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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hen Noah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took some of every clean animal and some of every clean bi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on the altar. 21 And when the Lord smelled kthe pleasing aroma, the Lord said in his heart, “I will never again lcurse1 the ground because of man, for mthe intention of man’s heart is evil from his youth. nNeither will I ever again strike down every living creature as I have done. 22 oWhile the earth remains, seedtime and harvest, cold and heat, summer and winter, pday and night, shall not cease.”

k Ex. 29:18, 25, 41; Lev. 1:9, 13, 17; See Ezek. 16:19; 20:41; 2 Cor. 2:15; Eph. 5:2; Phil. 4:18

l ch. 3:17; 6:17

1 Or dishonor

m ch. 6:5; Ps. 58:3; Rom. 1:21; [Matt. 15:19]

n ch. 9:11, 15; Isa. 54:9

o Jer. 5:24

p Jer. 33:20, 2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8:20–22.

 

 

 

20절) 노아가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처음 한 행동은 바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이다. 이 번제는 홍수로부터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키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속죄이 표현이었다. 또한 이후에 자신들은 다시금 안전하게 지키실 것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It is appropriate that the offerings he presents to Yahweh are holocausts or “whole burnt offerings” (ʿōlōṯ). It is probable that this is the oldest and most frequent of all the OT sacrifices. A continual burnt offering (ʿōlaṯ tāmîḏ) was made twice daily, morning and evening (Exod. 29:38–42). Leviticus and Numbers mandate this offering after some kind of crisis, such as after childbirth (Lev. 12:6–8), after bodily discharges (Lev. 15:14–15, 29–30), and after defilement during a Nazirite vow (Num. 6:10–11). The priestly legislation attaches an expiatory function to it (Lev. 1:4; 9:7; 14:20; cf. 1 Sam. 13:12; Job 1:5; 42:8). But whenever the whole burnt offering is presented, the motive is joyful, indicated by the fact that this holocaust is called a freewill offering (Lev. 22:17–25; Num. 15:1–11). It is anything but dour. In addition to expiation, this sacrifice serves at least two other functions. It is connected both with petition (1 Sam. 13:12) and with thanksgiving (Lev. 22:17–25; Num. 15:1–11). As such the whole burnt offering is “all-encompassing; it answers to all the emotional needs of the worshiper.”2

2 J. Milgrom, “Sacrifice and Offering, OT,” IDBS, p. 769.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17,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0), 307–308.

 

21-22절) 여호와께서 노아의 번제로 그 향기( Ex. 29:18, 25, 41; Lev. 1:9, 13, 17; See Ezek. 16:19; 20:41; 2 Cor. 2:15; Eph. 5:2; Phil. 4:18)를 기쁘게 받으셨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이제 다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 땅이 존재하는 동안에 씨뿌림과 추수,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번제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레 1:4, 9, 13, 17) 한글에서 그 향기로 번역된 표현은 영어로 the pleasing aroma로 그 기쁘시게 하는 향기라고 할 수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레아흐 니호아흐’이다. 본문이 ‘니호아흐’라는 표현은 위로, 평온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노아(노아흐)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다.(창 5:29) 게다가 이 단어는 진정시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곧 번제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홍수로 인해서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도를 바꾸셔서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신다. 땅을 다시 저주하지 않겠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홍수를 의미하기도 하고 노아가 저주받은 땅으로 인해 받는 고통으로부터 위로를 가져올 것이라는 라멕의 약속의 성취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앞서 3:17-18절의 땅의 저주가 여전히 유효하지만 노아는 땅으로부터 열매를 수확하게 된다.(9:20)

 

저주와 관련해서 3:17에서는 히브리어 동사 ‘아루르’가 사용되었고 8:21에서는 ‘칼랄’이 사용되었다. 

 

22절은 자연의 세계에 있어서 예측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다. 홍수 심판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으로 임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땅을 저주하지 않을 것에 대한 약속으로 계절의 주기가 예측가능하게 주기적으로 일어날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악하고 불규칙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세계에 그 주기의 규칙성을 약속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지 않는것과 그분이 행하시겠다고 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결과이다.  

 

20–22절은 새로운 세상에서 인간은 전혀 새로워지지 않고 이전처럼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태생적 죄악성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물로 세상의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않겠다며 은혜의 선포를 한다. 새로운 세상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로 유지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데에 노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노아는 제단을 쌓고 자원하는 번제물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창세기 6–9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서 지엽적인 일들 한 두 가지를 제외하고 항상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시고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로 끝을 내고 다음 사건이나 행동이 이어진다. 그리고 창세기 6–9장에서는 주로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위하여 행동하시지 노아가 하나님을 위하여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창세기 8:20에서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원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창세기 8:20의 제단은 성경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번제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처음 행한 것이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었다. 창세기 4장에서 에덴 동산에서 나온 인간의 첫 활동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였던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갈등을 초래한 것과는 달리, 노아의 제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노아가 바친 제물은 21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기 위한 속죄의 용도로 번제를 드린 것이다. 노아는 자기 죄 때문에 속죄 제물 드린 것이 아니다. 마치 그리스도가 했던 것처럼 노아는 하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원하여 제사장의 역할을 취하여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렸다.

노아가 바친 제물의 성격은 큰 논쟁거리이다. 전통적으로 노아의 제물은 속죄의 성격을 지닌다고 여겼다. 하지만 카슈토는 노아의 제물은 감사제의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다.26) 그에 의하면, 노아 홍수는 인간의 죄악을 다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속죄제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노아의 제물은 고대 근동의 종교들처럼 신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마술적 성격을 지녔다고 주장한다.27) 인간이 마술로 하나님을 조정하여 더 이상 진노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술적으로 보기에는 창세기 8:22의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항구적인 자연 법칙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아의 제물에서 감사제의 성격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 8:21에 있는 피조 세계를 징벌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노아의 제물이 속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26) U. Cassuto, Genesis II: From Noah to Abraham (Jerusalem: Magnes Press, 1997), 117.

27) Victor P. Hamilton, Genesis 1–17, 309.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80–28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완악함으로 인해서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충격을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마치 잘못된 아이의 행동(동생을 때리거나 거짓말을 하는등)을 교정하기 위해서 아이를 체벌하는 것이나 살인을 막기 위해서 살인을 집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죄를 지은 사람과 그를 처벌하는 사람의 행동의 차이점이 과연 절제와 책임속에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효과적인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를 체벌하면서 절제되지 않은 자신의 난폭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을 훈육이 아니라 학대가 된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집행하는 공권력의 경우에도 이것이 공정한 규율 안에서 절제와 책임 속에 집행되지 않으면 독재의 씨앗이 된다. 그러니까 적법한 절차를 통하지 않고 체포, 구금, 사형을 집행한다면 이는 폭정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위에 만연한 악을 바라보시면서 이러한 절제와 책임 가운데 행동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홍수는 우리의 편에서 볼때 엄청난 재앙임에 틀림없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제아래 있으며 효과적으로 노아를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성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전세계적, 혹은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인 혼돈을 사용하신다. 하지만 이러한 혼돈 속에 있는 개인은 이 혼돈의 이유를 당시에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예) 찰스 콜슨 : 인격과 청렴을 가훈으로 삼는 가정에서 태어나 40세가 되기 전체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임명되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강한 충성심과 탁월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청렴성을 잃어간다. 그는 공화당의 대통령 임기 연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처리해 나가다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서 민주당 본부를 도창한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복역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회심하게 되고 교도소 선교회를 세워 사역을 시작한다. 그는 국가적인 혼돈의 사건의 중심에서 개인의 혼돈을 경험하고 그 혼돈으로부터 삶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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