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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giving
bWe ought always to give thanks to God for you, brothers,1 as is right, because your faith is growing abundantly, and the love of every one of you for one another is increasing. Therefore cwe ourselves boast about you din the churches of God for your steadfastness and faith ein all your persecutions and in the afflictions that you are enduring.
b ch. 2:13; See Eph. 5:20; 1 Thess. 1:2, 3
1 Or brothers and sisters. In New Testament usage, depending on the context, the plural Greek word adelphoi (translated “brothers”) may refer either to brothers or to brothers and sisters
c [2 Cor. 7:14]; See 1 Thess. 2:19
d [1 Thess. 1:8]; See 1 Cor. 7:17
e [Mark 10:30]; See 1 Thess. 2: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살후 1:3–4.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살후 1:3–4.
 
1-2절의 인사말에 이어서 3-4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으로 인한 감사와 자랑을 하고 있다. 
 
3절) 본문에서 ‘~할지니’로 번역된 ‘오페일로멘’의 원형 ‘오페일로’는 ‘~해야한다, 책임을 행하다, 빚지다’라는 의무로 본래 지불해야만하는 돈을 빚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마 18:28; 눅 7:41) 즉 이 단어는 어떤 일을 반드시 해야만하는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롬 15:27) 본서 2:13에서 다시 바울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게 항상 감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빚은 누구에 대한 빚, 부채인가? 일차적으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빚이라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이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더욱 자라고 사랑이 서로 충성함을 가능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포도열매로 인해서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부가 열심히 노력해서 열매를 얻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햇살과 비를 내리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의 원동력은 하나님이심을 바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의 감사의 이유는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바울의 감사의 근거는 믿음과 사랑이다.(살전 3:6)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신앙의 태도(수직적)라면 사랑은 이 믿음이 타인에게 나타나는 수평적 신앙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을 함께 강조하는데(고전 13:13; 살전 1:3, 5:8) 본절에서는 소망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 소망의 자질이 결여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된 재림에 대한 잘못된 교훈이 이들에게 올바른 소망의 자세를 가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본문에서 ‘더욱 자라고’라는 표현은 ‘휘페라욱사네이’으로 이것의 원형 ‘휘페라욱사노’는 ‘~을 초과하여’라는 의미를 지닌 ‘휘페르’와 ‘자라다, 번성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욱사노’의 합성어로 ‘지나치게 증가하다, 엄청나게 자라다’라는 강한 의미를 지닌다. 이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 표현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상상한것 이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급속도로 자라간 것이다. 또한 이 표현은 현재 시제 직설법으로 성장이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ESV는 ‘is growing abunduntly’로, NIV는 ‘is growing more and more’로 번역했다.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믿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며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감사할 일이다. 
 
‘풍성함이니’로 번역된 ‘플레오나제이’의 원형 ‘플레오나조’는 남아돌 정도로 풍성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바울은 앞서 살전 3:12에서 이 표현을 이용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사랑의 풍성함을 중보기도했었는데 이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이 표현 또한 현재직설법으로 지속해서 성도들 서로에 대한 사랑이 풍성함을 강조하고 있다. 
 
4절) 앞선 3절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감사라면, 4절은 박해와 환난중에 인내와 믿음으로 인해서 여러 교회앞에서 이를 자랑한 것이다. 앞선 1:6에서도 
데살로니가전서 1:6
6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바울은 이를 자랑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쓴지 이제 2-3개월의 시간이 지난후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본문의 박해라는 표현은 ‘디오그모이스’로 그 원형은 ‘디오그모스’인데 이는 원래 사냥개가 사냥감을 뒤쫓는 모습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사냥개가 표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집요하게 쫓아가는 것처럼 적대자들이 신자들을 괴롭히거나 체계적으로 추적하는 것, 특히 종교를 파괴하거나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어 ‘환난’이로 번역된 ‘들립세신’의 원형’들립시스’는 포도즙틀로 포도를 짜듯이 ‘부서질 정도의 압박’을 의미한다. 이처럼 바울은 박해와 환난, 디오그모이스와 들립세신이라는 동의어를 반복하면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 자신의 전도 사역이 이러한 환난으로 점철되었는데 자신을 본받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러한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 인내와 믿음을 지킨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6:4–5
4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린도후서 11:23–27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 표현은 ‘아네케스테’로 이는 ‘아네코마이’로 ‘스스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불쾌감이나 어려움을 견디다’라는 의미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지금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이루어진 일임을, 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기위함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묵묵히 이를 견뎌냈던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참는 것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바울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랑하고 있다. ‘인내’에 해당하는 ‘휘포노네’는 ‘아래에(under)’를 의미하는 ‘휘포’와 ‘머물러 있다’를 의미하는 ‘메노’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무겁게 내리누르는  무거운 짐이나 고통 아래에서 굳건하게 머물러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의 의미는 마지못해 그렇게 한다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견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믿음에 해당하는 ‘피스티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믿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 
믿음은 박해와 환난 가운데 더욱 빛을 발한다. 박해와 환난 가운데 변치 않는,  인내하는 믿음을 보여줄 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자랑할 만한 믿음인 것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여러 교회’는 앞서 살전 1:8의 교회를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8
8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현상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교회에 퍼져나갔다.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 헬라어 표현은 ‘아우투스 헤마스 엔 휘민 엥카우카스다이’이다. ‘헤마스’는 우리가, ‘아우투스’는 친히라는 의미인데 한글 성경은 ‘엔 휘민’을 번역하지 않았다. 이는 너희를이라는 의미이다. 이를 제대로 번역하면 ‘우리가 친히 너희에 대해서, 말미암아 자랑하노라’라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복음이 능력있게 교회안에 역사함으로 주변의 여러 교회가 이를 본받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데살로니가 현상의 핵심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초반에 세워진 교회로 데살로니가 도시에 세워진 어린 교회였지만 믿음의 성장이 매우 빠른 교회였다. 반면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유대인들의 박해 가운데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바나바와 함께 세운 교회였다(행 13:13~14:23). 이후 바울은 그곳을 재 방문하여 믿음의 성장을 돕기도 했다.(행 16:1-6) 하지만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을 정면으로 공격했으며 이방인 출신 성도들도 그 복음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미혹에 넘어갔다. 어렵게 전파된 복음이 위태한 지경에 이르자 바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급하게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교회의 성장은 여러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바울은 성장이 빠른 데살로나가교회에 대해서는 자랑을 아끼지 않았고 성장이 느린 갈라디아 교회에 대해서는 진심어린 걱정과 믿음의 성장을 도우려는 손길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꾸짖고(갈 1:6, 9) 한편으로는 염려하면서(갈 4:11) 그들을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했다.(갈 4:19)
우리의 사역이 모두 데살로니가교회 같기를 바라지만 각각의 교회마다, 또한 각각의 개인마다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에 어떤 이에게는 칭찬과 감사를, 어떤 이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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