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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시대의 고대 근동

스바냐는 유다왕 요시야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로 당시는 앗수르의 힘이 쇠하고 애굽과 유다, 바벨론이 자치권을 되찾는 시기였다. 이 시대 직후에 앗수르를 대신해서 이제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주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소외된 자를 톨보지 않는 사람은 지속적인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그들이 온전하지 못할 것은 물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주의 백성에게도 여호와의 날은 빛의 날이 아니라 어둠의 날이 될 수 있으며, 위로의 날이 아니라 정좌와 심판의 날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삶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잘 순종하며 살았느냐에 의해서 위로의 날 혹은 심판의 날이 결정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여호와의 날이 인류의 종말에 최종적으로 임하지만, 그 이전에 수많은 여호와 날이 부분적으로 혹은 모형으로 우리의 삶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의 날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이 세%에서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류의 종말을 당신의 계획대로 이꿀어 나가실 여호와를 신뢰하면 여호와의 날에 주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이해되지 않는부분이 있다하더라도믿고 기다려야 한다. 불의와 악인들의 만행으로 얼룩진 현실은 성도들에게 지치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스바냐서는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는 날과 함께 주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하시는 날을 노래함으로써 주의 백성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현실에 임할 것을 권고한다.(엑스포지멘터리 433)

 

1. 저자

스바냐서의 저자는 ‘스바냐’이다. 이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숨기시다, 귀하게 여기시다, 보호하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기에 보호하기 위하여 숨기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의 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이 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를 숨기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본문 1:1은 스바냐에 대해서 언급한다. 

스바냐 1:1

1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본문에서 선지자는 자신을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선지자가 자신의 집안 배경을 4대까지 상세하게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이는 4대째에 히스기야 왕이 자신의 조상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히스기야를 왕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이미 청중들이 선지자가 왕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짧은 서신서 내용속에 스바냐는 왕의 삶이 어떤지 알았고(1:8), 상류층, 지도층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선포한다(1:8-9; 3:3-4). 

스바냐는 왕족 선지자로 어린 요시야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왕으로 하여금 전심으로 여호와를 따르게 했을 것이다. 또한 스바냐는 미가,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을 선포한 이후 70년만에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을 대상으로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였다. 

 

2. 저작 연대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은 신하들의 반역에 죽임을 당하고 그 국민이 아몬왕을 반역한 이들을 죽이고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는데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8세였다.(왕하 21:19-22:2)

남유다에 이러한 반역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심각한 우상숭배와 이방인의 풍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므낫세와 아몬이 적극적으로 앗수르의 풍습을 좇아 우상을 숭배했다. 요시야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책의 말씀대로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약소국의 지배층이 강대국의 풍습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뿌리내린 이방 종교와 풍습을 타파하는 것은 자칫 종주국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경건한 이들(스바냐)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앗수르가 점차 그 지배력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앗수르의 속국으로 있던 애굽이 655년 조공 바치기를 거부했고 이를 지켜보던 유다도 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앗수르는 앗수르바니발이 627년에 죽은후 순식간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바벨론은 625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메데군과 합세하여 앗수르 제국의 동쪽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순식간에 패권은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앗수르의 공백을 바벨론이 순식간에 채워버리게 되었다. 

The prophecy takes place during the reign of Josiah (640–609 b.c.), a significant Judean king (2 Kings 21:26–23:20; 2 Chron. 33:25–35:27).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had already been exiled, in 722 b.c., so “Israel” (Zeph. 2:9; 3:13–15) does not refer to it. Rather, these references speak of the remainder of the nation of Israel: little Judah and its capital, Jerusalem.

Josiah was a reforming king, trying to reestablish acceptable worship practices that had fallen out of use since the time of his great-grandfather Hezekiah (2 Kings 21:1–26). Some suggest that the prophecy comes from the beginning of Josiah’s reign, since the people are still engaging in condemned pagan practices (Zeph. 1:8–9). This is not compelling evidence, however, since even after a religious reform, not all lives are changed. This is clear from the other prophets preaching during this same time (e.g., Jeremiah, Nahum, and Habakkuk), indicating that no matter how clear the call to repentance, there were always those who refused to respond and who need to hear the prophetic word afresh.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29.

 

3. 주제 

‘여호와의 날, the day of the LORD’(1:7)이다. 이 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을,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복을 가져다준다. 

 

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며 1) 하나님의 진노 선포, 2) 세상에 임할 파괴 선언, 3) 다가오는 회복에 대한 신탁으로 이루어진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두 가지 차원에서 말씀을 선포한다. 첫째,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자신의 시대에 임박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1:7, 14). 이 두려운 날이 임할 때 멸망할 나라로 유다,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아시리아 등을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런데 이날이 다름 아닌 바빌론의 가나안 침략과 근동지역의 평정으로 성취되었던 것이다(Chisholm). 둘째, 스바냐가 선포하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파괴는 그 규모가 범우주적이며,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의 구원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대를 지나 먼 훗날에 성취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었다. 즉, 선지자가 여호와의 날의 임박함과 이날의 범우주적인 파장을 하나의 통일성 있는 그림으로 묶고 있지만, 실제로는 임박한 일과 먼 훗날에 있을 일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스바냐가 선포하는 여호와의 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기 위하여 범세계적인 심판을 진행하시는가? 무엇보다도 자신의 백성을 포함한 세상 만민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회복되어 여호와께 참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의 날이 주의 백성들에게는 위로의 날이지만, 열방에게는 심판의 날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신선한 도전이 될 것이다. 스바냐는 그날이 오면 여호와의 심판이 열방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도 임할 것이며, 회복 역시 이스라엘에게만 임히는 것이 아니라 온 열방에게 임할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엑스포지멘터리 442)

 

4. 목적, 계기, 배경

한 세대나 세대 전에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의 멸망과 국외 추방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민족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의무로 되돌아오기를 거부한다. 경건한 요시야의 통치는 이러한 변화를 이룰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하며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해 유다 앞에, 그리고 실로 다른 모든 나라 앞에 놓여 있는 결정을,  결정의 결과와 더불어 분명히 제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유다가 이미 죄악에 물든 것이 드러났으므로 유다에 대한 형벌을 요구하신다. 만일 유다가 회개하고 악을 버리면 ‘혹시’ 하나님이 용서하실지도 모른다 (2:3) .

책은 여러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했다. “블레셋"(2 :4~7) 은 가나안 정복 대 이후로 같은 땅을 놓고 이스라엘과 경쟁해 반면(예컨대 13:17; 13:2) 이스라엘 백성의 먼 친척(창 19:36~38) 인 “모압”과 “암몬”(습 2:8~11) 은 가나안 정복 이전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땅을 통과하는 것에 반대했다(민 2~24장) . “구스”(습 2: 12) 는 아마도 애굽의 25( 에티오피아) 왕조를 가리킬 것이며(사 18장을 보라), “앗수르"(습 2:13~15) 이 예언의 시대에 유다를 지배하던 외국 세력이다. 놀랍게도 경고를 받는 라들 마지막 나라는 하나님의 또 다른 원수인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상징된다 (3:1~7). 이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친백성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면전에 제시된다.

 

5. 핵심 주제

1) 하나님은 온 땅(1: 2~3, 17~18, 3:8) 과 유다(1: 4~16, 3:1~7) 와 유다의 이웃 이방 나라들 (2:4~8) 을 똑같이 심판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분으로서 자기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되돌아오면 그들에게 복을 주 것이다 (3:11~20)

3) 하나님은 복과 은혜를 모든 민족과 나라에 베풀기를 원하신다 (3:9~10).

4) 심판과 복은 가까운 미래에 선지자와 선지자의 청중에게 발생하며 또한 먼 미래에도 발생한다 (3:8~9, 11, 13~17)

5) 2세대 하나님의 자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는 세대의 믿음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 언약을 인정해야 한다.

 

6. 다른 책들과의 관계와 문예적 특징

스바냐서는 12권의 소선지서중에 9번째 책으로 바벨론의 출현과 유다 정복을 예언하는 하박국서를 뒤따르는 책이다. 또한 주전 586년 바벨론의 손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다윗 왕조의 회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학개서 바로 앞에 등장하는 책이기도 하다. 

스바냐서를 앞서는 하박국서는 바벨론의 출현과 그들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논하고 스바냐서를 뒤따르는 학개서는 바벨론 군에 의하여 폐허가 되어버린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이다. 이점에 근거하여 스바냐서가 묘사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혀간 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바냐서의 여호와의 날은 이처럼 임박한 심판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먼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있다. 

 

스바냐서는 전형적인 예언서지만 독특한 특정들이 함께 뒤섞여 있다. 선지서 내의 일차적인 장르는 심판 신탁이며 구원 신탁은 예상되는 곳, 즉 끝에 등장한다. 스바냐서는 이른바 ‘소선지서’ 가운데 거의 일무이하게 축소판 대선지서’처럼 보인다. 스바냐서에는 심판 신탁(1:1~18), 이방에 대한 신탁(2:4~15), 소망의 신탁 (3:8~20) 있고 (암 2:4 이후의 아모스서와 매우 비슷하게 관심사가 나라 밖에서 나라 안으 바뀌는) 2 :1~3과 3:1~7은 예루살렘에 예리하게 적용되는 ‘전환적’ 신탁의 역할을 한다.

스바냐서의 문예적 의도는 다음과 같다. 즉,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는 것, 다가올 심판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시라는 방편을 사용하는 것, 회개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하나님의 복의 가능성을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에 대한 마지막 신탁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 지위와 재물이 있는 이들을 고발하는 동시에 (1:8~9, 12, 18, 3:3~4) 백성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가난한 이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특히 습 2:3. 둘은 3:11~13에 압축되어 있다).

 

7. 개요

Outline

I. Heading (1:1)

II. Judgment Coming Against Judah (1:2–6)

III. The Day of the Lord (1:7–3:20)

    A. Day of sacrifice and punishment (1:7–9)

    B. The coming wrath (1:10–18)

        1. Against God’s people (1:10–16)

        2. Against all humanity (1:17–18)

   C. Repentance is still possible (2:1–3)

   D. Nations warned (2:4–3:8)

        1. Philistines (2:4–7)

        2. Moab and Ammon (2:8–11)

        3. Cush (2:12)

        4. Assyria (2:13–15)

        5. Jerusalem (3:1–7)

        6. Summary (3:8)

    E. Anticipation of hope (3:9–20)

        1. Conversion of the nations (3:9–10)

        2. Judah’s return (3:11–13)

        3. Joyful song (3:14–17)

        4. God’s promised restoration (3:18–2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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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와 제목

일반적으로 다른 선지서의 경우 그의 신분이 그의 아버지나 가문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욜 1:1), 아밋대의 아들 요나(욘 1:1) 하지만 미가서의 경우에는 장소를 통해서, ‘모레셋 사람 미가’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족보가 아니라 출신지와 관련해서 자신을 밝히는 선지자로는 미가 외에 아모스와 나훔이 있다. 이 세 선지자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사역을 한 선지자들이라는 것이다. 아모스는 드고아를 떠나 북 왕국으로 갔으며, 나훔은 아시리아의 니느웨를 찾아가 말씀을 선포했고 미가는 고향 모레셋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다. 모레셋은 예루살렘 남서쪽 35km에 떨어진 낮은 지역이다. 미가는 명시적으로 선지자라고 일컬어지지 않지만 그의 능력의 원천은 분명히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미 3:8, 벧후 1:20-21)

미가라는 이름은 ‘누가 주와 같은가?’라는 질문으로 번역될 수 있다(7:18).

미가 7:18 (NKRV)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이런 질문들은 여호와의 비할 데 없는 성품과 행동을 강조한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사역했던 미가와 이시야의 메시지를 비교해보면 한 가지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이 었다. 이사야는 사회 윤리뿐만 아니라 여호와 종교를 부패시키는 배교행위, 정권의 외교정책, 왕족들의 횡포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만, 미가는 오직 한 가지 주제에 메시지의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지도자들의 물질에 대한 욕심과 이 경건치 못한 욕망이 빚어내는 정의에 대한 무관심만을 부각시킨다. 물론 이시야서에 비해 미가서가 짧은 책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포착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미가의 관심이 그만큼 사회정의에 편중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상류층 출신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그는 왕실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으며 당시 주요 관료들 및 제사장들과도 섞일 수 있었다. 반면에 마기는 시골에 살던 서민 출신이었다(Mason). 그렇다면 이 두 선지자가 동일하게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이사야는 상류층의 관점에서, 미가는 서민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선지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다른 선지자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똑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미기는 리더들의 혹독한 정책이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엑스포지멘터리 134)

 

2. 저작 연대

1:1을 보면 미가는 유다의 왕인 요담(주전 750~735년), 아하스(735-715년), 히스기야(715-687년)가 다스리던 시대에 예언했다. 이 기간은 오세아와 이사야 같은 다른 주전 8세기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기간과 일치한다. 미가는 이처럼 요담의 통치 말기와 아하스의 16년 통치, 히스기야의 초기 통치 기간에 걸쳐서 사역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계산해보면 20-25년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렘 26:18에서 그 땅의 장로들은 미 3:12를 직접 인용했다. 

Micah prophesied between 750 and 686 BC to the leaders of Samaria (the capital of the northern kingdom) and of Jerusalem (the capital of the southern kingdom). The kings of Samaria were pretenders to the throne, lacking prophetic sanction (cf. Hos 8:4), so Micah names only the kings of Jerusalem: Jotham (750–732/31 BC), Ahaz (735–716/15), and Hezekiah (729–687/86). His contemporaries were Hosea in Samaria (Hos 1:1) and Isaiah in Jerusalem (Isa 1:1). In his prophecies Micah names neither the leaders of Israel nor Israel’s enemies, except for “Babylon” (see 4:10 and note) and “Assyria” and the “land of Nimrod” (see 5:6 and note). This lack of historical specificity evokes more elevated sentiments and facilitates a more universal application. Nevertheless, some prophecies can be better understood by creating scenarios for them from Micah’s historical background. Micah predicts the fall of Samaria to Assyria (1:2–7), which happened in 722 BC. His judgment-prophecies reflect social conditions prior to Hezekiah’s reforms about 701 (Jer 26:19). Micah’s naming of “Assyria” and the “land of Nimrod” in 5:6 reflect Micah’s time, when Assyria reigned over Babylonia. His language is preexilic Hebrew. No scientific evidence disputes the claims of the book’s title.

Micah originally addressed Samaria and Jerusalem. His prophecy “Jerusalem will become a heap of rubble” (3:12) led Hezekiah to repent (Jer 26:19). In its canonical form, his prophecy about the Messiah’s birthplace guided the Magi to Bethlehem (5:2; Matt 2:1–11). The book of Micah still speaks. When the Library of Congress in Washington DC was rebuilt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prominent religious leaders, after considering notable quotes from all known religious literature, chose Mic 6:8 as the motto for the alcove of religion. His book comforts the church in sorrow, restrains her from temptation, and nerves her to fidelity in testing.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587.

 

According to the first verse of the book, Micah’s prophetic ministry fell within the reigns of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The relevant background Scriptures covering that period are 2 Kgs 15:32–20:21; 2 Chr 27–32; Isaiah 7; 20; 36–39. The following charts will be helpful in negotiating some of the chronology of Micah’s time. All dates, of course, are b.c.1

Kings of Judah

Jotham Ruled for Uzziah 750–740 Official reign 750–735 Lived three more years 735–732

Ahaz Co-regent with Jotham 744/3–735 Then he ruled 735–715 Sixteen-year reign counted from Jotham’s death 732–715

Hezekiah Co-regent with Ahaz 729–715 Then he ruled 715–686

 

Kings of Israel

Menahem 752–742

Pekahiah 742–740

Pekah Rival rule in Gilead 752–740 Sole reign in Samaria 740–732

Hoshea 732–722

 

Kings of Assyria

Tiglath-pileser III745–727

Shalmaneser V 727–722

Sargon II 721–705

Sennacherib 705–681

1 For historical treatments of the period from the mid-eighth century b.c. to the death of King Hezekiah in 686, see J. Bright, A History of Israel, 3d ed. (Philadelphia: Westminster, 1981), 269–309, E. H. Merrill, Kingdom of Priests: A History of Old Testament Israel (Grand Rapids: Baker, 1987), 391–430, and W. C. Kaiser, Jr., A History of Israel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7), 357–81. For a good archaeological survey of the period from 734 to 586 b.c., see E. Stern, “Israel at the Close of the Period of the Monarchy: An Archaeological Survey,” BA 38 (1975): 26–54. For the most part, I follow the chronology of E. R. Thiele for the reigns of the kings of Israel and Judah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Grand Rapids: Zondervan, 1983]).

2 Tiglath-pileser was also called Pul in 1 Chr 5:26, where the following “and” in the KJV should be rendered “even,” “namely,” or “that is.” Appropriately the Hebrew verb that follows in that verse is singular: “He took [the Israelites] into exile.” We now know that the Babylonians called Tiglath-pileser “Pulu,” which must have been his throne name in Babylon. (Pulu has been shortened to Pul in Hebrew.)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21–22.

 

3. 주제

미가서의 주제는 심판과 용서이다. 여호와는 그들의 허물과 죄로 인해 자신의 백성을 흩으시는 심판자이시면서 동시에 언약적 신실함으로 그들을 모으고 보호하고 용서하시는 목자이자 왕이시다. 

 

4. 목적, 계기와 배경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를 고발하며 앗수르(5:5-6)와 바벨론(4:10)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주전 8세기 초기 앗수르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의 통치시기에 부유한 상류층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상당한 부패를 가져왔다. 아모스가 8세기 초기 북왕국에 만연했던 경제적, 법적 불의를 정죄했던 것처럼 미가도 북왕국과 남왕국의 구체적인 죄들을 열거한다. 

1) 우상 숭배(미 1:7, 5:12-14)

2) 재산 압류(2:2, 9)

3) 정치 지도자들(3:1-3, 9-10, 7:3)과 종교 지도자들(3:11) 그리고 선지자들(3:5-7, 11)의 실패

4) 개인적인 제사가 신적 정의를 만족시킨다는 잘못된 믿음(6:6-7)

5) 부패한 사업 관행 및 폭력(6:10-12)

 

이 당시가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기와 겹치는데 매우 복잡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계속되었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기는 신 앗수르 제국이 확장되는 시기였는데

첫째, 아하스는 유다와중에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수리아와 아람의 예루살렘 공격에 맞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도움을 구했다.

둘째,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에게 함락되었을때 포로로 잡혀갔다. 

마지막으로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셰펠라의 여러 성읍과 마을을 점령했지만 결국 701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HISTORICAL BACKGROUND

Assyrian annals give us firsthand knowledge of the Assyrian invasions of Israel at this time. Matching those annals with biblical texts (cf. 2 Kgs 15:29–20:21) this relevant picture emerges:

1. Tiglath-Pileser III (745–727 BC) in 733 took Gilead and much of Galilee and deported the people to Assyria (2 Kgs 15:29).

2. Shalmaneser V (727–722 BC) besieged Samaria for three years and captured it in 722 (2 Kgs 17:5–6).

3. Sargon II (722–705 BC) claims to have captured Samaria, but it was more likely a mopping-up operation. He deported the large property holders, rulers, and religious leaders from Samaria.

4. Sennacherib (705–681 BC) in 701 overran Judah because Hezekiah had joined Babylon and Egypt in a revolt against the Assyrian king (2 Kgs 18–20; Isa 38–39).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587–1588.

 

(1) Purpose

It has been said that one of the purposes of the prophets was to comfort the afflicted and to afflict the comforted. Craigie puts it like this: “Micah has been called the ‘conscience of Israel,’ and certainly the substance of his message was designed to prick the conscience of those who had long since abandoned the integrity of Israel’s faith.”47 Micah appears to have had a threefold purpose: first, to present the nature of God’s complaint against his covenant people (1:2–7; 2:6–11; 3:1–4, 9–12; 6:1–16); second, to proclaim the Lord’s certain punishment of their many sins (3:8); and third, to predict God’s sure salvation to come, centering in the appearance of the Davidic Messianic Deliverer (5:2).

47 P. C. Craigie, The Old Testament: Its Background, Growth, and Content (Nashville: Abingdon, 1986), 19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36.

 

5. 핵심 주제

1)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성품과 그의 백성의 죄는 심판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소송에 대한 선고는 압제자들의 형태와 언약적 불성실에 대해 부과되는 언약적 저주로 주어진다. 

2) 목자이자 왕이신 하나님은 남은자를 모으시고 구원하신다. 새로운 다윗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 구원자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바로 그 지역으로부터 나올 것이다(5:2-5). 

3) 언약적 신실함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와 신실함등 사랑의 우선적 형태의 올바른 표현에 있다. 

4) 하나님은 예배의 핵심이다. 민족들은 더이상 거짓 신들에게 몰려가지 않고 시온으로 몰려와 참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평화롭게 살 것이다.

5)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해방심키는 빛은 죄로 인한 불길한 선고를 극복한다. 용서는 그의 약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한다. 

6)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미래의 그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대한 해석적인 비유들이다.

 

6. 구원사 요약

모든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할 것을 원하신다.(6:8) 이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으로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권하도록 부름받았다. 미가의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붙잡는 것을 거부함으로 타락했으며 이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메시야의 다스림을 통해서 세상을 복주시려는 그의 계획의 일부가 될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7. 문예적 특징들

미가서는 다양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서 전달되 일련의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르는 예언이다. 하지만 미가는 논쟁이나 애가와 같은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는데 두개의 주된 예언 형식은 심판에 대한 예언(2:1-4)과 구원 혹은 구속에 대한 신탁(5:2-5)이다. 심판의 신탁은 풍자의 형식을 따른다. 몇몇의 신탁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메시야적 환상과 재림에 대한 묵시적 환상으로 미래의 황금기를 그리고 있다. 책의 많은 부분은 시적 언어로 표현되어 은유와 직유와 같은 언어유희로 이러한 비유적 표현의 의미를 독자들로 하여금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8. 미가 시대의 중동 지역(주전 740년 경)

미가는 사마리아 함락 직전부터 유다의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수십년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서 예언했다. 미가는 떠오르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에게서 극적으로 구하신 일도 목격했다. 

 

 

미가는 ‘남왕국의 아모스’라고도 불리며 ‘작은 이사야서’라고도 불린다. 그는 남왕국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한다. 미가서는 정의, 평화, 메시야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논하고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취임식때(1977년 1월) 미가서 6:8 말씀위에 선서를 했고 취임연설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다. 

미가가 활동했던 이 시기, 남왕국 유다의 웃시야 왕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는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하던 시대였는데 이러한 경제적 부흥은 이기주의와 우상숭배로 이어졌다. 경제적 부흥은 필연적으로 분배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어 지배층들은 서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앗수르의 잔인성으로 위협을 느낀 북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연합전선을 펼치며 남 왕국 유다왕인 아하스에게도 동맹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아하스는 그들의 요구에 거부했고 이에 이스라엘와 베가와 시리아왕 르신은 733년경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다. 예루살렘이 연합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를 찾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지만 왕은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왕을 믿기로 했다. 믿음이 아니라 외교적인 해결책을 동원했던 것이다. 아하스의 부탁으로 앗수르 왕은 돈을 받고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치게 된다. 앗수르는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를 암살하고 왕이 되자 호세아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인준해주었고 매년 큰 액수의 조공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유다는 앗수르의 지속적인 지배에 시달렸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왕 호세아가 조공을 멈추자 이스라엘을 공격해 성을 함락시키고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다. 

이후 앗수르는 사르곤이 통치하였는데 히스기야는 주변의 이집트와 블레셋과 연합하여 반기를 들었고 사르곤의 서진을 막기위해 성읍들을 요새화하였다. 이때 예루살렘의 실로암 터널을 만들었다. 

다행히 유다는 위기를 모면했는데 이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처럼 미가의 주요 사역이 유다와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였다. 불안한 국제 정세가운데 유다 내부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미가가 활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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