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팀 켈러, 두란노)
Counterfeit GODS(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저자는 본문 속에서 우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22)

우리는 실재로 개인의 우상(사랑과 가정, 돈, 권력 성취, 타인의 인정, 건강, 몸매 등), 문화적 우상(군사력, 기술 발전, 경제 번영)등이 있고 전통 사회의 우상에는 가정, 노력, 의무, 도덕적 가치가 있는 반면 서구 문화의 우상은 개인의 자유, 자아 발견, 개인적 풍요, 성취 등이 있다. 또한 지적 우상도 있는데 흔히 이를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이 이러한 우상들을 사랑하고, 우상을 믿고, 우상에 순종한다고 묘사한다. 
프롤로그. 우상,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 
1장. 내가 만든 신, 평생 소원 : 오래 간절히 바랄수록 우상이 되기 쉽다. 
  • 창 12:1, 22:2 : 아브라함과 독자 이삭
2장. 내가 만든 신, 사랑 : 사랑에 속고 속다 환멸에 찬 노예가 되었다. 
  • 창 29:16-20 : 야곱의 우상, 라헬
3장. 내가 만든 신, 돈 : 풍족한 소유와 소비로도 영혼의 헐벗음은 면치 못한다. 
  • 눅 19:1-10 : 삭개오의 구원 / 표면적 우상과 근원적 우상(115)
4장. 내가 만든 신, 성취 : 그 어떤 성공신화도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 왕하 5:1-13 : 군대 장관 나아만
5장. 내가 만든 신, 권력 : 권력의지는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 단 2:1-3, 31-35 : 느부갓네살
6장. 가면 쓴 숨은 신들, 문화와 종교 : 은혜 없는 복음은 ‘가짜 하나님’을 만든다.
  • 욘 2:1-2, 4, 8-10 : 요나의 우상
7장. 제자리를 찾아서 : 전인격이 예수 복음을 통과해야 한다. 
  • 창 32:24-31 : 야곱의 축복
에필로그. 가짜들에게 결별을 선언하다. : ‘참 하나님’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계속 대상만 바뀔 뿐이다. 

복음은 감정이나 의지에 직접 호소하지 않고 이렇게 묻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사실상 당신의 진짜 구원과 구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에 의지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답이 무엇이든 그것은 당신이 만든 가짜 신이며, 당신의 삶이 변화되려면 그 우상을 파악해 배격해야 한다.(254)

팀 켈러는 이시대의 대표적인 설교가이다. 그는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자리를 훔치는 이시대의 우상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탁월하게 현대와 성경의 시대를 넘나들면서 우리에게 하나님 보다 더 우선 순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우상이 될 수 있으며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상이 없어진 그 자리를 복음이, 하나님이 자리하셔야만 된다는 사실을 힘주어 외치고 있다. 


728x90
21 For although they knew God, they did not honor him as God or give thanks to him, but they obecame futile in their thinking, and their foolish hearts were darkened. 22 pClaiming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23 and qexchanged the glory of rthe immortal God for images resembling mortal man and birds and animals and creeping things.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Ro 1:21–23.

이 장의 이후 내용들은 대부분 부정과거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부정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로 지금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 과거시제와는 달리 시간이 특정되지 않아서 헬라어에서는 이것이 문맥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행동을 의미할때 사용된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하나님을 알면서도 우상을 섬기는 이 행동은 과거에 이루어져서 끝난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행동인 것이다.
- Throughout the remainder of this chapter, most of the verbs are in the aorist tense, but the aorist does not necessarily indicate past time, and a past tense in English may imply that the action described has ceased. The force of the Greek aorist in this context is to indicate that these actions are typical of what men have done at all times throughout history; for the English readers the present tense is more natural in expressing such events. This is why throughout this passage the TEV uses the present tense, rather than the past tense, as most translations do.

Barclay Moon Newman and Eugene Albert Nida, A Handbook 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73), 24.

21절) 본문에서 하나님을 알다라고 말할때 이 앎은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지식이라기 보다는 그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아는, 인지하는 앎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앎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나아가야만 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앎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또한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의 생각이 공허하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믿는자나 믿지 않는자나 모두에게 해와 비를 내리신다. 이에 마땅한 반응은 바로 그 분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그분의 빛을 거절함의 필연적인 결과는 바로 어둠을 향하는 것이다. 죄는 필연적으로 인간존재를 어둠으로 이끈다.
- In reality, the heart in Scripture refers to the mental processes (see Osborne 1984:55–70), so this is clarifying the futility of the mind further. First their hearts and minds are foolish, a term meaning devoid of understanding (cf. Mk 7:18; Rom 1:31, 10:19). Second, they are darkened, meaning they have deliberately rejected the light of God.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49.

22절) 스스로 지혜 있다라고 여기는 이 태도가 바로 원죄의 시작이다.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기 위해서,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는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죽음으로, 어둠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23절) 우상은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바꾸어 다른 대상에게 바치는 것을 말한다.
썩지 않는,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대상(사람, 새, 짐승, 기어다니는 동물), 우상으로 대체한 것이다. 본문에서 동물을 세종류로 구분한다. 날아다니는 새와 네발로 기어다니는 것들과 기어다니는(파충류)로 나눈 것이다.

- Although God is “immortal” (aphtharton), humans are only “mortal” (phtharton). To exchange the one who exists outside of creation, not subject to its inevitable demise, for that which at the very moment is caught in the process of decay indicates the abysmal ignorance of fallen humans. In Deut 4:16–18 God prohibited the Israelites from making images shaped like a man, any animal on earth, or any creature that moved along the ground. Paul used these same categories to describe the flight of sinners away from the knowledge of God. This decline from idols shaped like humans, to images of beasts, and even to creeping things shows that a debased mind gravitates to the lowest possible level.20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80.

- Exchange stems from the Greek word for another and means to substitute one thing for another. Here they are substituting idols for the glory of the immortal God. There is an allusion here to Psalm 106:20 and Jeremiah 2:11, though in both places it is Israel’s glory that is exchanged for worthless idols. Here it is the divine glory, a term often used of the Shekinah or glorious presence of God in his sanctuary (Ex 40:34–35; 1 Kings 8:10–11; 2 Chron 7:1; Ps 26:8). Nearly half the New Testament occurrences are in Paul’s writings, with sixteen in Romans alone. It connotes the splendor, majesty and honor due God alone by his earthly creatures. God’s creation has manifested the glory of his deity, giving the world the knowledge (1:20) that he is indeed immortal God. But they have exchanged that knowledge for the foolishness of finite idols.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49–50.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진 것이다. 결국 여기서의 앎이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우리에게는 좀더 특별한 앎이 필요한 것이다.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는 앎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적인, 경험적인 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This passage explains why (for) the unsaved are without excuse (v. 20). God has indeed revealed himself in nature, but human minds have been darkened by sin. They knew God, but the question is, how much knowledge did they have? This is hardly the biblical sense of a knowledge of God that leads to belief and surrender to him (1 Cor 1:21; Gal 4:9; Phil 3:7–10; 1 Jn 4:7–8). Rather, they only knew what nature revealed, namely, his power and deity (1:20). But this knowledge led neither to glorifying him as God nor to giving thanks to him. Neither worship nor gratitude resulted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48–49.

하나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은  우리가 바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형상화 하는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데 까지 나아가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그 앎이 어떤 앎인가? 온전한 앎으로 마땅히 그분께 돌려야할 합당한 영광을,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도리어 생각에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앎에 대한 바른 반응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할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