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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emon’s Love and Faith
gI thank my God always when I remember you in my prayers, because I hhear of your love and iof the faith that you have toward the Lord Jesus and for all the saints, and I pray that the sharing of your faith may become effective for the full jknowledge of every good thing that is in us for the sake of Christ.1For I have derived much joy and kcomfort from your love, my brother, because the hearts of the saints lhave been refreshed through you. 
gSee Rom. 1:8, 9
hCol. 1:4
iEph. 1:15
jPhil. 1:9; Col. 1:9
1Or for Christ’s service
k[2 Cor. 7:4, 13; Col. 4:11]
lver. 20; 2 Tim. 1:16; [Rom. 15:32; 2 Cor. 7:1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몬 4–7.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요청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빌레몬에 대한 그의 감사를 정중하고 재치있게 표현하고(4-5절) 자신이 얼마나 그를 향해 기도하는지를 서술한다(6-7절).

일반적으로 바울의 편지에서 이러한 감사와 기원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바울과 그의 편지를 읽는 청자들과의 좋은 관계(라포)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이어지는 충고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 감사의 문맥속에서 제시되는 종교적인 이상 혹은 도덕적인 선을 향해서 청중들이 감화되고 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세번째 그러한 기원을 통해서 독자들의 영적 진보를 위협하는 영적인 위기에 대해서 알리기 위함이다. 
이처럼 바울 서신의 감사의 기능은 뒤따르는 편지 본문의 비판적 서론 역할을 한다. 특별한 목적과 뒤따르는 사도적 충고의 모디브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표를 저해할 수 있는 위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울이 그의 편지의 이 부분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가오는 본문의 충고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 Generally speaking, such expressions of thanksgiving and petition serve three purposes: (1) to establish good rapport between Paul and his first readers, so that they will respond positively to the advice that follows, (2) to set forth in the context of thanksgiving the religious ideals or moral virtues toward which the congregation should aspire, and (3) in the petitions offered, to introduce the spiritual crisis that threatens the readership’s spiritual advance. Paul’s epistolary thanksgiving functions, then, as a critical preface to what follows in the letter’s main body (see also commentary on Col 1:3–12). Not only are specific goals established and a motive given for following the apostolic advice, but the crisis that might undermine these goals is sometimes suggested. We should take particular care to explore the meaning of the special vocabulary that Paul uses in this part of his letters, since it will often form the basis for the advice that follows in the main body.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몬 4.

4-5절) 바울은 항상 자신이 기도할때 빌레몬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왜냐하면 주 예수와 모든 성도들을 향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울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빌레몬의 소식을 듣고 있다고 현재시제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사랑과 믿음이 들려오기에 기도할 때 마다 그를 기억하고 그로 인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항상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지표로 믿음과 사랑을 이야기했다.(골 1:4-5) 

5절의 본문은 분사절로 그것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첫번째는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과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
두번째는 빌레몬의 믿음(그의 사랑이 아닌)이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타나낸다라고 보는 견해
세번째는 두개의 다른 전치사를 통해서 역전된 병행절(AB:B’A’)로 보는 견해로 이 경우에 "네 사랑에 대한 들음”은 “성도들에 대한”으로 “네가 가진 믿음”은 “주 예수를 향한”과 평행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세번째의 견해가 좋아 보인다. 

  • The Greek syntax of verse 5 is difficult and remains contested among commentators. Literally, the verse is a participial phrase that expresses the cause of Paul’s thanksgiving: “hearing of your love and the faith that you have for [pros]the Lord Jesus and for [eis]all the saints.” In untangling this verse’s grammatical knot, Harris (1991:249–50) discusses its three possible meanings: (1) Philemon’s loveand faithmay characterize his relationships with both the Lord Jesus and the saints (so NEB, JB, NASB); (2) Philemon’s faith(but not his love) may characterize his relationships with both Jesus and the saints (so RSV); or (3) the verse may be an inverted parallelism (AB:B’A’), keyed by the two different prepositions for for.In this case, the “hearing of your love” is parallel to “for [eis]all the saints” and “the faith that you have” is parallel to “for [pros]the Lord Jesus.” This third possibility is preferable (so Harris). Unfortunately, I think, the NIV obscures this parallelism by reversing its order. Paul actually mentions Philemon’s lovefor the saintsfirst and again last for emphasis, since his appeal to Philemon on behalf of Onesimus will require his love most of all.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몬 4.

이런 성도가 있다면, 또한 이렇게 기도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참으로 감사하고 기쁠 것이다. 이 땅의 교회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 목회자들 또한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을 지향해야 한다. 바로 그 완전, 우리가 지향해야할 신앙의 지점이 바로 이렇게 항상 기도할 때 성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고 또한 성도들은 그러한 감사가 있도록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에서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는데 자라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이 서로 더 깊이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러한 소식이야말로 목회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기도제목이 되는 것이다. 

6-7절) 바울은 먼저 그의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이어서 그의 사랑에 대해서 간구하고 있다.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가 더욱 깊어져서 우리 안에 모든 선한 일을 빌레몬이 깨달음으로 그리스도께 이르게 되기를 기도했다. 나는 너의 사랑을로 인해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 너를 통해서 생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본문속에서 바울은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단어인데 정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고대 세계에 이 코이노니아는 무언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함께 나뉘어지는 인격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바울이 이 단어를 다루는데 있어서 그 공동체는 믿음과 선교 사역의 실천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의 코이노니아이다. 라이트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상호 입증, 확인을 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코이노니아가 다른 신자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 필수적이다라는 것을 자각하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빌레몬의 개인적 신앙이 오네시모를 비롯한 다른 신자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영적인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말하자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품는 것이 빌레몬의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O’Brien contends that Paul’s intercessory prayer for Philemon is that he may acquire sufficient faith and love from God to respond favorably to the request to reconcile himself with Onesimus (1983:279). Most commentators, however, link the opening clause that you may be active in sharing your faith with my prayers(v. 4) rather than with as I re- member you(v. 4) as O’Brien would have it (see Harris 1991:250–51). Paul’s prayer is not for Philemon’s character, for which Paul has just given thanks, but for the koinōniaor sharingof Philemon’s faith. In this case, Paul has in mind “the mutuality of Christian life which springs from a common participation in the body of Christ” (Wright 1986:175). He is mainly interested in the kind of fruit that God harvests in the relations between believers (see commentary on Col 1:5–12). Paul’s implied prayer, then, is that Philemon welcome Onesimus gladly as an equal koinōnos(translated “partner” in v. 17) in the faith.
  • We should not underestimate the strategic importance of Paul’s use of koinōniato focus this petition for Philemon. Unfortunately, koinōniais difficult to define with any precision (see Koch 1963:183–87; Wall 1992:1003–10; also Wright 1986:176; O’Brien 1983:279–81). In the ancient world, it defined a whole community of persons in which something is shared in common and as essential for life. In Paul’s handling of this word, the community is a koinōniain the sense of sharing a faith and missionary praxis. Wright adds that “Christians not only belong to one another but actually become mutually identified” (1986:176); that is, koinōniatakes place where believers recognize that other believers are essential for their well-being. Paul is therefore praying that Philemon’s personal faith in Christ be worked out in appreciation of the important roles that other believers, including Onesimus, have in his spiritual formation in Christ.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몬 6.

그러므로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연합된 삶에 있어서 특별한 이해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신자들을 회중으로 부르시고 각각에게 특별한 은사와 다른 신자들에게 사역할 기회를 제공하신다. 그래서 모두는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성숙함을 누리게 된다. 이 파트너십의 의미는 회중의 코이노니아가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가치있고 중요하다고 보는데서 발견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파트너십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그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사역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로 보는데  필요한 자원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 생각하는 방식의 변혁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안에서 동등하게 삶과 신앙을 나누는 이들로 보기 시작할 때 오만과 편협을 종식된다. 
나아가 빌레몬의 믿음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개인적 신앙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공적 신앙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 빌레몬의 믿음의 즉각적인 겨로가는 코이노니아인데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코이노니아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선한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알다라는 ‘에피그노시스’는 이론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앎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이 경험한 모든 선한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발견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Koinōnia,then, requires a particular understanding of the church’s corporate life. God calls each believer into a congregation and provides each with certain gifts and opportunities to minister to other believers, so that all may be brought to maturity together in Christ Jesus (1 Cor 12; Eph 4:1–16). This sense of partnership marks out a congregation’s koinōniaand is found where persons view one another as equals in worth and importance. It aims at partnership with Christ in God’s salvation, so that with him we are able to find those resources necessary to enable us to minister, to love, to view one another as important and valuable. Christianity is about a transformation of the way we see and think about other people. When we begin to view others as those with whom life and faith are shared equally in Christ, arrogance and bigotry are finished.
  • Further, in referring to Philemon’s faithPaul probably has in mind his public demonstration of Christian faith rather than his personal faith in Jesus Christ. While the immediate result of Philemon’s faith is koinōnia,the ripple effect is extraordinary: out of the experience of koinōniacomes a full understanding of every good thing we have in Christ.Critically, the word translated “understanding” (epignōsis)refers not to theoretical knowledge but to knowledge acquired by experience. Paul is speaking about every good thingPhilemon experiences while in Christ,where God’s grace is found.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몬 6.

7절) 성도들의 마음, 본문에서 마음(hearts)는 ‘스플랑크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심장을 뜻하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카르디아’인데 스플랑크논은 장기, 위나 창자를 뜻하는 말로 우리의 몸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 깊은 애정, 친밀감, 연민, 사랑을 의미한다.(몬 7, 20절; 빌 2:1; 골 3:12; 시 7:9) 
  • 시 7:9  Denotes the innermost being of a person, the seat of one’s moral character (26:2; Jer 11:20; 17:10; 20:12). David is characteristically transparent as he asks God to examine him (see 139:23–24).
  •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985. 

바울의 두번째 간구는 빌레몬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바울은 6절과 7절은 그로므로라는 접속사로 연결한다. 이 사랑은 앞선 코이노니아로 확증된다. 마음은 내장이라는 의미이다.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연민, 사랑을 표현할때 이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눅 10:33이나 눅 15:20을 통해 그 의미를 옅볼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이웃을 보며 느낀 감정, 탕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동정심은 누군가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향해 끌려 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빌레몬을 탕자의 아버지로, 오네시모를 탕자로 비유할 수도 있다. 여기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연민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받는 경험 모두이다. 그의 빌레몬을 향한 간구는 더 큰 사랑의 능력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민은 또한 그가 새롭게 한 성도들의 경험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믿음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의 증표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의 기도는 그의 서신의 본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그것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문제로 위협받고 있는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갈 것인지를 보여준다. 
  • Paul’s second petition is for Philemon’s love.Unfortunately, the NIV omits a connecting “for” (gar)that links verses 6 and 7 together: “… we have in Christ. Foryour love has given me …” The impression left by the NIV is that verses 5 and 7 rather than verses 6 and 7 are bound together as complementary notes of Paul’s thanksgiving for Philemon’s spirituality. Paul’s point, however, is to join verses 6 and 7 by a connecting “for” (gar),integrating them as a single petition (see Harris 1991:253). In this sense, verse 7 complements the central idea of verse 6, koinōnia,and reveals Paul’s incentive for prayer: the essential characteristic of and incentive for koinōniais love. Since Philemon’s capacity to love is confirmed, Paul remains confident that his prayer will be answered by Philemon’s positive response to his request. Yet in another more implicit sense verse 7 extends Paul’s petition for Philemon’s faith to include the prospect of a future demonstration of his previous love.
  • To further develop the connection of loveand koinōnia,Paul introduces another catchword into the petition—hearts (splanchna).Like koinōnia, splanchnais a difficult word to translate. Literally it refers to human entrails. According to Greek psychology, however, one’s splanchnaor “guts” is where the visceral feelings of compassion are produced; compassion is a “gut feeling.” The image created is that compassion is not a detached emotion; rather, it is an experience of lovers who are moved by and toward someone else. For example, Luke uses the verbal form of this same word in two of Jesus’ most beloved parables to illustrate true discipleship: how the good Samaritan is disposed toward the rejected, hurt man (Lk 10:33) and how the father is disposed toward his prodigal son (Lk 15:20). Each had compassion on and was moved toward the needy other. Compassion is not to pity someone but to be drawn toward another in order to love and care for that person. One might draw intriguing parallels between Onesimus and the prodigal son and between Philemon and the son’s father. The restoration of Philemon’s relationship with Onesimus—receiving his troubled slave back into his home (see commentary on verse 17)—requires from him the very same compassion that was required from the father to welcome his prodigal son back home.
  • For Paul, compassion is both the capacity to love and the experience of being loved. His prayer for Philemon is for a greater capacity to love; but such compassion is also the experience of those saintshe has refreshed.In this way, the compassionate heart is the mark of the koinōniaof shared faith. More important, Paul’s prayer introduces in a positive way what the main body of his letter develops: that the compassion and so koinōniaof the congregation are now threatened by the problem between Onesimus and Philemon. Given Paul’s twofold petition, then, the reader realizes that Philemon’s response to Paul’s appeal will largely determine whether the congregation’s witness to the gospel in Colosse will survive.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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