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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ssenger of the Lord
17 dYou have wearied the Lord with your words. xBut you say, “How have we wearied him?” eBy saying, “Everyone who does evil is good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he delights in them.” Or by asking, f“Where is the God of justice?”
3 g“Behold, I send hmy messenger, and ihe will prepare the way before me. And the Lord jwhom you seek will suddenly come to his temple; and kthe messenger of the covenant in whom you delight, behold, he is coming, says the Lord of hosts. 2 But lwho can endure the day of his coming, and who can stand when he appears? For mhe is like a refiner’s fire and like fullers’ soap. 3 He will sit nas a refin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he will purify the sons of Levi and refine them like gold and silver, and they will bring oofferings in righteousness to the Lord.14 pThen the offering of Judah and Jerusalem will be pleasing to the Lord as in the days of old and as in former years.
5 “Then I will draw near to you for judgment. I will be qa swift witness against the sorcerers, against the adulterers, against those who swear falsely, against those rwho oppress the hired worker in his wages, sthe widow and the fatherless, against those who thrust aside the sojourner, and do not fear me, says the Lord of hosts.
dIsa. 43:24
x[See ver. 14 above]
e[ch. 3:15; Isa. 5:20]
f[ch. 3:1; 2 Pet. 3:4]
gCited Matt. 11:10; Mark 1:2; Luke 7:27; [ch. 4:5; Luke 1:76]
hSee ch. 2:7
iSee Isa. 40:3
j[ch. 2:17]
k[ch. 4:5]
lJoel 2:11
mIsa. 4:4
nIsa. 1:25; Zech. 13:9
o[ch. 1:7]
1Or and they will belong to the Lord, bringers of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pEzek. 20:40
qch. 2:14; Jer. 29:23
rSee Lev. 19:13
sSee Deut. 24:1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2:17–3:5.
본문은 네번째 논쟁으로 하나님께서 여러 범죄들에 대해서 증인 되시며 그분이 다시 오실때에 정결케 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말한다.
17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심, 헌신, 희생이 없는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진 의식적인 행동, 종교적인 의식들과 신실하지 않은 말들로 하나님을 괴롭게, 슬프게 만들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게 했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이스라엘이 문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오해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며 동시에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임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을 그들에게 바르게 적용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고도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기쁨이 된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를 좋게 보신다면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께 따지고 있는 것이다. 17절의 정의(미쉬파트)에 대한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 말라기의 청중은 하나님께서 행악자에게서 ‘기쁨을 찾으시거나’(NJB, NRSV) 기뻐하신다(NAB, NIV, NLT)고 고소했다. 이 보고된 청중의 말은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성전에서 합당치 않은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한 말라기의 두 번째 논쟁의 주제와 대조된다(1:10).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이해와 왜곡은 자신들이 이미(때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신학적인 패러다임을 뒤집는 역사적인 실재와 마주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나타난다(3:14 참조).1)
하나님의 칭호 정의의 하나님은 이사야 30:18에도 등장한다. 이사야의 선언이 위치한 문맥은 말라기의 청중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으로 기능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 은혜로우시며 그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대부분의 영어 역본들은 히브리어 미쉬파트(mišpāṭ)를 추상명사 정의(justice)로 번역한다(NIV, NLT, NRSV; NAB, ‘공평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참조). 같은 단어가 3:5의 시작에도 나타나는 것을 주목하라. 이는 네 번째 논쟁을 구성하는 구조를 부분적으로 감싸는 일종의 봉투(envelop)를 형성한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께서 행악자들을 시험하실 것이라고 가리키는 문맥에서는(NAB, NIV, NRSV; ‘내가 너를 소송할 것이다’ NJB, NLT 참조) 심판(NAB, NIV)으로 번역된다. 2:17에 제기된 질문은 미쉬파트가 이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도록 암시하는 언어유희를 하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이며 의로운 재판장이심을 고려하면 심판의 행위는 그분께 속하기 때문이다(NJB, ‘공평한 심판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계시냐?’ 참조). 말라기의 청중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다(2:17). 정의의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3:5).
1)TDOT5:103–104.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51–452.
1절) 본문에서 길을 예비하는 사자는 세례요한을, 언약의 사자는 주님을 말한다.(마 11:10-11)
주님의 오심은 어떤 이들에게는 복을,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심판을 가져온다. 1절에서 말하는 내 사자(이는 말라기와 동일한 히브리어 이다)는 만군의 여호와와는 구별된다. 이런 언어 유희를 통해서 말라기 자신은 1절의 내 사자(세례 요한)과 같이 성전에 임하실 언약의 사자의 사역을 예표함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길을 준비하다라는 표현은 말그대로 왕의 오심을 위해서 길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그림을 상기시킨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영적인 정결함, 새로움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 이사야는 고대세계에서 왕의 행렬을 위하여 평평한 표면을 얻으려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굽은 곳을 펴고 경사를 완만하게 하는 관습을 언급한다(사 40:3; 57:14; 62:10).3)여호와의 메신저의 역할은 포로 후기 유다의 백성들의 특징인 자기 이익, 영적인 무감각, 불의한 행위의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여호와의 현현에 앞서 길을 정리하는 것이다.
3)McKenzie (1968:16)을 보라. Westermann (1969:38–39)은 이사야의 언어를 제의적인 행진과 왕의 대관 축제에 사용되는 바벨론의 대행진 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읽는다. 또한 Glazier-McDonald (1987:138–139)는 말 3:1에도 이것을 가정한다. ZiBBCOT5:238–239를 보라.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54.
2-5절) 주님은 오셔서 어떤 죄인들은 정결하게 하시고, 어떤 죄인들은 심판하실 것이다. 정결하게 하는 사역에는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이는 그 사역의 철저함과 혹독함을 강조한다. 금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매우 높은 온도의 불이 필요하고 옷이나 천의 더러움을 씻어 내기 위해서는 잿물을 사용하여 옷을 바위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때렸다.(히 12:7-11)
- When the Lord comes, he will perform two complementary works: he will purify some sinners (vv. 2–4) and judge others (v. 5). The images used for that purifying work, the refiner’s fireand fullers’ soap, stress both its thoroughness and its severity. The heat of the refiner’s fire was intense in order to separate the dross from the molten pure metal. Similarly, the fuller washed clothes using strong lye soap, after which the clothes would be placed on rocks and beaten with sticks. If sinners prefer the Lord’s cleansing work to his judgment, this is the price that must be paid (cf. Heb. 12:7–11).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8.
2절) 그가 임하시는 날
그가 임하시는 날은 주의 날과 동의어이다. 이 미래의 날은 구약에서 항상 정의의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침투하심으로 나라들 가운데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는 특정 되지 않은 임박한 시대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초림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일어날 것이다.
- day of his coming.Another expression for the day of the Lord. It establishes the future-oriented theme of the fourth disputation. In the OT this future day is always an imminent era of unspecified duration in which the God of justice will break into human history to establish his kingdom among the nations (cf. Dan 2:44–45). The first advent of Jesus the Messiah inaugurated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Matt 4:23; 9:35; Luke 4:43; 10:9, 11). The day of God’s judgment occurs at the second coming of Christ (Matt 13; 24). For Malachi, it purifies, vindicates, and restores the righteous (vv. 2–5, 17–18; 4:2–3), and it judges and destroys the wicked (4:1).
OT Old Testament
cf. compare, confer
vv. verses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7.
말라기는 “누가 능히 당하며..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두개의 질문을 통해서 그분의 오심을 강조한다. 또한 연단하는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을 비유로 사용한다.
3-4절) 주님께서 은은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와 같이 레위 자손, 제사 의식을 수행하는 이들을 깨끗하게 함으로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 제룸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이다.
예배, 제사의 회복을 위해서는 그 제사를 수행하는 자들의 회복, 깨끗케 됨이 먼저 수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때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나아와 그분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지금 말라기는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이상적인 언약관계에 있던 때를 마음에 그리면서 그 날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깨끗하게 되어지는 정련, 제련의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것의 결과는 영적인 새로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이러한 깨끗함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 말라기는 앞서 두 번째 논쟁에서 성전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성직자로 그리고 모세 율법의 선생으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행함에 실패한 제사장들을 책망했었다(1:8, 10, 13; 2:6–8).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순화하는 과정을 위하여 뽑혀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들이고 그러므로 그들은 백성들의 종교적인 타락에 책임이 있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정화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15)일단 정화가 되면 ‘그들은 여호와께 제물을 가져오기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NEB;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 받아들임직한 희생제사를 드릴 것이다’ NLT).
말라기는 지나간 날(‘옛날’ 개역개정-역주)처럼 출애굽 이후의 모세 시대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거나 여호와와 히브리인의 언약 관계가 이상적이었던 시기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2:5에 비느하스의 언급을 참고하라).16)이 둘을 함께 취하면 아마도 두 표현(‘옛날과 고대’ 개역개정-역주)은 조금 더 일반적으로 히브리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신실하게 여호와를 예배했던 이스라엘 역사에서의 그런 시기를 언급한다. 어떤 경우든 그 표현들은 포로 후기 유다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배우려고 열망할 수 있는 유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15)Verhoef (1987:291); Baker (2006:272).
16)Baldwin (1972:266).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59–460.
5절) 17절에서 언급된 정의에 대한 탄원이 무시되지 않고 실현 될 것이다.
주님께서 심판하러 임하실 것이다.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실 것이다.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정의와 심판을 의미한다. 이 두개념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의 특성으로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말라기의 법정에서 다양한 역할(증인, 검사, 판사)의 역할을 맡으신다.
- 그의 백성에 반박하는 하나님의 증언에는 언약의 위반 곧 도덕적 사회적 정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섯 개의 특별한 기소를 포함한다. 점치는 자에 대하여는 모세 율법에 의하여 금지된 마법을 행하며 흑주술을 행하며, 비술적인 행위들을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말라기가 언급하는 관습은 어떤 형태의 점을 치는 행위, 개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17)간음하는 자는 모세 언약의 십계명에서 금한 행동인 다른 남자의 약혼자 혹은 아내와 성적인 관계를 갖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출 20:14; 신 5:18). 거짓 맹세하는 자(NJPS, NRSV; ‘거짓말하는 자’ NLT)는 문자적으로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NJPS, NRSV)이며, 아마도 맹세 아래 거짓말하는 자를 의미할 것이다(즉 위증죄를 범하는 것). 이 범죄들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간음은 사형에 해당하며(례 20:10; 신 5:20; 22:22) 점치는 것(레 20:6, 27; 신 18:10)과 거짓 맹세(신 19:18–19)역시 사형으로 형벌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증명된다.
모세 율법은 노동자에게 줄 품삯을 보류하는 것을 금지했다(‘임금노동자를 압제하는 자’ NJB; ‘피고용자를 임금으로 속이는 자’ NLT. 레 19:13; 신 24:14 참조). 모세 율법은 또한 과부와 고아를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며(출 22:21–22; 신 10:18; 24:17; 17:19) 일종의 사회보장 형태로 그들에게 어떤 특권을 제공했다(신 14:29; 16:11, 14; 24:19–21; 26:12–13). 단어 외부인(NIV, NRSV; 게르, gēr; ‘나그네’ 개역개정-역주)은 ‘외국인’(NJB, NLT), ‘이방인’(NAB, NJPS), ‘거류민’(ESV)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이 단어는 어떤 이유에서 자기 고향 혹은 가문으로부터 분리된 사람을 묘사한다. 히브리어 게르(gēr) 혹은 ‘거류인’은 본토민(에즈라흐, ’ezraḥ)과 외국인(노크리, nokrî)사이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며 법적인 이민자의 상태를 갖는다.18)이 절(clause)은 간단하다. 그리고 동사 ‘밀어 젖히다’(‘억울하게 하며’ 개역개정-역주)는 대개 거류인이 어떤 방식으로 정의에서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개 이해된다(‘외부인의 정의를 박탈하다’ NIV; ‘외국인의 권리를 빼앗다’ NJB). 히브리인들은 그들 사이에 거주하는 외국인 혹은 이방인을 사랑하도록 의무가 부여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송사를 변호하시며 이스라엘도 이집트에 거류민으로 있는 동안 똑같은 사회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신 10:18–19).
17)ZIBBCOT5:239–240.
18)TDOT2:443을 보라.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62–463.
말라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여러 부류(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등을 다루는데 이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로 수렴된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위에 언급된, 아니 언급되지 않은 범죄들을 저질러서는 안되고 저지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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