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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Lord appeared to him by the ooaks1 of Mamre, as he sat at the door of his tent in the heat of the day. He lifted up his eyes and looked, and behold, three men were standing in front of him. pWhen he saw them, he ran from the tent door to meet them and bowed himself to the earth and said, “O Lord,2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do not pass by your servant. Let a qlittle water be brought, and wash your feet, and rest yourselves under the tree, while I bring a morsel of bread, that ryou may refresh yourselves, and after that you may pass on—ssince you have come to your servant.” So they said, “Do as you have said.” And Abraham went quickly into the tent to Sarah and said, “Quick! Three seahs3 of fine flour! Knead it, and make cakes.” And Abraham ran to the herd and took a calf, tender and good, and gave it to a young man, who prepared it quickly. Then he took curds and milk and the calf that he had prepared, and set it before them. And he stood by them under the tree while they ate.

They said to him, “Where is Sarah your wife?” And he said, “She is tin the tent.” 10 The Lord said, “I will surely return to you uabout this time next year, and vSarah your wife shall have a son.” And Sarah was listening at the tent door behind him. 11 Now wAbraham and Sarah were old, advanced in years. The way of women had ceased to be with Sarah. 12 xSo Sarah laughed to herself, saying, y“After I am worn out, and zmy lord is old, shall I have pleasure?” 13 The Lord said to Abraham, “Why did Sarah laugh and say, ‘Shall I indeed bear a child, now that I am old?’ 14 aIs anything too hard4 for the Lord? bAt the appointed time I will return to you, about this time next year, and Sarah shall have a son.” 15 But Sarah denied it,5 saying, “I did not laugh,” for she was afraid. He said, “No, but you did laugh.”

o ch. 13:18; 14:13

1 Or terebinths

p ch. 19:1; [Heb. 13:2]

2 Or My lord

q ch. 19:2; 24:32; 43:24; [Luke 7:44; John 13:14]

r Judg. 19:5; [Ps. 104:15]

s ch. 19:8; 33:10

3 A seah was about 7 quarts or 7.3 liters

t ch. 24:67

u ver. 14; 2 Kgs. 4:16

v ch. 17:19, 21; 21:2; Cited Rom. 9:9

w ch. 17:17; Rom. 4:19; Heb. 11:11, 12

x [ch. 17:17]

y [Luke 1:18]

z 1 Pet. 3:6

a Job 42:2; Jer. 32:17, 27; Zech. 8:6; Matt. 19:26; Luke 1:37

4 Or wonderful

b ver. 10

5 Or acted falsely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8:1–15.

 

 

17장과 18장은 연속적으로 함께 읽혀져야 한다. 이 두장은 번성해가는 아브라함과 쇠퇴해가는 롯을 대조하면서 동시에 여러 공통점을 보여준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탄생 예고를(17:19) 사라에게도 직접 알려주셨지만(18:12) 아브라함도 웃었고(17:17) 사라도 웃었다.(18:12) 사라가 내년 이맘때에 이삭을 낳을 것(17:21)이라는 점도 다시금 언급된다.(18:14) 

 

12절의 사라의 웃음은 17:17절의 그녀의 남편 아브라함의 웃음을 상기시킨다. 

 

1절) 한글성경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말하지만 원어는 아브라함이라고 직접 칭하지 않고 그에게 나타나셨다라고 표현한다. 문맥상 17장과 연속적으로 읽을때 본문의 그를 아브라함이라고 인식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8절) 아브라함이 무더운 한낮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본문의 마무레 상수리 나무는 앞서 13:18에서 장막을 옮겨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18, NKRV)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창세기 14:13, NKRV)

2절은 세 사람이 찾아왔고 아브라함이 그들을 보고 그들을 환대하였다. 본문은 몇번에 걸친 인칭의 변화가 등장한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다라고 말하는데 2절에서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보고 그들에게 달려가 몸을 굽혀 영접한다. 2절에서 놀라움을 표현하는 ‘힌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어 아브라함은 3절에서 마치 한명에게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 3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말하는 대상이 나의 주님들이 아니라 ‘나의 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4-9절에서는 여러사람을 염두에 두고 2인칭 남성 복수로 대화를 진행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이 천사들의 다음 여정지에는 두 천사가 등장한다.(19:1) 아브라함과 만났을 때는 분명 세사람이었는데 소돔에 이르렀을 때는 2명이 된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18:22을 보면 그 사람들(두 천사)가 떠나 소돔으로 향할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말하자면 셋 중에 둘은 소돔으로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으셔서 아브라함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유목민 삶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 근동에서 손님 환대(hospitality)는 죽음에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 풍습은 누구든지 자신의 장막으로 다가오면 쉬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기에 환대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고 예외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행한 이유는 선을 베풂으로써 잠재적 원수(potential enemy)를 최소한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온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러한 근동 지역의 관습이 아브라함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음 장에 기록된 천사들을 향한 롯의 섬김의 모습을 설명한다. 실제로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일종의 예배 행위이다. 탈무드는 객들에게 베푸는 호의는 하나님의 임재를 환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처음에 제시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쉬었다 가라고 했으면 냉수라도 내와야 한다. 본문에서도 아브라함은 조금만 먹고 가라(5절)고 했다가 큰 잔치상을 마련한다. 탈무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고 ‘의인의 길이 이렇다. 작은 것을 약속하고 큰 것을 베푸는 것이다’라고 했다. (엑스포지멘터리 336-7)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보고 달려나가서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환대하며 극진하게 섬기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당시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지만 거의 100세나 된 노인이 달려나가서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국 아브라함이 이 세 사람이 특별한 존재임을 인식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환대하면서 먼저는 발을 씻고 나무 아래서 쉴 것을 청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떡을 조금 가져오겠다라고 말한다. 이에 그들이 ‘네 말대로 그리하라’라고 명한다. 당시 샌들을 신고 다니는 문화에서 나그네들의 발은 항상 지저분할 수 밖에 없다. 손님이 도착했을때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집안의 종들중에 가장 막내의 몫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의미도 이것이다. 손님들이 그의 초청에 응하자 아브라함은 아주 바빠졌다. 그는 급히 장막으로 가서 아내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떡을 만들라고 명했고 이어서 가축 떼 있는 곳으로 가서 젊은 하인에게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주어 그것을 급히 요리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나서 엉긴 젓(요구르트)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시고 이를 제공했다. 

한 스아는 학자들마다 다른데 4.5리터에서 15리터에 달하는 부피를 말한다. 세 스아의 고운 밀가루는 약 13리터에서 45리터에 해당되는 많은 양이다. 아비가일이 화가 난 다윗의 군대를 달래기 위해서 다섯 스아의 밀가루로 빵을 빚었다.(삼상 25:18)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싸울 때 여호와의 제단 주위에 두 세아의 곡식을 둘만한 도랑을 팠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세 스아의 밀가루는 매우 많은 양으로 손님들만이 아니라 온 집안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빵을 구운 것이다. 또한 본문속에 보면 ‘급히, 속히’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이 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인식하고 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핟록 시켰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위해 송아지까지 잡은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이거나 그를 찾은 손님을 극진히 대전하비 위한 이유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화에 도움을 주는 엉긴 젓,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까지 내왔다. 이 세사람은 이처럼 아브라함이 준비한 음식을 먹었고 아브람은 그 식사 자리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음식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지금 철저하게 그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9-15절) 이제 음식을 먹은후에 천사들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다. 나그네들이 이처럼 아내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 것은 무례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누군가가 어디에 있는 지를 물으셨던 이전의 구절들(3:9, 4:9)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질문하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핵심으로 이끌어가려는 목적으로 질문하고 계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 돌아올텐데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사라가 장막 문뒤에서 들었다. 당시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로 늙어서 사라의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다. 11절에서는 거듭 아브라함과 사라가 임신할 가능성이 없음을 강조한다. 첫째는 나이가 많아, 둘째는 늙어서, 셋째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져서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기력이 다했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매게 무슨 즐거움(아들을 잉태함)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속으로 한 말을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겠느냐라고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때가 되었을 때 내가 네게 돌아올텐데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11절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다라고 말하고 12절에서는 내 주인도 늙었다라고 표현하고 13절에서는 나 자신이 늙었다라고 표현하다. 세절에서 거급해서 늙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화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식을 나을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는 이 표현에서 ‘능하지 못한’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노력과 연관지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펠레’인데  의미는 '기이한, 깜짝 놀라는, 신비한, 초자연적인’이다. 말하자면 여호와께는 어떤 불가능한 일도 있을 수 없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The question about why Sarah laughs is simply the lead into the more important statement of verse 14,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The word translated “hard” here is not a quality that can be connected to human endeavors. Even applied as a description of the temple (2 Chron. 2:9), it refers to that which goes beyond what human workmanship can attain. Proverbs 30:18–19 speaks of four things that are beyond human understanding, though they are in the realm of human experience. The sense of the word goes beyond “wonderful” or “astonishing” to something more like “mystical” or “supernatural.” Here we see a clear statement of what the text is teaching about God.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454.

פָּלָא (pālāʾ), ni. be difficult, extraordinary, wonderful; pi. fulfill; hi. do something in an extraordinary way; hitp. to show o.s. marvelous (hapleg.) (#7098); מִפְלָאוֹת (miplāʾôt), wonderful works (hapleg.; #5140); nom. פֶּלֶא (peleʾ), something extraordinary, wonder (#7099); adj. פִּלְאִי (pilʾî), marvelous (#7100). Some distinguish between פָּלָא, marvelous, and פָּלָא, pi. fulfil (a vow); hi. to fulfil (a vow), see THAT 2:415. The existence of this separate root is a debated question.

ni. niphal

pi. piel

hi. hiphil

hitp. hitpael

o.s. oneself (in lexical definition)

hapleg. hapax legomenon

hapleg. hapax legomenon

pi. piel

hi. hiphil

THAT Theologisches Handbuch zum Alten Testament, ed. E. Jenni and C. Westermann, 2 vols., Munich, 1971, 1976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615.

Abraham’s earlier protestations regarding fathering a child had focused on his problem (15:4), or on the advanced age of both prospective parents (17:17). Also, such protestations occurred in Abraham’s direct discourse. But here it is the narrator who speaks. He knows Abraham and Sarah are advanced in years and Sarah has reached menopause. This phrase reinforces the advanced stage of Sarah. She was not just old or older, but at a point where her menses had ceased. This verse and the following two place special emphasis on the ages of Abraham and Sarah by the three-time use of the root zqn. The narrator calls both of them “elderly” (zeqēnîm, v. 11), a point made by Sarah about Abraham (zāqēn, v. 12) and about herself (zāqantî, v. 13). The narrator simply states the biological facts. The narrator, while he does not succumb to an outburst of laughter as Abraham did, and as Sarah shortly will, through such asides, injects his own sense of humor and the incredulous into the story. As Sternberg has said, “In his interpolated aside on the age of the prospective parents, he [v. 12, the narrator] goes out of his way to give color to Sarah’s laughter at the visitor’s forecast: the more natural her doubt, the stronger our sense of God’s supernatural prescience.”37

37 M. Sternberg, The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1985), p. 9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2.

 

사라의 비웃음과 거짓말, 사라는 자신이 1년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자신은 지금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그쳐졌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느냐?’라고 정색하며 주님께서 정한 기일에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자 사라가 두려워하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불신이 드러나자 두려움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이성적이고 본성과 반대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 아담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숲에 숨었다. 아브라함은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서 사래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다. 본문에서 사라는 자신의 불신이 드러나자 두려워하여 부인하고 있다. 첫번째 죄를 덮기 위해서 두번째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항상 이렇다. 이미 지은 죄를 숨기고 가리기 위해서 새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일찍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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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And God said to Abraham, “As for Sarai your wife, you shall not call her name Sarai, but Sarah4 shall be her name. 16 I will bless her, and moreover, I will cgive5 you a son by her. I will bless her, and dshe shall become nations; kings of peoples shall come from her.” 17 Then Abraham efell on his face fand laughed and said to himself, “Shall a child be born to a man who is a hundred years old? Shall Sarah, who is ninety years old, bear a child?” 18 And Abraham said to God, “Oh that Ishmael might live before you!” 19 God said, “No, but gSarah your wife shall bear you a son, and you shall call his name hIsaac.6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him as an everlasting covenant for his offspring after him. 20 As for Ishmael, I have heard you; behold, I have blessed him and will make him fruitful and imultiply him greatly. He jshall father twelve princes, and kI will make him into a great nation. 21 But l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Isaac, mwhom Sarah shall bear to you at this time next year.”

22 When he had finished talking with him, nGod went up from Abraham. 23 Then Abraham took Ishmael his son and all those born in his house or bought with his money, every male among the men of Abraham’s house, and he circumcised the flesh of their foreskins that very day, as God had said to him. 24 Abraham was ninety-nine years old when he was circumcised in the flesh of his foreskin. 25 And Ishmael his son was thirteen years old when he was circumcised in the flesh of his foreskin. 26 That very day Abraham and his son Ishmael were circumcised. 27 And all the men of his house, those born in the house and those bought with money from a foreigner, were circumcised with him.

4 Sarai and Sarah mean princess

c ch. 18:10

5 Hebrew have given

d ch. 35:11

e ver. 3

f ch. 21:6; Rom. 4:19; [John 8:56]

g ch. 18:10; 21:2; Gal. 4:23, 28

h ch. 21:3

6 Isaac means he laughs

i ch. 16:10

j See ch. 25:12–16

k ch. 21:13, 18

l ch. 26:2–5

m ch. 21:2

n ch. 35:1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7:15–27.

 

 

15-16절)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이름을 이제 사라로 개명할 것을 명하신다. 사라의 이름은 ‘여주인, 열국의 어미’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아들을 낳게 해주시고 이를 통해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그녀로부터 민족의 여러 왕이 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사래의 원래 뜻은 ‘공주, 여왕’이란 의미이다. 이제 사라는 ‘여러 민족의 어미, 많은 왕들의 어미’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도 아브라함처럼 많은 민족과 왕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름이 바뀐 여인으로 기록된 사람은 사라가 유일하다. 또한 23:1에 그녀가 127살에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인의 죽음에 대해서 나이를 밝히는 것도 사라가 유일하다. 그녀는 독보적인 여인이었던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경우 이름이 바뀌면서 왕들을 후손으로 둘 것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더해진 내용이 없는데 반해 사라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여러 민족과 왕들’이 사라의 몸을 통해서 나올 것이라는 말씀을 더하신다.(16절)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얻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의 태에서 나올 아들을 통해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지금 그녀는 불임으로 수치스러운 인생을 살아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가 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변화를 그녀의 삶에 시작하고 계신 것이다. 사라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통해서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이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평생의 수치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대단한 사건이다. 또한 언약의 내용이 점점 더 구체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때와 그 방법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한 아브람과 사래의 모습은 참으로 아쉽다. 물론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원망을 할 수도 있다. 좀더 일찍 해주시지. 이처럼 우리의 믿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어려운 것이다. 

 

17-18절) 이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 그가 웃은 이유는 바로 자신과 아내의 늙음으로 인해서 출산이 불가능하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 사라의 나이는 90세로 생식적으로 출산이 불가능하기에 속으로 웃으면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사라를 통홰서 아들을 주시겠다라는 말씀은 그에게 매우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은 어쩌면 지금 현재 이스마엘의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 삶에 만족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안정되고 익숙한 삶에 새 아이가 태어나면 지금이 안정감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을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의 믿음없음으로 인해서 멈추지 않으시고 이삭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19-21절)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그의 웃음을 보시고 말씀하신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하나님께서 이삭과 언약을 세울 것인데 이는 이삭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이스마엘(하나님이 들으시다)에게는 복을 주어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12두령을 낳고 큰 나라를 이루게 하겠지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은 사라를 통해서 태어날 이삭을 통해서임을 말씀하셨다. 

 

이삭은 ‘그가 웃는다’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이삭이 태어나는 것과 관련해서 웃임이라는 모티브가 여러 부분에서 등장한다. 1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18:12-15에서는 사라가 믿지 못하고 웃었다. 또한 이삭을 낳고 나서 사라는 기뻐서 웃었다.(21:6) 또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라는 표현도 같은 단어이다.(21:9) 이는 히브리어로 ‘사하크’라는 단어로 옷음을 자아내다, 농담하다, 희롱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이 단어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사용된다. 

צָחַק (ṣāḥaq), q. laugh; pi. play, joke, insult, indulge in revelry (#7464); nom. צְחֹק (ṣeḥōq), laughter, derision (#7465).

ANE There are cognates in Ugar. (ṣḥq and ẓḥq), Akk. (ṣâḫu), and Arab. (ḍaḥika), with the basic meaning laugh.

OT The term is used both positively and negatively.

1. Laughter can be associated with a positive change of fortune brought about by God for an individual. The aged Sarah reacted to the birth of Isaac by declaring “God has brought me laughter,” a laughter of joy that others would share with her (Gen 21:6; for the interpretation of v. 6b see Westermann, 333–34). There is a play on the name “Isaac” (יִצְחָק).

2. It is one of the ironies of the Samson narratives that his God-appointed work as judge to deliver Israel from the Philistine oppressors (Judg 13:5) was accomplished by the entertainment he was forced to provide, which led to their destruction (16:25).

3. In Exod 32:6 the vb. is used in connection with the worship of the golden calf (NIV indulge in revelry). This usage may correspond to that of שָׂחַק (#8471) for religious celebration (cf. Sasson, 152), but more likely it refers to a sexual orgy (Hvidberg, 148; Brenner, 47, 51; cf. Gen 26:8; 39:17).

4. There are instances of a negative connotation. In Gen 17:17 the vb. refers to Abraham’s incredulous reaction to God’s miraculous promise of a son, to which the name “Isaac” (17:19) would bear witness. In Gen 18:12, 13, 15 Sarah’s laughter seems to reflect a more reprehensible measure of doubt and disbelief. (Abraham/Abram)

q. qal

pi. piel

ANE Ancient Near East(ern)

Ugar. Ugaratic

Akk. Akkadia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796–797.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비웃던 비웃음이 이후에 진정한 웃음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23-27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날에 그 집안의 모든 남자들을 불렀다. 이에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아브라함 집안의 남자들을 불러 할례를 행하였다. 아브라함은 99세,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았고 다른 모든 남자들도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창 12:2에 아브라함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큰 민족을 이루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15:4에 다시 나타나셔서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아니라 네몸에서 태어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아라고 약속하셨다. 이때에도 누구를 통해서 태어날지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로 16장에서 사래는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들여보내서 아들을 낳게한다. 그가 이스마엘이다. 하지만 17:16에서 다시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라의 태를 여서서 그녀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게 할 것을 약속하셨다. 이러한 약속을 받으면서 아브라함은 어땠을까? 

노년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아브람은 이스마엘이 약속된 아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13년동안 하나님께서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이 과정에서 아브람은 나름대로 이스마엘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그의 재롱을 보면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모든 사랑, 희망, 꿈들은 이 소년 이스마엘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이미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이야기해놓았을지도 모른다. 이당시 아브라함은 다른 아들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가 99세되는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때였을까? 아브라함이 사라와 처음 가나안에 입성했을때, 그들은 그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조그만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사라의 아름다움은 바로의 마음을 휘어잡을 정도였기에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의 폐경기가 지났고 아브라함도 나이가 들어 소망이 없어진 상태가 되었다. 의학적으로, 생식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바로 이때가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사라에게 육체적으로/의학적으로 티끌만한 희망이 남아있는 한 그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사자들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라고 여길 그 때를 기다리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이 잉태 단계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기족을 통해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완전히 포기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할례를 행하고 사래를 사라로 개명하는 것은 가능했는데 사라를 통해서 자녀를 주시겠다라는 약속의 말씀은 어쩌면 기쁜 소식이 아니라 믿기 어려운, 도리어 자신의 기존의 계획과 생각을 뒤엎어야 하는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웃었고 나중에는 결국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휩싸였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이러하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기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상황가운데 자신의 계획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담담히 해나간다. 하지만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나의 계획은 이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브라함처럼 웃으며 말도 안되요라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며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불가능해 보이는 그 길을 향해서 우리의 발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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