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No soldier dgets entangled in civilian pursuits, since his aim is to please the one who enlisted him. eAn athlete is not fcrowned unless he competes according to the rules. It is gthe hard-working farmer who ought to have the first share of the crops
d 2 Pet. 2:20
e See 1 Cor. 9:25
f [ch. 4:8]
g 1 Cor. 9:10; [Heb. 6: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후 2:4–6.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후 2:3–6.
 
1-2절을 통해서 복음 전수의 사역을 명한 바울은 이어지는 3-6절을 통해서 충성된 복음 사역자가 닮아가야할 자세에 대하여 세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경기하는 자, 수고하는 농부
 
3절)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의 삶을 자주 군사로 비유하였다. 
빌립보서 2:25
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빌레몬서 2
2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고린도전서 9:7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고린도후서 10:3–4
3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디모데전서 1:18
18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여기서 병사로 번역된 ‘스트라티오테스’는 ‘군대, 무리’를 의미하는 ‘스트라디아’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당시 로마 제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했기에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군인의비유는 매우 실감나는 실제적인 표현이었다. 
‘너는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로 번역된 ‘슁카코파데손’은 ‘함께’라는 의미를 지닌 ‘쉰’과 ‘나쁘게, 흉악하게’를 의미하는 ‘카코스’, ‘경험하다, 겪다’를 의미하는 동사 ‘파스코’의 합성어로 ‘고난받다, 핍박받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코파테오’의 합성어인 ‘슁카코파테오’의 부정과거 능동태 명령법 표현이다. 원문에서는 디모데가 누구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를 한글 번역에서는 임의로 ‘나와 함께, 즉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2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본다면 ‘바울을 포함한 많은 증인들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히브리서 13:23
23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실제로 디모데도 바울을 본받아 많은 복음의 증인들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따랐다. 
 
 
2:3 συγκακοπάθησον, “suffer hardship with” (see TCGNT for preferring this reading over σὺ οὖν κακοπάθησον), resumes the exhortation given at the beginning of the letter (see 1:8). This exhortation will be included in Paul’s last charge to Timothy (4:1–5, κακοπάθησον). As in 1:8 no reference is given for συγ-, and here as there it most likely refers to Paul because Paul applies this concept to himself in v. 9 (κακοπαθῶ) and uses πάσχω of himself in 1:12 following the use of συγκακοπάθησον in 1:8.
ὡς, “as,” introduces the comparison: Timothy must suffer as a soldier. Paul uses military imagery elsewhere (e.g., 2 Cor. 10:3–5; Eph. 6:10–17; Phm. 2; see Pfitzner, Agon Motif, 157–86), though not always with the same words (στρατιώτης, “soldier,” here only in Pl.*, NT 27x; cf. στρατεύω in Pl.* 4x: 1 Cor. 9:7; 2 Cor. 10:3; 1 Tim. 1:18; here; see O. Bauernfeind, TDNT VII, 701–13), often in a context of struggling against opponents of the gospel, as in 1 Tim. 1:18. Paul uses καλός, “good,” here in the sense of praiseworthy or outstanding (cf. τὴν καλὴν στρατείαν in 1 Tim. 1:18). Genitive ΧριστοῦἸησοῦ indicates the one who has enlisted Timothy and whom he serves as a soldier and prepares the way for the analysis in v. 4.
TCGNT B. M. Metzger, A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 New York, 1971.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92–393.
 
4절) 바울은 본절에서 군인의 특징중에 하나로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부르신 분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것을 디모데에게 촉구한다. ‘자기 생활’로 번역된 ‘투 비우 프라그마테이아이스’이다. ‘비우’는 ‘생계, 생활’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삶에서 발생하는 행동과 사건을 의미한다. 
 
 
 
한글 번역은 ‘프라그마테이아이스’를 번역하지 않았다. 이는 눅 19:13에 사용된 ‘장사하다, 사업하다’라는 동사 ‘프라그마테우오마이’의 명사형이다.
누가복음 19:13
13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바울은 여기서 ‘자기 생활’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군 생활’을 대조시킴으로 일반 시민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병사로서의 공적인 직무 수행에 방해되는 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병사로 복무하는 자가 시민으로서의 삶에 일체 개입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얽매이는’으로 번역된 ‘엠플레케타이’는 본래 ‘섞어 짜다’라는 뜻을 지닌 ‘엠플레코’의 현재형으로 벧후 2:20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베드로후서 2:20
20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여기서는 ‘휘말려 들어가다, 연루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병사들을 사적인 일에 연루되어 직무 수행을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군사된 자가 무조건 자기의 삶을 일상의 영역과 단절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복음의 군사된 자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게 하는 개인적인 삶, 일상의 영역을 단호히 경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이 아니라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하려 함이라’로 번역된 ‘히나’는 이하 문장의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서 병사로 모집한 자는 군대로 말하면 국가 내지는 상급자를 의미하겠지만 복음의 군사인 우리들을 모집하신 분은 다름아닌 ‘그리스도’이시다. 군 입대하여 군사가 되면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고 훈련을 받고 조직의 규율에 따라 생활한다. 군대은 전쟁을 준비하는 집단으로 상관의 명령이 있으면 죽음도 불사해야하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시민으로 일상을 누리다가, 본문의 말대로라면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 살다가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 생활이 아니라 조직의 명령, 상관의 명령에 복종, 충성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기쁘게’로 번역된 ‘아레세’는 ‘기쁘게 하려고 애쓰다, 편의를 주려고 노력하다’라는 뜻을 지닌 원형 ‘아레스코’의 가정법으로 군인의 의지와 열망이 그의 상관의 의지와 열망에 부합해야 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복음의 정병으로 부름받은 우리들은 우리의 대장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4 The statement in this verse speaks of the discipline needed to be a soldier. The operative verbs are “entangle” and “please.” The soldier does not become entangled in things that would be a hindrance to his singleminded dedication to follow gladly the commands of his leader. The implication is that Timothy should not let anything in this life distract him, Christ’s soldier, from pleasing and following Christ, his commander, even though such a course involves suffering hardship. οὐδείς, “no one,” makes the statement a general principle. The participle στρατευόμενος (in Pl.* at 1 Cor. 9:7; 2 Cor. 10:3; 1 Tim. 1:18) places emphasis on the actual involvement of the soldier in his task. TEV has wisely captured that by rendering the participle with “a soldier on active duty.” ἐμπλέκεται** is either passive, “is entangled,” or middle, “entangles himself,” and is used only figuratively in the NT (also in 2 Pet. 2:20) of the experience of one caught up in something. πραγματείαις** (a NT hapax) is used here and in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only in the plural and has the meaning “undertakings” or “affairs.” τοῦ βίου is used here of earthly or everyday “life” (BAGD s.v. 1; cf. Lk. 8:14).
This assertion is given to teach Timothy through analogy, not as direct instruction. The analogy teaches that ministers should not be distracted by the normal affairs of everyday life in such a way that they cannot and do not give themselves wholeheartedly to their commander and his orders (cf. the same concern for every professed believer in Lk. 8:14, which is obviously meant in terms of priorities and not as an absolute). Paul concretely applies this principle in 1 Corinthians 9, insisting that ministers be paid so that they can devote themselves to their ministry (1 Cor. 9:7–14; cf. Gal. 6:6; 1 Tim. 5:17–18; Tit. 3:13–14; 3 Jn. 5–8). But this application is not absolute: Paul presents this argument for paying ministers together with an argument for the propriety of his own tent-making work (1 Cor. 9:12, 15ff.), noting, however, that he does that work to further his service for Christ, not in such a way that it distracts him from that service (vv. 18ff.). Thus this passage does not teach that Timothy, or any other minister, should withdraw from everyday life, but that he should not let it and its affairs distract him from service to his commander.
A ἵνα clause sets forth the purpose for this demand. A soldier is to be unentangled so that he is free to “please” (ἀρέσῃ; perhaps to “please” by good service, as Lock suggests, referring to Milligan, Thessalonians, at 1 Thes. 2:4) “the one who enlisted him as a soldier” (τῷ στρατολογήσαντι,** a biblical hapax). Paul uses the participial form probably because it emphasizes that a man is a soldier because someone enlisted him and entails that, therefore, he should serve that one. Timothy is Christ’s soldier because Christ enlisted him (v. 3), and therefore he ought to serve him with unentangled service. The implication, following v. 3, is that such service involves suffering and that Timothy should be willing to please his commander by bearing such suffering.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TEV Today’s English Version (Good News Bible)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93–394.
 
5절) 군인의 비유에 이어서 이제 경기하는 운동선수의 비유를 들어 복음의 일꾼의 사명을 설명한다. ‘경기하는’으로 번역된 ‘아들레’는 ‘경쟁’을 의미하는 명사 ‘아들로스’에서 파생된 동사 ‘아둘레오’의 현재형으로 ‘경쟁하다, 싸우다’라는 의미이다. 당시 헬라지역에서 올림픽 경기가 유명했기에 바울은 이 경기에 참여하는 자들이 법대로, 룰대로 경기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결과를 상기시키면서 충성된 복음의 일꾼으로 하여금 법대로 경기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의 명사는 ‘아틀레시스’인데 여기서 ‘운동선수’를 의미하는 ‘athlete’라는 단어가 나왔다.
 
‘법대로’로 번역된 ‘노미노스’ 문자적으로 ‘법에 일치하게’라는 의미로 딤전 1:8에서 ‘적법하게’로 사용되었다. 운동 경기마다 그 경기에 맞는 규칙들이 있다. 축구의 경우 골키퍼를 제외하고 손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반대로 농구는 발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법이 제대로 경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주지되고 심판을 통해서 집행되어야 한다. 만약 올림픽 경기에 참여한 선수가 경기의 규칙을 무시하게 되면 반칙을 하는 것이고 이것의 결과는 승리의 면류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면류관을 얻지’로 번역된 ‘스테파누타이’는 본래 ‘면류관’을 의미하는 ‘스테파노스’에서 파생한 동사 ‘스테파노오’의 현재 수동태로 본문에서는 부정어 ‘우’와 함께 사용되어 반칙을 행한 자는 경기에 참여해 승리한 것 같지만 경기 마치고 시상식에 마땅히 받을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면류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면류관 자체를 ‘구원’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한 충성된 일꾼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의미한다. 성경은 이를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전 5:4)등으로 표현한다. 
본절에서는 경기하는 운동선수의 비유를 통해서 승리하여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되 공정한 방법으로 노력해야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운동 선수들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 불법적인 약물이나 기구등을 사용하는 것은 이것이 밝혀지지 않았을때는 잠깐의 영화를 누리겠지만 이것이 밝혀지게 되면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2:5 Paul adds (δέ) the analogy of a law-abiding athlete as a model for Timothy. Adverbial καί, “also,” indicates that this image is making much the same point as the preceding one (cf. Ellicott and NIV: “likewise”). This statement regarding the athlete is a general principle, as is evidenced by the generalizing ἐὰν … τις (BAGD s.v. τίς 1aγ; 1 Tim. 1:8) and especially by the concluding ἐὰν μὴ νομίμως ἀθλήσῃ. The principle is stated under the figure of anyone who “competes in a contest” (ἀθλέω,** a biblical hapax used twice in this verse; cf. E. Stauffer, TDNT I, 167f.; συναθλέω** in Phil. 1:27; 4:3).
Only with the apodosis (οὐ στεφανοῦται) with its exception clause (ἐὰν μὴ νομίμως ἀθλήσῃ) is the principle fully stated: “He is not crowned unless he competes by the rules.” The principle is that, just as with a soldier, so also with an athlete there are things that must be done. στεφανοῦται** (also in Heb. 2:7, 8), “is crowned,” refers to the wreath (στέφανον) that the victor wins as the prize (τὸ βραβεῖον) in the games of the day (1 Cor. 9:24–25; cf. W. Grundmann, TDNT VII, 615–36). 1 Cor. 9:25 also refers to a perishable wreath, indicating that the analogy points to an imperishable one. In 2 Tim. 4:8 we learn that the analogy points to a “crown of righteousness.”
ἐὰν μή introduces the exception clause that qualifies the apodosis: One is not crowned “unless.” The crucial word is νομίμως** (also in 1 Tim. 1:8), which is emphasized by its position. It means here “in accordance with the rules or laws of the athletic event” (cf. BAGD). Whether Paul was reflecting the requirement of some games that the athlete declare that he has trained the required number of months before being permitted to compete (see Kelly, Lock) need not be answered to understand the point of the analogy. The point is that the athlete must compete by whatever rules there are to gain the desired goal. νομίμως generalizes and leaves that point undefined, but in so doing makes the principle all the more forceful. For the Christian minister the point is that one of the laws of the Christian life is that God requires him to be willing to suffer hardship (v. 3; cf. 1:8). Paul makes this point explicitly in 3:12 (cf. Mt. 5:10–12 par. Lk. 6:22–23). The image of being crowned with a wreath has introduced the idea of blessing and reward.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par. parallel Gospel passages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94.
 
6절) 병사의 비유, 운동선수의 비유에 이어서 이제 6절은 수고하는 농부의 비유를 사용한다. 
‘수고하는 농부’로 번역된 ‘톤 고피온타 게오르곤’에서 ‘코피온타’는 ‘힘들여 고생하다, 피곤하다’라는 의미의 ‘코피아오’의 현재 분사형으로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며 쉬지 않고 땀흘리는 농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농부’로 번역된 ‘게오르곤’의 원현 ‘게오르고스’는 ‘땅’을 의미하는 ‘게’와 ‘일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르고’의 합성어이다.  그러니까 이를 직역하면 ‘힘들여 땀흘려 수고하는 토지 경작자’이다. 고전 9:10에서는 ‘밭가는 자’로 번역하였다. 
고린도전서 9:10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코피아오는 ‘지치다, 피곤하다, 애쓰다, 수고하다’라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땅은 정직하다. 농부가 땀흘려 수고한 만큼 열매로 보답한다. 그렇기에 수고한 농부는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 곡식, 열매를 영적인 차원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물질적인 차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차적으로는 물질적인 것으로 문자그대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면 이차적으로 수고하며 복음을 전하는 이가 구원의 기쁨을 먼저 맛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결국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바울에게 위임된 복음 증거의 사명을 위탁받아 이 사역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땀흘리며 수고하는 농부와 같이 수고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고 그러면 먼저(프로톤)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흘리며 수고하며 가꾼 농부에게 가을에 추수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수고하고 애쓰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에게는 그 뿌린 말씀의 씨앗을 통해서 풍성한 영적 열매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2:6 The image of the farmer who receives his share of the crops reiterates the idea of reward and continues the emphasis on the need for suffering by the use of the qualification “hard-working” (κοπιῶντα). In this context the verb κοπιάω means “work hard, toil” but also carries, in the transferable lesson of the analogy, the nuances “strive” and “struggle” (BAGD s.v. 2). This word is one of Paul’s favorites. He knows quite well its literal and physical significance from his own experience (1 Cor. 4:12) and urges such diligence upon Christians in their daily work (Eph. 4:28). Against this backdrop of his own experience, he most often uses the term to refer to the effort and struggle needed in spiritual ministry (cf. especially 1 Cor. 15:10; Phil. 2:16; Col. 1:29; and elsewhere in the PE* 1 Tim. 4:10; 5:17). The participle presents the condition (Bouma, Ridderbos) necessary for the farmer, just as there were conditions necessary for the athlete and the soldier. Paul does not hesitate to present such a condition in this image and elsewhere because his exhortations are premised on the enabling power of the grace in Christ (v. 1; cf. 1 Cor. 15:10; Col. 1:29).
The image highlights not only the necessity for “hard work” but also the reward that results from such labor and carries on the note of reward sounded in the preceding image (v. 5). δεῖ with accusative τὸν κοπιῶντα γεωργόν and the infinitive μεταλαμβάνειν can be rendered literally “it is necessary for the hard-working farmer to receive.” In idiomatic English the phrase is turned around with the hard-working farmer placed near the beginning of the sentence and the words “ought” (NASB, RSV) or “should” (TEV, NIV) rendering δεῖ. In any event, δεῖ expresses “the compulsion of what is fitting” (BAGD s.v. 6; cf. v. 24). μεταλαμβάνειν (here only in Pl.* although twice Acts has Paul using the word: 27:33, 34; cf. μετάλημψις in 1 Tim. 4:3) is used in the sense of “receive one’s share of” (cf. G. Delling, TDNT IV, 10f.). The farmer receives his share of “the crops” (τῶν καρπῶν, literally “fruits,” but as LSJM point out, usually “the fruits of the earth”).
πρῶτον, “first,” has been a puzzle for commentators. A basic question is whether it represents only something in the image of the farmer or is intended to carry over to Timothy’s situation. (1) Calvin and others have suggested that πρῶτον be taken adverbially with the participle κοπιῶντα: It is necessary that the farmer should first labor, and then enjoy the fruits. But it is doubtful that the Greek can be properly understood in this way, and thus most commentators have rejected this solution (e.g., Ellicott). (2) Others have suggested that the reference here is to the “first share of the crops” that the supported minister is to receive (e.g., Dibelius-Conzelmann, Hanson; cf. 1 Cor. 9:7, 10). Fee correctly repudiates this position by saying that it “is totally foreign to the context.” (3) If Paul does intend πρῶτον to carry over to Timothy’s situation and refer to something that the minister shares in here and now before his future reward, then it might refer to his seeing the spiritual results of his labors in the life of converts. Paul does talk about the “fruit” of his missionary endeavor among the Gentiles (Rom. 1:13) and refers to those who have become Christians under his ministry as his “crown” (Phil. 4:1; 1 Thes. 2:19). But even this solution, although more in keeping with the context and flow of the argument, seems less likely than (4) the recognition that πρῶτον is simply part of the imagery and is not to be pressed in regard to Timothy’s situation. The farmer’s arduous labors are so certainly rewarded that one can speak of the farmer as partaking of the fruits “first,” before anyone else does.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TEV Today’s English Version (Good News Bible)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LSJM H. G. Liddell and R. Scott, A Greek-English Lexicon, rev. and augmented by H. S. Jones and R. McKenzie, with a Supplement by E. A. Barber. Oxford, 1968.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94–395.
 
 
728x90


The Parable of the Tenants
12 bAnd he began to speak to them in parables. “A man planted ca vineyard dand put a fence around it and dug a pit for the winepress and built a tower, and eleased it to tenants and fwent into another country. When the season came, he sent a servant1 to the tenants to get from them some of the fruit of the vineyard. gAnd they took him and beat him and sent him away empty-handed. gAgain hhe sent to them another servant, and ithey struck him on the head and jtreated him shamefully. gAnd he sent another, and him they killed. And so with many others: some they beat, and some they killed. He had still one other, ka beloved son. lFinally he sent him to them, saying, ‘They will respect my son.’ But those tenants said to one another, m‘This is the heir. Come, n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And they took him and killed him and othrew him out of the vineyard. What will the owner of the vineyard do? pHe will qcome and destroy the tenants and rgive the vineyard to others. 10 sHave you not read tthis Scripture:
u“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2
11 this was the Lord’s doing,
and it is marvelous in our eyes’?”
12 And vthey were seeking to arrest him wbut feared the people, for they perceived that he had told the parable against them. So they xleft him and went away.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한 자들을 향해서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인가를 물으신 주님께서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본문의 포도원의 농부들을 진멸하는 것이 하나님께 반역한 이스라엘, 성전을 허무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2절) 비유로 말씀하시는 주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울타리를 세우고 포도주짜는 구멍을 파고 망대를 세우고나서 이를 관리하도록 농부들에게 세로주고 다른 나라를 갔다. 주인은 많은 비용과 수고로 포도원을 세웠고 농부들에게 이를 맡겼다. 주인이 이 농부들에게 포도 열매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요구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 The landlord goes to great expense, which justifies his rightful expectation for a share in the profit. The allusion to Isa. 5:1–5 (vineyard, fence, tower) suggests that Jesus continues the theme of “fruit of worship and righteousness for God” (see note on Mark 11:13–14). Immense Herodian-era manor houses with walls, towers, and a winepress have been excavated near Caesarea Maritima.
이에 열매 맺는 때가 되어서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을 얻고자 주인은 한 종을 대리인으로 농부들에게 보냈다. 

본문의 비유는 분명하게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울타리는 동물을 막기 위한 것이고, 포도주를 짜는 틀은 포도를 짓이겨서 그 즙을 만드는 장치, 구멍이고 망대는 동물이나 도적을 감시하기 위한 높은 감시대를 의미했다. 이사야가 제기한 문제는 열매 없음이었다. 하지만 현재 비유에서 강조하는 것은 농부들의 완악함이다. 말할것도 없이 이 농부들은 사두개인, 기득권을 지닌 제사장들을 의미한다. 
  • The allusion is to Isa 5:1–7, where the vineyard clearly is Israel, and the owner is God. The same identifications are to be made in the parable here. No attempt should be made, however, to identify the wall, the pit, or the tower as the law, the altar, and the temple, respectively, as did the medieval church in its excessive allegorical interpretations. They simply are part of the apparatus of the story. They do accurately describe a first-century Palestinian vineyard. The wall (“hedge,” RSV, NKJV; but not “fence,” NRSV, GNB) was to keep animals rather than people out. The “pit for the winepress” was actually a trough into which the juice ran after having been crushed from the grapes. The tower was to provide an elevated observation point and shelter for those who kept watch against animals and thieves.
  • In Isaiah the problem is a fruitless vineyard, i.e., a nation that failed to produce the fruits of righteousness. In the present parable the emphasis is on the wickedness (greed, dishonesty, violence, murder) of the tenants, who seem to represent the leaders of the nation. Unfortunately such things actually characterized the Sadducees, the priestly aristocracy.

3-5절) 그런데 농부들이 주인의 종을 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다. 이어 다른 종이 왔으나 이제는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모욕을 주었다. 이어 다른 종을 보내자 농부들은 그 종을 죽였고 그 외에 많은 종들을 이어 보내었는데 그들을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본문에서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단어들을 보면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종들을 잡아(물리적으로 포박하여) 때리고 그들을 빈손으로 보냈다. 이어서 다른 종를 보내자 그의 머리를 때리고 모욕을 주었다. 이제 또다른 종을 보내자 그를 죽였다. 이후에 보낸 종들은 때리고 죽였다. 
본문 4절에 머리에 상처를 내고라는 단어는 ‘케팔리오’라는 단어로 뒤에 나오는 모퉁이의 머릿돌에서 나오는 ‘케팔레’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유대인들은 본문을 들으면서 농부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을 때리고 함부로 대했다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6절) 이제 주인은 오직 한 사람,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최후로 보내면서 자신의 아들은 존경할 것을 바랬다. 본문의 아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The “son, whom he loved” is of course Jesus (see 1:11; 9:7). Whether the original hearers of the parable realized this is unlikely, but the original readers/hearers of Mark’s Gospel certainly did. The Greek could be translated simply, “He still had one beloved son.” Commentators and lexicographers differ, however, on whether in context the word means “beloved” (RSV, NASB, REB; cf. NEB) or “only” (NEB, REB margin). The NIV (as well as the GNB) attempts to convey both ideas. Etymologically the word is related to the word “love,” but in Gen 22:2, 12, 16 LXX it means only, in the sense that Isaac was certainly the only child of the promise.

7-8절) 이에 농부들은 주인이 죽고 아들을 보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인이 죽으면 그 포도원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으로 여기고 주인의 아들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그 시체를 포도원 밖에 내던졌다. 이처럼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행동이다. 
  • The ultimate insult was to leave a corpse unburied. That was not the fate of Jesus, and again the early church does not appear to have invented the parable on the basis of what had happened previously. Jesus, rather, suffered outside the city (cf. Heb 13:12).

9절) 포도원 주인은 이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것이다. 본문의 다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것을 거부했다. 이제 이 약속은 이방인들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는 새 이스라엘이고 진정한 이스라엘이다. 주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교회에 이 사명을 맡기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 The origin of this verse has been denied to Jesus because elsewhere he did not answer his own questions. He may not have done so in the present instance, as Matt 21:41 indicates. Mark simply was not concerned to identify who gave the answer. The “others” to whom the vineyard was given were, of course, the Gentile church. The church is the inheritor of the position formerly held by Israel, the recipient of many of the promises originally made to Israel. It is the new Israel, the true Israel. By recording the statement of Jesus, Mark may have wanted to make that point.

10-11절) 이제 마가는 포도원 비유에서 건물의 비유로 관심을 돌린다. 건축자(이스라엘의 지도자들)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머릿돌(the cornerstone)은 건물의 건축시에 첫번째로 놓는 돌로 건물 외벽의 코너, 즉 두 벽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지는 돌을 의미한다. 원어로 ‘케팔레 고니아’로 케팔레는 머리를 의미하고 고니아는 모퉁이, 코너를 의미한다. 이는 모퉁이의 머리리는 의미라 말그대로 모퉁이의 머릿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약에는 5번 등장하는데 마 21:42, 막 12:10, 눅 20:17, 행 4:11, 벧전 2:7이다. 
  • Here the metaphor changes from a vineyard to a building. The quotation is from Ps 118:22–23, a passage quoted two other times in the New Testament in addition to the parallels in Matt 21:42 and Luke 20:17 (Acts 4:11; 1 Pet 2:7). The Jews understood the stone to be their own nation, which was rejected by other nations but which would be restored by the Lord. The early Christians understood it to be Jesus Christ (note especially Eph 2:20). Other “stone” passages are Rom 9:33 and 1 Pet 2:8, which quote Isa 8:14, and 1 Pet 2:6, which quotes Isa 28:16. As the NIV note indicates, the Greek word Mark used can mean either the capstone of an arch or the cornerstone of a wall.
또한 머리를 상한 선지자는 세례 요한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6:27)

실제로 유다의 멸망이후에 예루살렘은 훼파되었다. 성전은 파괴되고 성문은 불타버렸다. 실제로 솔로몬의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 쓰레기더미안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후에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버려졌던 건축재료들은 찾아냈고 사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된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나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헤게모니에 관심이 없으셨다. 그분의 비전은 하나님과의 화해였다. 

예수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라고 묻는 무리들의 질문에 대해서 주님은 답하지 않으시고 비유를 말씀하신다. 복음서의 비유는 흔히 심판의 사인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지속적으로 실패한 결과이다. 
  • Jesus had declined to give the leaders of Jerusalem a direct answer about his authority, but as he began to speak in parables, he gave them an indirect one. In this Gospel parables are often a sign of judgment. They indicate that someone has stopped listening to God. A parable is the first consequence of a persistent failure to listen. A parable makes understanding what God is saying more difficult, and the parable brings with it a set of new conditions. In order to understand God it is necessary to see oneself through the lens of the parable, something that is typically unflattering. Parables are a witness that a profound alienation has occurred, and repentance in some form becomes a requirement for understanding what God says. Speaking in parables was not, then, a concession to Jesus’ opponents. It was an escalation of the argument.

마가는 사 5장의 포도원 비유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첫번째 이사야의 비유에서 사랑받는 자는 하나님인데 예수님의 비유에는 사랑받는 자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다. 마가는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가난한자를 착취한 유다의 지도자에게 죄를 물은 것처럼 하지 않으신다. 이사야는 쓴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서 경고했다면 예수님의 비유는 포도원의 소산을 농부들이 정당하게 주인에게 드리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다. 주님이 대리인, 종들을 통해서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이를 거절한 것이다. 도리어 그들은 그러한 요구를 하는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나아가 아들을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세번째로 이사야의 비유는 포도원이 황무지가 될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마쳐진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농부들을 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비유는 포도원은 파괴되지 않고 단지 농부만이 바뀔 것을 말하고 있다. 
  • The parable of the tenants is a revision of the parable of the vineyard found in Isaiah 5:1–17. In the original parable the vineyard represented the people of God. When God came to gather fruit from the vineyard, there were no sweet grapes to pick—only bitter ones. The bitter grapes symbolize the bloodshed and oppression that the people of Israel and Judah had produced instead of the justice and righteousness God had hoped to harvest. Isaiah’s parable ends with a pronouncement of judgment against the people; the fertile land of Judah would become a wasteland.
  • Although Jesus borrowed the themes of the vineyard, the beloved, the winepress and the watchtower from Isaiah’s parable, he made three fundamental changes that give his parable a different focus. Isaiah’s parable is set as a song to the beloved one, that is, to God. In Jesus’ parable the beloved one is the son of the owner of the vineyard. In the Gospel of Mark the term beloved occurs in two other places. At both the baptism of Jesus an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God called Jesus the son whom I love. Reading the parable in the broader context of Mark, it appears that Jesus has put himself inside this parable.
  • Second, Jesus did not charge the rulers of Judah with exploiting the poor, as Isaiah did. The thrust of this parable is not that the vineyard produces bitter fruit. The problem is that the tenants will not give the owner any of the vineyard’s produce. These tenants refuse to recognize the owner’s rights and the authority of his representatives. They are guilty of robbery, the same charge Jesus made in Mark 11:17, and ultimately of murder. There is plenty of bloodshed in this parable, but this violence is not exercised by the rich and powerful against those beneath them. In killing first the servants and finally the beloved son, the tenants attacked the owner. This is more like a rebellion—violence from the bottom upward.
  • Third, Isaiah’s parable ends with a warning that the vineyard would become a wasteland. His parable was a prophecy of doom for the people of Judah. Jesus’ parable ends with a different scenario: the owner will destroy the tenants and give the vineyard to others. This parable envisions the destruction of only the tenants. The vineyard is not to be destroyed, but the tenants will be replaced.

본문은 분명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비유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포도원 주인께서 이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실 것이고 이제 이것을 관리하고 열매를 맺게해서 주인에게 바칠 책임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인이 열매를 요구할때 우리는 어떤 열매를 그분께 돌릴 것인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