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10 pYou, however, have followed my teaching, my conduct, my aim in life, my faith, my patience, my love, my steadfastness, 11 my persecutions and sufferings that happened to me qat Antioch, rat Iconium, and sat Lystra—which persecutions I endured; yet tfrom them all uthe Lord rescued me. 12 Indeed, all who desire to vlive a godly life in Christ Jesus wwill be persecuted,
p [Phil. 2:22]
q Acts 13:14, 45, 50
r Acts 14:1, 2, 5
s Acts 14:6, 19
t Ps. 34:19
u ch. 4:17; [2 Cor. 1:10]
v Titus 2:12
w See Acts 14:2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후 3:10–12.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후 3:10–12.
 
바울은 앞서 3장 1-9에서 거짓 교사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3:1-~4:8을 통해서 디모데로 하여금 어떤 자세를 견지하며 사역을 해야할지를 조언한다. 
10-17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임하는 필연적인 박해속에서 말씀의 진리안에 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0절) 원어에서 10절은 ‘쉬 데’로 시작한다. 영어로는 ‘You, however’로 ‘그러나 너는’로 번역해야 한다. 이는 본절의 내용이 앞선 거짓 교사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대조의 형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저는 거짓 교사들과 바울의 삶으로 극단적으로 비교된다. 
한글 번역에서는 10절의 맨 처음에 한번 ‘나의’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영어 번역에서는 모든 표현, 특성에 대해서 8번이나 반복되어 ’my’가 사용되었다. 원에에서는 ‘무 테’라는 표현이 맨 앞에 등장해서 ‘나의 그 교훈’으로 표현되고 이후에는 ‘테’라는 관사가 사용된다. 이는 ‘호’라는 관사의 여성 여격 단수 표현이다. 말하자면 헬라어는 교훈, 행실, 의향, 믿음, 오래참음, 사랑, 인내는 모두 여성 여격 단수 표현으로 사용했고 11절의 박해를 받음과 고난이라는 표현에서는 ‘토이스’로 사용하여 박해를 받음은 남성 여격 복수 표현이고 고난은 중성 여격 복수 표현의 관사를 사용했다. 
지금 바울의 이 고백은 디모데를 향한 것으로 자신의 이러한 자세와 고난과 핍박을 상기시키는 것은 바울 자신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로 하여금 영적 아버지인 자신을 본받고 나아가 에베소 교회를 파괴하려는 거짓 교사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이 전하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리를 말한다. 
사도행전 17:2–3
2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표현은 ‘디다스칼리아’로 ‘교훈, 가르침, 가르치는 일’을 의미한다. 
 
‘행실’로 번역된 ‘아고게’는 그 앞에 정관사 ‘테’를 동반하고 있기에 일반적인 행실이 아닌 특정한 행실, 즉 바울이 보여준 행실을 의미한다. ‘아고게’는 ‘스스로를 제어하거나 행동하는 방식’이라는 의미로 ‘이끌다, 인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고’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보여준 행실은 무엇일까? 이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도로서 그의 생활 태도 일체를 말하는 것으로 언행 일치의 삶, 겸손의 삶, 이타적인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모두를 포함한다. 
 
‘의향’으로 번역된 ‘프로데세이’역시 정관사를 동반한다. ‘프로데세이’는 ‘견고한 결심, 계획, 목적, 앞에 차린 진설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바울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 14:19-22에서 보여주듯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사도행전 14:19–22
19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는 ’오래참음을 제외하고 앞서 딤전 6:11절에 바울이 그리스도도인들을 향해서 좇아야할 덕목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신뢰를 나타낸다.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믿음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 있어서 신실함, 정직성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사랑’으로 번역된 ‘아가페’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며 동시에 이러한 신적 사랑에 대한 인간의 모방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나타낸다. 
‘인내’로 번역된 ‘휘포모네’는 ‘~아래’를 의미하는 전치사 ‘휘포’와 ‘머물다’란 의미의 동사 ‘메노’의 합성어로 인생의 어떠한 불행이나 고난, 그리고 역경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 참음’으로 번역된 ‘마크로뒤미아’는 ‘고통이나 불행을 참을성 있게 견딤’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시간이나 거리가 길거나 먼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 ‘마크로스’와 ‘분, 진노’를 가리키는 명사 ‘뒤모스’의 합성어로 ‘분을 낼 상황에서 오랫동안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일상 생활에서의 인내보다는 핍박하는 자들이나 불리한 환경 가운데서의 인내를 의미한다. 
 
3:10 σὺ δέ combines the personal pronoun σύ, used for emphasis in contrast to others, and the contrasting particle δέ, “but” (this combination in the PE* also in 1 Tim. 6:11; Tit. 2:1; 2 Tim. 3:14; 4:5; cf. σὺ οὖν in 2:1, 3; σὺ δέ elsewhere in Pl.* in Rom. 11:17, 20; 14:10). Whereas those Paul has been speaking of have “opposed” Paul and his teaching, Timothy has “followed” the teaching of Paul and the various aspects of Paul’s life that went along with and corroborated that teaching.
Paul uses παρηκολούθησας** (Lk. 1:3; 1 Tim. 4:6), “followed,” in a double sense here. With some of the datives of association (Robertson) that follow it has the sense of “accompanying” or “being present at” events, e.g., persecutions and sufferings. But primarily, and more profoundly, Paul uses it in the sense of the “following” that takes place “with the mind” and that “understands” and “makes one’s own” that which one follows, as in 1 Tim. 4:6 (cf. BAGD s.v. παρακολουθέω 1, 2). In this sense he refers to Timothy having followed his teaching, etc.
Paul lists nine things that Timothy “followed,” prefacing the list with μου both for emphasis and also to indicate that it governs all that follows. The first seven are singular and are principles or concepts. The last two (in v. 11) are plural and give concrete examples of the seventh principle.
Paul begins with “teaching” (διδασκαλίᾳ; cf. 1 Tim. 1:10 and 4:6), i.e., what he teaches, because it is this primarily that he wants to contrast with the teaching of the false teachers (vv. 5–9). But since teaching never exists apart from the reality of the teacher’s life and from the change that it has brought about in the teacher’s life, he adds the marks of godliness that flow from the teaching and accompany it in his own life (cf. 1 Tim. 4:12, 15–16; 6:3; 2 Tim. 2:22–25).
ἀγωγῇ** (a NT hapax, cf. LXX Est. 2:20; 2 Maccabees 11:24) is a comprehensive term indicating Paul’s “way of life,” his “conduct” (cf. 1 Tim. 4:12, with a different word, and the statement about Paul’s way of life in 1 Cor. 4:17). προθέσει (here only in Paul’s letters of a human, elsewhere of God) designates his “purpose” or the resolute plan for his ministry (cf. Acts 20:20–21, 24, 27; 1 Cor. 2:1–5).
Having mentioned these general characteristics, Paul next characterizes his life with the usual Christian trilogy “faith,” “love,” and “perseverance” (cf. Tit. 2:2), with “patience” sandwiched in as something much needed by one who teaches in difficult situations, as he has reminded Timothy (in 2:24, albeit with a different word) and will remind him again (in 4:2, with the same word as here). πίστει is used as elsewhere in the PE (cf. 1 Tim. 4:12; 6:11; 2 Tim. 2:22) of trust in or absolute dependence on God. μακροθυμίᾳ probably carries the sense of “forbearance, patience” toward others, which it also has in its other PE* occurrences (1 Tim. 1:16 [see the comments there]; 2 Tim. 4:2; here for the first time in the PE in a virtue list; cf. 2 Cor. 6:6; Gal. 5:22; Eph. 4:2; Col. 1:11; 3:12) rather than its meaning of endurance, which would only anticipate ὑπομονῇ (see Trench, Synonyms, §53). Paul uses ἀγάπῃ (see 1 Tim. 1:5; it occurs repeatedly in lists in the PE, e.g., 1 Tim. 4:12; 6:11; Tit. 2:2; 2 Tim. 2:22), “love,” here, as he usually does, of love for humans (cf. especially 1 Cor. 13:1ff.). He exhibited before Timothy what he asked him to pursue (2:22) and what he said the Holy Spirit has provided (1:5). ὑπομονή expresses the “endurance, steadfastness, and perseverance” of one who lives in the midst of the difficulties of this life kept and strengthened by Christ while awaiting Christ’s return (see the other PE* occurrences, especially 1 Tim. 6:11; Tit. 2:2). Paul sums up in these words his ministry (teaching, conduct, and purpose) and his life (faith, patience, love, and perseverance).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LXX Septuagint
PE Pastoral Epistles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PE Pastoral Epistles
PE Pastoral Epistles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438–439.
 
11절) '박해를 받음과 고난’, 이 두 단어 앞에는 모두 여격 단수 남성 관사인 ‘토이스’가 사용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박해와 고난이 아닌 바로 ‘바울의 핍박과 고난’이라는 의미이다. 10절에서 사용된 그리스도인의 특성인 교훈, 행실, 의향, 믿음, 오래 참음, 사랑, 인내는 모두 단수형으로 표현된 것에 반해서 박해와 고난이라는 표현은 모두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박해와 고난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구체적인 박해와 고난에 대해서 고후 11:21-33에서 언급하고 있다.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에 해당하는 표현인 ‘휘 데 파레콜루데사스’는 원어상으로는 10절 앞부분에 등장한다. 여기서 알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디모데’이다. ‘파레콜루데사스’는 ‘익숙히 알다, 조사하다, 관찰하다’라는 의미의 ‘파라콜루데오’의 2인칭 부정과거 능동태로 디모데가 바울이 말한 아홉 가지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글 번역은 이것을 ‘보고 알았거니와’로 표현한다. 결국 믿음은 보고 안 것을 믿고 이를 통해서 건지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 한글 번역은 박해와 고난과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이라는 표현을 ‘또한’이라는 접속사로 연결한다. 그래서 이것이 개별적인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문에서는 이 표현이 앞선 ‘박해와 고난’을 수식하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내가 받은 박해와 고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받은 박해와 고난은 행 13:14-52에 기록되어 있다.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수많은 회심자를 얻었으나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서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기회를 얻는대로 회당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힘있게 증언하였다. 
사도행전 13:38–39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행전 13:43–45
43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사도행전 13:47–52
47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이 말씀을 들은 이들 중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으나 이를 반대한 유대인들은 도리어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였고 이로 인해서 바울은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가게 된다. 
 
이고니온에서도 마찬가지로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선포했다.
 
사도행전 14:1–7
1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루스드라에서도 극심한 박해를 받고 바울을 돌로 치려는 이들이 생겨서 도망하여 루스드라고 향하게 된다. 루스드라는 디모데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바울은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고쳤고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바울은 헤르메스라 하고 바나바는 제우스라고 여기며 그를 따르려고 했다. 
 
사도행전 14:8–22
8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곳에서의 가르침과 사역으로 인하여 디모데가 회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절을 보면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고 그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간신히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한다. 놀랍게도 바울은 다시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도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을 것을,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을 전한다.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더베로 이어지는 여정을 가졌던 바울은 다시금 되돌아가면서 더베에서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향하면서 자신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의 삶의 자세를 온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 바울의 복음 증거와 그가 겪은 많은 환난을 눈으로 지켜본 디모데는 이 가르침을 몸소 체험했던 것이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앞선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목도한 디모데에게 힘있게 바로 주님께서 자신을 건지셨음을, 구원하셨음을 선포했고 디모데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간증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삶가운데 이루어진 일을 고백하는 것이다. ‘건지셨느니라’로 번역된 ‘에르뤼사토’는 ‘건지다, 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뤼오마이’의 부정 과거형으로 주님께서 이 모든 박해와 고난에서 단번에 구원하셨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모든 박해와 고난 속에서 바울을 건져주신 주님께서는 동일한 복음 전도자인 디모데를 또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시 27:1-5; 91편; 125편; 사 43:2; 나 1:7).
 
우리는 보고 알고 믿음으로 건지심을 받은 자들이다. 
 
3:11 With two plural nouns διωγμοῖς and παθήμασιν, and with ὑπήνεγκα, “I endured,” Paul makes concrete the reality of his ὑπομονή. διωγμοί** is used in the NT of “persecutions” suffered for religious reasons (Mt. 13:21; Mk. 4:17; 10:30; Acts 8:1; 13:50; Rom. 8:35; 2 Cor. 12:10; 2 Thes. 1:4). παθήματα means generally “that which is suffered or endured.” Used with τοῖς διωγμοῖς it refers to “sufferings” endured as a result of persecution (cf. 2 Cor. 1:6–7; W. Michaelis, TDNT V, 930ff.). The qualitative relative pronoun οἷα, “such as, what kinds of,” points to definite difficulties that Paul (μοι) experienced (ἐγένετο). It is neuter in agreement with its antecedent, τοῖς παθήμασιν. A second qualitative relative pronoun, masculine οἵους, agrees with διωγμούς, which follows it.
By repeating διωγμοί Paul focuses on “persecutions” and by naming certain towns he calls to mind actual events that Timothy “followed.” These events Paul “endured” or “bore up under” (ὑπήνεγκα, aorist of ὑποφέρω,** also in 1 Cor. 10:13; 1 Pet. 2:19) in Antioch, Iconium, and Lystra, as related in Acts (13:45, 50; 14:1–5, 19). These towns were in the area from which Timothy came, and Timothy was aware of these episodes when he agreed to join Paul in the ministry (Acts 16:1–6). Paul mentions these earliest persecutions rather than later ones, probably because he wants to remind Timothy of his commitment to the apostle and his ministry from the very beginning and that from the very beginning that ministry has involved persecutions.
Paul adds the note of triumph in the Lord that marks his accounts of suffering and persecution: καὶ ἐκ πάντων με ἐρρύσατο ὁ κύριος, “and out of them all the Lord delivered me” (words very close to Ps. 33:20 LXX; cf. Paul’s litany of difficulties and deliverances in 2 Cor. 4:7–9). He uses ἐκ in the sense of being delivered “out of” these persecutions, not in the sense of being kept “from” them. He rejoices because he has been brought through persecution and finally out of it (cf. “persecuted [διωκόμενοι] but not forsaken,” 2 Cor. 4:9).
ἐρρύσατο (aorist of ῥύομαι) means here “he delivered, rescued.” The deliverer is ὁ κύριος, Christ, the master whom Paul serves and who can and does preserve his servant (cf. 2:24 on who is in view with κύριος). Paul speaks in absolute terms with ἐκ πάντων, “out of them all.” In every instance the Lord delivered him. And even when the last episode comes and leads to death, the Lord will still deliver, for then, Paul says, the Lord “will deliver me from every evil deed and will bring me safely to his heavenly kingdom” (4:18, with v. 17 the other PE* uses of the verb). Paul thus ends this catalog of what Timothy has “followed” emphasizing persecutions and the mighty Lord who always deliver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LXX Septuagint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439–440.
 
12절) 10절과 11절에서는 바울 자신의 가르침과 그가 당한 핍박을 다루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핍박은 특별한 사역자들만의 몫인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본 12절에서 분명하게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로 번역된 ‘호이 델론테스 유세보스 젠’은 목회서신에서 두드러지는 어구이다. 
‘경건하게’로 번역된 ‘유세보스’는 ‘경배하다, 경의를 표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세보’에서 파생되었고 이것의 명사형은 ‘유세베이아, 경건, 독실함’이고 ‘셈노스, 존경할만한, 위엄있는’이라는 표현들이 사용된다. 이처럼 신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는 것은 모든 종교인의 자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종교인들과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엔 크리스토 이에수’라는 표현을 분명하게 사용한다. 단순히 종교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그의 주권인 인정하며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한 이들의 삶, 그들이 추구하는 경건은 절대로 세상과 타협할 수 없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박해와 고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박해을 받으리라’에 해당하는 ‘디옥데손타이’는 ‘박해하다, 받해받다, 추구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디옥토’의 3인칭 미래 수동태 직설법 표현이다. 이는 미래에 확실하게 발생하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11절에는 이것의 명사형인 ‘디옥모스’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앞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다라에서 받은 핍박을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도 동일한 고백을 한 바 있다. 
 
사도행전 14:22
22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No cross, No crown’, 고난이 없이는 영광이 없다. 이는 바울의 가르침의 일관된 주장이다. 
 
3:12 Paul now states a general principle regarding persecution and attaches it to what he has said about his own experiences of persecution with postpositive δέ and καί, which together have the force of “and also”: Just as Paul has endured persecutions so “also” this will be the case for Christians in general. πάντες … οἱ θέλοντες εὐσεβῶς ζῆν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all who desire to live godly in Christ Jesus,” is not a designation of a subgroup of Christians who desire a more godly life but rather a description of real Christians in distinction from those who follow false teaching. εὐσεβῶς ζῆν, “to live godly,” is a description of the condition that grace brings about in the life of the one saved by Christ (cf. Tit. 2:11–12 and see the comments there for a discussion of these two terms). οἱ θέλοντες, “those desiring, those wanting,” is used with the verb to express the will, purpose, or resolve (cf. Heb. 13:18; BAGD s.v. 2; G. Schrenk, TDNT III, 49) of those who truly want to be godly, in contrast to those who have only the form of godliness (cf. v. 5).
The godly life desired is found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i.e., in a living relationship with Christ through faith in him (see especially 1 Tim. 1:14; Gal. 2:20). With “life in Christ Jesus” Paul recalls the introductory statement in this letter (the infinitive ζῆν here, the noun ζωή in 1:1; this combination elsewhere in Paul only in Rom. 6:11 [with the participle ζῶντας]). “All” (πάντες) so characterized means for Paul “all” Christians (for πάντες with a plural participle in Paul to designate all Christians cf. Rom. 1:7; 4:11; 1 Cor. 1:2; Eph. 6:24; 1 Thes. 1:7; 2 Thes. 1:10), as in 4:8.
Thus, as a general rule, all Christians “will be persecuted” as Paul was (διώκω, the only occurrence in the PE with the meaning “persecute”; elsewhere in Paul with this meaning in Rom. 12:14; 1 Cor. 4:12; 15:9; 2 Cor. 4:9; Gal. 1:13, 23; 4:29; 5:11; 6:12; Phil. 3:6). This principle was already stated by Jesus (cf. Mt. 10:22–23; Lk. 21:12; Jn. 15:20) and by Paul, both on his first missionary journey (Acts 14:22) and in his earliest correspondence (1 Thes. 3:4).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PE Pastoral Epistles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440–44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