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e Lord appeared to him by the ooaks1 of Mamre, as he sat at the door of his tent in the heat of the day. 2 He lifted up his eyes and looked, and behold, three men were standing in front of him. pWhen he saw them, he ran from the tent door to meet them and bowed himself to the earth 3 and said, “O Lord,2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do not pass by your servant. 4 Let a qlittle water be brought, and wash your feet, and rest yourselves under the tree, 5 while I bring a morsel of bread, that ryou may refresh yourselves, and after that you may pass on—ssince you have come to your servant.” So they said, “Do as you have said.” 6 And Abraham went quickly into the tent to Sarah and said, “Quick! Three seahs3 of fine flour! Knead it, and make cakes.” 7 And Abraham ran to the herd and took a calf, tender and good, and gave it to a young man, who prepared it quickly. 8 Then he took curds and milk and the calf that he had prepared, and set it before them. And he stood by them under the tree while they ate.
9 They said to him, “Where is Sarah your wife?” And he said, “She is tin the tent.” 10 The Lord said, “I will surely return to you uabout this time next year, and vSarah your wife shall have a son.” And Sarah was listening at the tent door behind him. 11 Now wAbraham and Sarah were old, advanced in years. The way of women had ceased to be with Sarah. 12 xSo Sarah laughed to herself, saying, y“After I am worn out, and zmy lord is old, shall I have pleasure?” 13 The Lord said to Abraham, “Why did Sarah laugh and say, ‘Shall I indeed bear a child, now that I am old?’ 14 aIs anything too hard4 for the Lord? bAt the appointed time I will return to you, about this time next year, and Sarah shall have a son.” 15 But Sarah denied it,5 saying, “I did not laugh,” for she was afraid. He said, “No, but you did laugh.”
o ch. 13:18; 14:13
1 Or terebinths
p ch. 19:1; [Heb. 13:2]
2 Or My lord
q ch. 19:2; 24:32; 43:24; [Luke 7:44; John 13:14]
r Judg. 19:5; [Ps. 104:15]
s ch. 19:8; 33:10
3 A seah was about 7 quarts or 7.3 liters
t ch. 24:67
u ver. 14; 2 Kgs. 4:16
v ch. 17:19, 21; 21:2; Cited Rom. 9:9
w ch. 17:17; Rom. 4:19; Heb. 11:11, 12
x [ch. 17:17]
y [Luke 1:18]
z 1 Pet. 3:6
a Job 42:2; Jer. 32:17, 27; Zech. 8:6; Matt. 19:26; Luke 1:37
4 Or wonderful
b ver. 10
5 Or acted falsely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8:1–15.
17장과 18장은 연속적으로 함께 읽혀져야 한다. 이 두장은 번성해가는 아브라함과 쇠퇴해가는 롯을 대조하면서 동시에 여러 공통점을 보여준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탄생 예고를(17:19) 사라에게도 직접 알려주셨지만(18:12) 아브라함도 웃었고(17:17) 사라도 웃었다.(18:12) 사라가 내년 이맘때에 이삭을 낳을 것(17:21)이라는 점도 다시금 언급된다.(18:14)
12절의 사라의 웃음은 17:17절의 그녀의 남편 아브라함의 웃음을 상기시킨다.
1절) 한글성경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말하지만 원어는 아브라함이라고 직접 칭하지 않고 그에게 나타나셨다라고 표현한다. 문맥상 17장과 연속적으로 읽을때 본문의 그를 아브라함이라고 인식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8절) 아브라함이 무더운 한낮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본문의 마무레 상수리 나무는 앞서 13:18에서 장막을 옮겨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18, NKRV)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창세기 14:13, NKRV)
2절은 세 사람이 찾아왔고 아브라함이 그들을 보고 그들을 환대하였다. 본문은 몇번에 걸친 인칭의 변화가 등장한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다라고 말하는데 2절에서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보고 그들에게 달려가 몸을 굽혀 영접한다. 2절에서 놀라움을 표현하는 ‘힌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어 아브라함은 3절에서 마치 한명에게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 3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말하는 대상이 나의 주님들이 아니라 ‘나의 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4-9절에서는 여러사람을 염두에 두고 2인칭 남성 복수로 대화를 진행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이 천사들의 다음 여정지에는 두 천사가 등장한다.(19:1) 아브라함과 만났을 때는 분명 세사람이었는데 소돔에 이르렀을 때는 2명이 된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18:22을 보면 그 사람들(두 천사)가 떠나 소돔으로 향할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말하자면 셋 중에 둘은 소돔으로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으셔서 아브라함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유목민 삶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 근동에서 손님 환대(hospitality)는 죽음에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 풍습은 누구든지 자신의 장막으로 다가오면 쉬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기에 환대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고 예외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행한 이유는 선을 베풂으로써 잠재적 원수(potential enemy)를 최소한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온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러한 근동 지역의 관습이 아브라함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음 장에 기록된 천사들을 향한 롯의 섬김의 모습을 설명한다. 실제로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일종의 예배 행위이다. 탈무드는 ‘객들에게 베푸는 호의는 하나님의 임재를 환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처음에 제시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쉬었다 가라고 했으면 냉수라도 내와야 한다. 본문에서도 아브라함은 조금만 먹고 가라(5절)고 했다가 큰 잔치상을 마련한다. 탈무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고 ‘의인의 길이 이렇다. 작은 것을 약속하고 큰 것을 베푸는 것이다’라고 했다. (엑스포지멘터리 336-7)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보고 달려나가서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환대하며 극진하게 섬기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당시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지만 거의 100세나 된 노인이 달려나가서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국 아브라함이 이 세 사람이 특별한 존재임을 인식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환대하면서 먼저는 발을 씻고 나무 아래서 쉴 것을 청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떡을 조금 가져오겠다라고 말한다. 이에 그들이 ‘네 말대로 그리하라’라고 명한다. 당시 샌들을 신고 다니는 문화에서 나그네들의 발은 항상 지저분할 수 밖에 없다. 손님이 도착했을때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집안의 종들중에 가장 막내의 몫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의미도 이것이다. 손님들이 그의 초청에 응하자 아브라함은 아주 바빠졌다. 그는 급히 장막으로 가서 아내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떡을 만들라고 명했고 이어서 가축 떼 있는 곳으로 가서 젊은 하인에게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주어 그것을 급히 요리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나서 엉긴 젓(요구르트)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시고 이를 제공했다.
한 스아는 학자들마다 다른데 4.5리터에서 15리터에 달하는 부피를 말한다. 세 스아의 고운 밀가루는 약 13리터에서 45리터에 해당되는 많은 양이다. 아비가일이 화가 난 다윗의 군대를 달래기 위해서 다섯 스아의 밀가루로 빵을 빚었다.(삼상 25:18)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싸울 때 여호와의 제단 주위에 두 세아의 곡식을 둘만한 도랑을 팠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세 스아의 밀가루는 매우 많은 양으로 손님들만이 아니라 온 집안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빵을 구운 것이다. 또한 본문속에 보면 ‘급히, 속히’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이 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인식하고 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핟록 시켰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위해 송아지까지 잡은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이거나 그를 찾은 손님을 극진히 대전하비 위한 이유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화에 도움을 주는 엉긴 젓,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까지 내왔다. 이 세사람은 이처럼 아브라함이 준비한 음식을 먹었고 아브람은 그 식사 자리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음식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지금 철저하게 그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9-15절) 이제 음식을 먹은후에 천사들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다. 나그네들이 이처럼 아내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 것은 무례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누군가가 어디에 있는 지를 물으셨던 이전의 구절들(3:9, 4:9)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질문하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핵심으로 이끌어가려는 목적으로 질문하고 계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 돌아올텐데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사라가 장막 문뒤에서 들었다. 당시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로 늙어서 사라의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다. 11절에서는 거듭 아브라함과 사라가 임신할 가능성이 없음을 강조한다. 첫째는 나이가 많아, 둘째는 늙어서, 셋째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져서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기력이 다했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매게 무슨 즐거움(아들을 잉태함)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속으로 한 말을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겠느냐라고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때가 되었을 때 내가 네게 돌아올텐데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11절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다라고 말하고 12절에서는 내 주인도 늙었다라고 표현하고 13절에서는 나 자신이 늙었다라고 표현하다. 세절에서 거급해서 늙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화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식을 나을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는 이 표현에서 ‘능하지 못한’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노력과 연관지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펠레’인데 의미는 '기이한, 깜짝 놀라는, 신비한, 초자연적인’이다. 말하자면 여호와께는 어떤 불가능한 일도 있을 수 없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 The question about why Sarah laughs is simply the lead into the more important statement of verse 14,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The word translated “hard” here is not a quality that can be connected to human endeavors. Even applied as a description of the temple (2 Chron. 2:9), it refers to that which goes beyond what human workmanship can attain. Proverbs 30:18–19 speaks of four things that are beyond human understanding, though they are in the realm of human experience. The sense of the word goes beyond “wonderful” or “astonishing” to something more like “mystical” or “supernatural.” Here we see a clear statement of what the text is teaching about God.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454.
- פָּלָא (pālāʾ), ni. be difficult, extraordinary, wonderful; pi. fulfill; hi. do something in an extraordinary way; hitp. to show o.s. marvelous (hapleg.) (#7098); מִפְלָאוֹת (miplāʾôt), wonderful works (hapleg.; #5140); nom. פֶּלֶא (peleʾ), something extraordinary, wonder (#7099); adj. פִּלְאִי (pilʾî), marvelous (#7100). Some distinguish between פָּלָא, marvelous, and פָּלָא, pi. fulfil (a vow); hi. to fulfil (a vow), see THAT 2:415. The existence of this separate root is a debated question.
ni. niphal
pi. piel
hi. hiphil
hitp. hitpael
o.s. oneself (in lexical definition)
hapleg. hapax legomenon
hapleg. hapax legomenon
pi. piel
hi. hiphil
THAT Theologisches Handbuch zum Alten Testament, ed. E. Jenni and C. Westermann, 2 vols., Munich, 1971, 1976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615.
- Abraham’s earlier protestations regarding fathering a child had focused on his problem (15:4), or on the advanced age of both prospective parents (17:17). Also, such protestations occurred in Abraham’s direct discourse. But here it is the narrator who speaks. He knows Abraham and Sarah are advanced in years and Sarah has reached menopause. This phrase reinforces the advanced stage of Sarah. She was not just old or older, but at a point where her menses had ceased. This verse and the following two place special emphasis on the ages of Abraham and Sarah by the three-time use of the root zqn. The narrator calls both of them “elderly” (zeqēnîm, v. 11), a point made by Sarah about Abraham (zāqēn, v. 12) and about herself (zāqantî, v. 13). The narrator simply states the biological facts. The narrator, while he does not succumb to an outburst of laughter as Abraham did, and as Sarah shortly will, through such asides, injects his own sense of humor and the incredulous into the story. As Sternberg has said, “In his interpolated aside on the age of the prospective parents, he [v. 12, the narrator] goes out of his way to give color to Sarah’s laughter at the visitor’s forecast: the more natural her doubt, the stronger our sense of God’s supernatural prescience.”37
37 M. Sternberg, The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1985), p. 9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2.
사라의 비웃음과 거짓말, 사라는 자신이 1년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자신은 지금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그쳐졌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느냐?’라고 정색하며 주님께서 정한 기일에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자 사라가 두려워하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불신이 드러나자 두려움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이성적이고 본성과 반대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한다. 아담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숲에 숨었다. 아브라함은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서 사래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다. 본문에서 사라는 자신의 불신이 드러나자 두려워하여 부인하고 있다. 첫번째 죄를 덮기 위해서 두번째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항상 이렇다. 이미 지은 죄를 숨기고 가리기 위해서 새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일찍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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