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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he Lord God took the man k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it and keep it. 16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You may surely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lyou shall not eat, for in the day that you eat4 of it you mshall surely die.”

k ver. 8

l ch. 3:1–3, 11, 17

4 Or when you eat

m Rom. 6:23; James 1:1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2:15–17.

 

 

15절) 앞서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지으셨다. 거대한 왕의 정원인 에덴은 하나님의 성소를 상징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본문에 경작하다라는 단어는 ‘아바드’(5; 3:23; 4:2, 12; 잠 12:11; 28:19)는 돌보다, 섬기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지키다라는 단어는 ‘샤마르’로 보호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명령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주어진 명령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일(노동, work)은 타락 이후의 죄의 결과로 주어진 노역(drudgery)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이 에덴에서 했던 일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이다. 나중에 이 두 히브리어 단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막에서 일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민 3:7-8; 18:7) 인간의 역할은 정원지기 일뿐만 아니라 수호자이다. 제사장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의 일부로서 동산의 신성함을 유지해야 한다. 

The overall picture of Eden presented in the preceding verses suggests that the park-like garden is part of a divine sanctuary. The man is put in the garden to work it and keep it. The term “work” (Hb. ‘abad; cf. v. 5; 3:23; 4:2, 12; Prov. 12:11; 28:19) denotes preparing and tending, and “keep” (Hb. shamar) adds to that idea. Since this command comes before Adam sinned, work did not come as a result of sin, nor is it something to be avoided. Productive work is part of God’s good purpose for man in creation. Later, the same two verbs are used together of the work undertaken by the priests and Levites in the tabernacle (“minister” or “serve” [Hb. ‘abad] and “guard” [Hb. shamar]; e.g., Num. 3:7–8; 18:7). The man’s role is to be not only a gardener but also a guardian. As a priest, he is to maintain the sanctity of the garden as part of a temple complex.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3.

오경에서 동사 ‘아바드’(עָבַד)는 성막에서 ‘섬긴다’는 뜻으로 종종 사용되고 ‘사말’(שָׁמַר)은 성막을 ‘지킨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창세기 2:15의 ‘아바드’(לְעָבְדָ֖הּ)와 ‘사말’(לְשָׁמְרָ֖הּ)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여 아담의 사역은 에덴 동산에서 섬기고 에덴 동산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창세기 2:15의 아담의 역할 중에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사역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이 있다.34)

34) William Dumbrell, “Genesis 2:1–3: Biblical Theology of Creation Covenant,” ERT 25(2001): 225–226. 4QFlorilegium에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에덴 동산을 ‘מקדשׁ אדם’(미크다 쉬아담 temple of Adam)이라고 부른다.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98.

 

‘아바드’라는 단어는 장소가 목적어일때 농사일을 가리키고, 인격적인 대상(하나님, 바알, 애굽)들이 목적이일 때는 성스러운 봉사를 의미한다.(물론 예외가 있다.) 동사 ‘샤마르’는 종교적인 명령들과 의무를 준수할 책임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공간을 수호할 책임과 관련되서 사용된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스러운 공간, 성소를 꾸미고 보호하는 것은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하고 그 지속적인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16-17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명령을 내리신다. 그것은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먹게 되면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를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는 먹지 못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이 선악과는 무엇일까? 1) 성적인 자각, 2) 도덕적인 분별력, 3) 도덕적인 책임, 4) 도덕적인 경험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불순종을 통해서 선과 악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여호와를 경외함을 통해 인간은 지혜를 얻는다. 반면에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의 죄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이라는 표현은 ‘네가 먹게 된다면’의 의미이다. 이렇게 선악과를 먹는 다면 반드시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본문에서의 죽음은 신체적인 죽음인가, 영적인 죽음인가? 아니면 둘 다를 의미하는가? 이후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죽음은 둘 다를 의미한다. 물론 먹자 마자 바로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심판을 받았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가고 나서 즉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 ‘네가’는 단수이다. 이 표현은 바울이 인류의 머리로서 아담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기초를 제공해준다.(고전 15:22; 롬 5:12-19) 하지만 이후 창 3:1-5에서 ‘너희’는 복수이다. 이 단락에서 여자의 말은 하나님의 명령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후손은 모두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다. 

 

타락 이전에 아담은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지켰다. 하지만 타락 이후에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서 에덴 밖의 땅을 경작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에덴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천사들을 통해서 지키게 하셨다.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이 표현은 엄청난 확신이 있을 때 사용된다. 렘 26장에서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성전이 장차 파괴될 결과에 대해서 신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에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회개는 커녕 예레미야를 향한 강한 적개심에 불타서 그에게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26:8)라고 선언한다. 이후 11절에서 8절의 선언이후 예레미야의 죽음이 합당하다라고 말한다. 창 2장 17절을 풀어서 쓰면 “네가 그것을 먹을 때에 너는 사형 선교를 받게 될 것이며, 따라서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죽음은 틀림없는 사실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More important, the verbal combination that describes the penalty (“you will surely die”) needs clarification. The profile of this combination of verb forms (infinitive absolute coupled with finite verb of the same root) using the root “to die” can be established with a good deal of confidence. In Jeremiah 26, the prophet delivers a scathing message to the people of Judah to the effect that the temple will be destroyed (26:4–6). The response of the people and priests is not repentance but antagonism toward Jeremiah as they seize him and pass sentence: “You must die!” (26:8). The explanation is given a few verses later, “This man should be sentenced to death because he has prophesied against this city” (26:11).

Jeremiah 26:8 uses the same phrase as we have in Genesis 2:17, but it is Jeremiah 26:11 that shows us exactly what the people mean by using that phrase in verse 8. When they say, “You will surely die,” they are talking about the eventual outcome of the behavior. The sentence will be passed, the doom will be fixed. This phrase is also used in the historical literature to pass sentence on offenders of various kinds (Gen. 20:7; Num. 26:65; 1 Sam. 14:39, 44; 1 Kings 2:37, 42). The resulting paraphrase of Genesis 2:17 then is: “When you eat of it, you will be sentenced to death and therefore doomed to die.” Consequently, death will be a certainty.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174–175.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그 사람에게 맡기어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당시의 일은 고역이 아니었다. 에덴의 모든 피조물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이를 가꾸고 보호하는 임무였다. 그리고 에덴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유일하게 선악과를 제외하고.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임을 선언하셨다. 이 죽음에 대한 선언은 ‘죽을지도 몰라’라는 가정이 아니라 확신에 찬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사탄은 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심을 품게하고 약화시킴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짓게 만든다. 선악과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자신들이 창조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이 동산을 맡은 자임을 상기시켜주는 도구였다. 그런데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려고하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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