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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if there is any encouragement in Christ, any comfort from flove, any gparticipation in the Spirit, any haffection and sympathy, icomplete my joy by being jof the same mind, having the same love, being in full accord and of one mind. Do nothing from kselfish ambition or lconceit, but in mhumility count others more significant than yourselves. Let each of you nlook not only to his own interests, but also to the interests of others.
f[Rom. 15:30; 2 Thess. 2:16]
g2 Cor. 13:14
hCol. 3:12
iJohn 3:29; 15:11
jSee Rom. 12:16
kch. 1:17
lGal. 5:26
m[Eph. 5:21]; See Rom. 12:10; Eph. 4:2
nSee Rom. 15: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빌 2:1–4.


1-2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으로 부터 오는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기쁨을 충만케 하라.
본문 1절에서 바울은 ‘있거든’이라는 조건문을 사용하는데 이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런 성품, 특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의심이라기 보다는 도리어 이런 특성(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들이 그들의 삶의 실재로 드러나도록 촉구하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절의 특성을 기반으로 이후 2-4절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결국 이런 특성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때 우리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한 성령안에서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같은 사랑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게 되는 것이다. 

본문 1절에 그리스도의 권면,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제가 모두 등장한다. 1절이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되는데 이는 앞서 1:27-30절의 내용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도전받는 친구들을 독려하여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적인 관계에 어필하는 것인데 바울이 지금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So how does one entreat friends to get back on track? By appealing to relationships, both divine and human. It may not always work, but this is certainly the primary way. Paul begins by appealing to the encouragementor “comfort” that beingin (NIV united with) Christcan bring, as a direct response to their common experience of suffering for Christ in the preceding clause (1:29–30). But right at that point, before dictating a “then” clause, he adds three more "if“ clauses, whose studied accumulation is part of the rhetorical effect.*
*2:1The fourfold repetition of ifis almost certainly for rhetorical effect, in a situation where the letter will not be read privately but publicly. Although ifordinarily forms the protasis of a conditional sentence, in this case the protases do not so much express supposition as presupposition. Hence “if this be the case, as it certainly is.”
Paraklēsis(NIV encouragement) in the first clause is a thoroughly ambiguous word in Greek whose meaning ranges from “exhortation” through “encouragement” to “comfort.” Although the word in the next clause (paramythion) clearly and only means comfortor “solace,” the close tie of the first clause to the preceding sentence suggests that the encouragementintended leans equally toward “comfort.”
For a thorough and helpful discussion of the options and their ramifications for understanding the if-clauses—although I differ a bit with his conclusion and reason for it—see O’Brien 1991:167–76, who also includes data on the various scholars who take each option. Part of our difficulty here is probably related to the nature of dictation, in that what is written by way of dictation sometimes still carries the rhetorical effect of oral speech. In this kind of rhetoric, precision is a lesser concern than is the persuasive effect created by the accumulation of phrases. It is possible therefore (probable, I think) that the emphasis shifts as Paul warms up to his rhetoric.
 Gordon D. Fee, Philippians, vol. 11,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9), 84.

긍휼을 의미하는 단어는 ‘스플랑크나’로 창자, 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비의 마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위로에 기초한 성령안에 하나됨은 복음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고 이는 바울의 기쁨을 가져 오게 될 것이다. 본문에 ‘프로네오’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같은 일을 마음에 놓는다, 한가지 일에 너의 마음을 놓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뜻을 합하여라고 표현된 단어는 ‘심사이코스’로 영을 함께 한다라는 의미로 3절의 본문에서는 영과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Their unity in the Spirit, based on Christ’s comfort, will bring Paul’s joy over the advance of the gospel, already noted in 1:18, to full fruition. What is probably in view is his eschatological joy at their being together with him at the day of Christ (2:16).
The key word in the appeal, and indeed a key word in the letter, is the verb phroneō(see on 1:7), which is repeated in the first and third instances and has to do with the set of one’s mind, how one is overall disposed toward something (cf. Rom 8:5–7)—thus (literally) “set your minds on the same thing”/“setting your minds on the one thing.” This is the word that is picked up again in Philippians 2:5 (“have this same mindset, as Christ did”) and in 4:2, where he reproduces the identical language of this first phrase in urging Euodia and Syntyche to the same mindset. The second occurrence (third phrase) is accompanied by the adjective sympsychos(= “together in soul”), thus joining mind and soul together, while picking up the phrase “one soul” from 1:27.
 Gordon D. Fee, Philippians, vol. 11,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9), 86.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을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의 위로를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의 교제를 나누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비와 긍휼을 받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같은 마음을 품어서 나의 기쁨을 완성하시오…” 개역 성경은 이것을 되풀이 하여 “… 가 있거든”이라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 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있다면…” 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울이 말하려는 의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상기시키는 것이고, 그들 스스로가 그런 것들을 가졌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73.

“긍휼과 자비”로 번역된 헬라어 ‘스플랑크나’는 위(胃)를 말하고, ‘오이크티르모이’는 내장을 말합니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심, 자비심이 위 또는 내장에서 나온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말이나 서양 언어들에서 심장을 사랑의 샘터로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어에서는 간을 사랑의 샘터로 여깁니다.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74.

2장 1절부터 4절까지는 하나의 긴 문장입니다. 그 문장의 주절은 “나의 기쁨을 완성하시오”입니다(원문에는 2절 머리에 나오나, 개역 성경에는 우리말의 어순상 4절 끝에 위치합니다). 1절에서 빌립보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그리고 “긍휼과 자비”가 있음을 상기시키고는, 그러한 사람들이니 “나의 기쁨을 완성하시오”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의 기쁨을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1절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갖춘 자들로서 해야 할 4가지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4가지 해야 할 일을 “같은 생각을 갖는 것”, “같은 사랑을 베푸는 것,” “한 혼이 되는 것,” “한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마음을 품고 서로 사랑하여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이지,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구분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사실 첫째와 넷째는 아예 구분이 불가능하고, 셋째 역시 앞의 둘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이런 표현을 통해 결국 빌립보인들에게 “여러분 모두가 첫째도 한마음, 둘째도 한마음, 셋째도 한마음, 오로지 한마음을 품어 일심동체가 되시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74–75.

3-4절) 한 마음을 품은 우리들은 아무 일에든지 이기적인 야망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나아가 각각 그 자신의 유익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돌아보아서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해야 한다. 
우리의 사람을 추동하는 중요한 동인중에 하나가 성공의 욕구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들이 모두에게 있는데 바울은 그러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요구하는 삶,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돌보는 삶은 어쩌면 이 시대에서는 보기 희귀한, 이 시대 정신을 거스르는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이다. 이런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결국 우리들의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성령안에서 한 마음을 품어야만 가능하다. 

본문의 겸손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그런데 이 겸손이라는 덕목은 당시 그레고 로만시대에는 하찮게 여겨지는, 노예 근성 정도로 여겨졌다. 우리가 온전한 겸손을 깨닫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를 지으신 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창조의 회복이 필요한데 이는 창조주 안에 피조물로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을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면서 그분의 영광을 소유한 존재이기에 진정한 겸손은 자기 중심성을 극복할 때에 가능하다. 
Humility is thus not to be confused with false modesty (“I’m no good”) or with “milquetoast,” that kind of abject servility that only repulses. Rather it has to do with a proper estimation of oneself, the stance of the creature before the Creator, utterly dependent and trusting. Here one is well aware both of one’s weaknesses and of one’s glory (we are in God’s image, after all) but makes neither too much nor too little of either. True humility is therefore not self-focused at all but rather, as further defined by Paul, considers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As with humility, this last phrase does not mean that one should falsely consider others better.As Philippians 2:4 will clarify, we are so to consider others not in our estimation of them—which would only lead to the very vices Paul has just spoken against—but in our caring for them, putting them and their needs ahead of our own. Others in the community are not necessarily “better” than I am, but their needs and concerns “surpass” my own. After all, this is precisely how Christ’s humility expressed itself, as Paul narrates in verse 8. This is how he elsewhere describes those whose behavior is genuinely Christian; they do not seek their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 (1 Cor 10:24). Here is the sure cure for selfish ambition or vain conceit,not to mention “complaining or arguing” (Phil 2:14).
 Gordon D. Fee, Philippians, vol. 11,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9), 88–89.

그러고 나서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어 자신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기 위해서 빌립보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이기심에 근거한 분파주의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둘째는 허영심, 즉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는 과대망상이나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헛된 생각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대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남들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각자 자신의 것들만 돌아보지 말고 남의 것들도 돌아볼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자신의 것들”은 자신의 이익, 장점, 주장 등을 두루 칭하는 말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만 보면 교만해지거나 허영심에 빠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며, 분란을 일으킵니다. 그것이야말로 공동체의 하나 됨을 죽이는 독소입니다. 남의 이익을 생각해 주고, 남의 관점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공동체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빌립보인들이 해야 할 4가지 일들을 앞에 언급한 바울은 이제 여기 그것을 저해하는 3가지 독소를 배격하고, 그것들 대신에 겸손과 남을 고려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 행동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공동체의 삶을 꾸려 가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교회의 하나 됨을 가져와서 내적으로는 화평과 기쁨을 확보하고, 외적으로는 적대자들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바울이 제시하는 행동 지침의 모든 요소가 우리에게 다 적합하지만, 특히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으로 행동하라는 말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절실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사랑과 더불어 우리 기독교에서 최고의 덕목입니다. 그 반대는 교만(hybris)인데, 성경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교만, 즉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창 3:5). 헬라적 휴머니즘의 전통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이요 만물의 척도로 여기면서 인간의 자기 주장도 미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그것을 피조물인 인간이 교만해져서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라고 규정하고, 바로 그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서 분리되고 자신의 제한된 자원에 갇혀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에 담겨 있는 아담의 타락입니다.
 김세윤, 빌립보서 강해(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95번지: 사단법인 두란노서원, 2002), 75–77.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는 4가지 해야할 일과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시한다. 
해야할일 4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마음을 같이 하는것(같은 생각을 하는 것), 둘째로 같은 사랑을 가질 것, 셋째로 뜻을 합할 것(한 영혼이 될 것), 네번째로 한 마음이 되는 것을 제시한다. 
하지 말아야할 일 3가지는 첫째로 이기심에 근거한 분파주의에 따라 행동하지 말 것, 둘째로 허영심, 즉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는 과대망상이나 그렇게 보이려는 태도를 보이지 말 것, 셋째로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결국 이러한 요청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이들의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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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fby the grace given to me I say to everyone among you g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with sober judgment, heach according to ithe measure of faith that God has assigned. For jas in one body we have many members,5and the members do not all have the same function, so we, kthough many, lare one body in Christ, and individually mmembers one of another. nHaving gifts that differ according to the grace given to us, let us use them: if oprophecy, pin proportion to our faith; if qservice, in our serving; the one who teaches, in his teaching; the one who exhorts, in his exhortation; the one who contributes, in generosity; rthe one who leads,6with zeal; the one who does acts of mercy, with scheerfulness. 
fSee ch. 1:5
gver. 16; ch. 11:20
h1 Cor. 7:17
iEph. 4:7
j1 Cor. 12:12–14; Eph. 4:4, 16
5Greek parts; also verse 5
k1 Cor. 10:17, 33
l1 Cor. 12:20; Eph. 4:13; See John 17:11
mEph. 4:25; [1 Cor. 6:15; 12:27]
n1 Cor. 12:4; 1 Pet. 4:10, 11; [1 Cor. 7:7; 12:7–11]
o1 Cor. 12:10; See Acts 13:1
p[2 Tim. 2:15]
qSee Acts 6:1
r1 Tim. 5:17; [1 Cor. 12:28]
6Or gives aid
s2 Cor. 9: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2:3–8.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힘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우리는 겸손히 우리의 은사와 능력을 서로를 섬기는데 사용하게 된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생각할 이상을 생각하며 자신을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켰기에 우리는 마땅히 
분수에 맞게,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바울은 신자들의 어떤 그룹안에 자만심이 가지는 파괴적인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것보다 더 높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3절) 그들이 모두 한몸의 지체임을 상기시켰고(4-5절) 그들이 모든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들 자신의 은사를 활용할 것을 격려했다.(6-8절) 
  • Paul was fully aware of the devastating consequences of pride in any group of believers. So he cautioned the Christians at Rome not to think of themselves more highly than they ought (v. 3), reminded them that they were all members of the one body (vv. 4–5), and encouraged them to utilize their individual gifts for the benefit of the entire church (vv. 6–8).15
  • 15The view that these verses are directed exclusively toward leaders in the church cannot be sustained. Although those in positions of authority may be especially prone to pride, the need for humility extends to every member of the church.
  •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233.  

본문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인데 이 하나됨은 그리스도안에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있는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각각의 구성원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속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연합의 경험이다. 

3절) 본문에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은 ‘think with sober judgment’이다. 이는 ‘소프로네오’라는 단어로 이는 어떤 사람의 열정이나 욕망을 통제하는 가운데 지혜롭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생각한다라는 말이어떤 것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로서의 지적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안에서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 자신을 고려하는 방식이라고 Moo는 말한다. 그래서 본문에서 높게 생각한다,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과 서로의 종임을 알고 또한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의 위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섬기는 자리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 Since their minds have been renewed, their judgmentmust be changed as well. If they are conformed to this world (v. 2) they will think … more highlyof themselves than they ought,but if the Spirit has transformedthem (v. 2), they will think with sober judgment.As Moo points out (1996:760), the meaning of thinkis not so much the intellectual process itself as the way one views something. It connotes the way the Christians consider themselves with respect to others in the church. So to think too highly is to have an overly inflated view of our own importance. To think soberly is to have the divine perspective—we are slaves to God (Rom 6:16, 18, 22) and to one another (Gal 5:13), so we place ourselves under others rather than above them (compare Phil 2:3–4).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23.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의 분량은 어떤 의미인가? 본문의 분량이라는 단어를크게 두가지로 해석한다. 이 단어는 ‘메트론’이라는 단어인데 분량, 측량 자, 기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첫번째는 기준이라는 의미로 두번째는 분량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The basis of this proper estimate of ourselves is the measure of faith God has given(literally, “God has measured the measure of faith”). There are two ways of looking at this. The measurecould be the “standard” by which we judge ourselves, namely, our shared faith; thus we look at ourselves on the basis of that common faith God’s grace has allotted to each of us (so Cranfield 1979; Wilckens 1982; Morris 1988; Fitzmyer 1993b; Harrisville 1980; Moo 1996). On the other hand, it could be that different “measure” or “apportionment” given to each believer as God wills and as accepted by faith(so Michel 1966; Murray 1968; M. Black 1973; Käsemann 1980; Dunn 1988b; Schreiner 1998). It is a difficult decision, for faith(as that given equally to all believers) favors the first and measure(referring to the different things apportioned) favors the second. The answer must be found in the context, specifically in verses 4–8 and the spiritual gifts given to each believer. Murray shows (1968:118–19) how this relates to “distinct endowments distributed among the members of the Christian community,” called “the measure of faith in the restricted sense of the faith that is suited to the exercise of this gift.” This makes best sense of the whole context: different members in the church having different gifts(vv. 4–6) provides a good parallel with the measure of faithsufficient for each to discover his or her gift and therefore function(v. 4) in the community. This is also in keeping with the near parallel in 2 Corinthians 10:13 (“the field God has assigned to us”; cf. 1 Cor 7:17; 12:7–11, all texts written near the time when Romans was composed). So Paul is saying that we will have a proper humility when we examine ourselves in keeping with the different gifts God has apportioned to us. There can be no pride, for all gifts are equally important to God and must be received by faith.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23–324.

4-5절) 한몸에 여러 지체, 기관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기관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것과 같이 우리모두가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을 이루고 있기에 서로 다른 지체, 기관으로 각자의 은사에 따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본문은 교회의 다양성과 하나됨을 인간의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 하나이지만 여러가지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교회도 여러 지체들이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속해있고 수평적으로 서로에게 속해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몸은 다양한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몸이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관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어떤 기관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인식되지 않지만 그것이 문제가 생겼을때 전체가 쓰러지게 된다. 심장은 계속해서 피를 내보내야 하고 폐를 통해서는 숨을 쉬고 위와 장은 음식을 소화시키고 뇌는 지속적으로 여러가지를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려야 한다. 우리의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입은 음식을 먹고 말을 하는 것이다. 손이 발더러 내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일반적인 교회에서 15%만이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는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우리의 몸의 여러 기관중에 15%만이 작동하고 나머지는 멈춰있다면 즉시 죽거나 코마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안에서 한몸을 이루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함으로 하나됨, 연합을 이루어가야 한다. 
  • The human body is composed of many membersthat do not all have the same function.The body is a whole mechanism and yet depends on each one of its members to function properly. If all the body parts tried to function other than the way they were intended, the body would be crippled. And also if any one member failed to function properly, the body would be crippled. That is exactly Paul’s point. The church as a body parallels this exactly. We,the manymembers of the church, do indeed form one body,*and as such are dependent on each other. Yet together each member belongs to all the others.There is unity and diversity in the church. We are not meant to be “rugged individualists”; rather we are intended to think of ourselves as part of one body.Vertically, we are “not our own” but belong to Christ (1 Cor 6:19–20). Horizontally, we belong to each other. This is the principle of the many and the one. We are many members but form one body and so are interdependent. Our different gifts*are the way we blend into one body. That is, each of us has a critical part to play in the oneness that is the church; we need each other. In the eyes of God no one gift is more important than any other; there is no place for pride, for none of us can function properly without the whole. Studies have shown that in the average church, 15 percent are truly active both in terms of working in the church and in terms of giving. If only 15 percent of our body parts functioned, we would be virtually comatose. In the same way, our churches are crippled by the unwillingness of so many members to use their gifts to minister to each other (Eph 4:12). Yet this is only possible when we recognize we are one body in Christ.It is only in union with him that we can gain the humility and the strength to function in unity.
  • *12:4–5Dunn (1988b:722–23) gives valuable insight into the background of the bodyconcept: (1) It flows out of the corporate expression of the gospel, that is, the communal character of salvation. (2) There may be some background in the Hellenistic idea of the polis(city) as a “body” or in the concept of Christ as the “eschatological Adam” (cf. 5:12–21) or the eucharist as a communal celebration, but the major origin/background must be the experience of community in worship and fellowship as a whole. (3) Therefore, the major point is not its origin but its meaning in the experience of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 (v. 5; cf. Eph 1:22–23; Col 1:18).
  • *12:6There is some question whether the first half of verse 6 is part of the sentence in verses 4–5 (so nrsv; Dunn 1988b), making the list of gifts that follows purely descriptive (“if serving, on their service”), or whether it begins a new sentence (so nasb; niv; njb; nlt; Sanday and Headlam 1902; Murray 1968; Barrett 1957; Cranfield 1979; Fitzmyer 1993b), making the list of gifts imperatival (“if serving, let them serve”). The latter makes more sense, for Paul is exhorting the believers throughout this section.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24–325.

이처럼 4-5절이 하나됨을 강조한다면 6-8절을 다양성을 보여준다. 
높게 생각하는, 자만심은 보통 초대교회내에서 성령의 은사의 영역에서 보여진다. 
은사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마땅히 기억해야할 사실은 바로 1) 우리 모두가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2) 그 은사들은 바로 우리들 가운데 있다는 것 3) 모든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본문의 7가지의 은사중에 2가지만이(예언과 가르침) 다른 은사의 목록에 등장한다. 
존 스토트는 은사에 대해서 이런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로마서 12장에서 은사의 원천은 바로 성부 하나님이시고 엡 4장에서는 성자 하나님, 고전 12장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은사의 원천이 되신다라고 말한다. 이는 삼위일체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6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은사가 서로 다르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고 가르친다. 예언하는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혹은 성령이 그들에게 드러낼 것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을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넘어서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 해서는 안된다. 
  • 1. Prophesying.It is popular today to link this with preaching or teaching, but that was not its use in the early church (note that teachingis the third on the list here and thus a different gift). This was one of the important offices in the early church (second on the lists in 1 Cor 12:28; Eph 4:11 after apostles). Prophets were the divinely chosen means by which God gave specific revelations to the church regarding specific needs (so Cranfield 1979; Käsemann 1980; Grudem 1982; Dunn 1988b; Moo 1996; Schreiner 1998).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these revelations are not canonical but occasional, as in the case of Agabus, whose two revelations are in the canon only because Luke wrote them down in Acts 11:28 and 21:10–11. Prophets are to exercise their gift in proportion to [their] faith,meaning either according to the standards established by true doctrine (“the faith” as the content of our faith; so Cranfield 1979; Morris 1988; Stott 1994; Fitzmyer 1993b; Moo 1996) or according to the faith God has given them to use their gift properly (so Sanday and Headlam 1902; Barrett 1957; Murray 1968; Dunn 1988b; Schreiner 1998). On the basis of the discussion regarding “measure of faith” in verse 3, the latter is more likely. Paul is then saying that they must use their prophetic gift to serve God and the church rather than to serve themselves.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26.

7-8절)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 
바울은 특별한 은사를행사하는데 필요한 세가지 태도를 강조한다. 1) 다른 사람을 재정적으로 돕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억지로 주어서는 안되고 관대하게 줘야 한다. 2) 자주 이끄는 사람들은 그들이 설명해야할 사람이 없으므로 게으름을 주의해야 한다. 3) 상처받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들은 지치지 않고 즐겁게 계속해서 봉사해야 한다. 
  • Thus Paul spotlights three attitudes necessary in exercising particular gifts: (1) those who have a special gift of helping others financially should never give grudgingly but always generously; (2) those who lead often have no one to whom they are accountable, and hence they must beware of laziness; (3) those who show mercy to the hurting must not grow weary but continue to minister with gladness.
  •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179.

가르침이 전통적인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 2. Serving.This could be the kind of servingassociated with the specific ministry of a deacon (so Cranfield 1979; Moo 1996). But more likely this refers to ministry in general, not just the purview of the pastoral office but of all believers. In Ephesians 4:12, the pastors “prepare God’s people for works of service, so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built up.” This would refer to a wide range of services, like discipleship, youth work, children’s ministry and so on. Paul is saying that those called to ministry are to give themselves wholly to that task, realizing that it is a high calling and a privilege to serve the church in any way.
  • 3. Teaching.This gift is also mentioned in 1 Corinthians 12:28 and Ephesians 4:11 (cf. also Acts 2:42, where it is one of the four pillars of the early church). In the pastoral epistles the teaching office is stressed more than any other thing as the essential component of church ministry. In 1 Timothy 3:2 one of the criteria for leadership is “able to teach,” and in 2 Timothy 2:2 the proper process is passing on the sound doctrine to others who also “teach others.” Teachers are different from prophets in the sense that they explain the traditional biblical truths while prophets give specific messages from God. Like prophets, teachers are to dedicate themselves to their ministry. The pastor is also a teacher according to Ephesians 4:11 and the pastorals. It was a critical area in the early church because of the problem with false teachers, and it is even more critical today (there are now thousands of cults worldwide). Studies have shown that biblical illiteracy is on the rise in churches, and theology is on the wane. We desperately need to ground people in the Word and turn them into Berean Christians who “examine the Scriptures every day” (Acts 17:11) and care deeply for biblical truth.
  • 4. Encouraging.This is better translated “exhorter” because of its place after teaching,and in keeping with its use in 12:1, where niv translates it as urge(contra Morris 1988; Stott 1994). Of course, exhortation includes comfort and consolation but cannot be restricted to these ministries (the word means “exhort, encourage” and even “admonish” [my preference for Heb 3:13]). It refers to the practice of verbal care in general. Cranfield (1979:623–24) says the purpose of teaching was to instruct or explain truth while that of exhortation was “to help Christians to live out their obedience to the gospel.” So it concerns the “pastoral application” of these truths to the practical lives and needs of believers.
  • 5. Contributing to the needs of others.The steward of this gift could be one who shares his own possessions with others (so Godet 1969; Murray 1968; Cranfield 1979; Dunn 1988b; Morris 1988) or an official who distributes the church’s resources (as in Acts 6:1–7; so Calvin 1979; Käsemann 1980). Yet the more common use of the language would favor the former. Paul is asking those who give to the needy to do so generouslyor perhaps “simply” in the sense that there should be no self-serving ulterior motives (so Godet 1969; Cranfield 1979; Moo 1996). When Christians give to help others, the goal is simply to provide for their needs rather than to gain credit from others or from God (cf. Acts 2:44–45; 4:32–34).
  • 6. Leadership.It is interesting that this category appears so far down the list. One would expect it to be near the prophets and teachers at the head of the list. However, it is doubtful that Paul has any hierarchy of gifts in mind, so it is not necessary to try to read the term in a secondary (but possible) sense of someone who “comes to the aid” of others (as do Michel 1966; Cranfield 1979; Dunn 1988b, based on its placement between the one who gives to the needy and the one who shows mercy). Everywhere else in Paul’s writings (and commonly elsewhere in literature) the Greek word refers to leadership (see 1 Thess 5:12; 1 Tim 3:4–5, 12; 5:17; Tit 3:8, 14), and that is more likely here. The concept may be broader than just church leadership and include managing the home (so 1 Tim 3:4–5, 12), but in this context of church ministry it more likely refers to those in charge of the church. Still, in the modern framework this would fit many aspects of church leadership, not just the pastoral staff. At any rate, they are to govern diligently,meaning with “zeal” or “eagerness.” Leadershipdemands a willingness to work hard, to give our best effort.
  • 7. Showing mercy.Most agree that this is a general category of caring for people in difficult circumstances, whether it be economic troubles, illness, old age, depression or any other misfortune. This is very close to contributing to the needs of others,though that probably implies financial aid while this is helping others in any way. Those “able to help others” (1 Cor 12:28) should do it cheerfully,a term used in 2 Corinthians 9:7 in the phrase “cheerful giver.” In short, those who help the needy must never do so in a grudging or gloomy manner but must feel the joy of the Lord in their hearts, recognizing the great privilege of helping others. Cranfield (1979:627) says it well—this comes “naturally to one who knows the secret that in those needy and suffering people whom he is called to tend the Lord is himself present (cf. Mt 25:31ff), for he will recognize in them Christ’s gracious gift to him and to the congregation … of an opportunity to love and thank Him who can never be loved and thanked enough.”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2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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