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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dPut on then, as eGod’s chosen ones, holy and beloved, fcompassionate hearts, gkindness, hhumility, meekness, and patience, 13 hbearing with one another and, iif one has a complaint against another, gforgiving each other; gas the Lord has forgiven you, so you also must forgive. 14 And above all these put on jlove, which kbinds everything together in lperfect harmony. 15 And let mthe peace of Christ rule in your hearts, to which indeed you were called nin one body. And obe thankful. 16 Let pthe word of Christ dwell in you richly, teaching and admonishing one another in all wisdom, qsinging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rwith thankfulness in your hearts to God. 17 And swhatever you do, in word or deed, do everything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t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through him. 
dver. 10
eRom. 8:33
fPhil. 2:1
gEph. 4:32
hSee Eph. 4:2
h[See ver. 12 above]
iMark 11:25
g[See ver. 12 above]
g[See ver. 12 above]
j[1 Thess. 5:8]; See Eph. 5:2
kEph. 4:3
lHeb. 6:1; [John 17:23]
mSee Phil. 4:7
nEph. 2:16
over. 17
pJohn 15:3
qSee Eph. 5:19
rch. 4:6
sver. 23; 1 Cor. 10:31
tch. 1:12; 4:2; See Eph. 5:2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골 3:12–17.

여기에서부터 분위기가 부정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면으로 바뀐다. 마치 뽀얀 안개를 뚫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도 같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생활방식을 포기하라고 촉구한 동일한 동기가 이번에는 그들에게 새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는 동기가 된다. 이런 연유로 바울은 그의 전형적인 표현인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권면을 시작한다. 하나님의 새 사람(3:10)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이다. 이전에 육을 따라 이스라엘에게 붙여졌던 명칭이 이제는 교회로 이전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기 위해 ‘구별하여’(이것이 ‘거룩한’의 기본 의미이다) 자신의 백성 삼으신 것이 그들의 선 때문이 아니라 그 분의 은혜 때문이고, 그들이 사랑받기에 합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분의 사랑 때문임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단언하셨다. 여기에 언급된 여러 명칭들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된다. 그 분은 ‘택하심을 받은’ 분(벧전 2:4, 6)이요, 거룩한 분(요 6:69; 행 4:27, 30 등)이시며,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분(마 3:17; 엡 1:6 등)이시다. 그 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12–17절에는 앞에서 언급된 기독론 부분이 반영되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에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여기에서 적용된다.
 N. T. 라이트, 골로새서·빌레몬서, ed. 박상민 and 진규선, trans. 이승호, 초판., vol. 12,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10–211.

12-14절) 앞부분에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릴 것을 강조했다면 이네 거룩 한 새사람으로서 어떤 옷을 입어야할 지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이 택하심으로 거룩하고 사랑을 받는 자들은 어떤 성품과 가치를 따르고 행해야 할 것인가. 
  • 긍휼(스플랑크나 오이크티르모우, compassionate hearts) : 스플링크나는 사람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나타낸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와 타인에 대한 공감을 나타내는 단어가 조합된 것이다. 
  • 자비(크레스토테스, kindness)는 선함, 너그러움이라는 의미로 친절, 자비로 번역되었다. 이 친절은 타인을 향한 그리스도적인 태도이다. 
  • 겸손(타페이노프로시네, humility)는 자기 자신을 향한 그리도적인 태도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시고 성육신 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보이신 그 덕목이다.(빌 2:5-11)
  • 온유(프라우테스, meekness) : 그저 힘이 없는 유약함이 아니라 통제된 힘이라는 의미로 본문에서는 타인에게 접근할 때 필요한 부드러운 겸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인내(마크로티미아, patience)는 타인의 반응에 대처하는 겸허한 친절, 자비의 산물이다. 

- The virtues listed in Colossians include words that carry a profound emotional content referring to how one feels when responding to another in need. Luke uses the word compassion (splanchna)to characterize the good Samaritan’s sympathetic response to his needy neighbor (Lk 10:33) and again for the forgiving father’s happy reaction to his prodigal son’s return home (Lk 15:20). Holiness is not exclusively defined by acts of private devotion; rather, it pertains to public occasions when the community can express its status as God’s chosen people through concrete responses to those who are last, least, lost and lame among us. For Paul, our personal salvation is always embodied in our public relationships (see Eph 2:11–22).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골 3:12.

12절의 다섯가지 덕목을 웨슬리는 “사회적 거룩함”이라고 불렀다. 
- Paul himself seems to have specific situations in mind for practical application. First, how does a congregation of believers, made holy by God’s grace, respond to a troubled relationship in which each tends to revert to “vice,” maintaining grudges and fueling old rivalries? To bear with each othermeans to “put up with” persons who rub us the wrong way. This does not suggest that we are simply cordial towards difficult neighbors in a detached way; rather, Paul calls us to be vulnerable to grace in order to achieve newfound intimacy where hostility once existed. Indeed, the measure of divine grace is what Wesley called “social holiness.”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are the very characteristics of the congregation’s life.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골 3:12.

바울은 13절에서 타인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할 것을 요청한다. 그것의 기준과 근거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자 행동이다. 먼저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용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자들로 그 기쁨을 아는 이가 그 기쁨을 나누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행위일 뿐만 아니라 내가 용서해야할 대상에 대해서 이미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셨다는 것이 내가 용서해야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리스도는 나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불만이 있는 관계에 있는 그 사람까지도 용서하셨다. 

14절에서 우리가 입어야할 여러가지 덕목, 옷중에 가장 위에 입어야할, 마지막 입어야할 옷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기독교의 여러 덕목중에 최고의 위치에 있다. NIV와 ESV는 본문을 이렇게 번역한다. 
“이 모든 것(덕목) 위에 사랑을 입으라. 이는 모든 것을 완벽한 연합(조화)되게 묶어준다."
(Col 3:14, NIV11) 『And over all these virtues put on love, which binds them all together in perfect unity.』
(Col 3:14, ESV) 『And above all these put on love, which binds everything together in perfect harmony.』
사랑은 모든 것을 묶어주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덕목이라는 것이다. 고전 13장에서 사랑을 노래한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것이다. 

바울의 완전함에 대한 생각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완전함은 도덕률 형성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회의 연합은 도덕적 성숙의 결과이다. 이처럼 온전한 연합은 하나님의 은혜의 특성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한다. 
- Lohse interprets this summary phrase to mean that love produces a moral perfection that distinguishes those who endure to the end and receive salvation at Christ’s return (1971:148–49). Yet Paul’s idea of perfection is not ethical (as it is perhaps for Matthew—see Mt 5:48) but eschatological. That is, perfection is not so much the goal of moral formation, so that the church’s unity with God is the result of moral maturity. Rather, perfect unityis a property of God’s grace, which perfectly unites the church “with Christ in God” (3:3) and prepares it for Christ’s return (1:22, 28). Of course, Paul’s Jewish opponents at Colosse challenge this definition; they see Christianity, like Judaism, as an ethical monotheism, and they believe that moral perfection is required by God. Against them, then, Paul’s exhortation to put on lovepresumes a different moral calculus: loveis the fruit of faith in Christ (3:1–4) rather than compliance with codes constructed by human tradition (2:20–23; compare 2:8).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골 3:14.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름을 받았다.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본문에서의 평강(에이레네)는 내적, 외적 평안의 상태를 모두 말한다. 앞선 평강이 구원받은 자로서 누리는 평화의 상태라면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름을 받았다라고 말할때의 평강은 공동체의 특징으로서의 평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효력을 발휘할 때 평강(평화)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왜냐하면)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의 지체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에 나오는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의 지체들이 되었다(RSV는 좀 더 문자적으로 이 부분을 ‘평강’을 선행사로 하는 관계대명사절로 이해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름 받은…평강’으로 해석한다)는 말은 여기에 언급된 ‘평강’이 하나님의 사랑을 겸허하고 확고하게 믿음으로써 얻어지는 내적이고 개인적인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몸’으로서의 공동체의 특징인 그 평화임을 지적해준다. 여기에서 ‘한 몸’이란 교회를 그의 ‘지체들’(members, 이런 이유로 NIV는 이 단어를 보충하고 있다)이 조화롭게 행동해야 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이해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바울이 1:18; 2:19의 경우처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는 사상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교회의 특징인 평강은 단순히 외적 적대감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희 마음’의 결정적 요인(‘지배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아마 심판이나 중재자로 활동하는 누군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이 되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평강’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의견충돌이나 상호 간의 의심이 있든지 간에 모든 문제들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즉 모든 당사자들이 진심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바울 당시에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가 전 세계에 퍼져 제국의 주민들이 전쟁의 위협 없이 각자의 소명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 같이, 팍스 크리스티아나(Pax Christiana, 그리스도의 평화)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야 한다. 이러한 교회 생활에 대한 비전 때문에 바울은 다시 한 번 또한 감사하라는 말을 덧붙인다(1:3, 12 등을 참조). 사랑, 평화 그리고 감사는 서로를 보강해주고, 다음 절에 나오는 권면들에 순종해야 할 배경을 형성한다.
RSV The Revised Standard Version: Old Testament, 1952; New Testament, 21971.
NIV The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Old Testament, 1978; New Testament. 21978.
 N. T. 라이트, 골로새서·빌레몬서, ed. 박상민 and 진규선, trans. 이승호, 초판., vol. 12,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14–215.

- As love between people must reign in the faith community, so also must the peace of Christ rule in your hearts.According to Jewish psychology, the heart is the location of volition; one’s entire life is guided by what takes place in the heart. If the peace of Christrules the heart, then every decision made and every action taken will have the quality of peace. Yet Paul expresses this prayer for peace as a corporate prospect: as members of one body you were called to peace.So love characterizes the community’s public life, and peace characterizes its internal life. This being so, every collective decision and action that comes from the community will have the character of peace.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골 3:15.

- But what does Paul mean by peace?First, peace comes from the Lord Christ and conforms to the results of his death and resurrection. Paul uses the same root verb for rule (brabeuō)that he earlier used of the spiritual umpire who has threatened to “disqualify” (katabrabeuō)any convert who fails to observe ascetic religious practices (2:18). The result in this case is moral and spiritual frustration (2:22–23). In sharp contrast to Paul’s opponent, Christ’s spiritual umpiring promotes peace within the community. Second, the meaning of peacecomes from its Old Testament use. While Paul elsewhere speaks of the spiritual and interior dimensions of shalom(Rom 5:1–11), the biblical prophets used it as a comprehensive word for God’s full transformation of the covenant community’s situation. God chooses Israel for salvation (v. 12) and calls Israel to peace. Thus, when Jeremiah, with whom Paul closely identified, denounced the false prophets of Israel, he claimed that their teaching could not produce peace and should be viewed as “deceptive words” or “lies” (Jer 7:4–8; 23:14). Truth produces peace, while lies produce spiritual and moral frustration.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골 3:15.

16-17절) 앞서 1:28절에서 바울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는” 역할을 말한 바 있다. 본문에서는 피차 가르치며 권면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첫째로 가르치며 권면하는 사역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할 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경으로 조금 협소하게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 복음서의 이야기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행하고 선포하신 말씀이다. 
둘째로 이러한 가르침과 권면의 사역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루어져야한다. 
이 시대는 감각적인 시대이다. 보기에 좋은 것에 끌린다. 힘겨운 제자훈련은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고 예배는 엔터네인먼트가 되었다. 이 시대의 이러한 분위기, 세속주의와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의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 아래 위치해야 한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분의 승인하에, 그분을 권한을 위임받아 그분을 대표하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행할 때 그분의 대리인으로 위임받은 권한과 능력으로 행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독재를 행할때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그들을 뽑아준 국민의 의견을 대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명을 주셔서 사명을 맡겨주셨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되고 그분의 이름과 권위, 명성에 해가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에게 돌아가기에 우리들은 무엇을 하던지 그것이 학업이던, 가정에서의 부모나 자녀로서의 역할이던, 직업 현장에서 노동을 하던 상업활동을 하던, 책을 읽던, 운동을 하던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주님의 이름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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