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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s this blessing then only for athe circumcised, or also for the uncircumcised? bFor we say that faith was counted to Abraham as righteousness. 10 How then was it counted to him? Was it before or after he had been circumcised? It was not after, but before he was circumcised. 11 cHe received the sign of circumcision as a seal of the righteousness that he had by faith while he was still uncircumcised. The purpose was dto make him the father of all who believe without being circumcised, so that righteousness would be counted to them as well, 12 and to make him the father of the circumcised who are not merely circumcised but who also walk in the footsteps of the faith that our father Abraham had before he was circumcised.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4:9–12.
본문의 이야기는 창 17:11에서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행한 것을 매개로 한다. 그런데 이는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이후에 행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할례를 의롭다 칭함을 받는 필수 요건으로 생각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할례는 하나님께 속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The argument of this brief paragraph rests on simple chronology: God instituted the rite of circumcision as a “sign of the covenant” (Gen 17:11) at least 13 years (29 years in Jewish tradition) after God accepted Abraham because of his faith (Gal 3:15–18). Abraham, then, is qualified to be the “father of all who believe” (v. 11): both Gentiles who come to faith without being circumcised and Jews who believe while being circumcised.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298–2299.
9-10절) 본문은 앞절에 등장하는 다윗이 말하는 복과 연관되어진다. 그래서 그 질문은 이렇다.
그렇다면 이 복이 오직 할례자들에게냐 혹은 무할레자들에게도냐? 그런데 창 15:6에서 보는대로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것은 무할례시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1세기 랍비들은 시편 32편의 내용은 배타적으로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된다라고 말했지만 바울은 이 주장을 창 15:6을 근거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의롭다 칭하을 받는 것이 할례 전인가 후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만약에 할례가 칭의의 근거가 된다면 유대인들의 주장으 옳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할례시에 아브라함이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라면, 할례와 칭의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유대인들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된다. 바울은 분명하게 할례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다고 증거한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이고 할례를 받은 시점이 99세이다. 이 중간 어느 시점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다.
- Here Psalm 32:1–2 (Rom 4:7–8) is interpreted via Genesis 15:6; that is, the basis of forgiveness is faith. Cranfield (1975:234–35) points out that the first-century rabbis applied Psalm 32 exclusively to the Jewish people, but Paul rejects this interpretation by appealing to Genesis 15:6. He then applies this point to circumcision by asking a further question (v. 10), Was this righteousness credited after he was circumcised, or before? If it was after, then it came by the works of the law and the Jewish system was correct. If before, then Abraham’s faith was the initiating mechanism and Christianity was correct. Paul’s answer is clear and forceful: It was not after, but before! History certainly bore this out—his faith is credited for righteousness anywhere from thirteen years (he is eighty-six in Gen 16:16 and ninety-nine in Gen 17:1) to twenty-nine years (stated by the rabbis) before his circumcision (Gen 17:23–24).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11.
11-12절)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그의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으로 이를 통해서 그는 무할례자로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무할례자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할례자들의 조상이 되었는데 이는 할례를 받은 자 뿐만 아니라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걸었던 믿음의 길을 따르는 모든 자를 말하는 것이다.
본문의 표는 표시, 특별히 보여주기 위한 상처나 흔적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로 여겨 받아주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표, 사인을 할례로 주신 것이다.
이 할례 자체는 어떤 마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단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언약을 확증하는 의식일 뿐이다. 그 언약은 할례가 아니라 순종을 통해서 유지된다. 할례와 비슷하게 여겨지는 것이 신약에 와서 세례이다. 만약 할례 자체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변경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와 동일하게 세례도 그러하다. 이어 바룰은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의롭게 되어지는 유일한 길은 바로 믿음이라고 결론짓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인종이나 종교적인 배경에 관계없이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께 두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계시를 소유하는 것은 신앙의 삶을 떠나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행동은 신앙의 실제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행동에 대한 교리를 높이는 치명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활동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포괄적이고 분명한 지식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이 삶을 변혁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 Circumcision itself possessed no p 126 magical power. It was merely a ceremonial rite that witnessed to a covenant between God and humans. The covenant was maintained by obedience, not by circumcision, the sign of that covenant (cf. Gen 18:19; 22:18; 26:4–5). Those who consider baptism as the New Testament equivalent of circumcision should take note that the comparison undermines, rather than supports, any doctrine of baptismal regeneration. If circumcision by itself was powerless to alter a person’s relationship to God, the same would be true of its counterpart baptism.
Paul concluded that for Jew and Gentile alike there is only one way to be justified, and that is the way of faith.57 God is the Father of all who place their trust in him regardless of their racial or religious background. To possess the revelation of God is of no ultimate importance apart from the walk of faith. Conduct demonstrates the reality of faith. People have a fatal tendency to elevate doctrine over behavior. Although a clear and comprehensive knowledge of the nature of God as revealed in his redemptive activity is of great importance, one cannot claim to have Abraham as father to say nothing of the God of Abraham unless that knowledge transforms life.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125–126.
모세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을 함께 고려하며 바울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믿음이 율법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자신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다. 이 할례는 유익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약에 있어서 핵심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율법을 받은 자들이라고 자랑한다. 오직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만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되는 증표라고 여겼던 할례와 무관하게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율법이나 할례와 관계없이 오직 믿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어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적용되어진 원리 그대로 이방인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결코 인간의 행위로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믿음으로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The rest of this section (4:11–12)* details two interconnected purposes for the faith of Abraham that led to righteousness. Paul could have subsumed them under one statement that Abraham was the father of all who believe, Jew and Gentile alike. But instead Paul separates them into two sections for emphasis. First, Abraham’s faith happened so that he might be the father of all who believe but have not been circumcised. Since Abraham was justified by faith, he was the father of all who are justified by faith. Circumcision is not necessary for faith. The Jewish people had long claimed that they were the chosen people because Abraham was their father; they were willing to call Gentiles his children only so long as these Gentiles became Jewish proselytes. But Paul is making a more radical claim. Since Abraham was justified by faith apart from circumcision, he is also the father of all who are justified by faith. Thus the Gentiles are his children apart from the law and apart from circumcision. The result (so Cranfield 1975; Käsemann 1980; Moo 1996; contra Barrett 1957 and Dunn 1988a, who take it as purpose) is that righteousness is credited to the Gentiles in the same way that it was credited to Abraham. Righteousness cannot be earned by one’s deeds, only given by God as his grace-gift. In that sense both Jews and Gentiles stand equally before God, and the sole basis is faith in the atoning sacrifice of Christ.
The second aspect of Abraham’s heritage concerns the Jewish people themselves. Abraham is also father of the circumcised. But here is the twist. It is no longer based on ancestry or legal observance but can be experienced only when they walk in the footsteps of the faith that our father Abraham had before he was circumcised. Since circumcision is one of the “works of the law,” it can no longer provide assurance of being a member of the covenant people. Since the Messiah has arrived, only faith in him can suffice. To prove the necessity of this, Paul has appealed in this chapter to the model of Abraham, who was declared righteous on the basis of his faith before he was circumcised. Faith precedes circumcision both historically and spiritually. So the biblical model, Paul argues, is one of faith rather than works.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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