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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시대의 고대 근동

스바냐는 유다왕 요시야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로 당시는 앗수르의 힘이 쇠하고 애굽과 유다, 바벨론이 자치권을 되찾는 시기였다. 이 시대 직후에 앗수르를 대신해서 이제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주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소외된 자를 톨보지 않는 사람은 지속적인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그들이 온전하지 못할 것은 물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주의 백성에게도 여호와의 날은 빛의 날이 아니라 어둠의 날이 될 수 있으며, 위로의 날이 아니라 정좌와 심판의 날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삶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잘 순종하며 살았느냐에 의해서 위로의 날 혹은 심판의 날이 결정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여호와의 날이 인류의 종말에 최종적으로 임하지만, 그 이전에 수많은 여호와 날이 부분적으로 혹은 모형으로 우리의 삶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의 날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이 세%에서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류의 종말을 당신의 계획대로 이꿀어 나가실 여호와를 신뢰하면 여호와의 날에 주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이해되지 않는부분이 있다하더라도믿고 기다려야 한다. 불의와 악인들의 만행으로 얼룩진 현실은 성도들에게 지치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스바냐서는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는 날과 함께 주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하시는 날을 노래함으로써 주의 백성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현실에 임할 것을 권고한다.(엑스포지멘터리 433)

 

1. 저자

스바냐서의 저자는 ‘스바냐’이다. 이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숨기시다, 귀하게 여기시다, 보호하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기에 보호하기 위하여 숨기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의 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이 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를 숨기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본문 1:1은 스바냐에 대해서 언급한다. 

스바냐 1:1

1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본문에서 선지자는 자신을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선지자가 자신의 집안 배경을 4대까지 상세하게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이는 4대째에 히스기야 왕이 자신의 조상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히스기야를 왕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이미 청중들이 선지자가 왕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짧은 서신서 내용속에 스바냐는 왕의 삶이 어떤지 알았고(1:8), 상류층, 지도층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선포한다(1:8-9; 3:3-4). 

스바냐는 왕족 선지자로 어린 요시야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왕으로 하여금 전심으로 여호와를 따르게 했을 것이다. 또한 스바냐는 미가,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을 선포한 이후 70년만에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을 대상으로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였다. 

 

2. 저작 연대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은 신하들의 반역에 죽임을 당하고 그 국민이 아몬왕을 반역한 이들을 죽이고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는데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8세였다.(왕하 21:19-22:2)

남유다에 이러한 반역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심각한 우상숭배와 이방인의 풍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므낫세와 아몬이 적극적으로 앗수르의 풍습을 좇아 우상을 숭배했다. 요시야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책의 말씀대로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약소국의 지배층이 강대국의 풍습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뿌리내린 이방 종교와 풍습을 타파하는 것은 자칫 종주국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경건한 이들(스바냐)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앗수르가 점차 그 지배력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앗수르의 속국으로 있던 애굽이 655년 조공 바치기를 거부했고 이를 지켜보던 유다도 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앗수르는 앗수르바니발이 627년에 죽은후 순식간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바벨론은 625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메데군과 합세하여 앗수르 제국의 동쪽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순식간에 패권은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앗수르의 공백을 바벨론이 순식간에 채워버리게 되었다. 

The prophecy takes place during the reign of Josiah (640–609 b.c.), a significant Judean king (2 Kings 21:26–23:20; 2 Chron. 33:25–35:27).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had already been exiled, in 722 b.c., so “Israel” (Zeph. 2:9; 3:13–15) does not refer to it. Rather, these references speak of the remainder of the nation of Israel: little Judah and its capital, Jerusalem.

Josiah was a reforming king, trying to reestablish acceptable worship practices that had fallen out of use since the time of his great-grandfather Hezekiah (2 Kings 21:1–26). Some suggest that the prophecy comes from the beginning of Josiah’s reign, since the people are still engaging in condemned pagan practices (Zeph. 1:8–9). This is not compelling evidence, however, since even after a religious reform, not all lives are changed. This is clear from the other prophets preaching during this same time (e.g., Jeremiah, Nahum, and Habakkuk), indicating that no matter how clear the call to repentance, there were always those who refused to respond and who need to hear the prophetic word afresh.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29.

 

3. 주제 

‘여호와의 날, the day of the LORD’(1:7)이다. 이 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을,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복을 가져다준다. 

 

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며 1) 하나님의 진노 선포, 2) 세상에 임할 파괴 선언, 3) 다가오는 회복에 대한 신탁으로 이루어진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두 가지 차원에서 말씀을 선포한다. 첫째,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자신의 시대에 임박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1:7, 14). 이 두려운 날이 임할 때 멸망할 나라로 유다,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아시리아 등을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런데 이날이 다름 아닌 바빌론의 가나안 침략과 근동지역의 평정으로 성취되었던 것이다(Chisholm). 둘째, 스바냐가 선포하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파괴는 그 규모가 범우주적이며,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의 구원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대를 지나 먼 훗날에 성취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었다. 즉, 선지자가 여호와의 날의 임박함과 이날의 범우주적인 파장을 하나의 통일성 있는 그림으로 묶고 있지만, 실제로는 임박한 일과 먼 훗날에 있을 일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스바냐가 선포하는 여호와의 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기 위하여 범세계적인 심판을 진행하시는가? 무엇보다도 자신의 백성을 포함한 세상 만민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회복되어 여호와께 참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의 날이 주의 백성들에게는 위로의 날이지만, 열방에게는 심판의 날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신선한 도전이 될 것이다. 스바냐는 그날이 오면 여호와의 심판이 열방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도 임할 것이며, 회복 역시 이스라엘에게만 임히는 것이 아니라 온 열방에게 임할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엑스포지멘터리 442)

 

4. 목적, 계기, 배경

한 세대나 세대 전에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의 멸망과 국외 추방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민족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의무로 되돌아오기를 거부한다. 경건한 요시야의 통치는 이러한 변화를 이룰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하며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해 유다 앞에, 그리고 실로 다른 모든 나라 앞에 놓여 있는 결정을,  결정의 결과와 더불어 분명히 제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유다가 이미 죄악에 물든 것이 드러났으므로 유다에 대한 형벌을 요구하신다. 만일 유다가 회개하고 악을 버리면 ‘혹시’ 하나님이 용서하실지도 모른다 (2:3) .

책은 여러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했다. “블레셋"(2 :4~7) 은 가나안 정복 대 이후로 같은 땅을 놓고 이스라엘과 경쟁해 반면(예컨대 13:17; 13:2) 이스라엘 백성의 먼 친척(창 19:36~38) 인 “모압”과 “암몬”(습 2:8~11) 은 가나안 정복 이전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땅을 통과하는 것에 반대했다(민 2~24장) . “구스”(습 2: 12) 는 아마도 애굽의 25( 에티오피아) 왕조를 가리킬 것이며(사 18장을 보라), “앗수르"(습 2:13~15) 이 예언의 시대에 유다를 지배하던 외국 세력이다. 놀랍게도 경고를 받는 라들 마지막 나라는 하나님의 또 다른 원수인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상징된다 (3:1~7). 이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친백성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면전에 제시된다.

 

5. 핵심 주제

1) 하나님은 온 땅(1: 2~3, 17~18, 3:8) 과 유다(1: 4~16, 3:1~7) 와 유다의 이웃 이방 나라들 (2:4~8) 을 똑같이 심판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분으로서 자기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되돌아오면 그들에게 복을 주 것이다 (3:11~20)

3) 하나님은 복과 은혜를 모든 민족과 나라에 베풀기를 원하신다 (3:9~10).

4) 심판과 복은 가까운 미래에 선지자와 선지자의 청중에게 발생하며 또한 먼 미래에도 발생한다 (3:8~9, 11, 13~17)

5) 2세대 하나님의 자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는 세대의 믿음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 언약을 인정해야 한다.

 

6. 다른 책들과의 관계와 문예적 특징

스바냐서는 12권의 소선지서중에 9번째 책으로 바벨론의 출현과 유다 정복을 예언하는 하박국서를 뒤따르는 책이다. 또한 주전 586년 바벨론의 손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다윗 왕조의 회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학개서 바로 앞에 등장하는 책이기도 하다. 

스바냐서를 앞서는 하박국서는 바벨론의 출현과 그들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논하고 스바냐서를 뒤따르는 학개서는 바벨론 군에 의하여 폐허가 되어버린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이다. 이점에 근거하여 스바냐서가 묘사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혀간 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바냐서의 여호와의 날은 이처럼 임박한 심판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먼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있다. 

 

스바냐서는 전형적인 예언서지만 독특한 특정들이 함께 뒤섞여 있다. 선지서 내의 일차적인 장르는 심판 신탁이며 구원 신탁은 예상되는 곳, 즉 끝에 등장한다. 스바냐서는 이른바 ‘소선지서’ 가운데 거의 일무이하게 축소판 대선지서’처럼 보인다. 스바냐서에는 심판 신탁(1:1~18), 이방에 대한 신탁(2:4~15), 소망의 신탁 (3:8~20) 있고 (암 2:4 이후의 아모스서와 매우 비슷하게 관심사가 나라 밖에서 나라 안으 바뀌는) 2 :1~3과 3:1~7은 예루살렘에 예리하게 적용되는 ‘전환적’ 신탁의 역할을 한다.

스바냐서의 문예적 의도는 다음과 같다. 즉,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는 것, 다가올 심판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시라는 방편을 사용하는 것, 회개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하나님의 복의 가능성을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에 대한 마지막 신탁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 지위와 재물이 있는 이들을 고발하는 동시에 (1:8~9, 12, 18, 3:3~4) 백성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가난한 이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특히 습 2:3. 둘은 3:11~13에 압축되어 있다).

 

7. 개요

Outline

I. Heading (1:1)

II. Judgment Coming Against Judah (1:2–6)

III. The Day of the Lord (1:7–3:20)

    A. Day of sacrifice and punishment (1:7–9)

    B. The coming wrath (1:10–18)

        1. Against God’s people (1:10–16)

        2. Against all humanity (1:17–18)

   C. Repentance is still possible (2:1–3)

   D. Nations warned (2:4–3:8)

        1. Philistines (2:4–7)

        2. Moab and Ammon (2:8–11)

        3. Cush (2:12)

        4. Assyria (2:13–15)

        5. Jerusalem (3:1–7)

        6. Summary (3:8)

    E. Anticipation of hope (3:9–20)

        1. Conversion of the nations (3:9–10)

        2. Judah’s return (3:11–13)

        3. Joyful song (3:14–17)

        4. God’s promised restoration (3:18–2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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