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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erefore remember that at one time you Gentiles in the flesh, called “the uncircumcision” by what is called kthe circumcision, which is made in the flesh by hands— 12 remember lthat you were at that time separated from Christ, malienated from the commonwealth of Israel and strangers to nthe covenants of promise, ohaving no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13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pfar off have been brought near qby the blood of Christ.

k Rom. 2:26, 28; [Col. 2:11, 13]

l 1 Cor. 12:2; [ch. 5:8; Col. 3:7]

m ch. 4:18; Col. 1:21; [Ezek. 14:5; Gal. 2:15; 4:8]

n See Rom. 9:4

o 1 Thess. 4:13; See ch. 1:18

p ver. 17; Acts 2:39

q [Col. 1:20]; See Rom. 3:2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2:11–13.

 

앞서 2장 1-3절에서도 그때와 이제의 대조를 사용했었다. 바울이 이러한 대조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변화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게하기 위한 것이다. 본문 11절의 기억하라(생각하라)라는 단어는 1-3장에서 유일한 명령형이다. 이처럼 그들이 과거가 어떠했고 지금 어떠한지를 지속적으로 자각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순종하도록 하는 것을 돕는다. 

The real reason for the “formerly-now” contrasts in Ephesians is made clear. Paul wants his readers to remember the change effected by Christ. The command “remember” in 2:11 is the only imperative in chapters 1–3. This remembering covers all the material in verses 11–13, not merely the former life. Continual awareness9 of what they were and what they have now become will enrich both their thanks to God and their obedience.

9 This is the force of the present tense in the imperative.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26.

 

11절) 그러므로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들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이들이라고 불리우는 자들로부터 무할례자라고 불리는 자들임을 기억하라. 

유대인들은 이처럼 이방인들을 무할례자들이라고 무시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할례를 받은 것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중요한 증표라고 여기고 강조했지만 육체로 받은 이 할례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면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유대인들도 육체가운데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전히 육체로 이땅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손으로 행한 할례라는 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12절)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있었고 이스라엘 시민권으로부터 제외된 자들이며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 이방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었다. 

본 12절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불우하고 떨어져있고 멀리 있는 자들인지를 5가지로 묘사한다. 

  1.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다. 이는 이제는 그리스도안에 있다라는 사실과 큰 대조를 이룬다. 

  2. 이스라엘의 시민권과는 무관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자들이다. 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 대해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셨는데 이것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외국인이다. 본문에서 바울이 어떤 언약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히 아브라함, 다윗, 새언약으로서의 예레미야의 약속, 렘 31:31-34절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약속의 언약은 과거 아브라함, 다윗, 예레미야 언약의 성취로서 그리스도와 성령에게 우선적인 초점을 두고 있다. 

  4. 희망 없는 자들이다. 인간의 고난으로 도피할 어떤 희망도 그들에게는 없었고 그래서 어떤 위안도 고대할 수 없었다.

  5. 하나님없는 자들이다. 이 말이 그들은 무신론자라고, 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들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신으로,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Verse 12 describes five elements in which the Gentiles were deprived, disconnected, and distant:14

(1) They had no relation to Christ; this contrasts with their present position in Christ.15

(2) They were “excluded from citizenship in Israel.” Does “Israel” refer to historic Israel, spiritual Israel, or Jewish Christians? Probably Paul thought generally of exclusion from God’s people; that is, the Gentiles had no part in God’s purposes with Israel.

(3) They were “foreigners to the covenants of the promise.” This phrase emphasizes the same distance and disconnection as “excluded.” Precisely which covenants Paul has in mind is not clear. Surely the covenants with Abraham and David are included, and likely also the promise of the new covenant in Jeremiah 31:31–34. No doubt for Paul the “covenants of promise” focused primarily on the Messiah and the Holy Spirit, the means by which the covenants with Abraham, David, and Jeremiah were fulfilled (see 2 Cor. 3:3–18; Gal. 3:14).

(4) They were “without hope.” They had no hope of escaping the human plight and could not anticipate any relief (cf. 1 Thess. 4:13).

(5) They were “without God.” This does not mean they were atheists (although the word can be used this way), nor that they did not have gods (ancient Gentiles had plenty of gods). Rather, they did not have God (cf. Acts 17:23). In addition to being in the flesh, these Gentiles were “in the world” (a pejorative term that picks up the meaning of “world” in 2:2). The sphere in which they lived was isolated from God and what he was doing.

14 These elements assume the privileges Jews enjoyed (cf. Rom. 3:1–2; 9:1–5).

15 The word “excluded” is the same word translated “separated” in 4:18 and “alienated” in Colossians 1:21, the only other times the word occurs in the New Testament.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27–128.

 

13절) 그러나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까와졌다. 

그때에 그들이 관계가 없고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면 그 해답은 가까이 나아오고 속하는 것이다. 앞선 4-10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허물과 죄로 인한 우리의 곤궁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역에 우리를 세우시는 것으로 묘사했다. 본문 13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사람들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게 한다. 바울의 본 서신에서 ‘영역 주권’ 개념이 강조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어떤 영역에 가까이 있고 누구의 영향력 가운데에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전에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온다. 

‘멀리’와 ‘가까이’라는 단어는 사 57:19(엡 2:17)의 인용이다. 

 

인간의 곤궁상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에 기인한다. 생명이 그분으로부터 나왔고 그분의 임재가운데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이 곤궁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거기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In sum, the human plight is caused by separation from God. Life comes from him and is to be enjoyed in his presence. The only solution to the plight, then, is proximity to God, and Christ is the one who takes us there.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29.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육체로 소망이 없는 자들임을 말한다. 물론 본문 속에서는 이방인들에 대해서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는자들인지를 설명하지만 유대인들도 이에 못지 않다. 그래서 결국 이 육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의 피인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피가 멀리 떨어진, 하나님으로부터 관계가 멀어져서 나아갈수 없는 우리들의 손을 이끌고 하나님앞에 서게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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