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서론
1. 저자와 제목
이 책의 제목은 주인공인 선지자 요나이다. 1장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2. 저작 연대
요나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주전 8세기이다.(왕하 14:23-28)
열왕기하 14:25 (NKRV)
25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주전 2세기의 시락서 49:10에 12선지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요나서는 주전 8세기에서 주전 3세기 말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집회서 49:10 (NCTB)
10그 밖에 열두 예언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뼈가 무덤 속에서 다시 꽃피어 나기를! 그들은 야곱의 백성을 위로하였고 굳은 희망으로 그들을 구원하였다.
- Since Jonah prophesied during the reign of Jeroboam II (782–753 b.c.; see 2 Kings 14:23–28), and since Sirach 49:10 (from the 2nd century b.c.) refers to the “twelve prophets” (namely, the 12 Minor Prophets, of which Jonah is the fifth), the book of Jonah was written sometime between the middle of the eighth and the end of the third centuries. No compelling evidence leads to a more precise dat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3.
3. 주제
여호와는 ‘우리’(요나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이방인 선원들과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한없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4. 기록 목적과 배경
요나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베푸시는 한없는 긍휼을 깊이 깨닫고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의 도구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요나는 주전 782년부터 753년까지 이스라엘(북왕국)을 다스렸던 여로보암 2세 (왕하 14:23~28) 의 통치기에 예언했다. 여로보암은 주전 814년부터 798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린 여호아하스의 손자였다. 여호아하스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람 족속의 압제를 받았다(왕하 13:3), 그러나 여호와의 크신 긍흘로 인해(왕하 13:4, 23) 이스라엘은 멸망을 면하고 이 압제에서 구원받았다(왕하 13:5), 이 구원은 한 “구원자"(왕하 13:5) 를 통해 왔는데 그는 아마도 앗수르의 왕 아닷 니라리 3세 (주전 810~783년) 였을 것이다. 여로보암의 아버지 요아스(주전 798~782년)는 아람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 자유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의 국경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여호아하스 시대에 빼앗긴 고을들을 되찾았다(왕하 13:25), 여로보암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왕하 14: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보다 이스라엘 영토를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의 국경에 맞먹을 만큼 더 크게 확장했다(왕하 14:25)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빗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왕하 14:25)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처럼 요나는 하나님의 회복의 긍흘이 패역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여로보암에 의한 영토 확장은 앗수르의 국력 약화로 인해 더 용이해졌다. 앗수르는 아람 및 우라르투와 충돌했다. 또한 앗수르 제국 안에는 (지역 총독들이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다스린 곳에서는) 기근이 만연했고 반란도 수없이 일어났다. 그 후 아슈르-단 3세의 통치기 (주전 771~754
년)에는 상서로운 일식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회개 촉구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비로소 디글핫빌레셀 3세 (주전 745~727년)가 이 지역에서 지배권을 잡고 앗수르의 지배를 재확립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 (727~722년)는 722년 에 이스라엘 정복과 사마리아의 멸망을 가져왔다. 따라서 요나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훌로 인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시기에 예언했다.
- Jonah prophesied during the reign of Jeroboam II (2 Kings 14:23–28), who ruled in Israel (the northern kingdom) from 782 to 753 b.c. Jeroboam was the grandson of Jehoahaz, who ruled in Israel from 814 to 798 b.c. Because of the sins of Jehoahaz, Israel was oppressed by the Arameans (2 Kings 13:3). But because of the Lord’s great compassion (2 Kings 13:4, 23), Israel was spared destruction and delivered from this oppression (2 Kings 13:5). This deliverance came through a “savior” (2 Kings 13:5), who may have been Adad-nirari III (810–783 b.c.), king of Assyria.
Jeroboam’s father, Jehoash (798–782 b.c.), capitalized on this freedom from Aramean oppression and began to expand Israel’s boundaries, recapturing towns taken during the reign of Jehoahaz (2 Kings 13:25). Though Jeroboam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2 Kings 14:24), he nevertheless expanded Israel even farther than his father did, matching the boundaries in the days of David and Solomon (2 Kings 14:25); this was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ich he spoke by his servant Jonah the son of Amittai, the prophet, who was from Gath-hepher” (2 Kings 14:25). Thus Jonah witnessed firsthand the restorative compassion of God extended to his wayward people.
In God’s providence, the expansion by Jeroboam was made easier because of Assyrian weakness. The Assyrians were engaged in conflicts with the Arameans and the Urartians. There was also widespread famine, and numerous revolts within the Assyrian Empire (where regional governors ruled with a fair degree of autonomy). Then there was an auspicious eclipse of the sun during the reign of Ashur-dan III (771–754 b.c.). This convergence of events supports the plausibility of the Ninevites being so responsive to Jonah’s call to repent.
p 1684 It was not until some years later that Tiglath-pileser (745–727 b.c.) would gain control and reestablish Assyrian dominance in the area, and his son Shalmaneser V (727–722) was the king responsible for the conquest of Israel and the destruction of Samaria in 722. Thus Jonah prophesied in an era when Assyria was not an immediate threat to Israel and when Israel enjoyed peace and prosperity because of the compassion of Go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3–1684.
5. 장르
요나를 역사적인 실제의 선지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우화적으로 가상의 인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요나는 열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래서 저자는 요나를 성공한 선교사가 아니라 실패한 선교사로, 반면교사를 삼아 요나와 같이 죄지 않도록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요나서의 기록속에는 당대의 선지자들이었던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예언자에게 빵과 고기를 제공하는 까마귀의 이야기(왕상 17:6)가 등장하는데 요나서에서도 물고기가 요나를 하나님이 명하신 목적지로 운송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재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물고기(1:17), 식물(4:6), 벌레(4:7), 동풍(4:8)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인용하시면서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보여주신다.(마 12:40-41)
마태복음 12:40–41 (NKRV)
40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6. 핵심 주제
앞서 말한대로 요나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요나 뿐만 아니라 이방인 선원, 니느웨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다. 요나서의 마지막은
요나 4:11 (NKRV)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로 마무리된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이들을 아끼시는데 너는 이렇게 아끼는 마음이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요나 너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너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계신다.
요나는 말라버린 식물(4:10)을 염려했지만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실패한 선교사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방인 선원들(1:14), 선장(1:6), 니느웨 왕(3:9)은 요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멸망하지 않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른 몇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지상의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제
2) 자신의 메시지를 열방에 전달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
3) 일반적으로 죄에 대한 회개의 필요성
4) 구체적으로 자기중심성과 위선에 대한 회개의 필요성
5) 사람들이 회개하면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는전적인확신
7. 문예적 특징
요나서는 문학적인 걸작이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해서 어린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어떤 책에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문학적 기교를 특정으로 한다. 저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수사적으로매우 힘 있게 전달하기 위해 구성, 유머, 과장, 반어, 중의적 어구, 상극적 제유법과 같은 문학적 비유를 사용한다 이러한기교의 첫 번째 예는 책의 개요(아래를보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의 주된 범주는 풍자-인간의 악덕이나 어리석음에 대한 폭로-다. 풍자의 네 가지 요소는 요나서에서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1) 공격 대상은 요나와 요나가 대변하는 것-하나님을 믿음의 공동체(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심한 편견과 자민족 중심주의 - 이다. (2) 풍자의 수단은 서사 또는 이야기다. (3) 요나의 좋지 않은 태도를 판단하는 풍자의 기준 내지 표준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 하나님은 그 자비가 민족적 경계선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자비의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4) 풍자의 어조는 웃음이며 요나는 웃기는 인물-하나님에게서 도망쳤다가 물고기에게 잡히고, 그늘을 드리운 나무가 없으면 살기 보다 죽기를 더 좋아하는 유치하고 뿌루퉁한 선지자-로 나타난다.
다음 세 가지 문체적 기법은특별히 중요하다. (1) 거대한 모티프 - 예상치 못할정도로 큰 모티프(예, 요나에게 부여된 사명의 크기, 요나를 삼키는 물고기의 크기, 요나의 여덟 마디의 설교가 이룬 회개의 크기). (2) 편재해 있는 아이러니 (예, 요나의 선지자적 사명과 요나의 수치스러운 행동 사이의 아이러니한 괴리와 하나님의 임재에서 도망치는 일의 아이러니한 불가능성) . (3) 유머-요나의 행동이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움.
- The book of Jonah is a literary masterpiece. While the story line is so simple that children follow it readily, the story is marked by as high a degree of literary sophistication as any book in the Hebrew Bible. The author employs structure, humor, hyperbole, irony, double entendre, and literary figures like merism to communicate his message with great rhetorical power. The first example of this sophistication is seen in the outline of the book (see below).
The main category for the book is satire—the exposure of human vice or folly. The four elements of satire take the following form in the book of Jonah: (1) the object of attack is Jonah and what he represents—a bigotry and ethnocentrism that regarded God as the exclusive property of the believing community (in the OT, the nation of Israel); (2) the satiric vehicle is narrative or story; (3) the satiric norm or standard by which Jonah’s bad attitudes are judged is the character of God, who is portrayed as a God of universal mercy, whose mercy is not limited by national boundaries; (4) the satiric tone is laughing, with Jonah emerging as a laughable figure—someone who runs away from God and is caught by a fish, and as a childish and pouting prophet who prefers death over life without his shade tree.
Three stylistic techniques are especially important. (1) The giantesque motif—the motif of the unexpectedly large (e.g., the magnitude of the task assigned to Jonah, of the fish that swallows him, and of the repentance that Jonah’s eight-word sermon accomplishes). (2) A pervasive irony (e.g., the ironic discrepancy between Jonah’s prophetic vocation and his ignominious behavior, and the ironic impossibility of fleeing from the presence of God). (3) Humor, as Jonah’s behavior is not only ignominious but also ridiculou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4.
위의 두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욥바에서 다시스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3800km이고, 니느웨까지의 거리는 약 900k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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