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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through Christ)

세번째 만남 하나님 알아가기

1. 그리스도 안에 속하기 전의 우리

* 생각해볼 질문 :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을 생각할 때 당신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정말 많습니다.(최근 어린 아이를 죽인 부모들의 이야기) 잘 먹고, 잘 입고, 안전하게 교육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이중에 가장 큰 특권은 부모와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부모는 단지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부모가 아니라 자식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생각과 감정과 꿈을 나누고 아픔과 슬픔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모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이렇게 원래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관계보다 친밀하고 안전하고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해주는 그런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관계를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셔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앞선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야기했다면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누릴 수 있는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몰랐던 예전의 우리 모습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36, NKRV)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1–3, NKRV)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를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것을 조금 더 풀어서 우리가 아들을 따르지 않고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주 권세 잡은 자들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고 또 그들 가운데서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우리의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행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도록 지음받았는데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의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과거, 현재, 미래적인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불순종으로 우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으며 받고 있고 받게 될 것입니다. 중력을 무시하면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중력을 무시하고 어깨에 보자기를 매달고 나는 슈퍼맨이다. 나는 중력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상입니다. 심하면 불구 혹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런 물리 법칙 만이 아니라 인생의 법칙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은 화를 낼 수는 있지만 해지기 전에 풀라라고 말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에베소서 4:26, NKRV)

이 성경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분을 품고 살면 그 화가 우리를 망가뜨리고 그 때문에 병이 생깁니다. 사람들을 대하고 관계를 맺을 때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도 입니다. 그런데 거짓을 일 삼으면 다른 사람을 속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이 됩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 59:2, NKRV)

위 본문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갈라졌다라고 말합니다. 위 본문 을 새번역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부 사이의 관계가 깨져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내가 남편에게서 얼굴을 돌립니다. 그리고 남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무언가 말을 하는데 아내가 애써 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냉랭한 분위기가 가정을 압도합니다. 

바로 우리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시선을 돌리시고 우리의 말을,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인생속에 하나님으로 채워야하는 부분들속에서 소외와 공허함을 느끼고 이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냉랭해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거나, 거리의 여자들을 만나거나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그분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워서 이 공허와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이성으로, 취미 생활로 이를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없습니다. 

 

3) 구원의 기쁨을 기억하려면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린 이유는 과거에 자기가 어떤 존재였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절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 생각해 볼 질문 :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주신다는 사실로 인해 당신에게 가장 기쁨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과의 화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0–11, NKRV)

앞서 우리를 ‘진노의 자식’이라고 했다면 본문은 우리를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는데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수 상태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은 이러한 관계가 화목하게 되었을때 너무나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 담대하게 지성소로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10:18–19, NKRV)

구약에서는 1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대신해서 지성소로 들어가 시은좌에 피를 뿌리며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도 그곳에 들어갈 때 몸에 줄을 매달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들입니까? 진노의 자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존재들인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가 지성소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두려움 없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1서 4:18, NKRV)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는 온전한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완전히 용납했다. 너는 내 자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습니다. ‘네까짓게 무슨 그리스도인이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고 말도 안돼, 그렇게 살면서 성경 공부는 왜하는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참소에 무릎 꿇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회개해야만 죄가 없어지는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 목록을 만들어서 용서를 구합니다. 99가지를 기록하고 아뢰었는데 한가지를 놓쳐서 문제가 생기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마치 빨래를 하듯 용서를 구합니다. 이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용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용서의 효력은 우리의 회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회개가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후회와 비슷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후회는 ‘내가 왜 이랬을까? 한심해’라며 신세 한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4) 젖 뗀 아이처럼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편 131:2, NKRV)

본문에서 젖 뗀 아이란 젖을 다 먹고 난 다음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갓난 아이가 아니라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는 아이, 이제 더이상 젖을 먹지 않는 아이를 말합니다. 젖을 먹는 아이들은 엄마 품에 잘 안겨 있다가도 배가 고프면 필사적으로 웁니다. 아이들은 ‘이제 나를 굴겨 죽이려는구나’라는 마음으로 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젖을 떼면 이제 엄마를 의지할 줄 압니다. 엄마와 충분한 애착관계가 생겨서 엄마 품에 안겨서 안정감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상태가 바로 젖 뗀 아이와 같이 안정감을 누리는 상태, 죄책감이나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한탄하며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하는 보고 : 성경

* 생각해볼 질문 : 성경 읽기의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머니 품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제일 먼저 어머니, 아버지를 알아갑니다. 자녀로서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부모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니님께서는 당신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1) 성경 : 하나님에 대한 최고급 지식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 셀러는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1600여년에 걸쳐서 수십명의 저자가 기록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 NKRV)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여러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면 이제 신약에 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성경 : 우리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NKRV)

당시 예리한 양날의 검은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오늘 날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서 강력한 레이저 빔과 같다’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지식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쪼개고 우리 속의 문제를 분석하고 우리의 동기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해부하고 우리를 치료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우리가 낱낱이 해부되고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4. 말씀으로 자녀의 특권 누리기

* 생각해볼 질문 :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성경의 네 가지 기능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NKRV)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는 것

성경 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고, 잘못 갈 때는 책망하고, 바르게 교정하고, 다시 의로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바꿔주고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바꿔줍니다.  성경은 먼저 우리의 존재(being), 성품을 바꾸어주고 이어 행위와 삶(doing)을 바꾸어 줍니다. 

 

2) 성경을 누릴 수 있는 방법

⓵ 듣기 : 설교자의 말씀이 자신을 해부할 수 있도록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

⓶ 읽기 : 적어도 자신의 나이 만큼 읽어라, 통독도 좋지만 먼저 짧은, 좋아하는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어라. 

⓷ 암송 : 머리로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의 심령과 마음에 새기라. 

⓸ 연구 : 말씀을 더욱 자세하고 정교하게 듣는 것이다.

 묵상 : 읽거나 들은 내용을 마음 속에 품는 것, 우리 각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3) 의무가 아닌 특권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여러 방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기쁨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 인간,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우게 된다. 성경을 꾸준히 읽고 누리를 법을 배워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첫 번째 특권,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축복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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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ting
Paul, aa servant1 of Christ Jesus, bcalled to be an apostle, c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which dhe promised beforehand e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concerning his Son, fwho was descended from David2 gaccording to the flesh and hwas declared to be the Son of God iin power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by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Jesus Christ our Lord, through whom jwe have received grace and kapostleship lto bring about the obedience of faith for the sake of his name mamong all the nations, including you who are n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
To all those in Rome who are loved by God and called to be saints:
o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Ro 1:1–7.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하고나서 이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다. 먼저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약속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는 로마서가 구약(특히 이 약속)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2절은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인 16:26절과 수미 쌍관을 이루고 있다.
Romans 16:26 (NKRV)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An important focus of Romans is the connection between the OT (especially its promises) and the gospel of Christ (3:21; 9:4–6; 11:28; 15:8–12). This verse and 16:26—“made known through the prophetic writings”—bracket the letter as a whole.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291.


복음은 약속의 완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창세기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깨뜨릴 것에 대한 것이나 오실 구원자를 예표하는 시편의 표현들, 예레미야가 말한 새 언약등이 그러하다. 구약은 지속적으로 이 성취의 때가 올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약안에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를 약속하셨다.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그분의 메시지를 맏긴 사람들이다. 이후에 이 메시지를 기록하여 남기게 하셨고 바로 이것이 성경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시느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선지자들에게 알리셨고 그들은 이를 성취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드러내시기를 원하는 바로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성경은 바로 거룩한  것이다.
The gospel comes in fulfillment of a promise. In Genesis, God spoke of the heel of the woman’s offspring crushing the serpent (Gen 3:15). Messianic psalms portray the coming deliverer (Pss 45; 72). Jeremiah spoke of a new covenant (Jer 31:31–34). The Old Testament continually points beyond itself to a time of fulfillment, the age to come. God made his promise “through his prophets” in the Old Testament. He entrusted his message to men chosen to speak for him. Beyond that, he allowed his message to be written down. What the prophets wrote became “Holy Scriptures.” Here we have a brief summary of the method God chose in order to communicate with his people. Scripture originated with God. He used prophets to communicate his will, and they accomplished that purpose by writing down what God was pleased to reveal. The result was Scripture that is holy.5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60.

신약과 구약이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시점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실은 바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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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h in the Old Testament and in the New Testament prophets are primarily persons who speak on the behalf of God (Moses, David, and Solomon, along with others, are called prophets), and not merely persons who foretell the future. In the present context the emphasis is on the fact that what God promised through the prophets has come true. The Holy Scriptures is a reference to the Old Testament (see 2 Timothy 3:15 where this same phrase occurs). More often the Old Testament is referred to simply as “the Scriptures” (Matthew 21:42; 22:29; 26:54; John 5:39; etc.).

Barclay Moon Newman and Eugene Albert Nida, A Handbook 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73), 8.

본문은 복음의 핵심이 그의 아들에 관해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할때 너무 쉽게 신약의 내용에 한정해서는 안된다. 구약 전체를 토대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다룰때 이를 총체적으로 다루어내야할 것이다. 로마서는 지속적으로 그분의 약속과 구원의 계시를 중요한 주제로 이끌어 나간다.


본문에서 사용된 미리 약속하셨다라는 표현은 '프로에판겔로'라는 단어로 '프로'와 '에팡겔로마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이는 미리 약속하다라는 의미이다. 본 단어에서 에방겔리온이라는 만화영화 제목이 등장한다. 이는 약속이라는 의미이다.
Paul now describes the gospel he has been sent to proclaim, noting three characteristics. First, he tells us it was promised beforehand in the Old Testament. Throughout Romans, Paul will be anchoring his theological points in Old Testament truth. This statement in verse 2 establishes the promise-fulfillment pattern that will dominate his use of the Old Testament. The verb is made up of two parts, promise and before, with the latter drawing out the main aspect of the promise, that it was given ahead of time through the prophets. The idea of promise is frequent in the New Testament (especially in the writings of Paul, who employs it twenty-two of the fifty-two times it is used in the New Testament) to describe the blessings of salvation (e.g., Gal 3:22; 2 Cor 7:1; Heb 4:1; 10:23). Cranfield (1975:56–57, from Barth [1959:12–13]) points out how this idea dominates the letter. Anchoring these truths in the previous revelation by God in the Old Testament gives Paul’s message special credence, providing a perfect introduction for an apostle the church had not yet met. The prophets here are undoubtedly not just those of the latter part of the Old Testament but would also include Moses (Acts 3:22) and David (Acts 2:30). It is important for us to realize that the Bible as a whole, and not just the New Testament, forms the gospel.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29–30.

‘복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부사인 유(εὐ)와 ‘사자, 천사, 목사, 전령, 보냄을 받은 자, 하나님의 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명사 앙겔로스(ἄγγελος)에서 파생된 ‘좋은 소식을 선포하다, 복음을 전파하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다, 기쁜 소식을 보이다, 복음을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유앙겔리죠(εὐαγγελίζω)의 명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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