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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Now in ia great house there are not only vessels of gold and silver but also of wood and clay, jsome for honorable use, some for dishonorable. 21 Therefore, kif anyone cleanses himself from what is dishonorable,4 he will be a vessel for honorable use, set apart as holy, useful to the master of the house, lready for every good work.
i See 1 Tim. 3:15
j Rom. 9:21
k [Prov. 25:4; Isa. 52:11]
4 Greek from these things
l ch. 3:17; Titus 3:1; [1 Tim. 5:1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후 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후 2:20–21.
 
14-19절에서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부끄러울 것이 없는 말씀의 사역자로 헌신을 당부하면서 이단의 가르침을 경계하는 내용을 기록한다. 이어지는 20-26절은 성결과 온유에 대한 권면이다. 
 
20절) 원문에는 역접을 의미하는 접속사 ‘데’가 있는데 이는 본절의 앞선 진술과 의미상 대조를 이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절이 말하는 ‘큰 집’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작게는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인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이중에 다양한 은사와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다. 교회안에 사역을 하는 이들중에도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으로 비견될 만한 이들이 있다. 
‘귀히 쓰는’으로 번역된 ‘에이스 티멘’이나 ‘천히 쓰는’으로 번역된 ‘에이스 아티미안’은 롬 9:21-23에도 동일하게 사용된 표현이다. 
로마서 9:21–23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그렇다면 여기서 ‘귀히 쓰는 그릇’은 롬 9:23에서 말하는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을 의미하는 것이고 ‘천히 쓰는 그릇’은 롬 9:22에서 말하는 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물론 앞서 17절에 등장한 후메내오와 빌레도처럼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 있다가 악성 종양과 같이 악영향을 미치고 출교당한 이들도 있지만 본 절에서 등장하는 큰 집에 있는 다양한 그릇의 비유를 구원과 멸망이라기 보다는 귀함과 천함이라는 은사와 역할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바꿀수 없는 절대적 차이, 즉 금, 은, 나무, 흙과 같은 재료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는 거싱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변화 가능한 상대적 차이, 즉 정결 여부에 따른 그릇의 사용 용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중에 이 절대적 차이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서 고민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왜 나는 금그릇이 아닌가? 왜 나는 나무 그릇, 질 그릇으로 만드셨는가라는 고민과 질문에 빠져서 자기 비하감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절대적 차이에 주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달란트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달란트를 얼마나 성실하게 잘 사용하였는지를 주목하시고 이를 물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금 그릇, 은그릇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깨끗한 그릇으로 주인의 쓰기에 잘 준비되어 있느냐인 것이다. 
 
‘그릇’으로 번역된 ‘스큐오스’는 ‘그릇, 도구’라는 의미 이외에도 ‘몸, 여자, 아내’(벧전 3:7; 행 9:15; 살전 4:4)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릇의 용도는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는 것이다. 
 
‘귀하게’로 번역된 ‘티메’는 ‘값, 가격, 명예, 존경’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천하게’로 번역된 ‘아티미아’는 ‘티메’에 부정 접두어 ‘아’가 조합된 것으로 ‘수치, 불명예, 천하게’라는 의미이다. 
 
2:20 This verse states that in a large house there are various vessels, some εἰς τιμήν and some εἰς ἀτιμίαν. That some have gone astray from the truth (v. 18) provides the setting for referring to vessels εἰς ἀτιμίαν. Therefore, the large house is to be understood as the Christian community in its broadest sense, within which are false teachers, just as in the Korah situation (see above on v. 19). The analogy could represent society in general (Chrysostom), but that the imagery of the house has been used of the Christian community in 1 Tim. 3:15 favors that understanding here (Alford, Calvin).
Paul says ἐν μεγάλῃ οἰκίᾳ, “in a large house,” probably because only in a large house would one find the variety of vessels that he mentions here, especially those that are εἰς ἀτιμίαν. He may also refer to a large house because thereby he can point to the Christian community in the broadest sense and speak of some of its “members” (vessels) as εἰς ἀτιμίαν. Nowhere else does Paul speak of the church or its members in such terms: It is in this setting, not as a generalized definition of what the church is or ought to be, that Paul uses this imagery.
δέ, “now,” is a transitional particle. ἐν μεγάλῃ οἰκίᾳ, “in a large house,” is “a locational or situational orienter” that “marks the beginning of a figurative illustration” (Smith-Beekman, Analysis). The particles οὐκ … μόνον and ἀλλὰ καί distinguish two classes within the category of σκεύη that will be carried through with the μέν … δέ construction, which relates the distinguishing prepositional phrases εἰς τιμήν and εἰς ἀτιμίαν to the two classes respectively. σκεύη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vessel” (cf. C. Maurer, TDNT VII, 358–67, especially 364).
Paul has on an earlier occasion referred to three of the four materials that he mentions here—χρυσός, “gold,” ἄργυρος (NT 3x), “silver,” and ξύλον (NT 2x), “wood”—in this order (1 Cor. 3:12, with cognate form of the words and with other words). There as here the first two are distinguished from the third as representing different categories. The fourth term here, grouped with the third, is ὀστράκινος, “earthenware.”
The καί that introduces the μέν … δέ functions explicatively, “that is,” “namely,” indicating that the phrase that follows is intended to explain what went before it. The repeated relative pronoun is used here as a demonstrative pronoun with the meaning “some … others.” Some vessels are εἰς τιμήν, literally “for honor,” i.e., honored by the use to which they are put or the purpose that they have (cf. BAGD s.v. τιμή 2b; s.v. εἰς 4d). Likewise εἰς ἀτιμίαν, literally “for dishonor,” means that a given vessel is dishonored by the use to which it is put or the purpose that it has (cf. Rom. 9:21, where the same two prepositional phrases are used, again with σκεῦος).
Therefore, gold and silver vessels are esteemed as honorable because they are used for honorable functions. Similarly, wood and earthenware vessels are regarded as dishonorable because they are used for garbage or excrement and are sometimes thrown out with their contents. The implication is that there may indeed be vessels like the false teachers in the professing Christian community, but their activity indicates that they are dishonorable.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417–418.
 
21절) ‘깨끗하게’로 번역된 ‘엑카다레’는 ‘~로부터, ~의 밖으로’를 의미하는 분리 전치사 ‘에크’와 ‘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다리조’의 합성어이다. 이는 특별히 ‘제의적으로 부정한 것을 환경이나 존재하는 곳으로부터 제거하다’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고전 5:7에서 말하는 것처럼 묵은 누룩을 내버림으로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앞선 내용과 연결되서 보자면 불의한 행동을 한 이들을 출교시키고 자신을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22절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자기르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이 되는데 이 귀하게 쓰는 그릇의 세가지 특징을 언급한다. 
첫째, 거룩하게 된다. ‘거룩하고’로 번역된 ‘헤기아스메논’은 ‘거룩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하기아조’의 현재 완료 수동 분사형이다. 수동형이 사용된 것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구별되는 삶이 필요하다. 이는 앞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정하고 더러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된다. ‘쓰심에 합당하며’로 번역된 ‘유크레스톤’은 ‘잘, 좋은’을 의미하는 부사 ‘유’와 ‘이용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크리오마이’의 합성어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성도가 그의 주인이신 주님에 의해서 쓰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큰 집에는 다양한 종류의 그릇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쓰시기에 합당하게 준비되어 있느냐인 것이다. 운동 선수를 경기에 투입하기 위해서 잘 준비되어야 한다. 워밍업이 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투입할 수 없고 잘못하면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가 바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상태인 것이다. 
셋째,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된다. ‘준비함이 되리라’로 번역된 ‘헤토이마스메논’은 본래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헤토이마조’의 현재 완료 수동 분사형이다. 이는 주인의 사용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의 방점은 ‘준비함’에 있다. 나는 이런 이런 선한 일에만 사용될꺼야 라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은사와 재능에 따라, 또한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선한 일들이 있다. 어떤 선한 일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또 다른 어떤 선한일은 전혀 주목받지 못한 일 일 수 있다. 이러할 때 내가 원하는 일만을 하려고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이니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주님의 집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상태, 그래서 주인이 사용하려고 꺼냈을때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자세가 우리에게 요구되어진다. 
 
2:21 Inferential οὖν indicates that the statement it introduces is an inference drawn from the last phrase of v. 20: Since some vessels are for honor, one should “therefore” seek to be one of them. This inference is presented in a conditional sentence introduced by ἐάν, “if.” The condition is stated in general terms with the indefinite pronoun τις, “anyone” (on ἐάν τις see the comments on 1 Tim. 1:8). The condition to be met is specified in the words ἐκκαθάρῃ ἑαυτὸν ἀπὸ τούτων. The antecedent of plural τούτων is most likely the nearby plural relative pronoun phrase in v. 20b, ἃ … εἰς ἀτιμίαν, “some unto dishonor,” which, as has been seen, speaks by implication of the false teachers. (It is possible but not likely that the antecedent of τούτων is the more distant ἀδικίας. Against this is not only that another closer antecedent would be passed over but also that ἀδικίας is singular.) The condition is that one cleanse oneself from the defilement of fellowship with “these” and the effects of their teaching and actions (cf. 3 Jn. 10–11). ἐκκαθαίρω** is used similarly in 1 Cor. 5:7 (cf. the uncompounded verb with the reflexive pronoun in 2 Cor. 7:1 in the light of what precedes it). ἐκ in the compound verb adds a perfective idea, which in this combination means “cleanse thoroughly” (cf. Robertson, Grammar, 597). The reflexive pronoun ἑαυτόν, “himself,” is used because the action called for affects the subject.
In the conclusion, “he will be a vessel for honor,” Paul explicitly uses the language of the analogy in v. 20. This use of the neuter noun σκεῦος, “vessel,” sets the pattern for the use of the neuter gender in the three phrases that follow. Cleansing “from these” assures that one “will be” (future ἔσται) “a vessel for honor.” This conditional sentence underscores the second half of the inscription in v. 19 and applies it to Timothy’s situation. To be an honorable vessel one must depart from wickedness by departing from those who practice such (cf. 1 Cor. 5:11, 13; 2 Cor. 6:14–7:1).
The significance of the fulfillment of this condition is spelled out in the three phrases that follow. ἡγιασμένον (perfect passive participle)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sanctified” or “made holy” by having been cleansed from the defilement of sin and thus becoming one set apart for God and his service (see especially Eph. 5:26 where a similar [but not identical] sense of cleansing is conveyed by καθαρίζω, the uncompounded form of the verb used in the protasis of this verse). It thus reiterates the aspect of cleansing but in more personal spiritual terms.
εὔχρηστον** (2 Tim. 2:21; 4:11; Phm. 11) τῷ δεσπότῃ, “useful for the master,” specifies the significance of this cleansing in terms of the vessel’s “personal” relationship to the master of the house. It continues the image of the house with τῷ δεσπότῃ being the master of the house (cf. in the PE* 1 Tim. 6:1, 2; Tit. 2:9) and by analogy representing God (cf. Lk. 2:29; Acts 4:24; 2 Pet. 2:1; Jude 4; Rev. 6:10).
The end result is that the vessel “is prepared,” i.e., has been put in readiness (ἡτοιμασμένον, perfect passive participle). The task for which (εἰς) it has been put in readiness is πᾶν ἔργον ἀγαθόν, “every good work,” an apt phrase that fits the imagery of the house and also the application intended, the life of the Christian, especially that of the Christian minister. “Prepared for every good work” thus specifies how useful the vessel is to the master in that it is fit for every type of service. The phrase πᾶν ἔργον ἀγαθόν is used elsewhere by Paul some 7x (see 1 Tim. 5:10) of the wide range of good deeds that one is called to do as a Christian (cf. Eph. 2:10). Paul returns to this phrase in 2 Tim. 3:17.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418–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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