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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Now Joseph had been brought down to Egypt, and lPotiphar, an officer of Pharaoh, the captain of the guard, an Egyptian, mhad bought him from the nIshmaelites who had brought him down there. oThe Lord was with Joseph, and he became a successful man, and he was in the house of his Egyptian master. His master saw that the Lord was with him and that the Lord pcaused all that he did to succeed in his hands. So Joseph qfound favor in his sight and attended him, and he made him overseer of his house rand put him in charge of all that he had. From the time that he made him overseer in his house and over all that he had, the Lord blessed the Egyptian’s house sfor Joseph’s sake; the blessing of the Lord was on all that he had, in house and field. So he left all that he had in Joseph’s charge, and because of him he had no concern about anything but the food he ate.

Now Joseph was thandsome in form and appearance. And after a time his master’s wife cast her eyes on Joseph and said, “Lie with me.” But he refused and said to his master’s wife, “Behold, because of me my master has no concern about anything in the house, and uhe has put everything that he has in my charge. He is not greater in this house than I am, nor has he kept back anything from me except you, because you are his wife. How then can I do this great wickedness and vsin against God?” 10 And as she spoke to Joseph day after day, he wwould not listen to her, to lie beside her or to be with her.

11 But one day, when he went into the house to do his work and none of the men of the house was there in the house, 12 xshe caught him by his garment, saying, “Lie with me.” But he left his garment in her hand and fled and got out of the house. 13 And as soon as she saw that he had left his garment in her hand and had fled out of the house, 14 she called to the men of her household and said to them, “See, he has brought among us a Hebrew to laugh at us. He came in to me to lie with me, and I cried out with a loud voice. 15 And as soon as he heard that I lifted up my voice and cried out, he left his garment beside me and fled and got out of the house.” 16 Then she laid up his garment by her until his master came home, 17 and she told him the same story, saying, “The Hebrew servant, whom you have brought among us, came in to me to laugh at me. 18 But as soon as I lifted up my voice and cried, he left his garment beside me and fled out of the house.”

19 As soon as his master heard the words that his wife spoke to him, “This is the way your servant treated me,” his anger was kindled. 20 And Joseph’s master took him and yput him into the zprison, the place where the king’s prisoners were confined, and he was there in prison. 21 But athe Lord was with Joseph and showed him steadfast love band gave him favor in the sight of the keeper of the prison. 22 And the keeper of the prison cput Joseph in charge of all the prisoners who were in the prison. Whatever was done there, he was the one who did it. 23 The keeper of the prison paid no attention to anything that was in Joseph’s charge, because dthe Lord was with him. And whatever he did, the Lord made it succeed.

l ch. 37:36

m ch. 37:28

n ch. 37:25

o ver. 21; Acts 7:9; [ch. 21:22; 26:24, 28; 28:15; 1 Sam. 16:18; 18:14, 28]

p 2 Chr. 26:5; Ps. 1:3

q ver. 21; ch. 19:19; 33:10

r ver. 8

s [ch. 30:27]

t [ch. 29:17; 1 Sam. 16:12]

u ver. 4

v 2 Sam. 12:13; Ps. 51:4

w [Prov. 1:10]

x [Prov. 7:13, 18]

y Ps. 105:18

z ch. 40:3, 5; [ch. 40:15; 41:14]

a ver. 2; Acts 7:9, 10

b Ex. 3:21; 11:3; 12:36

c ch. 40:4

d ver. 2, 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39:1–23.

 

39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39:1–23.

 

 

39장 1절의 이야기는 37:36절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다시금 요셉을 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호출하고 있다. 형들의 손에 죽을뻔한 상황에서 요셉은 이스라멜 상인들의 손에 팔려서 바로의 신하인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된다. 

보디발이란 이름은 이집트어로 ‘레(태양신)가 주신 자’라는 의미로 추정되며 요셉의 장인 이름 ‘보디베라’(41:45)와 비슷하다. 

 

2-6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 그의 주인 보디발도 볼 수 있었다 이에 보디발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서 자기의 소유를 요셉의 손에 위탁하였다. 이에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시메 그의 집과 밭에 여호와의 복이 임하였다. 주인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요셉의 손에 맡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의 노예로 팔려가서 열심히 일했다. 주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39장 본문 전체를 통해서 ‘여호와’라는 표현이 7번 등장하는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라는 문장에서만 4번 사용된다.(2, 3, 21, 23절)

요셉이 형통케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었다. 이 임마누엘의 약속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에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직접 언약을 베푸시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는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다.(오직 꿈을 통해서)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셉을 애굽으로 이끄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그를 형통케 하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본문 5절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그렇게 형통케 된다라는 사실을 애굽 사람, 보디발도 분명히 알았고 이에 그에게 자신의 집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옛적에 라반이 야곱으로 인해 많은 축복을 받았던 것이 연상된다. 보디발은 자신의 집안의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다.(4, 6, 8절) 본문은 보디발이 자기가 먿는 음식 외에는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기가 먹는 음식은 문자적으로 먹을거리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사적인 것, 예를 들어 보디발의 아내를 비롯해 그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6절 하반절은 요셉의 용모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는 요셉의 어머니 라헬을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29:17) 

창세기 29:17 (NKRV)

17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이 짧은 요셉의 용모에 대한 묘사는 이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왜 그를 유혹하였는지를 말해준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던 요셉, 이로 인해 형들의 시기와 질투가 심했고 결국 노예로 팔렸다. 이제 집주인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 안주인의 총애도 받게 된다. 이로 인해서 그는 또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2  Three uses of waye punctuate this verse: Yahweh was, he (Joseph) was, he (Joseph) was.20 The first of these three occurrences sounds a key theme that explains, or encapsulates the theology of, the Joseph story: Yahweh was with him. The phrase recalls the promise of Yahweh’s presence with the patriarchs (26:3; 28:15; 31:3, all with the preposition ʿim, and 26:24, with the preposition ʾeṯ). V. 2a, however, is not a promise, but a fact (and comparable to third-person statements such as are found in 21:22; 26:28). Outside vv. 21 and 23 (and excluding Jacob’s word in 49:18), this is the only time the name “Yahweh” occurs in the Joseph narrative. Of the seven uses of the tetragrammaton in ch. 39 (vv. 2, 3 [twice], 5 [twice], 21, 23), four of them occur in the phrase “Yahweh was with Joseph” (vv. 2, 3, 21, 23). The presence of Yahweh uniquely in ch. 39 is not to be explained by appeal to the presence of variant literary traditions.21 Rather, the name Yahweh occurs here at what is the most uncertain moment in the life of Joseph. His future hangs in the balance. He is alone in Egypt, separated from family, vulnerable, with a cloud over his future. Or is he alone? Only the narrator, never any of the characters, uses the name Yahweh. Thus, it is the narrator who tells us, no less than five times, that in a very precarious situation, Joseph is not really alone. Yahweh is with him.22

There is no doubt about Yahweh’s presence with Joseph from this point on in the narrative. Was that presence with Joseph when his brothers were disputing how to dispose of him? Was that presence with Joseph when he was mired in the pit? Was that presence with him when he joined the Ishmaelites as an involuntary passenger to Egypt? We, the readers, know it was, although the phrase is not there. Joseph probably needed a while longer to realize that God was with him.

20 waye appears more times in this chapter than in the rest of the entire Joseph story—15 times: vv. 2 (3 times), 5 (2 times), 6, 7, 10, 11, 13, 15, 18, 19, 20, 21. Longacre (Joseph, p. 32) calls attention to “the elaborate paragraph setting in v. 2 where three clauses build on the verb hāyâ, ‘to be’ (a descriptive rather than an event verb).”

21 ”The alleged reasons for the curious employment of divine names in the Joseph story advanced by apologists of the Documentary Hypothesis are weak in the extreme” (Redford, Study of the Biblical Story of Joseph, p. 130 n. 2).

22 See Longacre, Joseph, p. 45. Westermann (Genesis, 3:62) refers to 39:2–6, 21–23 as “the theological introit to the Joseph story as a whole.”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459.

 

5  Yahweh prospers (ṣālaḥ) Joseph (vv. 2–3), but he blesses (bāraḵ) Potiphar and his household because of his good treatment of Joseph. This verse must be read as fulfillment of 12:3a,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Just as Yahweh blessed Laban because of Jacob (30:27, 30), he now blesses Potiphar because of Joseph.27 Perhaps it is more accurate to say he blessed Laban and Potiphar through the presence of Jacob and Joseph, respectively.

27 See H. W. Wolff, in W. Brueggemann and Wolff, The Vitality of Old Testament Traditions, tr. W. A. Benware, et al., 2nd ed. (Atlanta: John Knox, 1982), pp. 59–60.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460–461.

 

7-10절) 그 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고 동침하기를 청했으나 요셉이 거절하였다. 이는 보디발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모두 자신에게 맡겼고, 주인 외에는 자신보다 큰 이가 없으며 아무것도 금한 것이 없지만 금한 것은 당신(보디발의 아내) 뿐이니 이는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것이 주인을 배신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하나님앞에 죄를 짓는 일임을 알았다. 이에 여인이 날마나 요셉을 유혹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도 않았고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단 두마디만 한다. ‘나와 동침하자’(Lie with me), 하지만 요셉은 이 직접적인 요구에 대해 거절의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길게 설명한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성관계를 맺자는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는 르우벤(35:22)과 유다의 행위(38:15-18)과 명백하게 대조를 이룬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관계를 맺었고,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요셉은 분명하게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이 자신의 주인, 보디발과 하나님께 동시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는 매우 올바른 판단이었다. 

이 시대는 도리어 반대로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탐하거나, 위계를 이용해 성적인 착취를 하는 것이 마치 힘이고 성공인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기에 이러한 유혹 가운데서 흔들림없이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요셉은 여인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본문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여인은 매우 끈질기게 요셉에게 접근하여 사람들이 없을 때마다 그에게 추파를 던지고 함께 하기를 청했다. 이에 요셉은 가능한대로 그녀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죄는 싹부터 자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며, 먼발치에서라도 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도망치는 것이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죄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처럼 죄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인격과 양심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했다. 

 

10  The first few words of v. 10 indicate that Potiphar’s wife spoke to Joseph day after day,16 even though, as already mentioned, her words to him in the narrative are limited to just two in Hebrew (“lie with-me”), repeated twice (vv. 7, 12). By contrast, Joseph’s protestations are elaborate (vv. 8, 9). His lengthy statement of refusal to cooperate is sandwiched between her twice-repeated command. But this command is clearly only a tiny part of her larger, lengthier conversation with Joseph.

The narrator uses to lie beside her in place of Potiphar’s wife’s “Lie with me.” Joseph will give a wide berth to temptation. Not only will he not sleep with her, he will not even lie by her side, if possible.17 As noted above, or with her should not be deleted as an editorial gloss. It confirms just how far Joseph is prepared to go to avoid being caught in a morally compromising position. For if Joseph “could not be stormed [v. 7] he might be coaxed.”18

16 Note that the Testament of Joseph (part of the Testament of the Twelve Patriarchs, originally a Jewish composition as early as the 1st or 2nd century b.c.) makes much of Joseph’s repeated refusal, in spite of continued badgering from the woman that included everything from threatened suicide to exposure of her body (T. Joseph 2:1–9:5; translation by H. C. Kee in J. H. Charlesworth, ed.,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2 vols. [Garden City, NY: Doubleday, 1983–85], 1:819–20). Jub. 39:5–8 has Joseph claiming that Potiphar’s wife “begged him for one year.”

17 The LXX always renders šāḵaḇ ʾēṯ/ʿim with koimán meta, but here in v. 10 it renders šāḵaḇ ʿēṣel with katheúdein (met’ autḗs), a verb that never has sexual connotations. Cf. H. M. Orlinsky, “The Hebrew Root škb,” JBL 63 (1944) 34–36.

18 Kidner, Genesis, p. 190. Orlinsky (JBL 63 [1944] 34 n. 19) provides textual reasons for rejecting the phrase as a post-LXX gloss.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464.

 

11-18절) 그러할 때에 요셉이 업무를 보러 집에 들어갔었는데 그 집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에 그 여인이 요셉의 옷을 잡고 끌며 동침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자 보디발의 아내가 집 사람을 불러서 주인이 데려온 히브리 사람이 우리를 희롱하였다. 요셉이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지르자 옷을 버려두고 도망하였다라고 하였다. 이후에 자신의 남편 보디발이 돌아오자 요셉의 옷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도 들어왔는데 자신이 소리를 지르자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라고 하였다. 

 

음녀의 유혹은 벗어날 수 없는 덫과 같다. 여인은 지금 요셉의 옷을 붙잡고 그를 잠자리로 끌어들이고 있다. 성경에서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거나 겁탈하는 경우들은 많이 있지만 이처럼 여자가 힘으로 남자를 겁탈하려고 한 경우는 유일하다. 빠져나가기 힘든 위기 상황에서 요셉은 자기의 옷을 그녀의 손에 버려두고 도망쳐 나온다. 앞서 37장에서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겨서 그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증거로 야곱에게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요셉의 옷은 그의 유죄의 증거로 사용된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을 뿌리치고 도망간 요셉에 대해서 수치심과 분노가 일었을 것이다. 그를 유혹하던 마음이 이제 그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서 그의 인생을 망치려는 술수를 쓰게 된다. 여인은 요셉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한다. 

그녀는 보디발에게 세가지 사항을 통해 요셉을 올무에 빠드리고 있다. 첫번째 요셉을 자기 집에 들인 사람이 보디발임을 이야기함으로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고 있다.(14, 17) 두번째 요셉이 애굽인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인종적인 적대감을 강화시킨다.(14, 17) 세번째 요셉의 행위가 단순히 자신을 욕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보디발의 집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14, 17) 더 나아가 남편에게 책임과 부담을 주기 위해서 19절에서는 ‘당신의 종’이라고 말한다.  

옛적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후 하나님께 말한 것과 비슷하다.

창세기 3:12 (NKRV)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12절. 옷에 대한 표현 Appearing about two hundred times, beḡeḏ is the most widely used term for a garment in the OT.21 It appears that it could refer both to an outer garment (2 K. 7:15) and an inner garment (Ezek. 26:16). According to the end of v. 12 Joseph left all of his beḡeḏ with Potiphar’s wife, which means he left behind either his outer garment or one of his undergarments. V. 12 states that Potiphar’s wife grabbed Joseph “by his garment” (beḇiḡḏô). One finds the same form of this word in Exod. 21:8 (beḇiḡḏô ḇāh), where the expression refers to man who broke faith with his female slave and tried to sell her because she did not please him. By using beḡeḏ at this point, the narrator may be implying something about Joseph’s own emotional involvement in this story. He is on the verge of acting faithlessly to his master. Also,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homonymous Hebrew verb bāḡaḏ is sometimes used for marital unfaithfulness (Jer. 3:7–8, 20; Mal. 2:14).22

21 See J. M. Myers, “Dress and Ornaments,” IDB, 1:869–71; L. G. Running, “Garments,” ISBE, 2:401–7.

22 Kugel, In Potiphar’s House, pp. 96–98; Sarna, Genesis, p. 27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465.

 

- 14절. 희롱하다는 표현  Once again we encounter the verb ṣāḥaq (v. 14), made famous in the Isaac stories (17:17; 18:12, 15 [twice]; 21:6, 9; 26:8), and occurring once in the Lot stories (19:14). According to the text, Potiphar’s wife claims that her husband brought Joseph into their household to sport in our presence (leṣaḥeq bānû, v. 14), and later to sport in my presence (leṣaḥeq bî, v. 17). What is she suggesting? That Potiphar brought Joseph into the household “to make sport” of them (NIV, NAB)? “to insult‘’ them (RSV, JB)? “to mock” them (AV; cf. NEB)? “to make love” to them (Speiser)?

Speiser’s interpretation is dubious simply because sexual abuse is covered by bāʾ ʾēlay liškaḇ ʿimmî (“he came to lie with me,” v. 14) and by bāʾ ʾēlay (“he came to me,” v. 17), not by leṣaḥeq bānû/bî. The “mock” and “insult” translations suffer from a lack of evidence that ṣāḥaq, in either the Qal or the Piel stem, has such a meaning. Of all the instances where ṣāḥaq occurs, the closest in form to the references here is 19:14—all three use ṣāḥaq in the Piel, followed by the preposition be. I suggested for 19:14 “clowning”—“horsing around,” to use a colloquialism. It seems best to use an equivalent in 39:14, 17.10 Potiphar’s wife claims that what Joseph had in mind by ṣāḥaq was considerably different than what Potiphar had in mind by ṣāḥaq. Joseph was introduced to Potiphar’s family to sport with them, to play games with them.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NAB The New American Bible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JB Jerusalem Bible

AV Authorized (King James) Version

NEB New English Bible

10 See Sasson, “Worship of the Golden Calf,” p. 155, who notes that Speiser’s translation “to make love to us” “reduces the sarcasm to a mass orgy.”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468.

 

19-23절) 보디발이 자신의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심히 노하여 그를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여호아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인자(헤세드)를 더하심으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들을 모두 요셉의 손에 맡기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았다. 

 

요셉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시 노예로서 그에게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요셉이 감옥에 갇힌 것 또한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노예가 여주인을 겁탈하려고 했다면 이는 가차없이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그리고 보디발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하지만 보디발은 그를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둔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알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아내의 모함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 아마도 일반 잡범들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정치범에 해당되는 이들이 갇혀있던 곳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제국의 뒷 이야기들을 듣고 배울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여전히 이곳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이 임하자 간수장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푼다. 간수장 또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맡긴 것은 살펴보지 않을 정도였다. 

 

21–23  Joseph moves from one confinement (a hole in the ground, ch. 37) to another confinement (a jail). Within ch. 39 itself he moves from one house (Potiphar’s) to another house (a round house, bêṯ hassōhar).11

In vv. 19–23 a number of items stand out. One is the threefold use of nāṯan with three different subjects: (1) Potiphar placed (wayyittenēhû, v. 20) Joseph in jail; (2) but Yahweh disposed (wayyittēn, v. 21) the chief jailer in his favor; (3) and the jailer placed (wayyittēn, v. 22) the prisoners in Joseph’s charge. Second, these verses contrast the chief jailer’s eyes (v. 21) with the woman’s eyes (v. 7).12 Both the woman and the jailer looked at Joseph and liked what they saw: she saw a male figure to satisfy her sexual lust; he saw a reliable, model prisoner who could be trusted with responsibilities. Third, these verses establish a relationship between the chief jailer and Joseph that resembles the relationship that formerly existed between Joseph and Potiphar. This trusting relationship is indicated by phrases like The chief jailer placed in Joseph’s hands … (v. 22), and the chief jailer did not oversee anything that was in his hands (v. 23). These phrases recall Potiphar’s willingness to relinquish control to Joseph (v. 6). Potiphar “took a liking to Joseph” (lit., “Joseph found grace in his eyes,” v. 4). Yahweh disposed the chief jailer in his favor (lit., “he gave him grace in the eyes of the chief jailer,” v. 22). Fifth, Yahweh was a constant presence with Joseph—before he was accused (v. 2), and after he was jailed (v. 23). The result of that presence was that Yahweh brought succcess or prospered (maṣlîaḥ) every undertaking of Joseph (vv. 3, 23).

11 The possible Egyptian background to this unique Hebrew phrase (only in Gen. 39:20–23 and 40:3, 5) is explored by Vergote, Joseph en Égypte, pp. 25–28. Redford (Study of the Biblical Story of Joseph, pp. 47–48) finds wanting all attempts connecting sōhar with a Vorlage in Egyptian.

12 See n. 7 above, and 39:7.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471–472.

 

우리는 본문속에서 지속적으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라는 표현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은 형통함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베푸시는 형통이 요셉의 소원, 요구와 완전히 일치하였는가하면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에도 그는 애굽의 노예로 잡혀 왔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수의 신분, 강간미수범이 되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셉이 원하는 것은 자유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좀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것이다. 아직 요셉에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요셉은 그가 상상하지 못한 지위에서 존귀한 자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요셉이 해야할 일은 주어진 순간, 역할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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