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자라가기
열한번째 만남.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1. 인생의 목적을 어디서 찾을까
* 생각해볼 질문 :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의 목적을 찾았고,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사람, 책, 사건 등)은 무엇이었습니까?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누구를 만나는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인생의 목적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돈, 쾌락, 재미, 성공, 가족, 건강, 세상의 정의 등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생의 목적을 찾는데 가장 존귀하고 믿을만하고 중요한 원천은 단연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셨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고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의 목적
마태복음 5:48 (NKRV)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도 온전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 요구에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처럼 완전하라는 요구도 말이 안되는데 하나님처럼 온전해라, 완전해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과장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도 비슷한 요구를 합니다.
에베소서 5:1 (NKRV)
1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바울은 우리가 사랑을 받는 자녀라면 그 자녀의 모습에 걸맞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모습이 되려는 소망을 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3:10 (NKRV)
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과장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속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원래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그분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하나님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갖고 성공하여 돈 벌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분을 버리고 떠난 인간들을 다시 그분께로 돌아오도록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다음 우리의 신분을 바꾸시고 그 신분에 걸맞는 자질을 갖도록 계속해서 변화시키십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우리를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 축구 선수가 되는 것, 돈 많이 버는 것처럼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doing(행함)의 종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being(존재)의 종교입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교사가 될 수도 있고, 축구 선수, 사업가, 의사, 유투버, 가정주부, 목사나 선교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모범 되신 예수님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서서 그 본을 찾을 수 있겠습이까?
누가복음 2:52 (NKRV)
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유년시절을 어떻게 보내셨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아기 때부터 얼굴에 후광이 비추이고 성자처럼 근엄하게 말하고 행동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로 근엄하게 “배고프다. 우유를 좀 가져다 주거라 혹은 마리아야 내 기저귀를 좀 갈아라”라고 말했을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아기들처럼 그냥 우셨을 것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지혜는 정신적인 성장, 키는 육체적 성장, 하나님에게 사랑 받았다는 것은 영적인 성장,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사회적인 성장을 말합니다.
우리가 앞서 살핀 풍성한 삶의 기초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혜와 키’는 나 자신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러워가셨습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에게는 깊은 사랑을,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칭찬을, 꾸짖음이 필요한 자에게는 가차없는 질책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전한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가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공동체의 관계와 세상과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에게도 점점 더 사랑스러워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1) 예수님께서는 균형있게 성장하셨습니다. 2) 또한 예수님은 모든 성장과정을 거치셨습니다. 키가 갑자기 확 크고 어느날 갑자기 영적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점진적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어느 영역에서 성장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만 열심히 다닌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성장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불을 받아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가운데 온전히 드러나는 일을 평생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사라면 예수님같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음악가라면 하나님을 닮은 음악가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가라면 예수님 같은 정치가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예수님을 닮은 직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같은 예술가, 예수님같은 목사와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받은 구원을 우리의 삶과 인격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2. 평생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생각해볼 질문 :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목표,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고 싶은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에베소서 4:13 (NKRV)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 그리스도인의 성장
- 우리의 성장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입니다.
- 성장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입니다.
- 성장하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가 누구이시며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우리의 삶속에 받아들일 때 우리가 성장하고 우리의 삶이 변화를 일으키게 되며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분의 생명력이 우리 속에서 일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십일조 좀 많이 한다고, 장로나 집사 집분이 있다고, 봉사를 많이 하거나 성경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다고 어깨에 힘을 주거나 반대로 남들과 비교하여 그렇지 못하기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모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가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면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수고한 것에 칭찬을 받지 못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안에 돌아다니는 귀신중에 제일 문제가 되는 귀신이 ‘섭섭귀신’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원망이 되고 결국 시험에 들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는 궁극적이고 고귀한 목적을 잃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면 일상에서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기도, 성경읽기, 봉사 같은 소위 교회 생활에서 예수님을 닮아가겠지만 이런 것들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처럼 성장한다고 할 때 우리가 꼭 생각해야할 부분은 예수님도 성전에서 성장하신 것이 아니라 먼지 풀풀 날리는 삶의 정황에서 성장하셨다는 것입니다. 목수인 아버지 요셉에게 일을 배우고, 얼마후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실제 삶의 터전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종교생활, 영적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기도하고 큐티훈련을 하는 좁은 의미의 제자훈련에 집중합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고 헌금도 열심히 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우리의 일상, 바로 지금 여기(now and here)에서 이루어집니다.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공부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2) 우리의 간절한 소원
시편 42:1–2 (NKRV)
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목말라 본 적이 있으십니까? 간절히 냉수 한모금을 원했던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 속에서 주님을 갈망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이 강할 수록 우리는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얼굴을 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한다’ 혹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라고 말합니다.
요한1서 3:2–3 (NKRV)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마지막 때에 그분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놀라운 신분으로 변화되었다면 그분이 오실 때 그와 같이 되리라는 소망을 갖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3. 가장 중요한 성장 원리 : 믿음
* 생각해볼 질문 : 이제 성장 목표는 분명해졌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런 성장에 이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닮는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종교 영역에서 헌신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장하신 곳, 나아가 사역하며 살아가신 곳은 성전이 아니라 삶의 현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믿음의 원리
참된 제자로 성장해가는 진정한 제자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초기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전 과정에서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하고 계신 일, 앞으로 하실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⓵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
로마서 3:24–25 (NKRV)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로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⓶ 믿음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림
로마서 5:1–2 (NKRV)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본문에서는 두번에 걸쳐서 ‘믿음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먼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이 은혜에 들어감을 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마음것 예배하며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본문은 이 자리를 은혜의 자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인생살이가 어려울 때가 참 많습니다. 어떤 대는 힘든 일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는 자신의 부족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냉철하게 살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 우리를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않으시고 완전히 받으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 서 있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롬 3:23)’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5:2)’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⓷ 믿음으로 살아감
로마서 1:17 (NKRV)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는 개역개정의 번역을 새번역에서는 ‘이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나 자신과의 관계와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나아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한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의 근거가 바로 믿음으로, ‘네 그렇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7 (NKRV)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시대는 특별히 나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되어서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따라서 진리도 재단합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설교나 강의를 들을 때도 뭔가 느낌이 오는 것이 있어야 좋은 강의,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느낌이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경우에도 진리는 선포됩니다. 우리는 느끼는대로 따라가지 않고 믿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2) 믿음의 특징 : 행함
데살로니가전서 1:3 (NKRV)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세가지 특징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간단히 표현했는데 믿음에는 역사가, 사랑에는 수고가,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내가 없으면 소망이 아닙니다. 수고 없는 사랑은 가짜입니다. 믿음에는 행함, 역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고보는 행함을, 바울은 믿음을 강조한다고 말하지만 바울이나 야고보나 모두 살아있는,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정말 제대로 믿는다면 행함은 따라 옵니다. 우리는 진리-믿음-행함-변화의 관계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믿음 :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인격적 수용
행함 : 우리가 믿는 내용이 삶에 나타남
변화 :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우월하게 느낄 수도 있고 열등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의 실제적인 반응은 마음의 평안으로 나타납니다.
4. 믿음으로 훈련하기
* 생각해볼 질문 : 믿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 가장 큰 방해거리는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4:9 (NKRV)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는 우리가 배운 것을 받아들여서 연습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이 평강, 평화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조화로운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1) 믿음으로 연습하고 훈련하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대로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될때까지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를 알기 전에 우리를 지배하였던 육신의 정욕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누군가와 갈등관계에서 말싸움을 해서 이겼다고 합시다. 만약 하나님이 상대방의 억울함을 들으시고 ‘그래 네가 정말 억울하구나’라고 하시면 그것은 절대로 내가 이긴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인간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이를 안다면 우리는 예배를 드릴때 좀 더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뵙는데 늦을 수 없습니다. 자다 일어난 상태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2) 영적 지도자의 역할
이렇게 믿음으로 연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중간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직접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중간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는 ‘나도 하나님을 본받으려고 힘쓰고 있으니 넌 나를 따라오면 하나님을 본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수입의 십일조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사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으로 이제 더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가르치는 원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우리는 청지기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적으로, 기계적으로 1/10을 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제생활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십일조를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 시위(demonstration)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용한 양식을 책임지신다고 했는데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람이 십일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굉장히 불편하실 것입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시면서 이 사람을 돕기위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훈련은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일시에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우리의 인격과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습관의 집합체, 덩어리입니다. 이 습관 동어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기초하였다면 결국 우리 속에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점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온전하게 하는 성경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의 기초위에 서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성경에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7 (NKRV)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온전한 살마이 되고 선한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읽고 익혀야 합니다. 성경을 자꾸 읽다보면, 자꾸 그 기초위어 서려고 노력하다보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 습관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 성경읽기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전하고 거룩하여지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계시된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배우고 이를 익혀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질문하고, 진리위에 서고 이를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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