일하다.”

 

유태인의 독특함을 보존해 온 것은 유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태교의 가르침, 즉 어울림에 의해 전주된 종교의 가르침 때문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유리 눈이나 의족을 물려받지 않듯이 아버지의 지식도 물려받지 않는다. 지극히 무식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도 과학의 기수가 되거나 사상의 선도자가 될 수 있다. 시간과 장소가 다른 여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 즉 문명의 차이는 개인에 내재하는 차이가 아니라 사회에 내재하는 차이이다. 

크고 작은 여러 사회는 각기 지식, 신념, 관습, 언어, 취향, 제도, 법률 등으로 하나의 그물을 짠다. 개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짠 그물에 출생 때부터 편입되어 죽을 때까지 머문다. 이 그물은 인간의 정신이 싹트고 발전하는 바탕이 된다. 관습, 종교, 편견, 취향, 언어 등이 이 그물에서 자라고 지속된다. 또 그물을 통해 기술이 전해지고 지식이 축적되며, 한 세대의 발견이 다음 세대의 공동 자산이자 디딤돌이 된다. 이 그물은 때에 따라서는 진보에 대한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 그물이 있기 때문에 진보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 그물은 종족 전체에 대해 개인의 기억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 시대의 기술, 과학, 발명이 굉장한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도 이러한 그물을 통해서 가능하다. 

 

제 3장. 인간 진보의 법칙

인간 진보의 법칙-문명의 전진을 지배하는 법칙은 무엇인가? 

정신은 인간이 전진하는 수단이다. 모든 전진은 정신을 통해 이룩되고, 또 새로운 전진을 위한 유리한 기초가 된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체구를 키울 수는 없지만 생각윽 통해 우주에 대한 지식과 힘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다. 정신력은 진보의 동력이며, 인간은 진보에 투입하는 정신력에 비례하여 전진한다. 정신력의 양은 일정하다. 즉 사람의 신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듯이, 정신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진보에 기여할 수 있는 정신력은 진보와 무관한 목적에 소비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정신력이다. 정신력을 소비하지만 진보와는 무관한 목적은 유지와 갈등의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유지에는 생존의 확보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속 및 기존 발전 성과의 보존도 포함된다. 갈등에는 전쟁과 전쟁 준비외에도 타인을 희생시켜 만족을 얻거나 이를 막는 데 드는 모든 정신력 소모가 포함된다. (509)

 

사람이 따로 떨어져 살면 개인의 모든 힘이 생존 유지에 다 소모된다. 정신력은 사람들이 사회속에서 서로 어울릴 때에만 자유롭게 되어 고차적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어울림으로 인해 분업이 가능해지고 다수인의 협력에 의해 생기는 경제성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울림(association)은 진보의 첫째 요소이다. 개선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릴 때 이루어지며, 어울림이 넓고 긴밀할수록 개선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리고 인간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도덕법칙이 무시되느냐 존주오디느냐에 따라 정신력이 대립 속에 낭비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므로 평등 또는 정의(equity of justice)는 진보의 둘째 요소이다. 이렇듯 평등 속의 어울림(association in equity)이 진보의 법칙이다.(510) 

 

어울림에 대한 최초의 장애는 자연조건에서 나온다.

전쟁은 어울림에 대한 부정이다.

종교가 취하는 형태 또는 종교가 야기하는 증오로 인해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전쟁을 하기도 하지만 종교가 어울림을 촉진하는 수단이 된 경우도 많다.

 

인구가 희소한 곳의 토지는 가치가 없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토지가치가 생기고 상승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생기는 가치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 가치는 어울림에 의해 생기며 어울림이 커지면 상승하고 어울림 깨지면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부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 이외의 형태를 가진 힘도 역시 이와 같다. 

 

불평등을 유발하는 커다란 원인은 토지의 사유라는 자연독점에 있다. 처음에는 토지가 공동재산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매년 토지를 재분배하거나 공동으로 경작하는 등 소박한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이는 저수준의 발전 단계에나 맞는 방식이다. 인간이 사기의 생산물에 관해 자연스럽게 가지는 사유 관념이 토지에도 쉽사리 확대되는데, 토지사유제는 인구가 희소한 시기에는 토지의 개량자 내지 사용자에게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줄 수 있지만, 인구가 조밀해지고 지대가 상승하면 결국에는 생산자에게서 임금을 박탈하는 제도로 변모하다. 뿐만 아니라 지대를 징수하여 공공목적에 사용하는 방법도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일부 계층의 손에 들어감에 따라 이 계층이 토지 소유를 독점하고 다른 사람은 소작인이 되는 제도로 바뀌고 만다. 전쟁과 정복은 정치 권력의 집중과 노예제도를 낳고, 사회가 성장하여 토지에 가치가 생기는 지역에서는 자연히 토지 독점을 야기한다. 지배계층은 권력을 수중에 집중시키고 머지 않아 토지도 집중 소유하게 된다. 정복한 토지의 대부분이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피정복민은 소작인이 되거나 농노가 될 것이다. 각 나라마다 자연적 사회 성장과정에서 오랫동안 공공토지 내지 공동토지가 존재하면서 원시적 공동체 문화에서 목초지 등으로 사용되어왔지만 이 땅마저 사유화되고 만다. 이러한 사례는 근대에 흔히 발견된다. 불평등이 일단 야기되면 발전이 진행되면서 토지 소유는 더욱 집중한다.(519) 

 

현대문명의 우월성은 어울림의 신장과 더불어 평등이 신장했다는 데 기인한다. 여기에는 집중되었던 권력이 유럽 북방 민족이 이동해 들어옴으로써 수많은 소규모 중심으로 분산되었다는 점과 기독교의 영향이 작용하였다.(523)

 

유럽 문명의 발생과 성장의 이유 : 문명은 협동이다. 문명의 핵심 요소는 화합과 자유이다. 도시의 인구규모나 밀도가 커지는 가운데 어울림이 확대되었고, 또 상업의 성장과 교역의 다양화로 멀리 떨어진 도시가 긴밀히 연결됨으로써 어울림이 확대되었다. 요약하자면 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더 많이 존중되었다는 것이다. 서구문명이 과거의 어느 문명보다 더 위대하고 우수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변화에 있다. 또 사람의 어울림의 확대는 정신력에 자유를 주어 무지의 베일을 걷어 올림으로써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정의를 촉진하고, 권리의 평등성을 존중하며,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동등한 자유에 의해서만 제약되도록 하는 사회제도는 문명을 발전시킨다. 사회제도가 이렇지 못하면 문명의 발전은 중단되고 퇴보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분이 가난한 어부와 유태 농민에게 가르쳤던 단순한 진리 이상의 교훈을 정치경제학과 사회과학기 가르칠 수 없다.(527)

 

 

제 4장. 현대문명의 쇠퇴

토지를 공동재산으로 하면 문명에 엄청난 자극이 되는 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퇴보하고 만다. 우리 문명과 같은 유형의 문명은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한다. 정지란 있을 수 없다. 

과거의 모든 문명을 파괴한 원인은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 경향이었다. 

 

사회 진보의 조건은 어울림과 평등이다. 현대의 발전은 정치적, 법적 평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의 철폐, 신분의 폐지, 세습적 특권의 일소, 자의적 정부를 대신하는 의회제도의 도입, 종교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 선택권 보장, 지위의 고하와 힘의 강약을 막론한 신체와 재산의 평등한 보장, 거주 이전, 직업 선택, 언론출판의 자유 확대 등이다. 

 

권력이 세습되지도 않고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국민에 의한 정부가 최악, 최저질의 전체정부로 변화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 분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도둑질을 크게 하는 자는, 훔친 것의 일부를 잃는 정도의 처벌밖에 받지 않게되는 경향을 부의 분배가 가장 불평등한 곳에서 더 강하고 뚜렷하게 나타난다.(537) 

 

부패가 만성화되고, 공공심이 소멸되고, 명예와 선행과 애국심의 전통이 약해지고, 법이 무시되고, 개혁의 가망이 사라지면, 고통받는 대중 속에서 화산과 같은 힘이 생겨 어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을 계기로 사회를 산산조각 내고 만다. 이런 와중에서 강력하고 분별없는 자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대중의 맹목적 요구 또는 대중의 광포한 열기를 이용하여, 이미 활력을 상실한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제쳐놓게 된다. 이렇게 되면 칼은 펜보다 강해지고 야만족인 힘과 거친 광기가 교차하면서 문명은 혼미 상태에 빠져 쇠퇴하고 만다.(538)

 

토지가 독점된 사회에서 물질적 진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낳고, 이러한 경향이 계속 진행되면 문명은 하강의 길로 접어들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도처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생존 투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부를 위한 경쟁에서 남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 온 신경을 긴장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면, 사회를 개선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줄어든다. 모든 문명국에서 신경을 혹사하고, 영양이 부족하고, 거처가 불결하고, 작업이 불건전하고 단조로우며, 어린이가 이른 나이에 노동을 하고, 부녀자들이 험한 일과 범죄에 물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이 늘어가고 있다. 

 

 

제 5장. 중심적인 진리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부의 분배에서 악이 발생하는 현상은 현대 문명이 진행되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이것은 진보의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현대 문명을 필연적으로 멈추게 할 하나의 경향이다. 

풍요 속에서 인간을 괴롭히고 짐승처럼 만드는 빈곤과 빈곤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가지 악들은 정의를 부정하는데서 발생한다.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이 베풀어준 기회를 개인이 독점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는 근본적인 정의의법칙을 무시하였다. 우리가 아는 한, 큰 안목으로 볼 때 정의는 우주의 최고법칙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남에게 줄 수 없는 몇가지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받는다. 이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가 포함된다!”

토지에 대한 평등권이 부정되면 이들 권리도 부정된다. 토지는 사람이 생활하는 터전이자 유일한 터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하사물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부정하면서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토지에 대한 평등권이 부정되는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는 인구가 증가하고 발명이 계속되면 굶주림을 겨우 면할 정도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자유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이 진리를 무시해왔다. 그리하여 거지가 생겨 거리를 배회한다. 빈곤은 우리가 정치적 주권자라고 떠받드는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ㅏ 결핍에서 생기는 무지는 학교에서 고칠 수 없다. 국민은 상전이 시키는 대로 투표를 한다. 정치가의 역할을 선동꾼이 차지한다. 정의의 저울에 달린 추의 무게는 돈으로 결정된다. 시민적 덕목을 중시화지 않는 자가, 심지어 위선으로라도 그 덕목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공화국의 기둥은 무거운 하중을 견디지 못해 이미 굽어 있다.(546) 

 

자유와 미덕은 빛과 색채의 관계와 같다. 자유와 부는 햇빛과 곡식의 관계와 같다. 자유와 지식은 눈과 보이는 대상의 관계와 같다. 자유는 발명의 천재이고, 국력의 근육이며, 국가 독립의 정신이다. 자유가 신장되면 미덕이 자라고, 부가 증가하고, 지식이 늘어나고, 발명이 인간의 힘을 배가하며, 자유를 누리를 국가는 힘과 정신에서 다른 국가를 능가하게 된다. 반면에 자유가 위축되면 미덕은 사라지고, 부는 감소하고, 지식은 잊혀지고, 발명은 중지되며, 한때 무력이나 기술에서 융성했던 강대국이 자유로운 미개인에게 힘없이 멸망당한다. 자유라는 태양이 아직도 충분히 빛나지 못했지만, 모든 진보는 자유가 이룩한 결과이다.(547) 

 

 

결론

개인의 삶의 문제

저자가 제기한 내용은 쉽사리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 수용이 쉬운 진리였다면 벌써 수용되었을 것이다. 수용이 쉬운 진리였다면 은폐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진리와 정의는 되풀이해서 세워져왔다. 그러나 진리와 정의는 되풀이해서 무너지고 말았으며 유혈사태가 발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탐구 과정에서 우리는 위와같은 학설들을 검토한 결과 이들이 오류임을 알게 되었다. 인구가 생존물자보다 더 많이 증가하는 경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맬서스의 인구론) 인간의 힘이 낭비되고 인간이 커다란 고통을 겪는 원인은 자연법칙에 있지 않고 인간이 무지하고 이기적이어서 자연법칙에 순응하지 않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진보는 인간 본성의 개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은 일반적으로 불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현대 세계에서 미래의 삶에 대한 믿음을 추방하고 있는 악몽은 격파되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육신과 감정으로 싸여있는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며, 희미한 꿈과 같은 철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관념상으로만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육체로부터 자유로줘져서 보이지도 바라볼 수도 지나갈 수도 없는 순수한 곳에 이르면, 하나님이 영혼의 지도자이자 왕이 된다. 그곳에서 영혼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의지하여, 인간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끝없이 바라보면서 지극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저자는 물질적인 진보가 가속화되는 사회속에서 빈곤의 문제가 있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다른 이론(임금이론, 인구론, 진화론)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보로 인해 생기는 부가 임금이나 이자로 노동자나 자본가에게 돌아가지 않고 토지소유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이 결과적으로 빈곤과 불황, 나아가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최근 LH공사의 직원들이 내부자 정보를 통해서 토지를 구입하고, 시의원이나 구의원들이 개발정보를 가지고 토지를 매입하여 토지의 용질을 변경하여 막대한 시세차액을 챙기는 것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낙심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토지의 사유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극단적으로 토지를 공동소유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능하기에 지대조세제, 토지로부터 생긴 가치를 지대로 모두 환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부동산의 불로소득은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공동체 전체의 노력, 예를 들어 SOC투자로 도로가 생기고, 전철역이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으로 인해서 생기는 시세차익을 토지소유자가 모두 챙겨가는데 이를 적절하게 환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저항이 상당하다.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명확하다.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는 사회, 어울림과 평등을 통한 진보의 열매를 모두가 함께 누리는 사회를 꿈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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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jubilee) 레 25:8-12, 16, 23 

 

(레 25:8-12, 개정)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레 25:16, 개정)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레 25:23, 개정)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희년은 말그대로 기쁨의 해라는 의미이다. 희년은 위 본문에서 말하는대로 일곱번째 안식년(49년)의 다음해(50년)를 말한다. 희년이 기쁨의 해가 되는 이유는 바로 그 해에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가 선포되기 때문이다. 이 희년에는 종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토지는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본문 1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토지법, 하나님의 토지법은 토지 자체를 사고 파는 개념이 아니라 토지의 사용권을 판매한다고 볼수 있다. 그래서 희년에서 멀수록 토지의 값을 비싸게 매겼고, 만약 내년이 희년이라면 그 토지의 가치는 싸게 책정되었을 것이다.

 

본문 23절은 이 희년의 개념중에 가장 중심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데 그것은 토지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본문은 분명히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들은 이땅의 나그네요 거류민인것을 적시하고 있기에 이 본문을 현재 우리의 삶에 얼마나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질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세상이다. 하나님의 토지개념이 아니라 바알의 토지개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이러한 주류 세계관에 어떻게 항거하며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말할수 있는가?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한다면, 또한 이 성경이 지금,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인정한다면 이 희년사상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토지개념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헨리죠지와 같은 경제학자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그이 저서를 통해서 이문제를 강력하게 지적한다. 그는 주류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무명의 인쇄공에서 경제적 통찰력을 가진 경제사상가로 거듭났는데 그는 빈곤의 악순환의 근본원인에 '땅'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응시했던 사람이다.

 

헨리조지의 주장을 간명하게 정리하면 그렇다. 땀흘린 것에는 면세, 땀흘리지 않은 것에는 조세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자면 헨리조지는 근로소득세와 같이 자신의 노동력으 동원하여 노력으로 일군 부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의 기반이 되는 블로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걷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헨리조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유재산제를 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이 지점에서 들었다. 배타적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땀흘려 일한 댓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유제를 인정하고, 사적인 소유로 허용했을 때 오히려 시장의 건전성을 파괴하고, 부의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는 진정한 사유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헨리조지와 헨리조지 학파는 반자본주의라는 치명적인 공격에 대해 지공주의에 의한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제시함으로써 반박한다. 이미 토지사유제가 정착한 곳에서 토지를 국유화하는 무리한 방식자체가 통할 수도 없을 뿐더러, 토지사유제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이 도리어 진정한 자본주의의 사유제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재산제의 틀 안에서 지대만을 환수하는 방법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강남이나 목동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살던 목동의 80년대 중반의 모습은 주위에 논밭이 있었다. 홍수가 나면 안양천에 물이 범람해서 침수피해를 여러번 경험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목동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몇몇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말그대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들이 땀흘린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땅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주위에 도로가 생기고, 전기와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확충되고, 열병합 발전소가 생기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논과 밭이 하루아침에 금싸라기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토지공개념에서 말하는 지대조세제도는 바로 이러한 소득에 대해서 지역사회에 세금을 통해서 이익을 재분배해야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이 이미 홍콩, 싱가폴, 미국의 몇개주들에서 시행되고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사회에 시행하는데는 큰 장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국의 이러한 기득권층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지금도 역사하는 살아있는 말씀을 믿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이 성경에 나오는 희년 개념을 읽을때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저 이스라엘의 과거의 역사속에 한정된, 한시적인 그들만의 개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쉽게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기득권을 가지지 않는 젊은이들부터 이부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위의 생각은 아직 개인적으로 더 많은 연구와 묵상이 필요한 설익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시대에 구현되어야 할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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