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Now uthe serpent was more crafty than any other beast of the field that the Lord God had made.
He said to the woman, “Did God actually say, ‘You1 shall not eat of any tree in the garden’?” 2 And the woman said 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s in the garden, 3 but God said, v‘You shall not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that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neither shall you touch it, lest you die.’ ” 4 wBut the serpent said to the woman, “You will not surely die. 5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u Matt. 10:16; 2 Cor. 11:3; Rev. 12:9; 20:2
1 In Hebrew you is plural in verses 1–5
v ch. 2:17
w ver. 13; John 8:44; [2 Cor. 11: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3:1–5.
1절)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했다. 이 뱀이 여자에게 질문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성경은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된 세상가운데 악한 존재인 뱀이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뱀의 질문은 매우 교활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앞선 2장 16-17절에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금 뱀은 이 명령을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가라고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것을 누릴 자유와 권한을 주시되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차별성을 알게 하시기위해서 오직 선악과만을 먹지 말라고, 그리고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뱀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것 아닌가라며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시키고 있다. 본문에서 뱀은 하나님을 지칭하면서 하나님의 고유한, 개인적인 이름인 ‘여호와(야훼)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엘로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고대 세계에서 뱀은 신비로운 지혜를 소유한 존재로, 그리고 마력과 악의를 가진 피조물로 간주되었다. 당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들중에 코브라나 뱀의 형태를 한 신들이 존재했다.
이 뱀의 특성은 간교함(아룸)이었다. 이는 약삭빠른, 교묘한 이라는 중립적인 성격을 띠기도 하고 본문속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뱀의 간교함은 남자와 여자의 벌거벗음(아루맘 2:25)과 대조를 이룬다.(언어 유희)
창세기 3장은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불순종과 반역에는 뱀이 있다. 창세기 1–2장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던 뱀이 갑자기 등장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뱀이란 표현 ‘나하시’(הַנָּחָשׁ֙)에 정관사 ‘하’(הַ)를 붙여 독자들이 알고 있는 그 뱀이란 점을 드러내고 있다.2) 텍스트 자체는 이 뱀이 어떤 뱀인지 밝히지 않지만,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음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아롬’(עָרוֹם)과 동음이의어인 뱀의 성격으로 제시된 “간교한” 이란 말의 히브리어 ‘아룸’(עָרוּם)을 통해 뱀과 창세기 2장을 연결시키고 있다.3) 그렇다면 이 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뱀은 경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악의세력을 대표하였다. 에뉴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의 원수였던 티아매트는 바다의 신이지만 그 형상은 뱀이었다.4) 바알 서사시에서 바다의 신 얌은 바알의 원수이며 그 형상도 역시 뱀 또는 용이다.5) 고대 이집트에서도 뱀은 악의 화신이었다. 비록 바로의 머리에 독사의 형상을 장식하여 태양신의 레의 불타는 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지만, 뱀은 주로 악의 신 아포피스를 상징하였다. 창조와 용의 추방에서 아포피스는 하늘 신 눈의 물 또는 천상의 나일 강물에 사는 거대한 뱀이다. 아포피스는 태양신 레가 매일 갈대배를 타고 항해할 때 방해하려고 시도한다. 항해 방해를 성공하면 폭풍이 일어나고 태양신의 갈대배를 삼키면 일식이 일어났다. 바로와 인간에게 악을 행하는 뱀 아포피스를 바로는 마술 주문으로 퇴치시켰다.6)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뱀은 길가메쉬가 고생 끝에 간신히 손에 넣으려고 하는 생명 나무를 순식간에 나타나 물고 가버린다. 그 자리에 뱀은 허물을 벗어 남겨 회춘하였음을 나타내 보인다.7)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은 어떨까? 뱀 또는 리워야단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바다에 존재하는 생명체이다(시 104:26). 이 뱀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이고(욥 41:1), 리워야단을 자극하는 것은 저주를 자처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욥 3:8). 이사야에서 리워야단은 악의 세력으로서 하나님이 멸망시킬 대상이다(사 27:1, 시 74:13–14). 신약 성경은 리워야단으로 생각되는 뱀을 사탄이라고 한다.
롬 16:20“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계 12:9“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계 20: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의심의 여지 없이 이 성경 구절들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을 두고 하는 말이며, 이 뱀을 사탄으로 전제하고 있다.8) 그렇다면 창세기 3장에는 이 뱀을 사탄으로 여길만한 근거가 있는가? 평범한 뱀으로만 볼 수 없는 특징을 창세기 3장의 뱀이 가지고 있다.
2) 느헤미야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 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3)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232. T. Stordalen, Echoes of Eden: Genesis 2–3 and Symbolism of the Eden Garden in Biblical Hebrew Literature (Leuven, Belgium: Peeters, 2000), 199–200.
4) ANET, 60–72.
5) ANET, 129–134.
6) ANET, 6–7.
7) ANET, 96.
8) Wisdom 2:23–24 “23for God created us for incorruption, and made us in the image of his own eternity, 24but through the devil’s envy death entered the world, and those who belong to his company experience it.”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16–118.
- 뱀의 특징을 나타내는 아룸(עָרוּם)은 지혜와 관련된 말이다. 잠언에서는 긍정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고 지혜로운 행동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지만(잠 1:4; 12:23; 13:16; 14:8), 그 외에서는 부정적인 지혜 또는 간교함을 나타낸다(욥 5:12, 15:5, 출 21:14). 창세기 3:1의 아룸(עָרוּם)은 창세기 3장의 배경에서 볼 때 부정적인 지혜로 사용되었다.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19–120.
2-3절) 이 뱀의 질문에 대해서 여자가 뱀에게 대답한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대답한다. 여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뱀의 질문이 뭔가는 다른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채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먹으면 죽을지도 몰라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산 중앙에는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만을 금하셨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지지 않으셨다. 또한 죽을까 하노라가 아니라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자는 죽을지도 몰라라고 한발짝 물러선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이고 변경되어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여자는 이것이 인간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
4-5절) 이 여자의 대답에 대해서 뱀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에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기에 이를 금하신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으리라하신 말씀을 죽을찌도 몰라라고 약화시키고 이제 더 한걸음 나아가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다라고 여자를 유혹하고 있다.
뱀은 이미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아질 것을 미끼로 그를 유혹하고 있다.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야할 인간은 모든 동물(뱀을 포함하여)을 다스려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뱀의 유혹에 넘어감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된 것이고 이 반역의 행위가 바로 죄의 본질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관리하고 보호할 것을 명령받았는데 하나님의 피조물중 하나인 뱀의 말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었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한글 성경 5절에서 첫번째 하나님은 복수 엘로힘으로 천사를 비롯한 신적 존재들이며, 두번째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 말은 뱀의 미혹으로 하와는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으로 여겼지만 천사를 비롯한 신적 존재들과 같이 되어서 간교한 지혜를 가지고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첫 번째 엘로힘은 여호와 하나님이지만, 두 번째 엘로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킹 제임스 역과 유대인들의 구약 성경인 타낙(Tanak)도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KJV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TNK “but God knows that as soon as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divine beings who know good and bad.”
사탄은 엘로힘 뒤에 나오는 동사의 단수형과 복수형의 차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선과 악을 아는 일에 마치 첫 번째 엘로힘처럼 되는 것으로 속였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창세기 2–3장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이름 야웨 엘로힘(אלהים יהוה)을 사용하다가, 창세기 3:1–5에서 뱀과 하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뱀이 하나님의 이름 야웨(יהוה)를 사용하지 않고 엘로힘(אלהים)만 사용하고 하와도 엘로힘을 사용하여 응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22) 비평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E자료가 J자료에 삽입된 증거일까? 뱀이 하와를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엘로힘이라는 모호한 호칭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와가 뱀에게 속았다고 한 것은 장엄복수의 야웨 하나님처럼 될 줄 알았는데, 복수 엘로힘(천사를 비롯한 신적 존재들) 중에 하나인 뱀 즉 사탄처럼 간교한 지혜를 가지고 선과 악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되었음을 깨달은 것일게다.
22) T. Stordalen, Echoes of Eden: Genesis 2–3 and Symbolism of the Eden Garden in Biblical Hebrew Literature, 200–20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26–127.
말하는 뱀 이야기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사탄의 존재, 말하는 뱀의 존재와 만나게 된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 속에서 동물은 말하지 못하는 피조물이기에 우리는 이 내용을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 신화로 치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에게 ‘아기 돼지 삼형제’이야기를 읽어주고 있다. 첫째 아기 돼지가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는 대목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기 돼지는 짚이 가득 실려있는 손수레를 가진 사람에게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저, 죄송한데요..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그 짚 좀 주시면 안 될까요?" 거기까지 읽고 나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럼 과연 이 사람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아는사람’?’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아이구머니나 돼지가 말을 하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How do we respond to the talking serpent of Genesis 3? There is an exercise that I conduct with my sixth-grade Sunday school class on doctrine when I am trying to explain to them what we mean when we say the Bible is true. I read several stories to them from various sources (Aesop’s fables, odd newspaper stories about animals behaving in strange ways, etc.), asking after each one whether they would consider the story true or not. Then we talk about their reasons for their conclusions as well as discussing what they think the author wanted us to believe. Invariably one of the conclusions they draw is that the examples from Aesop cannot be true because they feature animals talking, and we all know animals cannot talk. I then read the narrative of Genesis 3 to my sixth graders and ask them whether it is a true story. Their confusion and uncertainty creates a wonderfully teachable moment.
How do I work through this with the kids? One of the stories I read them concerns a dog who regularly gets into the refrigerator while his master is gone, takes out the catsup, squeezes the contents out all over the floor, licks it up, and drops the empty bottle in the trash can. The owner thinks he is losing his mind when he can never find the catsup that he is sure he just bought. The mystery is finally solved when one day the dog misses the trash can with the empty bottle and the evidence leads to discovery. When the sixth graders respond to this story, they initially indicate that it is not true because animals do not act this way. Their answers change immediately when I tell them the source: The story came from a news item in the local paper. It wasn’t on the comics page but was reported as news. This information changes their answer immediately, and they accept the story as unusual but factual. Even sixth graders have learned to be students of genre, and, as we all do, they judge the story by its source.
This is exactly the point as we come to the narrative about the serpent and the Fall. The larger methodological issues have already been discussed in the introduction under the heading, “Genesis and History.” Regarding this passage in particular, unless one is willing to consider the whole of Genesis 1–11 as myth (which I am not), the face value of the text suggests that the author wants us to believe that this event really happened. Moreover, the reality of the Fall is an essential foundation to Pauline theology, and the New Testament consistently shows it considers the events of Genesis 3 to be true, as historical realities. Thus, as students of genre and considering the source, we must discount the unnatural behavior attributed to the serpent and accept the story at face value.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212.
트루먼 쇼 이야기
주인공 트루먼은 30년동안 자신의 삶이 24시간 내내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5000대의 카메라가 그 거대한 스튜디오안에, 출연배우들의 겉옷단추 속에, 거리의 가로등속에, 그가 일하는 책상에 모두 설치되어 있었다. 날씨와 심지어 일출과 일몰까지도 모두 컴퓨터로 조작되고 있었다. 그는 엄청난 스케일의 일일 연속극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매력은 그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쇼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상한 일들이 자꾸 발생하게 되면서 트루먼은 뭔가 인위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카메라들을 속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다를 가로질러 가기에 이른다 그를 가로막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폭풍을 헤치고 결국 지평선에 배가 부딪치면서 무대 세트의 가장자리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이 마지막 극적인 장면에서 이 쇼의 감독이자 트루먼을 만들어낸 창조자인 크리스토프가 트루먼과 마지막대화를 시도하면서 트루먼을 위해 만든 세상 속에 남아 달라고 설득한다. 그 영화의 초반부에서 크리스토프는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했다. ‘난 트루먼에게 정상적인 삶을 살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세상,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공간은 병든 곳입니다. 씨 해븐(트루먼이 시는 동네 이름)은 정상적인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트루먼을 향한 크리스토프의 자비로운 의도들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트루먼은 자율성을 얻기 위해 돔으로된 거대한 스튜디오 밖에 있는 불확실한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그 영화의 관객들, 아마도 그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은 틀림없이 트루먼의 영웅적인 선택에 힘찬 갈채를 보낼 것이다. 그의 선택은 엄청난대가를 치렀지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하나님은 트루먼쇼의 크리스토프 감독처럼 자비로운 조종자에 불과할 까? 그 차이점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지배권은 아담과 하와의 선택에 의해 소멸될 수 없었다. 트루먼은 그 무대를 떠났을 때 크리스토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러나 아담과 하와 그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지배권에서 벗어날수 있는 선택권을가질 수 없다. 의존 대상상들은 바뀌고 변할 수 있지만, 의존관계자체는 결단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2. 하나님은 조종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분의 주권은 어떤 위험에서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가 전혀 없으시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의 조종은 자신이 소유한 지배력의 한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고, 따라서 트루먼이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게 될 경우 연기처럼 사라질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3. 하나님의 행동들은 이기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그럴 필요가가 전혀 없으시다. 반면에 크리스토프는 자비롭기는 하지만 트루먼을 위한 순수한 이타심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는 심리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이루어 야 할 것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룰 것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이 이기적이실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냐 이기 심이란 자기 자신을 부각해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더는 부각되실수 없는 경지에 이미 올라 계신 분이다.
4.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더 많은 자율성과 자유를 포함하고 있
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시행될 자율성과 자유를.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그와 같은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 어떤 지식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재 그 상태를유지하는 것만을 지향했다.
5. 크리스토프스토프의 경우 어떤 선택들은 조종하고 어떤 선택들은 막았다.. 사실 트루먼은 자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영화 전반에 걸쳐서, 특히 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이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그가 트루먼에게 선택권을 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트루먼을 막을 힘이 없어졌을 바로 그때였다. 반면에 하나님은 순종과 불순종 간의 선택 권을 분명히 제시해 주셨다.
6. ‘트루먼쇼’에서 아담과 하와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싶다면, 남녀 배우들의 상황들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비록 그들은 크리스토프의 통제를 받고는 있었지만 대개는 자기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그런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크리스토프가 만든 세계에서 살기 위해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하였다. 이외는 대조적으로 여배우 실비아는 트루먼이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그 세계에 침투하여 그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시도했다. 그녀는 감독의 명령에 불순종하기로 선택하였고, 그 결과 씨 해븐이라는 인공 세계의 혜택을상실한채 배역에서 쫓겨났다. 그녀는 뱀에 비유하기에 가장 알맞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는 영웅들 가운데 한 명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 영화의 마지막은 자유의 몸이 된 트루먼을 찾아서 진짜 세계에 첫 발을 디딘 그를 환영하러 가기 위해 실비아가 자신의 아파트를 박차고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다.
- It is a hallmark of our society that personal freedom and the right to liberty are values above all others. Even eternal life is dispensable. Is God really nothing more than a benevolent manipulator like Director Christoph in The Truman Show? It will be instructive for our view of God to observe some important differences.
1. God’s control was not diminished by Adam and Eve’s choice. When Truman left the set, he walked totally out of reach of Christoph. Neither Adam and Eve, nor any of us, has the choice to remove ourselves entirely from God’s control. Dependencies may shift and transform, but dependency will never go away. Without God we do not exist.
2. God does not manipulate, because his sovereignty never needs to be protected from jeopardy. Christoph’s manipulation was designed to maintain the margin of control that he had and that was constantly in danger of evaporating if Truman became aware of his situation.
3. God’s actions are not selfishly driven. He has no needs. Christoph, though benevolent, did not act out of pure altruism for Truman’s sake. He had much to gain both psychologically and professionally. God has nothing to gain. In fact, we can say that God cannot be selfish, because selfishness results from a desire to elevate oneself and meet one’s own needs. God cannot be elevated any more than he already is.
4. God’s plan for Adam and Eve included more autonomy and wisdom—in the right way at the right time. Christoph could take no such risks. Any knowledge was dangerous. He intended only to maintain the status quo.
5. Christoph controlled choices and prevented choices. In fact, Truman never knew he had a choice. All through the film but especially in the end, Christoph plays an active role in trying to prevent Truman from learning the truth and escaping. It was only when he was powerless to stop Truman that he offers him a choice. In contrast, God made the choice between obedience and disobedience clear.
6. If one is looking for a comparison to Adam and Eve in The Truman Show, it would be better to consider the situations of the actors and actresses. Though they were controlled by Christoph, that was mostly through their own choice. They gave up their freedom in order to live in his created world. In contrast, one of the actresses, Sylvia, who longed for Truman’s release, attempted to invade that world and give Truman understanding. She chose to disobey the director and was cast out, losing the benefits of the artificial world of Sea Haven. She is the figure most comparable to the serpent, but in the movie she is one of the heroes. The film ends with her running out of her apartment to go find the liberated Truman and welcome him to the real world.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219–220.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순종하면 영생을 얻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요구하는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마음대로 수정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그대로의 순종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명령을 상황화한다. 물론 성경의 내용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나의 상황에 맞게 하향평준화시켜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동산 중앙의 열매에 대해서 만지지 말라거나, 먹으면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하나님의 말씀을 맞게 왜곡시킨다. 이니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존재로 존귀하고 모든 피조물위에 뛰어난 존재이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욕망이 우리의 눈을 가린것이다. 문제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7절을 보면 그들의 문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을 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뱀은 유혹을 통해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했지만 결과는 눈이 밝아져 벌거벗었음을 부끄러워하게 된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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