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을 위한 학술적 글쓰기에서의 표절문제와 인용방법
-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I. 표절의 유형
1. 내용 표절 (아이디어 표절)
원저자의 고유한 생각, 논리, 표현, 자료, 분석틀 모방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출처가 부정확한 경우를 말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안에 부딪히면 판단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어디까지가 고유한 생각인지가 것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공식이나 이론이라면 정확히 인용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피카고라스 저서를 찾아서 페이지까지 인용할 필요는 없다. 물론 여기서도 어디까지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용표절을 할 때 표현까지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표절판정이 쉽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지상에 오르내린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의 표절은 대부분 내용표절과 표현표절이 동시에 이루어진 경우였다. 최소한의 ‘성의’와 ‘교묘함’도 없이 표현과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런 표절은 적발하기도 쉽고 판정하기도 쉽다. 하지만 문제는 표현은 바꿨지만 내용을 베낀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혐의'를 잡을 수는 있지만, '표절'이라고 확실히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내용만 베끼면서도 표현이나 구성을 교묘하게 바꾸면 적발하기도 어렵고 판정하기는 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표절 논란은 비교적 쉬운 '게임'이었다. 해당 학문에 문외한이어도, 형광펜만 있으면 두 편의 논문을 비교해 가며 표절을 적발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문제는 교묘하고 성의있는(?) 표절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언론지상을 통한 단죄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학계의 자정노력을 통해 관행이 형성되면서 해결될 문제이다.)
2. 표현 표절 (텍스트 표절)
출처표시 없이 특정 문장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나, 출처표시는 했지만 인용부호 없이 다른 저술의 문장을 원문 그대로 옮기는 경우를 말한다. 간혹 표절 시비가 제기되면, “논문의 핵심 내용이 아닌 부분에서 일부 문장을 베꼈을 뿐이다”라고 변명을 하는데, 어림없는 얘기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적절한 인용없이 남의 문장을 줄줄이 베끼면 표절이다. 그 내용이 독창이건 아니건, 핵심내용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교육부의 “논문표절 가이드라인 모형”(2008)에서는 여섯 단어가 연속해서 일치한 경우,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08)에서는 두 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한 경우에 표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섯 단어’ 또는 ‘두 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남의 글을 베낀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표시를 하더라도 인용부호 없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안된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려면, 인용부호로 묶거나 왼쪽여백을 줘서 원문임을 분명히 표시하거나, 아니면 표현을 완전히 바꿔줘야 한다. 전자를 ‘직접 인용’, 후자를 ‘간접 인용’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한다
3. 자기표절 (중복게재, 이중게재)
본인이 저술한 출판물의 전체 또는 일부를 재활용하여 저술한 경우를 말한다. 내가 쓴 글을 다른 곳에 또 활용하는 것에 문제를 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출판사의 출판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으면 출판사가 보통 3년의 계약기간 동안 출판권을 갖게 되는데, 이 기간 중에 그 책의 저자가 책 내용의 일부를 다른 곳에서 출판하면 당연히 출판권을 침해하게 된다. 둘째, 업적이 중복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대학에서 업적 평가를 받을 때 동일한 논문을 이곳저곳에 발표하여 중복하여 업적을 인정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편집자(출판사, 저널, 신문 등)는 기고문이 ‘처음 발표되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청탁을 한다. 그런데 만약 기고한 글이 이전에 다른 곳에서 발표가 되었던 글이라면, 편집자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 된다. 만약 처음 발표되는 글이 아니라면 편집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상의해야 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위의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자기 글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과거의 자신의 글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본인이 쓴 학술지 논문이나 신문 칼럼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재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관례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저작권 관념이 엄격한 미국에서는 이 경우에도 해당 학술지 편집장이나 해당 신문에 ‘양해’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 출판물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양해를 구했음을 책에 표시하는 경우를 여러번 보았으나, 유럽출판물이나 한국출판물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보제공 차원에서라도 원출처는 적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4. 기타 표절 문제
① 재인용 표절
원저자가 인용한 출처(2차 출처)를 인용하면서 2차 출처를 밝히지 않고, 1차출처만 제시한 경우를 말한다. 그러니까, 재인용은 말 그대로 남이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는 것이다. 이 때는 원저 출처와 재인용한 출처를 모두 명시해줘야 한다.
② 과도한 분량의 인용
출처를 인용하긴 했지만, 너무 많은 분량을 그대로 옮겨와서는 안된다. 옮겨온 분량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출처표시를 하고 인용부호까지 달았어도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너무 많이 옮겨올 경우 (출처표시를 했더라도) 남의 글이지 자기 글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타인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면서 추임새만 넣은 논문이 있다면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지나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확고한 관례는 없지만, 대략 한 단락 이상을 연속해서 그대로 옮겨올 때는 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만약 이보다 많은 분량을 옮겨오고 싶다면, 원저자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짧은 글이라도 글 전체(예: 칼럼 한 편)을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이 때 양해는 원저자와 원출판사(신문사)에 구해야 하고, 연락은 출판사가 해도 되고 저자가 직접 해도 무방하다. 이 때 그 ‘양해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떤 맥락에 옮겨다 놓는지, 그리고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지 아니면 일부 수정할 것인지 등등을 명확히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5. 학술논문 이외의 경우
학술논문 이외의 경우라고 해서 원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글의 성격에 따라서 조금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론 칼럼이라면, 인용한 출처의 페이지는 생략하고 저자의 ‘이름’만 괄호 안에 넣고 인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칼럼 분량에서 정식인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트위터 등 SNS도 언론칼럼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문칼럼이건 트위터건,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길 때는 꼭 인용부호표시를 해서 ‘내 표현이 아님’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용부호(따옴표) 안에 들어간 타인의 말을 함부로 수정하면 안된다. 트위터에서는 RT 등 트위터에서 약속된 표시도 정확히 지켜줘야 한다. 반면 블로그의 경우에는 학술논문과 달리 생각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분량도 충분하고 편집상의 문제도 없기 때문에 원칙대로 인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인용을 하더라도 저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맥락으로 인용을 하면 곤란하다. 글이 놓여 있는 맥락이 달라지만, 글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 지인들끼리 댓글로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는 비록 그것이 공개된 상태라고 해도 신문기사화하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굳이 하고 싶다면 ‘양해’를 구하는게 맞다. 트위터의 경우는 사적인 성격도 있고 공적인 성격도 있어 조금 애매하지만, 트윗글을 기사화할 때는 원칙적으로 저자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그 트윗글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서 인용하는게 좋을 것이다.
II. 표절/인용 예제
표절과 인용 문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다음의 원문을 놓고 어떻게 인용할 것인지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문)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구조적 참사는 물론이고,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
-> 출처: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77쪽
사례1: 간접인용
인용)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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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77쪽 참조
원문과 표현은 다르지만, 자기 생각이 아니니까 위와 같이 인용을 해야 한다. 이걸 간접인용이라고 한다. 내용은 같지만 표현은 다른 경우다. 표현이 다르니 인용부호는 안달아도 되지만, 출처표시까지 빠지면 표절이 된다. (*인용방식은 다양하지만, 아래에서는 ‘각주’를 다는 방식으로 해보았다.)
사례2: 문장 중 직접인용
인용)
구조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에 주목해 봐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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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77쪽 참조.
이 부분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원문(홍성수의 글)에서 착안한 것이기 때문에 인용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부분은 표현이 원문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렇게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까지 옮겨오는 경우에는 원문의 표현을 인용부호(큰따옴표)를 달아 정확히 표시해 줘야 한다. 자기 표현이 아니라 원저자의 표현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다. 그게 싫으면 아예 다른 표현으로 사례1)에서처럼 아예 다른 표현을 쓰어야 한다. 올바른 인용은 이렇게 해야 한다.
인용)
구조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 대해 홍성수는“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고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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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77쪽.
이렇게 인용표시를 해야, 원저자의 내용을 옮겨왔을 뿐만 아니라, 일부표현은 아예 그대로 가져왔음을 분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
사례3: 문장 중 직접인용
사례2에서처럼 인용표시 없이 함부로 원문 표현을 그대로 옮겨오면 안되지만, 중요하지 않은 단어 몇 개 정도는 괜찮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과도하면 안된다. 앞서 소개한 바대로 ‘표절 가이드라인’에서는 6단어 또는 2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하면 표절이라고 본다. 설사 독창적인 문장이 아니더라도, 연속해서 일치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걸 거꾸로 얘기하면 6단어/2문장 이하는 괜찮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6단어/2문장 이하라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원문)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 출처: 신영복,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174쪽
인용)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역시 “입장의 동일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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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신영복,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174쪽.
이렇게 인용해줘야 한다. “입장의 동일함”은 단 두 단어지만 원저의 맥락상 사태의 핵심을 꿰뚫는 핵심어이다. 따라서 따옴표로 표시하여 나의 표현이 아니라 원저자의 표현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표시를 안했다면 당연히 표절이고, 인용표시는 했더라도 인용부호가 생략되었다면 표절이 된다는 얘기다. 즉, 아무리 독창적이지 않은 표현이라고 해도 6단어 이상 연속해서 일치하면 표절이 될 수 있고, 단 2단어라고 해도 독창적이고 중요한 표현이면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례4: 직접인용
인용)
흔히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 대형참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책임자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홍성수는 체계이론에 기반해서 이렇게 말한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구조적 참사는 물론이고,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1)
특히 구조적인 참사 뿐만 아니라, 살인사건 같이 개인범죄 같이 보이는 범죄에도 특정 개인의 문제로 지적하지 않는 이유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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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77쪽. ‘특정 개인’는 필자가 강조한 것이다.
아예 문장을 그대로 옮겨올 때는 이렇게 단락을 바꿔서 인용하는 것이 좋다. 따옴표 표시를 해야 하고, 따옴표 안에 들어간 원문의 문장은 조사, 문장부호, 강조표시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바꾸거나 생략해서는 안된다. 중간에 생략한 경우에는 ‘중략’이라고 하거나 말줄임표 (…)로 표시해야 한다. 원문에 없는 문장부호(감탄사 등)를 임의로 넣는다거나, 굵은 글씨로 강조표시를 해도 안된다.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무엇을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표시하고, 원저자가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정했다는 점을 표시해줘야 한다.
사례5: 재인용
원문)
즉, 루만의 사회이론의 대상인 사회적 체계는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동적, 폐쇄적 사회체계”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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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쪽.
출처: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54쪽
이 부분을 인용을 하고 싶은데, Luhmann의 저서를 찾아서 확인하지 못했고, 홍성수의 논문만 보고 인용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표시한다.
인용)
루만은 사회적 체계를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동적, 폐쇄적 사회체계”라고 설명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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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쪽 -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0, 254쪽에서 재인용.
재인용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 가능하면 재인용된 문헌을 직접 보고 그걸로 직접 인용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위에서 Luhmann의 저서를 찾아서 읽어보고 독일어원문을 직접 번역해서 인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출처를 확인해 보긴 했지만, 번역표현이 ‘홍성수’의 번역을 참조해서 한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인용)
루만은 사회적 체계를 “소통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폐쇄적 사회체계”라고 설명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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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쪽; 번역표현은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제13권 제3호, 254쪽을 참고하여 약간 수정했다.
다만, 일치하는 번역표현이 너무 뻔한 경우에는, 굳이 번역할 때 참고한 문헌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 참고: 학위논문 일부의 재출간 문제
마지막으로, 학위논문을 재출간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두 편이나 세 편까지는 무방하다는 식의 기계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도 일부 있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한국에서(그리고 영국이나 미국에서)의 학위논문은 기본적으로 '미간행논문'(unpublished dissertations)이다. 즉 '출판물'(publications)이 아니라는 얘기다. '출판'이라는 뜻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다는 뜻인데, 학위논문은 대개 본인과 지도교수가 한 부씩 나눠 갖고, 그 대학의 도서관에 한 부 비치되는 것이 원칙이다. 출판된 것이 아니니,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몇 차례 재활용하건 간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학술대회 발표문도 (예외적으로 학술대회 proceedings이 그대로 publications인 경우가 이공계쪽에서 있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출판되는 것이 아니다. 그 학술대회 발표장에 가서야 '학술대회 자료집'(proceedings)으로 받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학술대회 발표문을 저널에 다시 싣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학위논문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서 공개되거나 학술대회 자료집 원문 파일이 홈페이지에 탑재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것을 출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필자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는 대학원생 논문쓰기워크숍에서는 “박사논문을 쪼개서 여러 편으로 출판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에 대한 강의를 들어본 적도 있다. 각 논문이 서로 중복되지 않고 자기완결성을 갖는 한, 몇 편으로 쪼개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업적평가나 임용심사 시에 ‘학위논문’과 ‘학위논문을 활용해 출판된 논문’을 중복해서 업적으로 인정해줄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 당연히 어느 한 쪽을 제외하는 것이 맞다.
※ 참고: 자기표절의 문제
자기표절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출판권을 침해하거나 업적 부풀리기를 하면 안되겠지만, 본인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외국저널에 실린 영어논문을 한국어저널에 한국논문으로 다시 내면 자기표절이라고들 하는 경우도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양쪽 저널 편집자의 양해만 구한다면 얼마든지 중복게재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석학들이 이렇게 독일어, 영어로 영국-독일 저널에 각각 동시에 게재하는 사례는 꽤 많다. 독자층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법사회학연구'에 '베버의 근대법'이라고 쓴 A의 논문이 있는데, '사회학연구'라는 저널의 편집자가 '근대법과 사회학' 특집호를 내면서, 그 논문을 게재하길 원할 수가 있다. 법사회학연구와 사회학연구의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베버에 관련된 논문이 꼭 들어가야 균형이 맞는 상황인데, A 이외에는 다른 저자를 구하기 어렵고, A는 그 주제로 새로운 논문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면, '법사회학연구'에 실렸던 논문을 '사회학연구'에 재게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단, 양쪽 저널의 편집자가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양해해야 하며, '사회학연구'의 논문에 이전에 발표되어던 논문이라는 사실이 표시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에 첨부하는 고려대 지침에는 경우에 따라 이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업적이 중복계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08, 2010) 중 '중복게재'에 관한 부분을 소개한다. 대체로 적절하게 규정되었다고 본다.
제9조 (중복게재ㆍ출간의 제한)
① 연구자는 이미 게재ㆍ출간된 자신의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확한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동일 언어 또는 다른 언어로 중복하여 게재ㆍ출간하여서는 아니 된다. 연구 데이터나 문장이 일부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 해당하는 게재ㆍ출간을 할 수 있다. 다만, 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표시 또는 인용표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전공 분야의 특성과 해당 학계의 의견을 고려하여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1. 학위논문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별개의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2. 연구용역 보고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3. 이미 게재된 논문들을 모아 저서로 출간하는 경우
4. 동일한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동일 또는 다른 언어로 게재ㆍ출간하면서 해당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은 경우
5. 학술지에 짧은 서간논문(letter, brief communication 등)을 게재한 후 이를 긴 논문으로 바꾸어 게재ㆍ출간하거나, 연구 데이터, 해석 또는 자세한 연구수행과정의 정보 등을 추가하여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6. 이미 게재ㆍ출간된 논문 및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저자의 승인 하에 다른 편저자에 의해 선택, 편집되어 선집(anthology)의 형태로 출간되거나, 학술지의 특집호에 게재되는 경우
7. 이미 게재ㆍ출간된 논문 또는 저서의 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교양서, 대중잡지 등 비학술용(非學術用) 출판물에 쉽게 풀어 써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8. 그 밖에 위 각 호에 준하는 게재ㆍ출간으로서 학문적 진실성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경우
③ 이미 발표된 연구결과를 지식재산권으로 등록하는 것은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과 관계없이 허용된다.
“고려대학교 교원연구윤리지침”(2007)에서는 학술지 중복게재 절차를 규정해 놓고 있다는 점이 참고할 만 하다.
31조 2항 이미 출간된 논문을 인지할 수 없는 다른 독자군을 위하여 중복게재를 하는 경우에는 두 학술지의 편집인이 중복게재에 대해 동의해야 하고, 저자는 학술지의 독자들에게 동일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한 언어로 출간된 논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다른 학술지에 출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얘기는 논문을 통째로 중복게재하는 경우였다. 그렇다면 이미 출간된 자신의 논문의 '일부'를 자신의 다른 논문에서 '재활용'하는 경우는 어떨까? 먼저 타인의 논문의 일부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없이 활용했다면, 그것은 타인의 생각을 훔친 것이므로 문제의 소지가 간단하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자기가 훔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자기표절'이라는 말 자체는 언어도단이다. 이 경우에는 (자기 논문 일부의) '재활용'이라는 말이 이 문제를 더 직관적으로 표현해준다.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의 생각을 훔쳤다'는 일반적인 '표절'문제가 아니라 '저작권침해'다. 법적으로, 자신이 투고한 논문의 저작권이 학술지에 이양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법적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른바 '논문 저작권 이양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신의 논문이라도 저작권은 학술지가 소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 논문의 일부를 자기가 다른 논문에 재활용했다면 그 학술지의 저작권을 침해한 셈이 된다.
하지만, 논문 일부의 '재활용'을 '타인의 논문을 베낀 경우만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타인의 논문은 단 몇 글자라도 무단으로 인용하면 안되겠지만, 자신의 글에는 그런 기준이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단 '연속 6글자'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지 않고서는 연속해서 6글자가 동일한 '우연'이 발생할 수 없다는 전제인데,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우연'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학자의 논문은 '연속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즉, 논문A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서 또 다른 새로운 논문B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당연히 일부 내용의 중복이 불가피하다. 또한 해당 학술지의 저작권의 문제를 따져봐도 그렇다. A학술지의 글이 B학술지에 그대로 게재된다면 당연히 저작권 침해가 문제가 되겠지만, 같은 저자가 일부 표현이나 문장을 다른 B학술지의 논문에서 재활용했다고 해서, A학술지의 저작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가 저작권 전문가가 아니어서 권위있는 얘기를 하긴 어렵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저작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작권 침해가 아니더라도, 이미 출판된 자신의 글을 재활용할 경우 정확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정보 제공 차원에서)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글 인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비윤리적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일부 표현의 재활용을 문제 삼는 것은 연구자의 학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리적'으로 판단할 부분은 '새로운 논문'임이 명백한지의 여부일 뿐이라고 본다.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논문을 쓴게 맞다면, 일정한 수준의 자기논문 재활용은 (인용이 없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챕터 하나를 그대로 재활용하는 정도라면, 정보제공 차원에서 자기 글을 명확히 인용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면 이전 논문 학술지의 저작권 침해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필자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면, (질적으로 새로운 논문이라는 전제 하에)
1) 한 두 문장 정도 자신의 논문을 재활용하는 것은 인용이 없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2) 단, 재활용한 분량이 한 챕터를 넘는다면 인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 연구윤리지침(2008, 2010)은 아예, "한 단락 또는 5개 이상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참고가 될 만한 기준이다.
제8조 (자신의 연구성과 사용)
① 연구자는 연구문헌을 작성함에 있어 원칙적으로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 연구데이터 및 문장을 사용하여야 하고, 이전에 발표한 적이 없는 연구 결과물을 담아야 한다.
② 연구자는 연구문헌을 작성함에 있어 당해 연구의 독자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미 게재ㆍ출간된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연구데이터는 정확한 출처 표시와 함께 사용하여야 하며, 당해 연구에서 처음 발표하는 것처럼 제시해서는 아니 된다. 과거에 작성한 논문에서 최소한 한 단락 이상, 또는 5개 이상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와 인용 표시를 하여야 한다.
③ 연구자는 이미 발표된 자신의 연구성과가 이미 교과서 또는 공개적으로 출간된 데이터 파일에 게재되어 일반적 지식으로 통용되는 경우에는 그 연구성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점은 표절 문제의 권위자로 알려진 이인재 교수 ["연구부정행위로서 표절과 올바른 글쓰기",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8년 4월]의 견해와 필자의 생각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 교수는 자기표절이 "기만에 속하며 연구의 어느 수준에서나 용인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나, 필자는 "경우에 따라 용인될 수 있으며, 타인표절의 경우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정리하고 싶다. 이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이며 학계에서 좀 더 활발한 공론이 형성되었으면 한다.
※ 표절/인용에 대한 참고 사이트: 기타 표절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연구윤리정보센터에 가보면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http://www.c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