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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I will gather those of you who mourn pfor the festival,

so that you will no longer suffer reproach.3

19  Behold, at that time qI will deal

with all your oppressors.

And rI will save the lame

and gather the outcast,

and I will change stheir shame into tpraise

and renown in all the earth.

20  uAt that time I will bring you in,

at the time when I gather you together;

for I will make you renowned and praised

among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vwhen I restore your fortunes

before your eyes,” says the Lord.

p Lam. 1:4; 2:6

3 The meaning of the Hebrew is uncertain

q [Isa. 60:14]

r Mic. 4:6, 7

s Isa. 61:7

t [Jer. 13:11; 33:9]

u Isa. 11:12; Jer. 32:37; Ezek. 11:17

v ch. 2: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습 3:18–20.

 

 

14절에서 시온이 노래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형벌을 마치셨고, 원수를 제거하셨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실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두려워말라(16절) 말씀하시고 다시금 하나님 여호와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겠다(17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여호와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용사)이시며, 나로 인하여 매우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18절) 본절의 해석은 매우 난해하다. 

1) 내가 절기(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2) 축제 때에 즐거워 하듯 하실 것이다. 내가 너에게서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네가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하겠다. 

3) 나는 너에게 내리던 재앙을 거두어 들여 다시는 수모를 받지 않게 하리라.

이처럼 같은 내용이 없을 정도로 매우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은 과거의 고통과 문제들로 인해서 더이상 고통을 받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근심하던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18-20절) 앞서 우리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푸신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본절부터는 실제적으로 어떻게 남은 자들을 보실피시고 복주실 것인지를 약속하고 있다. 

1) 근심하는 자들을 모을 것이다. 

2) 너를 괴롭게 하는 자들을 다 벌하겠다. 

3) 저는 자를 구원할 것이다. 

4) 쫓겨난 자를 모을 것이다. 

5)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할 것이다. 

6) 그때에 내가 너희를 이끌 것이다. 

7) 그때에 너희를 모을 것이다.

8)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이다.(고향으로 데리고 올 것이다.)

9)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압제 당하고 저는 자들을 향하고 계신다. 본문의 저는 자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버겁고 소외되고 힘든 이들을 의미한다. 이처럼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시선을 향한다. 

저는 자는 히브리어 ‘살라’라는 동사로 신체적인 장애나 부상으로 걷는 것이 힘든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구약에서 4번 사용되고 있다. 

1. The vb. צָלַע describes a limping condition, such as that of Jacob after he wrestled with the stranger (Gen 32:32), and the lame (figuratively speaking), who will become strong when the Lord delivers his people in the last days (Mic 4:6–7; Zeph 3:19).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810.

 

3:19 rescue the lame. The weak and humble that the rebel majority abused (1:9; 3:1–2; cf. Ezek 34:21) are the very ones upon whom Yahweh’s justice would shine (3:5; cf. 2:3; 3:12; Deut 10:17–18). God would deliver the broken (Mic 4:6–7; cf. Isa 35:6; Jer 31:8; Ezek 34:16), for to them belong the kingdom and its comfort (Matt 5:3–4). Christ’s own ministry of mercy proved that he was inaugurating this eschatological age of rescue (Matt 11:5; Luke 7:22; cf. Isa 42:3; 61:1–3; Matt 15:30–31; 21:14; Luke 14:21), and through his church comparable acts of healing and restoration are to continue until the consummation (Acts 3:1–10; 8:5–8; 14:8–10; 20:35; 1 Thess 5:14; Heb 12:13; Jas 1:27). praise and honor. The Hebrew can also be translated “for praise and for honor,” which suggests that admiration and acclaim would be given not to the remnant of Judah but to God (Jer 33:9; cf. Ezek 36:23).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627.

 

19절 번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문은 ‘보라’(히네니)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압제하는 이들에 대해서 무언가를 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압제자들은 누구일까? 특정할 필요는 없고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외부자들을 통칭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본절에서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들을 다시금 모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압제자들, 괴롭게하는 자들로 인하여 고향에서 쫓겨났던 이들이 다시금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자들도 다시금 돌아오게 될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The reference to the lame and the banished is a chiastic structure which could be translated as follows: “I will save the lame and the banished I will gather.” This probably refers to the following verse which asserts that the exiles would return to their home. If the weak could make the trip “home,” then all other segments of the population would receive assurance as well. Motyer is probably on track as he sees here the motif of the final pilgrimage to Zion (Isa 35). “No personal inability will be allowed to prevent the Lord’s pilgrims from coming safely home. Rather, the Lord will provide everything necessary for them (Isa 42:16; Jer 31:7–9).”141

141 Motyer, “Zephaniah,” 3:96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499.

 

Only Yahweh speaks in 3:18–20. At this point He summarizes His acts of grace by saying He will deal with Israel’s oppressors, save her cripples, and bring her scattered people home. The prophecy’s plot is now also complete. “It seems a strange ending, for the book’s beginning suggested an unhappy conclusion. The writer shows his artistic skill by changing the expected into something surprising and different.”135

135 House, Zephaniah, 6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497–498.

 

스바냐는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로 시작해서 이제 더욱 강력한 소망과 위로로 책을 맺고 있다. 

 

1:10-16 에 묘사되어 있는 전쟁의 함성소리는 감격과 감사의 찬양소리로 바뀌고 었다. 마치 북 왕국 이스라엘에게 맹렬하게 타오르는 심판의 유황불을 실컷 끼얹은 다음 회복을 약속하며 책을 마치는 아모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역사의 한 순간에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노래했지만, 스바냐는 막연한 어투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아모스는 주로 여호와의 날을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집어삼키는 구체적인 날로 보았지만, 스바냐는 인류가 향해 가고 있는 역사의 최종 종착역을 염두에 두고 그날을 기리고 있다. 그날은 복된 날이다. 우리의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날이다. 우리의 모든 아픔이 치유되는 날이다. 그날은 또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맞대고 보는 날이다. 그날을 갈망하며 살자.(엑스포지멘터리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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