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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oavoid foolish pcontroversies, qgenealogies, dissensions, and quarrels about the law, for rthey are unprofitable and worthless. 10 As for a person who stirs up division, safter warning him once and then twice, thave nothing more to do with him, 11 knowing that such a person is warped and sinful; he is self-condemned.
o 2 Tim. 2:16
p See 1 Tim. 6:4
q 1 Tim. 1:4
r 2 Tim. 2:14
s See Matt. 18:15
t See 2 John 1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딛 3:9–11.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딛 3:9–11.
 
앞서 1-8절에서 성도들의 일반 사회 생활을 위한 지도 지침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9-11절에서 거짓 교사들과 이단에 속한 이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 
 
9절) 앞서 딤전에서도 여러번 신화와 끝없는 족보, 변론과 언쟁을 경계할 것을 이야기한 바 있는데 본절은 좀더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제시한다. 
디모데전서 1:4
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4:7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6:4
4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어리석은’으로 번역된 ‘모라스’의 원형 ‘모로스’는 ‘배움이나 학식이 없는, 신중하지 못한, 지혜가 없는, 쓸데없는, 무용한, 불경건한, 불신앙적인’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3절에서 사용된 ‘아토에토스’가 지혜나 진리의 계시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어리석음으리면 본절의 ‘모로스’는 쓸데없고 무익한 일에 집착하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변론’으로 번역된 ‘제테세이스’의 원형 ‘제테시스’는 ‘집요하게 추구하다, 찾다’라는 의미의 동사 ‘제테오’에서 유래하여 ‘구함, 조사, 토론, 논쟁’이란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말하는 변론이란 사실이나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소모적인 말싸움을 벌이는 것을 말하는데 바울은 이를 가리켜 어리석은 것이며 해롭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족보 이야기’로 번역된 ‘게네알로기아스’의 원형 ‘게네알로기아’는 ‘세대, 가문’이른 뜻의 명사 ‘게네아’와 ‘말씀, 이야기’, 글’을 의미하는 명사 ‘로고스’의 합성어로 ‘가계의 기록, 조상이나 가족력에 대한 연구나 조사’를 의미한다. 많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이라는 의식에 가득차서 구약의 여러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여러 가문들의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또한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일종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어서 자신들의 신앙 전통을 확립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정당화 하려하였다.(딤후 1:8-11) 
‘분쟁’으로 번역된 ‘에리스’는 ‘심각한 갈등, 신랄하고 종종 격렬한 불일치’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신약에 9번 서용되는데 모두 바울 서신에 등장한다.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본절은 ‘가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의 번역이 생략되었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왜냐하면 이것은 무익하고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익한 것’으로 번역된 ‘아노펠레이스’는 히 7:18에서는 단수로 사용되어 옛 계명이 무익하다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로 쓰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미 폐지되어 버린 여러 의식법들에 집착하고 진리가 아닌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하려는 모든 시도는 무익한 것이다. 
‘헛된 것’으로 번역된 ‘마타이오이’는 벧전 1:18에서는 단수로 ‘망령된’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며 약 1:26에서는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악한 행실로 스스로를 속이면 그 경건은 헛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앞선 거짓 교사들의 행위가 전혀 실속이 없는 헛된 것일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망령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9 δέ, “but,” contrasts this statement and its contents with what immediately precedes. The action enjoined is περιΐστασο** (present middle imperative of περιΐστημι), a verb that has within its basic meaning the concept of “around” and which in the middle means “go around so as to avoid,” and more succinctly “avoid, shun” (also in 2 Tim. 2:16; in 2 Tim. 2:23 Paul uses a similar verb, παραιτέομαι, which occurs in Tit. 3:10, with the noun ζητήσεις, which occurs here). What Paul urges Titus to constantly do he also thereby urges on all the Christians on Crete. He delineates four errors that must be avoided.
The first is μωρὰς ζητήσεις. Plural ζητήσεις (see 1 Tim. 6:4) is used once each in the three PE of an aspect of the false teaching: “controversial questions” or “controversies” (ἐκζητήσεις is used similarly in 1 Tim. 1:4). In two of these three instances the ζητήσεις are designated as μωράς, “foolish” or “stupid” (here and in 2 Tim. 2:23; since ζητήσεις is thus qualified by μωράς elsewhere and γενεαλογίας is not in its other PE [and NT] occurrence, it is appropriate to attach μωράς to ζητήσεις and not to γενεαλογίας). Elsewhere Paul tells Timothy to correct those involved with such controversies so that “God may grant them repentance leading to knowledge of the truth” (2 Tim. 2:23–26); thus “occupation with such questions is taken to be sinful and culpable” (G. Bertram, TDNT IV, 845; cf. also what Paul says about μωρολογία in Eph. 5:4–7).
The second error is γενεαλογίας** (see 1 Tim. 1:4), “genealogies,” i.e., speculation about the origins and descendants of persons, which are erroneously thought to have religious significance.
The third error is ἔρεις. (Singular ἔριν was preferred in NA25; see NA26 and TCGNT for preference of the plural.) ἔρεις (see 1 Tim. 6:4) occurs regularly in the Pauline vice lists (and is in vice lists in most of its NT occurrences) and means “strife” and in the plural “quarrels” or “dissensions.”
The fourth error is μάχας νομικάς, “battles about things pertaining to the law.” μάχας** is always plural in the NT (2 Cor. 7:5; here; 2 Tim. 2:23; Jas. 4:1) and is used “only of battles fought without actual weapons” (BAGD). νομικάς (NT 10x, PE* 2x, here and v. 13)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pertaining to the law” (BAGD; cf. νομοδιδάσκαλος in 1 Tim. 1:7). The law in view here is undoubtedly the OT law, with which the false teachers were especially concerned (1 Tim. 1:7ff.).
Each of these four errors is also mentioned in 1 Timothy, and two are mentioned in 2 Timothy. As has been noted, it appears that the same problem, or at least a group of similar problems, is being confronted in all three letters (see the Introduction and the comments on 1 Tim. 1:3ff.). The substantive elements here are “genealogies” and a misuse of the law. The atmosphere is one of strife and contention.
Paul concludes this exhortation by giving the reasons that such errors should be avoided: They are ἀνωφελεῖς** (also in Heb. 7:18), “unprofitable”—the opposite of the description of the teaching and good deeds set forth in vv. 1–8 (ὠφέλιμα, v. 8)—and μάταιοι, “idle” or “empty” in the sense of “useless” or “fruitless” (see 1 Tim. 1:6: ματαιολογία; Tit. 1:10: ματαιολόγος; cf. O. Bauernfeind, TDNT IV, 519–24).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PE Pastoral Epistles
PE Pastoral Epistles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NA E. Nestle and K. Aland, eds., Novum Testamentum Graece. 25th ed., Stuttgart, 1963.
25 E. Nestle and K. Aland, eds., Novum Testamentum Graece. 25th ed., Stuttgart, 1963.
NA K. Aland and B. Aland, eds., Novum Testamentum Graece. 26th ed., Stuttgart, 1979.
26 K. Aland and B. Aland, eds., Novum Testamentum Graece. 26th ed., Stuttgart, 1979.
TCGNT B. M. Metzger, A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 New York, 1971.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53–354.
 
10절) 10절과 11절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경계하고 사귀는 것을 금지하라는 명령이다. 
‘이단에 속한’으로 번역된 ‘하이레티콘’의 원형 ‘하이레티코스’는 이곳에만 사용된 단어로 ‘종파의, 분파적인’이라는 의미인데 후에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자, 이단’아라는 전문적인 의미가 되었다. ‘이단’, 즉 ‘하이레시스’는 교회가 고수하는 진리를 저버리고 자기 자신이 고안한 거짓된 진리를 택하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이다. 주후 1세기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거나(딤후 2:11-12)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부인하고(벧후 2:1) 사단의 회에 속한 자들이 있었다.(계 2:9)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이단에 속한 자들은 앞서 1:10-16에서 언급된 당시 그레데에서 활동하던 유대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바울의 대처방안은 주님의 방식과 유사하다.(마 18장) 처음 한두 번은 훈계하라고 말한다. ‘훈계한’으로 번역된 ‘누데시안’의 원형 ‘누데시아’는 ‘훈계, 권고’라는 의미가 있다. 이 표현은 ‘마음, 영,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와 ‘두다, 놓다’를 의미하는 ‘티테미’의 합성어로 ‘마음에 두다’라는 의미로 훈계, 교훈을 의미한다. 바로 이단자들을 향해서 그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바른 진리로 가르치고 권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진리를 따르는 이들의 마음에 진리를 두는 것이 바로 훈계이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는 3절과 같이 어리석고 불순종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임을 기억한다면 이들에 대하여 훈계하여 돌이킬 것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몇번의 권면에도 그들이 돌이키지 않을 때 바울은 단호히 ‘멀리하라’고 말한다. ‘멀리하라’로 번역된 ‘파라이투’는 ‘거절하다, 사절하다, 회피하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파라이테오마이’의 명령형히다.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지속적으로 멀리해야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한, 진리를 따르지 않는한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3:10 Paul gives instruction in this verse and the next on how to deal with a αἱρετικὸς ἄνθρωπος. The adjective αἱρετικός** (a NT hapax) is used here of one who has chosen to follow the false teachings and practices described in v. 9 over against the apostle, Titus, and others in the Christian community who embrace the true teaching and its good deeds. Thus it may properly be rendered “heretical,” as long as we do not read later ideas back into the text (cf. BAGD, Lock, and the use of αἵρεσις in 2 Pet. 2:1). Since this choice with regard to teaching and practice sets the one so choosing against apostolic teaching, it also makes such a person “factious” and one who is “causing divisions,” which are also meanings of αἱρετικός. Paul uses this adjective in a pleonastic construction, perhaps for emphasis, including the noun ἄνθρωπον, the word used generally in Greek and in the NT for “human being,” rather than using a simple substantive adjective.
It is only “after” (μετά with the acc., BAGD s.v. B.II.3) two admonitions have been given to such a person that the action then commanded may take place. μίαν καὶ δευτέραν combines a cardinal (for an ordinal) and an ordinal number, as was done elsewhere in Greek writings (cf. BAGD s.v. εἷς 4). νουθεσία** (also in 1 Cor. 10:11; Eph. 6:4), “admonition,” includes both “instruction” and “warning” but with emphasis on the latter. (The verb νουθετέω, like the noun, is used in the NT only in Paul’s letters [and in the account of Paul’s labors in Acts 20:31]—with διδάσκω in Col. 1:28; 3:16 in the sense “admonish,” i.e., speak so as to affect the will and disposition; cf. J. Behm, TDNT IV, 1019–22.) The two admonitions are obviously intended to turn such a person from his or her error, as in 2 Thes. 3:15; 2 Tim. 2:25–26, and are “a pastoral attempt to reclaim” (Behm, 1022). This procedure reminds us of Mt. 18:15–20, where one who sins is first dealt with privately and then semi-privately before the final step is taken. παραιτέομαι (PE* 4x: 1 Tim. 4:7; 5:11; 2 Tim. 2:23; here imperative παραιτοῦ)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reject” or “dismiss,” i.e., remove from the fellowship of the Christian community (cf. 1 Cor. 5:11–13; 2 Thes. 3:14; Mt. 18:17–18).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54–355.
 
11절) 본절은 멀리해야하는 이단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부패하여’로 번역된 ‘엑세스트리타이’의 원형 ‘윽스트레포’는 ‘~밖으로’라는 의미의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크’와 ‘돌이키다, 향하다, 변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스트레포’의 합성어로 ‘나쁜 쪽으로 변하다, 악화되다, 나쁜 길에 빠지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어서 이미 그런 상태에 빠졌고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정죄한’으로 번역된 ‘아우토카타크리토스’는 ‘자기 자신의’란 의미의 ‘아우토스’와 ‘정죄하다, 고소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타크리노’의 합성어로 ‘스스로 정죄한, 스스로 유죄판결을 받은’이라는 의미이다. 스스로 죄를 짓고 진리에서 떠난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도리어 이를 즐기는 상태를 말한다. 이들은 이미 진리에서 떠나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로 바울은 이들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3:11 Paul refers to the kind of person whom Titus and the church must admonish and dismiss with the definite article with the correlative adjective τοιοῦτος used as a substantive: “such a person,” “one like that,” probably meaning anyone who bears the qualities indicated (so 2 Cor. 10:11a; Gal. 6:1), though other occurrences of the term refer to definite individuals (see BAGD s.v. 3a α). One can take the radical action of dismissing such a person from the Christian community because the refusal of a “heretical person” to respond to two admonitions gives the grounds for such action and indicates the necessity for it. As in Mt. 18:17, the basis for taking the last difficult step is such a person’s self-indictment (“being self-condemned,” αὐτοκατάκριτος).
The dismissal is grounded in knowledge (εἰδώς, causal participle from οἶδα) of the “heretical” person’s views and actions that has been gathered from contacts that the two admonitions have afforded (cf. Mt. 18:16: “so that every fact may be confirmed”). What is known is “that” (ὅτι) the person ἐξέστραπται** (perfect middle or passive of ἐκστρέφω, a NT hapax), which means either that he “has turned himself aside/perverted himself” (middle) or that he “is turned aside/is perverted” (passive). In either case the person has moved away from the apostolic message by choice (cf. the LXX of Dt. 32:20 and the use of simple στρέφω to mean “turn to something evil, be perverted” in Didache 11:2). The perfect tense is most likely used to indicate a settled position.
Titus and others will also know that such a person “is sinning,” ἁμαρτάνει, the present tense most likely indicating the person’s persistence in false views and activities in the face of the pastoral admonitions (cf. Mt. 18:17: “if he refuses to listen to them”). This combination of a settled persistence in chosen erroneous views and continued refusal to repent of sin enables one to know that such a person is (ὤν, “being”) “self-condemned” (αὐτοκατάκριτος,** a NT hapax): The “heretical” person has shown himself to be clearly guilty and therefore has himself provided the basis for his dismissal (παραιτοῦ, v. 10).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LXX Septuagint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355.
 
본절에서 이단에 속한 이들을 멀리하라는 것은 섣부른 포기가 아니다. 고의로 진리를 대적하고 스스로 정죄한 자들에게 미련과 집착을 보이는 것은 복음전파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끝없는 변론과 논쟁은 복음 전파의 동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싸우면서 닮는’ 현상을 나타나게 한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석가에게 와서 세상의 수많 은 사람둘을 어떻게 대하는 것어 옳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석가는 부드럽게 대할 자는 부드럽게 대하고 엄하게 대할 자는 엄하게 대하며 이도 저도 아닌 자는 부드럽고도 엄하게 대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모든 방법을 써도 안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석가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습니 다. ‘죽여버려라!’ 물론 살생을 엄격히 금했던 석가가 여기서 문자 그대로의 살인을 하라고 말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여기서의 죽이라는 말은 그러한 자를 더 이상 가까이하지 말고 멀리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차피 죽옴과 같은 어둠 속에 있던 자이기에 그를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를 어둠 속에 버려두어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종종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사 5:1 ;마 7:16-18; 롬 11:17-24). 따라서 사람들에게 복옴을 증거하고 진리로 양육하는 것은 일종외 농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과수원지기의 가지치기에 대한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곧 다른 가지의 열매를 위해 필요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것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복옴을 증거하고 목희와 선교 사역을 할 때 스스로 진리를 거스르는 자와 무익한 논쟁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간과 에너지를 신실한 자들에게, 충성된 사람들에게 쏟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익한 가지는 잘라 내고 생명 있는 가지는 더 복돋움으로써 진리와 복옴의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맺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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