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So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a delight to the eyes, and that the tree was to be desired to make one wise,2 she took of its fruit xand ate, and she also gave some to her husband who was with her, yand he ate. 7 zThen the eyes of both were opened, a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loincloths.
2 Or to give insight
x 1 Tim. 2:14
y ver. 12, 17; Hos. 6:7
z ver. 5
a ch. 2:2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3:6–7.
6절) 뱀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여자가 선악과를 바라보게 되었을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뱀의 유혹이 있기전에는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그것에 대한 갈망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자 선악과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한번 시작된 갈망은 우리를 삼킨다. 결국 여자는 그 열매를 따먹게 되었고 자신과 함께 하던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2장 9절을 보면 동산의 다른 모든 나무들의 열매도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였다. 하지만 뱀은 여자에게 허락되지 않은 열매에 대한 욕망을 부추긴 것이다. 그 나무는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먹음직했다. 그런데 온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기초해야 하는데 이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하나님의 반역의 결과였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아담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있었다. 뱀이 유혹을 했을때 아담이 함께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뱀은 이러한 유혹에 여인이 더욱 약하다는 것을 같파했고, 또한 여인에게 남성이 약한 것을 알았다. 아내의 요구를 아담은 거절하지 못했다. 분명히 그것이 하나님이 금지하신 열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 열매를 먹은 것이고 이것은 2장 15절에서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하나님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본문에 지혜롭게라는 단어는 ‘사칼’로 바라보다, 이해하다, 파악하다라는 의미이다
- 3. The theological use includes the giving of insight by God (1 Chron 22:12; 28:19; Dan 1:17; 9:22; cf. Prov 19:14), whose good Spirit instructs the people (Neh 9:20); so the faithful are to do, given their experience of God’s grace (Ps 32:8). In Gen 3:6, the way humans acquire wisdom becomes the issue, not acknowledging the one who gives wisdom. The people of God are to consider carefully God’s deeds (Ps 64:9 [10]; 106:7; Isa 41:20) and God’s ways (Neh 8:13; Ps 101:2; 119:99), wherein their lives can prosper (1 Kgs 2:3). God’s presence and action in the lives of the obedient can issue in good success (Josh 1:7–8; 1 Sam 18:14, 30), but a lack of success can befall those who do not attend to the Lord (Jer 10:21), who observes the house of the wicked (Prov 21:12). The move to action can be seen in the careful consideration of the poor (Ps 41:1 [2]). Insight is characteristic of the coming Messiah (Jer 23:5; cf. Jer 3:15); God will make the way of the suffering servant prosper (Isa 52:13). The wise will participate in the resurrection (Dan 12:3).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1243.
하와는 돕는 배필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함께 옆에 있어주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인데 옆에 있어서 도와야할 아내가 남편을 타락으로 이끈 것이다. 아담의 이 죄는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모든 죄와 고통, 육적 영적 죽음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먹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 충동은 선악과가 단순히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와의 관심사가 지혜였다는 것은 창세기 3:6과 창세기 2:9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창 2:9 וְט֣וֹב לְמַאֲכָ֑ל 가)נֶחְמָֽד לְמַרְאֶ֖ה 나)וַיַּצְמַ֞ח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כָּל־עֵץ
와야츠마 야웨 엘로힘 민–하아다마 콜–에츠 네흐마드 레말에 베토브 레마아칼 창 3:6 וְנֶחְמָ֤ד הָעֵץ֙ לְהַשְׂכִּ֔יל 다)תַֽאֲוָה־ה֣וּא לָעֵינֵ֗יִם 나)טוֹב֩ הָעֵ֨ץ לְמַאֲכָ֜ל וְכִ֧י 가)כִּ֣י
키 토브 하에츠 레마아칼 베 키 하아와–후 라에이나임 베테흐마드 하에츠 레하스킬
창세기 2:9과 창세기 3:6을 비교해 보면, 선악과는 다른 과일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 먹기에 좋고 나) 보기에(2:9) 또는 눈에(3:6) 탐스러운 과일이었다. 창세기 3:6의 선악과는 창세기 2:9과 다른 독특성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바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라는 점이었다. 이 지혜(레하시킬, להַשְׂכִּ֔יל)는 창세기 3:1에서 뱀을 가장 지혜롭다(아룸, עָרוּם)고 밝혔던 것과 관련 있다. 사탄은 부정적인 지혜로 하나님을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하는 자로 말하였다.23) 하와는 사탄의 말을 믿고 선악과가 엘로힘처럼 지혜롭게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 열매를 따먹는다. 아담과 하와가 벗었다(아루밈, עֲרוּמִּם)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곧 뱀처럼 간교한(아룸, עָרוּם)자신을 깨달은 것일 수 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각한 관계 훼손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이어서 곁에 있던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한다. 학자들 중에는 전치사 임(עִם, 함께)이 장소나 공간적인 개념보다는 관계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담이 유혹의 순간 하와와 함께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뱀이 하와에게 말할 때 한결같이 2인칭 남성 복수를 사용했던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24)
23) 사무엘하 14:17은 천사들도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으로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24) John L. Harris, “An Exposition of Genesis 2:4–11:32,” Southwestern Journal of Theology 44 (2001): 43–4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27–128.
7절) 본절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인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앞서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선악과의 결과가 성적인 수치심의 자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상태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다. 선악과를 따먹기전 아담과 하와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일때는 목욕탕에 가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자라게 되면 2차 성징을 경험하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과가 이들의 2차성징은 촉발한 것일까? 그래서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부끄러움과 죄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 것일까? 선악과는 결국 아담과 하와가 간직했던 순수성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 나무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여 숨게 되었다. 이 나무잎으로 만든 옷은 이후의 가족옷과 비교가 된다.
눈이 밝아져라는 표현은 ‘파카하’로 눈이 열려 무언가를 파악하다. 인식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 4. One of the promissory statements made by the serpent to Eve was: “Your eyes will be opened,” to which he append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Gen 3:5). Whether or not the second part is sequential or explicative to the first is difficult to decide. That is, does the second half of the verse offer a second, distinct promise, or does it expand on and explain the first half of the verse?
In one sense what the serpent promised came true, for verse 7 reads, “Then the eyes of both of them were opened.” However, the remainder of the verse does not go on to say, “and they became like God.” Rather, it states, “and they realized they were naked.” That is hardly what they were bargaining for in having their eyes opened and becoming like God. How different is this couple who had their eyes opened from another couple who also had their eyes opened as they walked from Jerusalem to Emmaus (“then their eyes were opened and they recognized him,” Luke 24:31)!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666.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호세아는 말한다.
(호 6:7, 개정)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언약의 보편적인 구조는 서론-규정-저주의 형식이다. 2장에서는 인간을 창조하고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서 발원한 4개의 강을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규정은 이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것이며 또한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것이었다. 이 규정을 어겼을 경우 정녕 죽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언약을 받았던 아담은 이를 어김으로 저주의 대상자가 되었다.
- 창세기 3:7은 창세기 3:5의 표현을 사용하여 뱀의 말처럼 아담과 하와의 눈이 열렸다고 또는 밝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창세기 3:5에서 뱀이 선과 악을 알게 된다고 했었는데 반해 창세기 3:7에서 아담과 하와는 벗었음을 알게 된다. 벗었음(아롬, עָרוֹם)의 자음과 소리는 사탄의 간교함(아룸, עָרוּם)의 자음과 소리와 비슷하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벗었음과 사탄의 간교함과 연결시키고 있다. 즉 창세기 3:6에서 하와는 선악과가 자신을 지혜롭게 만들어 줄줄 알았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아담과 하와는 긍정적인 차원에서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벗었음을 깨닫는 사탄의 간교함을 얻게 되었다.
벗었음을 깨달음(간교함) → 관계성 왜곡
벗었음을 깨달은 아담과 하와에게 관계성 왜곡 현상이 나타난다. 아담과 하와가 벗은 것을 깨닫고 난 후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실제로 일어난 결과는 창조 때에 하나님이 세운 관계성과 관련된 진실의 왜곡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엘로힘처럼 된다는 것을 알고 사람에게 따먹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면서 뱀이 하나님을 인간에게 진실을 감추고 그 능력과 역할을 제한하려 하는 분으로 묘사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과 관련된 진리를 왜곡했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도 사탄처럼 그 관계성을 왜곡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창세기 2:25는 아담과 하와가 벌거 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벌거벗은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린 아이 같은 순박함도 있겠지만,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하나됨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이들은 벗은 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무화과 나뭇잎 치마로 벗은 몸을 가려 그 수치심을 없애려 할 정도로 관계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26) 그들의 벗음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지적해 준 것이 아니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마치 뱀이 진실을 왜곡했던 것처럼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이 왜곡되어 부부의 관계성과 관련된 진실을 왜곡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됨을 상실했고, 벗었음에 대한 자기 의식과 상대방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숨겨야 했다. 결국 아담은 선악과 따먹은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시킴으로 둘 사이의 나누어짐과 왜곡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26) John H. Hewett, “Genesis 2:4b–3:31; 4:2–16; 9:20–27; 19:30–38,” Review and Expositor 86 (1989): 237–24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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