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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Now may ithe Lord of peace himself jgive you peace at all times in every way. kThe Lord be with you all.
17 I, Paul, write lthis greeting with my own hand. This is the sign of genuineness in every letter of mine; it is the way I write. 18 m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i See Rom. 15:33; Eph. 6:23
j Num. 6:26
k Ruth 2:4
l See 1 Cor. 16:21
m See Rom. 16:2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살후 3:16–18.
 
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살후 3:16–18.
 
이제 본문은 이 서신의 마지막 인사말에 해당한다. 마지막 인사말을 대개 축도로 이루어지는데 데살로니가 후서의 경우 16절과 18절이 축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 
 
16절) 평강의 주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평강 주시기를 구하는 바울
‘평강의 주’는 ‘호 큐리오스 테스 에이레니스’이다. 이는 살전 5:23에서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호칭한 것과 비슷한 표현이다. 바울 서신에서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흔하지만(롬 15:33; 16:20; 고전 14:23; 고후 13:11; 빌 4:9; 살전 5:23) 평강의 주라는 표현은 흔하지 않다. 
‘평강’이라는 의미인 ‘에이레네’는 혼돈, 염려, 두려움, 무질서, 싸움이 없는 완전한 평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여러 성품중 매우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평강의 상태의 원형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아담이 완전한 교제를 나누었을 때 가능했지만 인간의 타락이후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견할 수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겉으로는 별문제가 없이 평강한 상태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없이는 영혼 깊은 곳에 두려움과 불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만이 채워질 수 있는, 채워져야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필연적으로 평강의 부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위에서 막힌 담을 허심으로 평화, 평강을 다시금 이루셨다. 
 
하나님의 평강과 주님의 평강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 평강, 에이레네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으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로부터 동일하게 임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선 내용에서 임박한 종말을 고대하며 게으르고 무질서하게 행하는 이들과 이로 인해서 낙심한 이들을 권면할 필요가 있었기에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평강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진정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여러 환난과 핍박, 임박한 종말에 대한 거짓 가르침 속에서 진정한 평강을 누리기를 원했다. 
본문에서 ‘평강의 주’라는 표현 앞에 ‘아우토스’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한글 번역으로는 뒷부분에 친히라고 번역되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맨 처음에 ‘아우토스’가 사용되고 있다. 이는 ‘호 큐리오스’를 강조함으로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평강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진정한 평강이 필요하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주변의 환경이 보장하거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 하나님께서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다. 
 
‘때마다 일마다’, ‘디아 판토스 엔 판티 트로포’ 이를 직역하면 ‘모든 것을 통해 모든 방식 안에서)인데 이는 시간적인 측면과 영역적인 측면을 모두 지칭하는 표현이다. 즉 평강의 주께서 평강을 주시되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빠짐없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역 성경 NIV는 이를 ‘at all times and en every’로 번역했다. ESV는 ‘at all times in every way’로 번역했다.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The Lord be with you all’, ‘호 퀴리오스 메타 판톤 휘몬’, 주님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앞서 언급한 ‘평강의 주’를 지칭한다. 평강의 주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본문에서 ‘메타’라는 표현이 바로 함께 하다, be with의 표현이다. 주님의 탄생을 통해서 ‘임마누엘’의 약속이 실현되었다(마 1:23). 이후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마 28:30) 이를 약속하셨다. 
 
The expression αὐτὸς δὲ ὁ κύριος τῆς εἰρήνης (“and the Lord of peace himself”) is unusual because it is the only instance in the NT writings where Christ is designated as “the Lord of peace.” The normal expression in Paul is “the God of peace” (cf. 1 Thes. 5:23; Rom. 15:33; 16:20; 2 Cor. 13:11; Phil. 4:7, 9), though in the salutations of most of his letters he connects peace both with “God our father” and “our Lord Jesus Christ” (cf. 2 Thes. 1:1; Rom. 1:7; 1 Cor. 1:3; 2 Cor. 1:2; Gal. 1:3; Phil. 1:2), and in Col. 3:15 he refers to “the peace of Christ.”
The Lord of peace is called upon to give peace to the readers: δῴη ὑμῖν τὴν εἰρήνην διὰ παντὸς ἐν παντὶ τρόπῳ (“may he give to you peace at all times, in every way”). The peace that Paul requests from the Lord here is more than the absence of conflict within the community. The Christians at Thessalonica were also troubled by external oppression (cf. 1:4–10). Even this may not be as inclusive as Paul intended. Peace was virtually synonymous in Jewish circles with the idea of the total well-being of individuals and the community. Such peace could only come from God. The breadth of its application in v. 16 is shown by the words “at all times, in every way.” (The textual variant τόπῳ for τρόπῳ found primarily in witnesses of the Western tradition [cf. A* D* F G itar, c, d, dem, etc. vg Ambrosiaster] probably arose in an attempt to bring the passage into conformity with such other Pauline texts as 1 Cor. 1:2; 2 Cor. 2:14; 1 Thes. 1:8.)
V. 16b is the first of two benedictions. Just as “the Lord of peace” in the first part of the verse is unique in Paul’s letters, so also is the benediction “the Lord be with all of you.” Both Rom. 15:33 and Phil. 4:9 speak of “the God of peace” being with the readers. In all probability the use of “the Lord of peace” in the first part of the verse led to the slightly unusual benediction in the second part of the verse. Whatever may be the reason for the unique formulation, Paul’s wish-prayer had the effect of reassuring the readers of the presence of their Lord with all of them.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91–292.
 
17절)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친필로라는 의미는 ‘내 자신의 손으로’라는 의미로 본문에 사용된 ‘에메’는 본인임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인칭 대명사로 이 같은 표현이 고전 16:21, 골 4:18에 등장한다. 바울은 마지막 인사를 통해서 본서를 자신이 직접 기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편지를 다른 사람이 대필하고 편지 마지막에 송신자 자신이 몇마디 쓰는 것이 관행이었다. 대필자는 말그대로 불러주는 내용만을 받아적었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대의 편지들의 경우에 마지막 부분에서 문체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로마서 16:22
22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롬 16:22에 보면 더디오가 바울의 편지를 대필하였고 마지막 부분은 바울 사도가 직접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데살로니가후서의 경우 아마도 디모데가 대필한 것으로 보이고 마지막 문안 인사및 축도 부분을 바울이 직접 했을 것이다.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본문에서 ‘표시’라고 번역된 표현은 세메이온인데 이는 ‘표적, 징조, 이적, 표시’라는 뜻인데 본문에서는 편지와 관련된 의미로 그 편지를 기록한 저자의 독특한 서명을 가리킨다. 바울이 왜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이와 같이 이 편지에 자신의 독특한 표시, 사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까? 앞선 2:2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의 이름을 가장한 거짓 선지자들이 보낸 편지로 인해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독특한 서명이 없는 것은 거짓이므로 조심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 바울이 사인을 직접 한 것이라기 보다는 앞선 내용을 필사자가 기록하고 마지막 인사와 축도 부분을 바울이 기록함으로 표시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의 친필 사인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 Paul makes explicit what would have been clear to readers of the original letter: the bulk of the letter was dictated to a secretary, and the final greeting was written in Paul’s own unique handwriting, which served as a mark of authenticity, much like signatures at the end of modern letters. Paul’s highlighting of this fact may reflect a suspicion that a forgery in his name was in existence, which may have been the source of the idea that the day of the Lord had already come (see 2:2). This affirmation of genuineness also shows that writing in another person’s name was condemned among early Christian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20.
 
As in several of his other letters Paul took up the pen to write his own greeting and noted this point for his readers (cf. 1 Cor. 16:21; Col. 4:18; see also Phm. 19 and Gal. 6:11–18 where Paul identifies himself as writing the conclusion of the letter). Best (347) maintains that v. 16 is the greeting to which Paul refers in v. 17, but on the basis of both 1 Cor. 16:21 and Col. 4:18 this is incorrect. As Marshall (231) points out, the actual greeting is contained in the words ὁ ἀσπασμὸς τῇ ἐμῇ χειρὶ Παύλου (“greeting, with my own hand, from Paul”). The clear implication of this notice by Paul is that a change of handwriting occurred at this point in the autograph copy. This in turn means that he employed an amanuensis or secretary in the writing of the letter (see Longenecker, “Ancient Amanuenses,” for the role of the amanuensis).
To his greeting Paul adds: ὅ ἐστιν σημεῖον ἐν πάσῃ ἐπιστολῇ: οὕτως γράφω (“which is a sign in every letter [of mine]; this is the way I write”). Lindemann (“Abfassungszweck,” 39–40) claims that the author of 2 Thessalonians, someone writing after Paul’s time and seeking to replace 1 Thessalonians with his own letter, intentionally sought to call into question the authenticity of 1 Thessalonians by means of 2 Thes. 3:17 (as well as 2:2). Lindemann asserts that 1 Thessalonians lacked the mark of Pauline authenticity as described in v. 17. The author of 2 Thessalonians intended this to cast doubt on 1 Thessalonians.
Lindemann’s position is based on a misunderstanding of the “sign.” The sign to which Paul refers is not his signature (signatures were not normally written at the end of letters in any case; cf. Spicq, Épîtres pastorales, 17). The sign was, rather, the fact that the greeting itself was written in Paul’s hand. He did this, undoubtedly, because like many other letter writers of the time Paul dictated each of his letters to an amanuensis and then added the greeting and end of the letter in his own hand as an authenticating mark (see Deissmann, Light, page facing 170 for an example of the change in handwriting in the greeting based on a photograph of an original letter). For this reason we should not expect to find the “mark” in 1 Thessalonians as we do not possess the autograph copy which would have ostensibly shown the change in handwriting. That the first person singular suddenly appears in 1 Thes. 5:27, however, gives credence to the possibility that the original did in fact contain a greeting written in Paul’s hand. The comment in 2 Thes. 3:17 that “this is the way I write” identified the particular handwriting appearing in the autograph as Paul’s own. Thus if a question arose about any letter being from Paul (cf. 2:2), the greeting and conclusion of this letter provided a way of authenticating it. Marshall (232) may also be correct that Paul wrote v. 17 to underscore the authority of the letter for its recipients.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92–293.
 
18절) 본절은 축도에 해당한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이 편지를 받는 이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한다. 
앞선 데살로니가전서의 축도와 비교해보자. 
데살로니가전서 5:28
2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너희에게’, 본서에서는 ‘너희 무리에게’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무리에 해당하는 ‘판톤’이라는 표현이 추가되었다. 이는 ‘모든, ~마다, 각각’의 의미로 ‘all, every, each’의 의미이다. 하여 바울은 주님의 은혜가 신앙안에 굳게 서 있는 자이든, 연약한 자이든 관계없이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all. This addition to the grace benediction (elsewhere in Paul’s letters only in 2 Cor 13:13; Eph 6:24; Titus 3:15) stems from the apostle’s desire to include all members, including the idlers (see also 2 Thess 3:16b).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64.
 
The concluding benediction is typically Pauline even though it is not identical with any found in Paul’s other letters (cf. 1 Cor. 16:23; Gal. 6:18; Phil. 4:23; 1 Thes. 5:28; Phm. 25). The wording of this benediction, 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μετὰ πάντων ὑμῶν (“may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all of you”), is closest in wording to 1 Thes. 5:28 and 1 Cor. 16:23, though both of those texts lack the πάντων (“all”). But this is only a minor variation. If any theological point is to be made from the inclusion of “all,” it is perhaps that Paul asked for Christ’s grace even on those who were not holding to the Christian pattern of behavior regarding work.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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