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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만남 : 성경적 믿음의 원리

1.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축복을 누리는 열쇠

* 생각해볼 질문 :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러한 놀라운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가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리어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처음엔 다 그래. 시간이 조금 더 지나봐.”라고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당연해지는 것은 온전한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1)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누가복음 8:5–15 (NKRV)

5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공관복음에 모두 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중에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께서 그 비유의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신 것으로 11절에서 분명하게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씨가 뿌려져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 열매는 바로 12절에 의하면 믿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뿌려지는 씨앗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받아들여 구원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원의 내용은 앞서 살펴본대로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만나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온전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공동체,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네 가지 밭

⓵ 길가 :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마귀가 그것을 빼앗아 감, 교만하거나 딴 생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배후의 영적 세력이 믿지 못하게 함

⓶ 돌짝밭 :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잠시 믿다가 시련을 당하면 배반하게 됨,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⓷ 가시덤불 :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으로 인해 온전히 결실치 못함, 믿음 생활을 하지만 근심과 유혹에 넘어짐

⓸ 좋은 땅 :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함, 그러기 위해서 첫번째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두번째로 굳게 지켜야 한다. 굳게 지키고 간직하는 것은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과 비교된다. 어려움 속에서 돌짝밭은 뿌리가 없음으로 날리지만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세번째로 인내로 견뎌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가시 덤불과 같은 유혹과 염려가 엄습할 때 우리는 견뎌내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돌짝밭과 가시덤불은 풍성한 삶을 통해 열매맺는 삶을 저해하는 방해물입니다. 우리들의 삶가운데 닥쳐오는 어려움과 역경, 유혹과 염려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습니까? 뿌리를 깊이 내려 굳게 지키고 인내로 견뎌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2. 은혜와 믿음

* 생각해볼 질문 : ‘믿음이 좋다’,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것을 굳게 간직하며 견디는 것이 믿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8–9 (NKRV)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개역성경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영어번역이나 새번역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더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믿음일까요?은혜일까요? 

1) 은혜

은혜란 무엇입니까? 예배 드리면서 감동을 받고 찬양하고 기도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것도 은혜이긴 합니다. 하지만 은혜중의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반역하여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은혜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믿음

어떤 분들은 엡 2:8의 ‘이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볼 때 믿음, 은혜는 둘 다 여성 명사인데 반하여 본문의 ‘이것’은 중성 대명사로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엡 2:5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5, NKRV)

범죄로 죽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사신 것이 은혜입니다. 믿음이란 그 하나님의 은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요약하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는 것,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실 일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네’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기 어렵기 때문에 애써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자세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격적인지, 절대적인지를 모르기 때문에안다면 그렇게 반응할 수 없습니다. 

낚시배에서 낚시를 하다가 갑작스런 파도에 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허우적 거리고 있는데 배에 있던 선장이 밧줄에 튜브를 달아서 던져 주었습니다. 그것을 붙잡고 가까스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가 던져준 밧줄이 은혜라면 그것을 덥석 잡은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는지 안다면 밧줄을 잡는 그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정확하게 밧줄을 던져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심으로 구원의 밧줄을 우리에게 정확하게 던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잡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은혜 때문입니다. 믿음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다면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3.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

* 생각해볼 질문 : ‘미신’이나 이단의 믿음과 기독교의 믿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앞서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받으들이고 그것을 품고 굳게 간직하고 인내로 지키는 것이 믿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를 감사로 받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믿음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좀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가 믿어야 할 두 가지

히 11:6은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정의해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NKRV)

본문은 우리에게 두가지를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이 계신 것, 두번째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계관은 전제의 문제입니다. 유신론은 신을 믿고 무신론은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유신론은 신이 있다라는 것을 믿는 것이고 무신론은 신이 없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두번째로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고 받고 싶은 것을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 돈, 승진, 공부 등등등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여기서 상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주시고 싶어하시는 구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이 바로 복중의 복이고 상중의 상인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인격적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 잘못된 믿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닌 잘못된 믿음이 여럿 있습니다. 미신은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맹신은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광신은 자기 멋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은 확신입니다. 확신이란 사실에 근거해서 믿는 것, 진리에 근거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부족해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믿음이 부족해서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고 대학에 떨여졌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대학에 떨어지면 부모들은 얼굴을 못들고 다니고 남편이 사업이 잘 안풀리면 아내들은 얼굴을 못들고 다닙니다. 강하게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복을 주셔서 살 잘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척결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지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을 강하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샤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에서는 특히 이런 성향이 강합니다.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강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그것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음에 그대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나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과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지성으로 빌면 그렇게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두통이 심합니다. 어떤 약을 먹어야 합니까? 두통이 있으면 두통약을 먹어야 한다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소화제를 먹으면서 이걸 먹으면 두통이 나을꺼야라고 굳게 믿고 소화제를 먹습니다. 바른 사실위에서 바른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강하게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강한 믿음을 보시고 원래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러한 잘못된 믿음을 걷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는데 건강 대신에 질병을, 사업의 성공 대신에 실패를, 결혼 대신에 오랜 독신 생활을, 가족의 치유 대신에 죽음을 주시면 하나님에 대한 실망과 불평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분노를 품거나 하나님을 떠나버리고도 했습니다. 바로 잘못된 믿음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우리의 신심으로 하나님을 움직여 내 뜻을 이루어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이해하고 믿음으로써 내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되고 성숙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정말 중요한데 그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4. 믿음으로 사는 삶의 원리

* 생각해 볼 질문 :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들은 살면서 갑자기 우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너무 외롭고 울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나에게 무관심하신 것 같아. 오늘은 하나님이 날 떠나신것 같아’ 이런 마음이 들때 그 느낌을 따라 울적해져 낙심하는 것이 보는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느껴지는 외로움과 울적함, 하나님께서 날 떠나신 것같다라는 느낌은 인정하되 그 느낌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느낌에 굴복해서 폭음을 하거나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든다해도 여전히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내가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지만 이런 우리를 위해 대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무가치하다고 생각됩니다. 비교의식에 휩싸여서 눈을 붙이지 못하며 자신을 자책하며 실패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는 것, 지금 그 일이 진행중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문득 결국 '사람은 혼자야, 다 필요없어. 기껏 마음을 털어놨더니 내 진심도 몰라주고 이게 무슨 진실한 공동체야. 순 엉터리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부르셨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되게 하셨음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성장시켜주실 것이다’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시각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믿음과 느낌의 문제

Fact(사실)-Faith(믿음)-Feeling(느낌)

기관차가 중요하고 석탄차, 객차의 순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다 무너집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실제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체험이 이 기차를 이끌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은혜를 받는 순간 어떤 사람은 주황색 빛을, 흰 빛을, 눈물을 흘리는 사람, 따뜻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체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믿을 때 느낌, 체험이 따라오게 됩니다. 

 

3) 믿음의 의미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그분 앞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장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자신에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마음이 생길 때 이렇게 사실에 근거하여 주장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NKRV)

“기모야. 왜 낙심하니? 힘내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데 낙심하지 말고 견뎌봐.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꺼야’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축복을 꺼내 쓰는 것입니다. 말씀을 주장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공동체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혼자라고 느껴질 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믿음의 공동체 안의 신뢰하는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자신의 어려움과 아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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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의 기초(김형국, 포이에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NKRV)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아주 풍성한 삶, 이 땅에서 매우 매력적이고 균형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세가지 이유

1) 예수님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2)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3) 균형있는 삶을 잃었기 때문에

 

'풍성한 삶의 기초'를 실패하는 일곱 가지 비책

1) 내용을 대충 빨리 읽으십시오.

2) 대답은 ‘예’, ‘아니오’로만 하고 만남을 짧게 하십시오. 

3) 과제물과 성구 암송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4) 급하고 바쁜 일이 있을 때는 한 번쯤 쉬십시오. 

5) 이끄미와 따르미는 ‘나눔’ 시간 외에 굳이 만나거나 연락하지 마십시오.

6)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그냥 강의만 듣고 이야기만 하십시오. 

7) 노련한 이끈미라면 여러 명과 해야 훈련이 더욱 풍성해진다고 생각하십시오.

 

1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인 나(New Creation in Christ)

첫번째 만남.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축복

 

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 생각해볼 질문 : 당신은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당신에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 가짜 대학생 행세(졸업장을 얻지 못함), 가짜 그리스도인(구원을 받지 못함)-교회의 문화만을 누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회의에 빠지고, 기독교와 기독교 문화에는 익숙하지만 실제로 생명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모태 신앙-못해 신앙)

1) 출발점에 대한 오해 : 모태신앙, 영접 기도, 세례, 구원의 확신(구원의 확신을 주장하면서 구원의 내용은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2)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⓵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과 나를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나의 주인이시다. -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⓶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고 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 우리는 죄인이다.(롬 3:23) 죄는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거부하고 내 인생이 내것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⓷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가 지불해야할 대가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지불하게 하셨다. -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악한 세상에서 악에 물들어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이 그 심판을 대신 짊어지신 것이다. 내가 죽어야할 자리에서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그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감격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 

- 영접이란 ‘제가 죽을 목숨인데 당신이 생명을 걸고 나를 살려주셨으니 이제부터 제가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을 좇아다니면서 내 생명을 살려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첫번째 진리를 거부한 것이 죄이다. 이 죄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다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구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했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구원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NKRV)

 

2.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이들의 고백

* 생각해볼 질문 : 스스로를 자신있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사도 바울의 고백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로마서 14:7–9, NKRV)

그리스도인은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것이라는 말은 주님을 위해서 산다라는 말보다 훨씬 강력한 표현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아내를 위하여, 아내의 것) 

 

2)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의 삶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시다’라는 고백의 진정성은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나타난다. 직장, 이성교제, 결혼, 자녀 양육, 주택 구입…(마음의 회심과 지갑의 회심)

 

3) 완벽과 진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완전하지 못하다.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했음에도 사탄은 우리의 완벽하지 못한 부분, 부족한 부분, 덜 성숙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라고 참소한다. 훈련소에 갓 입소한 훈련병과 특전사 모두 군인이다. 지금 나의 신앙의 모습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이를 배우고 노력함으로 성숙함을 추구해 가야 한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지 말고 자라가야 한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 1

* 생각해볼 질문 :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당신이 누리게 된 좋은 것들은 무엇입니까? 

- 집안에 거액의 돈을 숨겨두고 죽은 노인, 엄청난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

 

세가지 축복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아들이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요 1:12, 롬 8:15)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NKRV)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NKRV)

우리는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인 것을 거부하고 우리 스스로가 주인 행세를 하여 죄에 팔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세상과 죄, 욕심과 정욕에 종이 되어 있는 우리를 값을 지불하고 되사오셨습니다. 우리의 가격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적혀 있습니다.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13–14, NKRV)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죄사함을 받았다. 

 

2)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다. 

우리는 사실 별볼일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더이상 평범한 존재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NKRV)

우리는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별볼일 없는 나뭇가지였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 NKRV)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 포이에마, 걸작품(masterpiece)이다. 우리는 자신을 불량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속에 지우고 싶은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하실 때 인간이 절대 빚을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깨진 인생, 회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인생을 하나님이 만지실때 그 인생이 특별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사도 바울을 만지신 하나님)

 

4.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일 2

* 생각해볼 질문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까? 언제, 왜 그런 생각이 듭니까? 

3)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속했다.

고아 같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서 2:19, NKRV)

본문은 우리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부른다.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서로 보살피고 사랑하는 특권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7, NKRV)

우리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이다. 가족이 사랑하고 보살피는 관계라면 그리스도의 몸은 유기체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1–22, NKRV)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받아들이셨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미워하실꺼야, 내가 잘못하는 것을 책망하시고 심판하려고 하실꺼야’라고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한 존재야’라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난 별볼일 없는 존재야. 내 삶에 뭐 볼게 있나?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러?’라고 믿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에 속했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는 혼자야. 난 외로워. 아무도 내 옆에 없어’라고 믿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꾀죄죄하고 매력 없는 사람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진 일을 알고 그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매우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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