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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able of the Seed Growing
26 And he said, c“The kingdom of God is as if a man should scatter seed on the ground. 27 He sleeps and rises night and day, and the seed sprouts and grows; dhe knows not how. 28 The earth produces by it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then the full grain in the ear. 29
But when the grain is ripe, at once ehe puts in the sickle, because the harvest has come.”
c [Matt. 13:24–30]
d [Eccles. 11:5, 6]
e Joel 3:13; Rev. 14:15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6-29절) 본문의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등장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로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뿌려진 씨앗은 농부가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처음에는 싹이나고 다음은 이삭이 나고 이후에 충실한 곡식이 맺히게 된다. 이에 열매가 익으면 낫을 가지고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은 땅에 대한 비유로 씨를 뿌리는 사람, 씨앗, 추수의 요소가 포함된다.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농부의 역할이 최소화된다는 것이다. 씨앗이 자라는 것에 농부의 역할은 거의 없다. 기독교인들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이 씨앗을 뿌리는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열매 맺혀지는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것으로 마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것처럼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인간의 노력만으로 도래하지 않는다. 결국 본문의 방점은 추수때가 도래한다는데에 있다. 이 추수때는 마지막 때에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비유)를 통해서 자신들의 메시지가 거절당하는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도래한다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신비한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계신다. 씨앗이 뿌려지고 이것이 자라나는 것은 아주 더디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뭔가 노력을 시도하지만 농부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낙담할 수 있는 제자들에게 우리의 능력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고 추수때, 심판의 때가 임할 것이기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 This parable is found exclusively in Mark. Though it shares several elements with the earlier parable of the soils—a man scattering seed, the seed, the harvest—the allegorical identifications operative in that parable should not be read into this parable. The parable of the seed growing by itself has its own unique message to convey. Determining the precise focus of the parable is difficult. The sower plays a minimal role. Furthermore, the seed grows without his effort (or lack of effort) and in a way that is a mystery. The success of the Christian message similarly does not depend upon human effort or understanding—though Christians certainly need to scatter the seed—but upon divine power. It will succeed precisely because God is active. The kingdom cannot be precipitated by revolutionary activity or any other human effort unaided by God. A word of caution is necessary however. The idea of a gradual but inevitabl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is not taught by this parable or any other but is a later idea. The end emphasis and perhaps primary focus of the parable is the assurance of the harvest. The harvest almost certainly represents the judgment at the end of the age. Even so the concern is not the condemnation of the wicked (cf. Joel 3:13) but the manifestation of the righteous. Jesus by telling the story—and Mark by recording it—encouraged disciples who were experiencing rejection of their message and frustration at their lack of understanding of God’s mysterious purposes that God’s kingdom would surely come. James A. Brooks, Mark, vol. 23,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1), 84–85.
씨앗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 농부는 이로 인해 잠을 잘 수 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갑자기 임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우리의 순종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땅은 그저 씨앗이 자라는 매개체일 뿐이다. 이 비유는 일반적인 하나님 나라의 비유와는 다른 점을 강조한다. 첫째는 땅의 상태보다 식물의 성장에 하나님의 은혜, 통치가 더 중요하다. 둘째는 완전한 순종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보다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 The parable of the seed growing by itself compares the kingdom of God to the growth of a seed. The seed grows in stages according to its own timetable (Dahl 1952:141–43), and the arrival of the harvest is not the result of human activity: All by itself the soil produces grain. In this parable soil does not refer to people, nor does the growth of the seed depend upon human activity. Soil is simply the medium in which growth takes place. How it grows is a mystery. The seed has a life of its own, and the farmer can sleep in this knowledge. This parable suggests that the kingdom of God does not arrive all at once and that its coming is more a matter of God’s grace than of our obedience. This is a significant departure from the rabbinic teachings we examined in connection with 2:23–3:6, in which the obedience of all the people of Israel was the precondition for the arrival of the kingdom of God. In this parable Jesus distinguishes his teaching about the kingdom of God in several ways: the rule of God is more like the growth of a plant than a geographic entity; it does not wait for perfect obedience; and it does not arrive all at once. For these reasons many scholars prefer to speak of the rule of God rather than the kingdom of God. Ronald J. Kernaghan, Mark,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7), 98–99.
우리는 땅에 씨를 뿌리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행동을 하고 기다리며 땅이 어떻게 스스로 열매를 내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더디지만 이러한 성장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그 때는 임할 것임을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씨뿌리는 비유에서는 좋은 땅이 될 것을 이야기하지만 본문에서는 땅의 상태가 아니라 땅이 스스로, 땅의 어떠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의 노력을 배제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강조한다.
어찌보면 앞서 이야기한 씨부리는 비유와 강조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설교할때도 이 광대함으로 인해서 일면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우리의 순종과 노력을 강조해야할 때도 있는가하면 우리의 순종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할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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