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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Jacob went on his journey and came to kthe land of the people of the east. As he looked, he saw a well in the field, and behold, three flocks of sheep lying beside it, for out of that well the flocks were watered. The stone on the well’s mouth was large, and when all the flocks were gathered there, the shepherds would roll the stone from the mouth of the well and water the sheep, and put the stone back in its place over the mouth of the well.

Jacob said to them, “My brothers, where do you come from?” They said, l“We are from Haran.” He said to them, “Do you know Laban the son of Nahor?” They said, “We know him.” He said to them, “Is it well with him?” They said, “It is well; and see, Rachel his daughter is coming with the sheep!” He said, “Behold, it is still high day; it is not time for the livestock to be gathered together. Water the sheep and go, pasture them.” But they said, “We cannot until all the flocks are gathered together and the stone is rolled from the mouth of the well; then we water the sheep.”

While he was still speaking with them, mRachel came with her father’s sheep, for she was a shepherdess. 10 Now as soon as Jacob saw Rachel the daughter of Laban his mother’s brother, and the sheep of Laban his mother’s brother, Jacob came near and rolled the stone from the well’s mouth and watered the flock of Laban his mother’s brother. 11 Then Jacob kissed Rachel and wept aloud. 12 And Jacob told Rachel that he was nher father’s kinsman, and that he was Rebekah’s son, oand she ran and told her father.

13 As soon as Laban heard the news about Jacob, his sister’s son, ohe ran to meet him and embraced him and kissed him and brought him to his house. Jacob told Laban all these things, 14 and Laban said to him, p“Surely you are my bone and my flesh!” And he stayed with him a month.

k Num. 23:7; Judg. 6:3

l ch. 27:43

m Ex. 2:16, 17

n ch. 13:8; 14:14, 16

o [ch. 24:28, 29]

o [See ver. 12 above]

p ch. 2:23; 37:27; Judg. 9:2; 2 Sam. 5:1; 19:12, 13; 1 Chr. 11: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9:1–14.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29:1–14.

 

 

 

1절) 야곱이 길을 떠나서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 

원래 야곱의 목적지는 밧단아람, 하란이었다. 이는 메소포다미아 북서쪽에 위치한 곳인데 본문에서는 동방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동방 사람의 땅은 요단강 동편 지역, 시리아, 북 아라비아 등 가나안 지역 동쪽을 총괄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또한 창세기에서 동쪽은 흔히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떠나 추방된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3:23-24, 4:16, 25:6). 이 언급은 하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우물은 배우자를 찾는 장소로 흔히 사용되었다. 이삭, 야곱, 모세가 우물가에서 아내를 찾았다. 앞서 아브라함의 종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리브가를 만났다면(24장) 본문에서 야곱의 기도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리브가는 스스로 종의 낙타에게 물을 주었다면 본문에서는 야곱이 라반의 양떼에 물을 주는 것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특별함을 보여준다. 또한 앞서 아브라함의 종이 낙타 10마리에 많은 선물을 가지고 이 마을을 방문했다면 지금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해서 도망자의 신세로 이곳을 찾았다. 

 

That the home of Nahor may be described as among the Easterners shows that benê qeḏem (lit., “sons of the East”) may refer to Arameans along the northern Euphrates. In other places in Scripture (Isa. 11:14) the same term designates Israel’s enemies on the east, or south and southeast, as opposed to their enemies on the west and southwest, i.e., the Philistines. In Judg. 6:3, 33; 7:12 the expression is a summarizing appositive for the Midianites and the Amalekites (not a distinct third group). In Ezek. 25:4, 10 the “sons of the East” represent a desert group that will overrun Ammon and Moab. Cf. also 1 K. 5:10 (Eng. 4:30); Job 1:3; Jer. 49:28. More than any other book in the OT, Genesis emphasizes the east (see 3:24; 4:16; 10:30; 11:2; 13:11; 25:6) as a direction of some significance. Movement to the east in Genesis is in the context of judgment (4:16) or vanity (11:2; 13:11) or alienation (25:6). The same is true with Jacob. The journey to the east is filled with heartaches and is far from ideal. It is not until Jacob journeys to the west (i.e., his return to Canaan) that peace comes. The reference to “the East” is thus a general one and is flexible. Haran is obviously much more north than east of Canaan, but it is still east of the Euphrates.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52.

 

2-10절) 야곱이 도착한 곳은 우물이었다. 이 우물에 양 세떼가 있었는데 이 우물은 입구가 큰 돌로 덮여 있었다. 모든 양떼가 모이면 목자들이 우물의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곤 했다. 야곱이 목자들에게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는지를 물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하란으로부터 왔으며 라반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야곱은 라반이 평안하냐(샬롬)라고 묻자 평안하다고 답하자 그때 라헬이 양을 몰고 왔다. 

이에 야곱이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오는 것을 보고 우물의 돌을 옮기고 라반 양떼에게 물을 먹였다. 

 

우물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목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우물의 입구를 돌로 막은 것은 물이 오염되거나 짐승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며, 혼자 우물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명이 옮길 정도의 돌을 설치한 것이다. 

 

4-6절은 세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야곱의 질문

목자들의 대답

4절

어디서 왔느냐?

하란에서 왔다.

5절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안다.

6절

그가 평안하냐?

평안하다.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고 있다.

본 구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드러낸다. 앞서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라는 약속의 성취를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샬롬만을 추구하던 야곱이 삼촌의 샬롬을 묻는것도 인상적이다 

These three verses provide illustration of the fulfillment of God’s recent promise to Jacob, “I will be with you” (28:15), for the text should be read as a providential leadership of Jacob in his wanderings. It is no coincidence that he stumbles upon some individuals who know Laban well, anymore than it is coincidence that Ruth happens to glean in the fields of Boaz. Furthermore, the seemingly chance meeting of Jacob and Rachel is not serendipitous.

Is he well? (Heb. hašālôm lô, lit., “Is peace to him?”), the third of Jacob’s three questions. In the previous narrative Jacob was concerned about his own šālôm (28:21). Here his concern is directed toward his uncle’s šālôm. One need not read into the word šālôm all the rich nuances it carries elsewhere in the Bible.11 Jacob’s question to the shepherds about Laban’s šālôm is simply polite inquiry about the state of Laban’s well-being. One may compare it with Gen. 43:26ff., where Joseph inquires about the šālôm of his brothers, then to his brother about their father. In both instances, chs. 29 and 43, A inquires about the šālôm of B from C.12

Unlike Gen. 24, which featured lengthier and more formal dialogue when Abraham’s servant first met Rebekah by the well (24:15ff.), Jacob’s meeting with the shepherds around this well is marked by the quick exchange of short questions and answers: v. 4—first question, first answer; v. 5—second question, second answer; v. 6—third question, third answer. Such a format, according to Alter, is “an appropriate prelude to Jacob’s quick-paced story of vigorously pursued actions, deceptions, and confrontations.”13

11 See W. Brueggemann, Biblical Reflections on Shalom: Living Toward a Vision (Philadelphia: United Church, 1976).

12 For the expression šāʾal lešālôm (“to greet”) cf. Gen. 43:27; Exod. 18:7; Judg. 18:15; 1 Sam. 10:4; 17:22; 25:5; 30:21; 2 Sam. 8:10; 11:7; 1 Chr. 18:10. See D. J. Harris, The Biblical Concept of Peace (Grand Rapids: Baker, 1970), p. 75; H. H. Schmid, Šālôm “Frieden” im Alten Orient und im Alten Testament, Stuttgarter Bibelstudien 51 (Stuttgart: Katholisches Bibelwerk, 1971), pp. 47–48.

13 Alter, Art of Biblical Narrative, p. 55.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53.

 

아브라함의 종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인을 주셨는데 야곱은 지역의 목동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라헬의 정보를 얻는다. 7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온 때는 일반적으로 목동들이 우물을 찾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헬이 우물을 찾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 만남을 이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헬의 이름은 ‘어린 암 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어린 암 양이 양떼를 몰고 왔다. 

우물의 입구를 막은 돌은 여럿이 옮겨야 할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지금 우물 근처의 목자들은 더 목자들이 모일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목자들이 힘이 부족했던지 게을렀던지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멋지게 돌을 옮기고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고향 집에 있던 샌님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힘을 주셨는지, 아니면 라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다. 

10절은 외삼촌 라반을 3번 반복함으로 라헬이 이삭과 리브바가 야곱에게 말한 결혼 상대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11-14절) 야곱이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서 울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러자 라헬이 달려가 그 아버지 라반에게 알리고 조카가 왔다라는 소식을 듣고 라반이 달려와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춤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였다. 야곱이 자기의 일을 라반에게 고하고 라반이 그를 혈육으로 인정하고 야곱과 한달을 함께했다. 

 

입맞춤은 친척들 사이의 일상적인 인사 방법이다. 하지만 본문을 잘 보면 야곱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라헬에게 입맞춤을 한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라헬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먼 거리의 여정을 달려왔다. 형의 복수의 칼날을 피해서, 또한 아버지의 축복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달려온 그의 앞에 라반의 딸이 서 있는 것이다. 오랜 여정의 고달픔과 핏줄에 대한 그리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함이 한꺼번에 그에게 몰려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옛적에 아브라함의 종은 이렇게 약속하신 배우자를 만나자 감사와 찬양을 드렸는데 야곱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라반은 100여년 전에 이미 이 우물에 달려 나온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의 종의 많은 선물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거지꼴로 온 조카를 만났다. 라반이 야곱을 반겨 맞은 것은 야곱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헬이 달려와서 야곱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물의 돌을 옮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지만 조카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라반에게 있지 않았을까? 하여튼 그는 야곱을 혈육으로 맞이하고 그를 자신의 집에 거주하도록 허락한다. 

 

11  Jacob’s kissing of Rachel, followed by his weeping aloud, strikes the modern, Western reader of Scripture as strange. Rachel does not ask why he is crying, nor does he offer her an explanation. But Jacob’s crying may be brought on by the successful termination of his journey. He is now in the right place and he has met the right person. The providential leading of God again becomes obvious. Earlier, the same expression (lit., “lifted up his voice and wept”) was used of Esau (27:38). But Esau’s weeping stems from grief and disappointment, whereas Jacob’s weeping reflects his gratitude. This is one of the rare instances in a biblical narrative of a man kissing a woman. In the OT kissing (as a sign of greeting or blessing) normally involves two men. For a man kissing a woman, see Gen. 31:28 and 32:1 (Eng. 31:55; Laban and his daughters); 1 K. 19:20 (Elisha and his mother); Cant. 1:2 (the beloved and her lover).11

11 In Prov. 7:13 it is reversed. There it is the personified “Dame Folly” who kisses any simple man who wanders into her house.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56.

 

14  Laban’s only recorded words to Jacob are: Indeed, you are my bone and my flesh. This expression is a formula that occurs first in Gen. 2:23 and again in Judg. 9:2; 2 Sam. 5:1 (par. 1 Chr. 11:1); and 2 Sam. 19:13. While each of these passages includes, by this formula, the possibility of blood ties, the larger context would suggest that a reciprocal covenant oath is involved as well. Laban is not only celebrating family connections, but is instituting, albeit in an incipient stage, a bond between nephew and uncle. Of course, Laban will be the head, while Jacob will be the junior partner.13

The sparse dialogue in vv. 1–14 is mostly between Jacob and the shepherds (vv. 4–9a). Jacob and Rachel do not talk to one other in direct discourse, nor do Rachel and Laban, nor does Jacob with Laban. Laban’s own words are minimal (four words in Hebrew).14 But while words are few, enthusiasm is abundant. Rachel ran (Heb. rûṣ) to tell Laban, and Laban ran out (Heb. rûṣ) to meet Jacob.

The concluding note in v. 14 that Jacob stayed with Laban for an entire month does not conflict with later references that he remained twenty years with Laban (31:41).15 V. 14b does not imply that Jacob headed back to Canaan at the end of the month. It simply indicates that at the end of that month Laban proposed that Jacob’s position be regularized by Laban paying Jacob a wage, and that Jacob should not be expected to work for Laban for free just because he is kin.16

13 See D. Daube and R. Yaron, “Jacob’s Reception by Laban,” JSS 1 (1956) 60–61; W. Brueggemann, “Of the Same Flesh and Bone (Gn 2, 23a)” CBQ 32 (1970) 537–38.

14 I cannot agree with Fokkelman’s interpretation (Narrative Art in Genesis, p. 126) that ʾaḵ is, in Laban’s mouth, an expression of disappointment, rather than a particle of emphasis—“you do not bring riches; oh well, yet you are my flesh and blood.” For ʾaḵ as a particle for emphasis, see Andersen, Sentence in Biblical Hebrew, p. 177.

15 As argued by Noth,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pp. 88–89.

16 See R. N. Whybray, The Making of the Pentateuch, JSOTSup 53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1987), p. 19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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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en the servant took ten of his master’s camels and departed, taking all sorts of choice gifts from his master; and he arose and went to wMesopotamia1 to the city of Nahor. 11 And he made the camels kneel down outside the city by the well of water at the time of evening, the time when xwomen go out to draw water. 12 And he said, “O Lord, yGod of my master Abraham, zplease grant me success today and show steadfast love to my master Abraham. 13 Behold, aI am standing by the spring of water, and the daughters of the men of the city are coming out to draw water. 14 Let the young woman to whom I shall say, ‘Please let down your jar that I may drink,’ and who shall say, ‘Drink, and I will water your camels’—let her be the one whom you have appointed for your servant Isaac. bBy this2 I shall know that you have shown steadfast love to my master.”

15 Before he had finished speaking, behold, Rebekah, who was born to Bethuel the son of cMilcah, the wife of Nahor, Abraham’s brother, came out with her water jar on her shoulder. 16 The young woman dwas very attractive in appearance, a maiden3 whom no man had known. She went down to the spring and filled her jar and came up. 17 Then the servant ran to meet her and said, “Please give me a little water to drink from your jar.” 18 She said, “Drink, my lord.” And she quickly let down her jar upon her hand and gave him a drink. 19 When she had finished giving him a drink, she said, “I will draw water for your camels also, until they have finished drinking.” 20 So she quickly emptied her jar into the trough and ran again to the well to draw water, and she drew for all his camels. 21 The man gazed at her in silence to learn whether the Lord had prospered his journey or not.

22 When the camels had finished drinking, the man took a gold ring weighing a half shekel,4 and two bracelets for her arms weighing ten gold shekels, 23 and said, “Please tell me whose daughter you are. Is there room in your father’s house for us to spend the night?” 24 She said to him, e“I am the daughter of Bethuel the son of Milcah, whom she bore to Nahor.” 25 She added, “We have plenty of both straw and fodder, and room to spend the night.” 26 fThe man bowed his head and worshiped the Lord 27 and said, “Blessed be the Lord, gthe God of my master Abraham, who has not forsaken hhis steadfast love and his faithfulness toward my master. As for me, the Lord ihas led me in the way to the house of my master’s kinsmen.”

w Deut. 23:4; Judg. 3:8

1 Hebrew Aram-naharaim

x 1 Sam. 9:11; John 4:7

y ver. 27, 42, 48

z ch. 27:20

a ver. 43

b See ch. 15:8

2 Or By her

c ch. 11:29; 22:23

d ch. 26:7

3 Or a woman of marriageable age

4 A shekel was about 2/5 ounce or 11 grams

e ver. 15; ch. 22:23

f ver. 48, 52; Ex. 4:31

g ver. 12, 42, 48

h ch. 32:10; Ps. 98:3

i ver. 4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4:10–27.

 

 

 

10-11절) 아브라함과 맹세한 그 종이 주인의 낙타 10필에 주인의 모든 좋을 것을 가지고 메소보다미아로 떠나 나홀의 성에 이르렀다. 그곳에 저녁에 도착하여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무릎 꿇렸는데 그 때는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때였다. 

메소보다미아는 히브리어로 ‘아람 나하라임’으로 ‘두 강들의 아람’을 번역한 것이다. 이는 밧단아람의 다른 이름이다. 이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나홀의 성은 아마도 나쿠르로 보이는데 이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고대도시로 보인다. 나홀은 데라의 아들로 아브라함의 동생의 이름이다. 이처럼 동일한 이름이 지명과 인명으로 사용되는 것은 당시 흔한 일이었다. 당시 종이 낙타를 10마리나 끌고 길을 떠났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대단한 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종은 나홀 성의 우물가에 도착했다. 구약에서 우물가에서 혼사가 이루어졌다. 이삭, 야곱(창 29:1-14), 모세(출 2:15-21) 모두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통해서 배우자를 맞이했다. 

See note on 12:16. Mesopotamia (lit., “between the rivers”) was the Greek title for the entire region between the Euphrates and Tigris Rivers. Here “Mesopotamia” is a translation for the Hebrew expression ’Aram naharayim, meaning “Aram of the two rivers,” an expression that denotes more precisely only the northwestern part of Mesopotamia. The city of Nahor, probably to be identified with Nakhur (which is mentioned in ancient texts that were recovered from Mari on the Euphrates), was located near Haran in northern Mesopotamia (see note on 11:31). “Nahor” is also the name of Terah’s father (11:25) and Abraham’s brother (see 11:26–27; 22:20). The use of the same name for both a city and a person is not unusual; settlements are sometimes named after people, and people are sometimes named after places.

lit. literally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90.

 

12-14절) 이제 나홀의 성에 도착한 종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그 기도의 내용은 오늘 나로 하여금 이삭의 아내될 여인을 순조롭게 만나게 하여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그는 좀더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그 기도의 내용은 성 중 사람들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에 자신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물을 청하면 그 소녀의 대답이 '물을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리라’라고 대답하면  바로 이 소녀가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로 알겠고 이로 말미암아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 베푸신 것을 알겠다라고 말한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종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주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는 이 임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구한다. 단지 이렇게만 구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삭의 아내될 여인이 매우 관대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돕는 선한 성품을 가진 이를 찾게해달라고 마실 물을 요청할 때 낙타까지도 마시우게 하는 소녀를 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구체적인 요청을 응답하시는 것이 바로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라고 믿고 구하고 있다. 사람이 마실 물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10마리의 낙타가 배부르게 마실만큼의 물을 공급하는 것은 엄청난 양인 것이다. 낙타 한 마리가 한꺼번에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 거의 100리터에 달한다고 하니 10마리의 낙타에게 충분한 물을 먹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우물울을 길어서 날라야 했을 것이다. 이는 리브가의 심성과 체력을 함께 시험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종이 요청한 방법 그대로 역사하신다.(기드온의 양털, 삿 6:36-40)

 

종은 지금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구하면서 ‘오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래의 불확실한 기도가 아니라 바로 오늘 하나님의 헤세드가 자신에게 임하기를 기도했고 이는 15절에 바로 이루어졌다ㅓ. 

 

15-20절) 그 종의 기도가 마치기도 전에(사 65:24) 리브가가 나타났다. 앞서 7절에서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라는 예언적인 말씀이 실현된 것이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으로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손녀에 해당한다. 이처럼 저자는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친척이라는 정보를 넌지시 흘려주고 있다. 그 소녀는 보기에 매우 아름답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처녀였다. 리브가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서 올라올 때 종이 달려가서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해달라라고 요청한다. 자신이 애써서 길은 물을 달라고 하는 요청이 달갑지 않게 여겨질만도 한데 리브가는 기쁘게 자신의 물동이를 내려놓으면서 마음껏 마시라고 허락하다. 그리고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겠다라고 말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우물에 달려가 물을 길어 낙타들도 배불리 마시우게 하였다. 

 

낯선 사람이 물을 달라고 하는 요구에 리브가는 기꺼이 응답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요청하지도 않은 일,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것을 자발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물을 긷는 일은 매우 힘겨운 일이어서 더운 낮의 햇볕을 피하여 저녁때에 했었는데 지금 이 일을 위해서 몇번이나 더 물을 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앞서 종이 기도한 것이 그대로 응답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5절의 말씀처럼 그 종의 기도가 마치기도 전에  응답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종이 리브가에게 ‘달려간’ 후 리브가가 ‘달리고’(20, 28절),  라반이 ‘달린다’(29). 훗날 야곱이 라반을 찾았을 때에도 라헬이 달리고 라반도 달려 나와 그를 맞이한다(29:12, 13). 어떤 이유 때문이든 객을 대접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은 넌지시 리브가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제시한다. 먼저 그녀는 브두엘의 딸(24)이었고 외모가 심히 아리땁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처녀였으며 가족의 물을 길어올만큼 건강하고 부지런했다.(16) 그녀는 나그네에게 관대했으며(18) 동물에 대해서도 친절을 베풀었다.(19) 뿐만 아니라 객을 대접하는것에도 마음이 관대했다.(25) 16절에서 리브가를 향해서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처녀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처녀라는 단어는 베툴라’로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않은 처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Rebekah is not only physically attractive; she is a virgin (beṯûlá) as well. Later, when the servant is talking to Laban, he does not use beṯûlá but ʿalmá (v. 43), suggesting an interchangeability between these two Hebrew words.30 It would be more appropriate for the narrator to refer to Rebekah as a beṯûlá, but for the servant himself to refer to her as an ʿalmá, a “maiden, young woman,” when talking about her to her brother Laban.

Scholars debate whether beṯûlá should be translated as “virgin” or as something else, say, “a girl of marriageable age.”31 One argument against taking beṯûlá as virgo intacta is that such an understanding makes the following expression (No man had known her) redundant. But this is not necessarily the case, for the Hebrew Bible provides other instances of redundant or idem per idem constructions. Thus Job 24:21 refers to “the sterile female who does not bear children.” One would think that “the sterile female” would be sufficient. Of course sterile women do not bear children. Cf. also Isa. 54:1, “Sing, barren one, who did not bear.” Or 2 Sam. 14:5, “I am a widow and my husband is dead.”32

A clearer indication that beṯûlá does not necessarily mean “virgin,” as we use that word today, comes from verses like Joel 1:8, in which a beṯûlá mourns “the husband of her youth.” Looking again then at the two phrases in v. 16, I suggest that beṯûlá designates Rebekah as a marriageable woman. The following sentence, No man had known her, specifies her premarital virginity.

30 G. W. Savran (Telling and Retelling, p. 34) calls the shift from naʿa in v. 14 to ʿalmâ in v. 43 (the quotation of v. 14) simply a stylistic substitution.

31 For beṯûlâ meaning “virgin” cf. F. Zimmermann, “Some Textual Studies in Genesis,” JBL 73 (1954) 98 n. 4. For other definitions cf. C. H. Gordon, “The Patriarchal Age,” JBR 21 (1953) 240–41; C. Isbell, “Does the Gospel of Matthew Proclaim Mary’s Virginity?” BAR 3/2 (1977) 18–19, 52; G. J. Wenham, “Betûlāh: ‘a girl of marriageable age,’ ” VT 22 (1972) 326–48.

32 I take these references from M. Pope, Job, AB, 3rd ed. (Garden City, NY: Doubleday, 1973), pp. 175–76.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46–147.

 

21-27절) 그 종은 리브가의 행동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과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기도한대로 자신의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지, 자신에게 평탄한 길을 허락하시는지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낙타가 마시기를 마치자 종이 반세겔(5.5g) 무게의 금 반지(코걸이) 한개와 열 세겔(110g)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리브가에게 주며 네가 누구의 딸이냐라고 묻는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이 먼 땅에 아브라함의 인척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의 집에 머물 곳이 있는지도 함께 물었다. 그러자 리브가는 자신이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부엘의 딸이며 자신의 집에는 짚과 사료가 풍족하며 유숙할 곳이 만히 있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듣자 그 종은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신실하게 응답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다. 이는 자신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이 그치지 않음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하사 아브라함의 동생의 집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Does the servant offer his doxology quietly or aloud? In favor of the latter is that in his doxology the servant does not make any reference to the girl or to the purpose of this mission. It is all cloaked in generality. He might have prayed: “Blessed be Yahweh … who has guided me to the woman who is to become Isaac’s bride.” The only information Rebekah might have gained from the prayer, if she overheard it at all, is that the servant’s master and the girl’s grandfather are brothers, and that this stranger affirms the kindness and loyalty of his God to the one who dispatched the servant on his mission. This is the thrust of his praise, that Yahweh has demonstrated his sure loyalty to Abraham. Finding the right bride-to-be for Isaac is only instrumental to this larger concern.37 In retelling this incident later (v. 48), the servant emphasizes more the purpose of his journey—“to take my master’s brother’s daughter for his son.” A more convincing argument that the servant’s words are spoken aloud is that an examination of other instances of the formula “blessed be Yahweh who …” (e.g., Exod. 18:10; Ruth 4:14; 1 Sam. 25:32, 39; 2 Sam. 18:28; 1 K. 1:48; 10:9 [= 2 Chr. 9:8]; 2 Chr. 2:11; Zech. 11:5) shows that it is used most frequently in conversation between persons and may in fact be uttered primarily for the benefit of the hearer.38

37 See K. D. Sakenfeld, Faithfulness in Action: Loyalty in Biblical Perspective, OBT (Philadelphia: Fortress, 1985), p. 91.

38 See W. S. Towner, “ ‘Blessed be Yahweh’ and ‘Blessed Art Thou, Yahweh’: The Modulation of a Biblical Formula,” CBQ 30 (1968) 386–99, esp. pp. 388–89.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49.

 

종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이 과정에서 종은 리브가의 출현과 그녀의 행동과 대답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할 수 밖에 없었다. 700km가 넘는 거리를 와서 한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헤세드를 너무나도 강력하게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을 향한 헤세드(충성된 사랑)와 에미트(성실)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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