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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For even when we were with you, we would give you this command: bIf anyone is not willing to work, let him not eat. 11 For we hear that some among you cwalk in idleness, not busy at work, but dbusybodies. 12 Now such persons we command and encourage in the Lord Jesus Christ to do their work quietly and to earn their own living.4
b [Gen. 3:19]; See 1 Thess. 4:11
c ver. 6
d 1 Tim. 5:13; 1 Pet. 4:15
4 Greek to eat their own bread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살후 3:10–12.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살후 3:10–12.
 
7-9절에서 바울은 복음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자신들을 본받을 것이 무엇인지를 권면하고 나서 이제 10-12절에서 규모없는 자들에게 자기 손으로 일하여 먹을 것을 직접 명하고 있다. 
 
10절) ‘너희에게 명하기를’, 본문에 ‘명하기를’로 번역된 ‘파랑겔로멘’은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파랑겔로’의 미완료 과거형이다. 과거의 반복적 행동을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형 동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바울은 이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회가 있을때마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는 재림에 관한 혼란스러운 사상과 가르침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 게으른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본문에서 일하기 싫어하거든이라는 표현은 ‘일하다’라는 ‘에르가조마이’라는 동사앞에 ‘우 델레이’라는 ‘~하기 싫어하다’라는 표현이 합해진 것으로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로 일할 기회가 있지만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기생하려는 이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성경이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죄로 타락하기 이전에도 동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잘못된 종말론의 영향으로 일부 신자들 가운데 일상을 포기하고 재림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은 깊은 신심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거절하는 불신앙의 표현이다. 이미 살전 4:11에서 이 명령을 한 바 있다. 
 
The imperfect form of παρηγγέλλομεν (“we used to command”) underscores that Paul did not simply mention the need to be self-sufficient in passing when he was with the Thessalonians but that he had repeatedly instructed them with respect to the necessity of working to provide for their own material requirements (cf. v. 6). The ὅτι at the beginning of the command probably indicates that Paul is quoting what he used to say to his converts verbatim in the words εἴ τις οὐ θέλει ἐργάζεσθαι μηδὲ ἐσθιέτω (“If anyone does not wish to work, neither let that person eat”). The command itself has the character of a maxim about it, although it is not known in the form that it has here from any other source (cf. Pr. 10:4; Gn. Rab. 2:2).
Three important points need to be noted about the command: (1) The command is qualified by the use of the verb θέλει (“wish”). Paul recognized that the important question was whether or not people were prepared to work for their living. His command, therefore, was not directed to those who were unable to work or who could not find work, but to those who refused to work. (2) The sanction against those refusing to work is that they should not be allowed to eat. Clearly it was the community’s responsibility to see that Paul’s imperative, μηδὲ ἐσθιέτω (“neither let that person eat”), was carried out in the case of anyone who was unwilling to work (cf. Did. 12:2–5). (3) By reminding the community of his instructions regarding work, Paul provided the community with the justification for stopping support to those who preferred to rely on the largesse of the wealthier members of the community rather than work themselves.
Gn. Rab. Genesis Rabbah
Did. Didache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85–286.
 
11절) 아마도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중 일부가 찾아와서 교회 공동체의 문제를 이야기했고 바울은 이를 듣고 이것에 대한 반응으로 그들에게 이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으르게 행하여’, ‘게으르게’라는 표현은 ‘아닥토스’로 앞선 3:6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이는 규율과 질서를 따르지 않는 무질서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대오를 이탈한 병사의 모습을 나타낸다.  
‘게으르게’에 해당되는 표현은 ‘아닥토스’로 개역한글은 이른 ‘규모 없이’로 번역하였다. 이는 앞서 살전 5:14에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바르게 베치하다’라는 의미의 ‘탓소’와 부정 접두사 ‘아’의 합성어로 ‘대열에서 벗어난, 규율을 지키지 않는’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군사 용어로 대열에서 이탈한 낙오된 병사의 모습이다. 본절에서 이렇게 게으르게 행한다는 것은 교회의 정해진 질서를 따르기 않고 제멋대로 규율없이 행하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단지 게으름으로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제멋대로 행하여 도리어 골치 아픈 일을 만들어낸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기에 이전 번역의 ‘규모없이’가 더 타당해 보인다. 비슷한 의미로 3:7에서 무질서하게 행하다라는 표현도 이 단어의 동사형이다. 이처럼 데살로니가전후서에는 이 표현이 대단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행하여’라는 표현은 ‘페리파툰타스’로 이것의 원형은 ‘페리파테오’이다. 이는 ‘페리’라는 접두어와 ‘밟다, 짓밟다’라는 의미를 지닌 ‘파테오’의 합성어로 주로 ‘걷다, 행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하니’, 앞서 10절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본절 11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일을 만드는 이들이 있었다. ‘일하다’는 ‘에르가조마이’인데 이는 ‘행위, 행실, 일’을 의미하는 ‘에르곤’의 동사형이다. 
본문에 ‘일만 만드는’으로 번역된 ‘페리에르가조메누스’의 원형 ‘페리에르가조마이’는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쓰인 독특한 단어이다. ‘두루’를 의미하는 전치사 ‘페리’와 힘써 일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에르가조마이’의 합성어로 이리 저리 두루 다니면서 힘써 일한다는 의미로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며 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말하자면 오지랖넓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not 에르가조마이 but 페리에르가조마이’한 것이다. 이는 워드플레이이다. 이처럼 본인이 힘써야할 일을 하지 않고 불필요한 다른 이들의 일에 참여하며 한담하는 자들로 인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홍역을 앓고 있었다. 
교회안에 믿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생산적인 일에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때 그 힘은 비생산적인 더 나아가 파괴적인 곳에 사용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생산적인 노동을 하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The opening words of this verse, ἀκούομεν γάρ τινας περιπατοῦ ντας ἐν ὑμῖν ἀτάκτως (“for we hear that some among you are living in an idle manner”) suggest that Paul had received a report regarding the indolent who were forcing the community to care for them through their own refusal to work. Paul does not specify that the whole church sent him word about the situation. Possibly someone representing a patron of the community had come with word of the emerging problems, as happened in the case of the Corinthian church (see 1 Cor. 1:11; 16:17). Alternatively, Paul may have received a secondhand report regarding the situation, perhaps from someone from another church in the region. This latter suggestion would account for Paul’s lack of clarity about the origin of the misunderstanding regarding the day of the Lord in chap. 2. The phrase περιπατοῦντας ἀτάκτως (“living in an idle manner”) has been picked up from v. 6 and has the same meaning here.
Paul gives some specificity to the meaning of “living in an idle manner” in the wordplay μηδὲν ἐργαζομένους ἀλλὰ περιεργαζομένους (“not working but meddling” or, as the NIV renders it in idiomatic English: “they are not busy; they are busybodies”). (For other wordplays in Paul see Rom. 12:3; 1 Cor. 11:29–34; 2 Cor. 1:13; 3:2; 6:10; Phil. 3:2f.) This amplification of the phrase “living in an idle manner” demonstrates that the fundamental issue was, from Paul’s perspective, one of indolence, not of rebelliousness, as some have suggested (cf. Spicq, “Les Thesaloniciens ‘inquiets,’ ”; Jewett, Thessalonian Correspondence, 105). The term περιεργαζομένους, found only here in Paul, probably requires the meaning “meddling” or “interfering,” with the sense of people being busybodies involved in affairs that are none of their business (cf. the admonition in 1 Thes. 4:11 for the readers to live quietly and mind their own affairs).
What precisely led to this criticism is impossible to say. Paul may have simply intended the criticism in a general way, since idle people are more likely to interfere in other people’s affairs than those who are busily engaged in their own affairs and earning a living for themselves. Such people were either potentially or actually disruptive for the community and needed to be disciplined. In addition, as Bruce (207) notes, the type of behavior described by Paul in this passage might also have brought the community into disrepute with outsiders and might therefore have needed to be brought under control (cf. 1 Thes. 4:12).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86–287.
 
12절) 바울은 앞서 이런 자들, 일하기 싫어하고 도리어 일을 만드는 이들에게 명하고 권면한다. 명하고라는 표현은 ‘파랑겔로멘’이고 ‘권하기를’은 ‘파라칼루멘’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명령과 권면의 권위는 바울 자신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본문은 ‘히나’ 가정법 구문으로 직역하면 ‘조용하게 일하면서 자기 자신의 양식을 먹도록’이라는 표현이다. 
‘조용히’로 번역된 ‘메타 헤쉬키아스’는 ‘고요하게, 조용하게’라는 의미이다.(살전 4:11) 즉 이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 임박한 재림의 소식으로 인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며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조용하게 자기 집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것을 명하는 것이다. 
‘자기 양식을 먹으라’는 표현은 ‘톤 헤아우톤 아르톤 에스디오신’이다. ‘헤아우투’는 ‘스스로’, ‘아르토스’은 ‘떡, 음식’, ‘에스티오’는 ‘먹다, 소비하다’라는 의미이다. ‘에스티오’라는 명사는 대부분 먹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본절에서만 자급자족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의 의미대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일하여 번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양식을 먹느냐가 아니라 그 양식을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이다. 결국 본문은 잘못된 종말 신앙을 가지고 자신이 일할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일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빌붙어 생활하면서 공동체 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을 향해서 엄히 명하고 있는 것이다. 
 
- Having begun by instructing the responsible members of the community about how they should deal with their aberrant fellow believers, Paul now turns to those leading indolent and irresponsible lives in order to give them specific instructions. Paul employs strong and coercive language (cf. v. 6) when he says τοῖς δὲ τοιούτοις παραγγέλλομεν καὶ παρακαλοῦμεν ἐν κυρίῳ Ἰησοῦ Χριστῷ (“but we command and require such people in the Lord Jesus Christ”). The relation between παραγγέλλομεν and παρακαλοῦμεν necessitates comment. Some commentators detect a softening of the more forceful expression παραγγέλλομεν (“we command”) by παρακαλοῦμεν understood in the sense of “we exhort” or “we beg” (cf. Frame, 306; Morris, 256; Best, 340). This interpretation seems somewhat doubtful. παρακαλοῦμεν can also mean “we demand” or “we require,” and in the context this seems the more probable sense because Paul implicitly threatens the indolent members of the community with exclusion through his directives to the responsible members of the community in vv. 6 and 14. Moreover, “in the Lord Jesus Christ” is parallel to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in v. 6. This means that it expresses the idea of personal agency, namely, that the full authority of the Lord stands behind the command (on the use of the expression “in the Lord” in such situations see 1 Thes. 3:8 and Moule, Origin of Christology, 58–60). If this is the case, then the command has coercive power: to reject it is to reject the Lord Jesus Christ himself and therefore to exclude oneself from the community.
The command itself is contained in the ἵνα clause: ἵνα μετὰ ἡσυχίας ἐργαζόμενοι τὸν ἑαυτῶν ἄρτον ἐσθίωσιν (“that working with quietness they eat their own bread”). The verbal cognate ἡσυχάζειν (“to be quiet”) of the noun ἡσυχία (“quietness”) appears in 1 Thes. 4:11 and is directed there to the same general theme. Paul undoubtedly intended the practice of “working with quietness” as an alternative to the indolent members’ tendency to meddle in other people’s business (v. 11). Best (341) argues that the reference to working quietly probably indicates that it was to calm the “excitement” caused by the expectation of the parousia, but Marshall (225) points out that a more general reference is intended since in neither 1 nor 2 Thessalonians does Paul ever directly connect his commands about living quietly with the issue of the parousia. In light of 1 Thes. 4:11f. and Rom. 13:1–7, the claim of Trilling (151) that the instruction to work quietly reflects a later middle-class form of Christianity not typical of Paul’s day is untenable. The ultimate goal of people working quietly is that they should provide for themselves (on the meaning of “eat their own bread” cf. v. 8) and stop being a drain on the resources of either the community as a whole or more likely its wealthier members. Ironically, Paul’s emphasis upon familial love and commitment among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may have given rise to the situation. The order that the idle must work was not only in their interest, but also in the interest of the wealthier members of the community who would have increasingly found themselves burdened by the indolent if Paul had not intervened.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87–288.
 
앞서 8절에서 바울은 이것의 본을 이미 보였다. 그는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주야로 애써 일했다.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바울은 너희들도 나와 같이 행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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