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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and said to them, q“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rThe fear of you and the dread of you shall be upon every beast of the earth and upon every bird of the heavens, upon everything that creeps on the ground and all the fish of the sea. Into your hand they are delivered. sEvery moving thing that lives shall be food for you. And tas I gave you the green plants, I give you everything. But you shall not eat flesh with its ulife, that is, its blood. And for your lifeblood I will require a reckoning: vfrom every beast I will require it and wfrom man. From his fellow man I will require a reckoning for the life of man.

x“Whoever sheds the blood of man,

by man shall his blood be shed,

yfor God made man in his own image.

And you,1 be fruitful and multiply, increase greatly on the earth and multiply in it.”

q ch. 1:22, 28; 8:17

r [Ps. 8:6–8; James 3:7]

s Deut. 12:15; 1 Tim. 4:3, 4

t ch. 1:29

u Lev. 17:10, 11, 14; Deut. 12:16, 23; 1 Sam. 14:33; Acts 15:20, 29

v Ex. 21:28

w ch. 4:10, 11

x Ex. 21:12, 14; Lev. 24:17; Num. 35:31, 33; [Matt. 26:52; Rev. 13:10]

y ch. 1:27; 5:1; James 3:9

1 In Hebrew you is plural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9:1–7.

 

 

9장은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와 세우시는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1절)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 복은 다음과 같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내용은 앞서 창 1:22과 28절에서 이미 베푸신 복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복은 이후 7절에서도 반복된다. 

또한 이 축복은 앞선 8:17과도 비교된다. 8장에서는 피조물 전체를 대상으로 축복을 하고 있지만 9장은 인간에게 그 대상을 한정시킨다. 9장의 표현은 노아가 아담의 후손이면서 동시에 제2의 아담으로 우주적 차원에서 언약의 대표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신학에서 이를 노아 언약이라고 부른다. 

(창 8:17, 개정)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피조물들을 통해 새 창조의 장을 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의지는 고대 근동 신화와 비교할 때 놀랍기 짝이 없다. 고대 근동 신화에서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신들은 인간이 만든 소음 때문에 인류에게 가뭄과 전염병을 보내고 마침내 홍수를 보내어 멸망시키려 하였다. 홍수 이후에도 홍수를 보낸 신은 인간이 살아남은 것을 알고 분노하는 가운데, 다른 신들과 타협하여 인류의 번성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땅 위의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허락한다.1)

Instead of your imposing a flood, let a lion come up and diminish the people.… Until now Ut–napishtim was mortal, but henceforth Ut–napishtim and his woman shall be as we gods are. Ut–napishtim shall dwell far off at the mouth of the rivers.

신들은 인간의 수적 증가를 억제하는 대신에 홍수의 영웅인 우트–나피쉬팀에게는 영생을 선물로 주고 강의 입구로 표현된 낙원에 신들처럼 살게 해준다. 그러나 노아 홍수가 끝나자 하나님은 고대 근동의 신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피조물들을 대하고 있다. 창세기 9:1은 하나님이 첫 창조에서 즉 창세기 1:22, 28에서 피조물들에게 베푼 축복을 반복하고 있다. 창세기 9:1의 메시지는 창세기 8:17에서도 나오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창세기 8:17은 피조물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창세기 9:1은 인간에게 그 대상을 한정시키고 있다. 창세기 8:17에는 축복이란 말이 없지만, 창세기 9:1은 생육과 번성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창세기 9:1의 표현은 노아가 아담의 후손이면서 동시에 제2의 아담으로서 우주적 차원의 언약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세기 1–9:1에서 ‘축복하다’는 최소한 창세기 2:3을 제외하고 모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를 동반한다. 하지만 창세기 9:1은 창세기 1:28의 인간에게 준 축복과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창세기 1:28은 남자와 여자가 축복의 대상이지만, 창세기 9:1은 노아와 그의 아들에게 축복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가 없으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자에게만 축복한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된다. 창세기 9:1의 의도는 노아의 아들들을 통해 재창조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2) 특이하게도 노아 홍수 이후 노아는 350년을 더 살지만, 창세기 5장에 나오는 그의 조상들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자녀를 낳았다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노아의 아들들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나고 번성하게 된다는 사실을 창세기 10장은 보여준다. 특히 창세기 11:10에 의하면 셈은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는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창세기 9:1은 방주 이후 노아의 후손들을 통한 재창조의 축복이다. 창세기 9:1의 내용은 9:7에서 반복하면서 9:1–7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인클루지오(inclusion)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재창조의 축복을 강조하고 있다.3)

1) Stephanie Dalley, Myths From Mesopotamia, 115–116. 35절에있는아트라하시스서사시에 서는닌투와엔키신이엔릴의분노를가라앉히기위해불임과유산으로아이를갖지못하게악마 를만든다.

In addition let there be one–third of the people, Among the people the woman who gives birth yet does not give birth (successfully); Let ther be the pasittu–demon among the people, to snatch the baby form its mother’s lap. Establish ugbabtu, entu, egisitu–women. They shall be taboo, and thus control childbirth.

2) W. J. Dumbrell, Covenant & Creation: A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Covenants (Grand Rapids: Baker, 1984), 27. 스킨너는 이 축복에서 여자와 동물이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John Skinner, Genesis (Edinburgh: T. & T. Clark, 1976), 169.

3)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S. Hamilton, MA: Gordon–Conwell, 1993), 15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88–290.

 

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에게 너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임할 것이다. 너희의 손에 그들이 주어질 것이다. 

노아의 홍수이후에 놀라운 변화는 피조 세계와 인간사이에 생겨났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들을 다스렸다. 에덴에서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문 2절을 통해서 분명한 변화가 보여지는데 그것은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것들과 물고기 까지 인간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선악과로 인한 타락의 결과인지 홍수의 결과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노아 언약의 내용을 통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4절) 모든 살아있는 움직이는 것은 너희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푸른 채소를 준것과 같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겠다. 하지만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와 함께 먹지 말라. 

3절은 육식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이다. 이미 죽은 짐승이 아니라 산 짐승을 죽여 양식으로 삼게 하신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인간이 육식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벨과 야발이 목축을 했고 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것을 보면 육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본문에서 육식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노아 홍수 이후의 재창조의 사역을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창 1:26-28 생육하고 땅에 충만 - 다스림- 식물 양식

- 창 9:1-7 생육하고 땅에 충만 - 다스림- 동물 양식

창세기 1:28–29에서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한 후 식물을 양식으로 준 것에 대비하여 창세기 9:1–3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짐승을 또 다른 양식으로 줌으로 새로운 창조의 시대에 인간의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이 짐승을 인간의 식용으로 주었다고 해서 사람이 짐승의 생명을 경시해도 된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짐승의 생사를 무작정 사람의 손에 붙여버린 것이 아니다. 식물을 식용으로 주었을 때와는 달리 짐승을 식용으로 허락하면서 중요한 제약이 뒤따른다. 하나님은 짐승의 피를 먹지 않으므로 짐승의 생명을 존중하라고 한다.6) 왜냐하면 하나님은 피가 생명을 대표하며, 동물의 생명을 하나님의 소유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인 짐승의 피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모두 쏟아 붇도록 시켰다. ‘피채 먹지말라’는 창세기 2:17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창세기 1–11장에 있는 유일한 금지 명령이다. “피채 먹지 말라”에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6) 레위기 17:10–16, 신명기 12:23–28. Sarna, Genesis, 61. 피조물의 생명에 대한 관심은 출애 굽기 23:10–13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면서 소와 나귀도 쉬게 하라고 하며, 안식년 동안 거두지 않은 곡식과 열매를 들짐승들이 먹게 하라고 하였다. 짐승들을 식용으로 주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짐승들의 생명까지도 기억하시고 생각하 시고 배려하고 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John Olley, “Mixed Blessings for Animals: The Contrasts of Genesis 9,” The Earth Story in Genesis, 130–139.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92.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면서 땀을 흘리고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었다. 에덴 동산과의 상황과는 달리 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이 되었고 그래서 음식을 얻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그런 문제가 심해졌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신다. 지금도 전 세계에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이것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이렇게 고기를 허락하실 때 두가지의 제한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죽은 동물이 아니라 산 동물을 먹으라고 하셨고 이 때 그 생명되는 피는 먹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고기를 먹기전에 그 피를 빼는 것은 그 동물의 생명력을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그 생명을 취한 것이며 하나님의 초대 손님으로서 그분과 함께 식탁을 한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서구에 식사전에 축복의 말이나 기도를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5-6절) 내가 너희의 생명의 피를 요구할 것이다. 모든 짐승으로부터 내가 요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사람의 형제들로부터 내가 사람의 생명을 요구할 것이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본문의 생명의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사람의 피이다. 본문속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내가 찾을 것이다.(요구할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내가 찾을 것이다’의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에드로쉬’(אֶדְרֹ֔שׁ)를 세 번 반복 사용하여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8) 짐승과는 달리 사람을 말할 때는 아담이라고 하지 않고 형제라고 하였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처럼 친 형제나 친척에 의한 살인을 정죄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짐승과 대비하여 형제라고 가깝고 친근하게 표현한 것이다. 형제나 다름없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신다. 심지어 짐승이 사람을 죽인 경우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짐승을 죽이겠다고 하신다.9) 비록 사리 판단이 되지 않는 짐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해치면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21:28–32에서는 짐승이 사람을 죽게 하면, 그 짐승을 돌로 쳐 죽이게 하였다.

8) Lloyd M. Barre, “The Poetic Structure of Genesis 9:5,”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96–1 (1984): 101–104.

9) Terence E. Fretheim, The Book of Genesis, 399. Victor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1–17, 314.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402–40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93–294.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 피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때 동물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서 쏟아 버리지만 사람의 피는 쏟아지면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그 유일한 이유는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대표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함부로 대하거나 인간의 생명을 해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창세기 9:6에서 사람의 피의 문제를 다루면서 사팍(שָׁפַךְ)흘리다, 쏟다)이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다. 이 동사가 피와 관련하여 사용된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째, 제사로 드린 짐승의 피를 번제단 옆에 쏟아 버리는 것, 둘째, 짐승을 양식으로 취할 때 피를 먹지 않고 땅에 쏟아 버리는 것(신 12:16, 15:23). 둘 사이의 공통점은 짐승의 생명을 취하더라도 그 피는 땅에 쏟아 버려야 한다. 이를 6절과 비교해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짐승의 생명을 존중하여 피를 땅에 흘려 버렸는데 반하여 인간의 피는 땅에 흘려서도 안 된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면 가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땅을 더럽히게 된다고 한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 우상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시 106:38).

사람의 피를 흘린 사람이 피 흘림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창세기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창세기 1:26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피조물을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반면 창세기 9:6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피를 흘려서는 안 되는 유일한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형상은 그 소유자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였음을 감안하면, 창세기 9:6은 하나님이 인간의 피 흘림을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짓는 심각한 죄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재판관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살인한 자를 공적으로 징벌해야 한다. ‘바아담’(בָּֽאָדָ֖ם)을 개인을 이해하여 개인적인 보복이 허용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10)

10)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404–406. Johan Lust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살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후 사람에 의해 살인자를 죽임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를 죽이는 것은 모순이라고 한다. 그는 이 모순을 해결하고 사형제도 폐지 를옹호하기위해 ‘베아담’(בְאָדָם)의전치사 ‘베’(בְ)를by(–에의해서)가아니라because of(–때문에)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피를 흘리게될것이다.” Johan Lust, “For Man shall his Blood be Shed” Gen 9:6 in Hebrew and in Greek,” Tradition of the Text: Studies offered to Dominique Barthelemy in Celebration of his 70th Birthday, eds. Gerard J. Norton and Stephen Pisano (Fribourg, Switzerland: Universitätsverlag, 1991), 91–102.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94–295.

 

7절) 본절은 앞선 1절의 반복이다. 그런데 7절에서는 번성하다라는 단어, '레부’가 두번 반복되어 사용된다. 이를 번성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번성하다라는 단어 ‘레부'와 창세기 1:28의 다스리다라는 표현 ‘레두’가 매우 비슷해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레두’의 오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경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피조물에 대한 주권을 다시 세우시는 것으로 그것을 다스릴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 된다. 

 

노아 언약은 분명한 두가지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첫째로 앞선 문화명령이 피조물들과의 긍정적인 관계에서 주어진 것이라면 본 명령은 피조물들과의 부정적인 관계,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둘째로 인간에게 육식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기를 피째 먹지 말것을 명하신다. 왜냐하면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아가 사람의 생명을 해하지 말것을, 그리고 그 피를 흘렸을때 ‘생명은 생명으로’의 원리, 동해 복수법이 적용된다. 이는 매우 무자비한 표현처럼 보이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 이상의 상해를 금지하고 있는것이다. 앞서 라멕은 77배의 상해를 공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아의 홍수는 피조 세계에 대한 심판, 파괴임과 동시에 새창조로 나아간다. 노아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메시야의 역할을 감당하지만 완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아의 후손을 통해서 약속의 씨가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노아 언약은 홍수이후 새로운 세계에 주어진 새로운 질서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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