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And they heard the sound of the Lord God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3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bhid themselves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God among the trees of the garden. 9 But the Lord God called to the man and said to him, “Where are you?”4 10 And he said, “I heard the sound of you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c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 He said, “Who told you that you were naked? Have you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you not to eat?” 12 The man said, d“The woman whom you gave to be with me, she gave me fruit of the tree, and I ate.” 13 Then the Lord God said to the woman, “What is this that you have done?” The woman said, e“The serpent deceived me, and I ate.”
3 Hebrew wind
b [Ps. 139:1–12; Jer. 23:23, 24]
4 In Hebrew you is singular in verses 9 and 11
c ver. 7; ch. 2:25
d ch. 2:18; Job 31:33
e ver. 4; 2 Cor. 11:3; 1 Tim. 2: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3:8–13.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원래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이 자유롭게 만나 교제하는 자리였다. 매일 저녁 하나님과 함께 산책할 정도록 아름다운 관계였던 것이다.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한 은은이 소리들리니 주 음성 분명 하다
2.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울던 새도 잠잠캐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 밤 깊도록 동산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후렴 :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8절) 아담과 하와는 그날,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바로 그날 바람이 불때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본문에서 ‘바람이 불 때’로 번역된 표현은 개역에서는 ‘서늘할 때에’(in the cool of the day)로 표현된다. 히브리어는 ‘루아흐 하이욤’이라는 표현으로 루아흐는 바람, 영을 의미하교 욤이라는 표현은 날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그날 바람’을 ‘그날의 서늘함’을 의미하여 서늘한 초저녁 산들바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루아흐’와 ‘콜’(소리)라는 단어가 함께 쓰일때 폭풍의 상황에서 사용되기에 그날 물리적인 산들 바람이 불어올 때 하나님의 임재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실때 폭풍과 같은 소리가 났고 이 소리를 듣고 피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서 이세벨을 피하여 호렙산으로 가서 이렇게 고백했다.
(왕상 19:11-12, 개정)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께서 에덴에 찾아오셔서 동산을 거니시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본문에서 거니시는이라고 표현된 히브리어 표현, ‘미트할렉’을 동사 ‘하락’의 히스파엘 분사형으로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어쩌다가 에덴을 방문하신 것이 아니라 동산에 아담과 하와와 함께 산책하시는 것이 반복적인, 일상적인 행위였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부모가 집에 들어오면 반겨 맞는다. 하지만 뭔가 사고를 치고나면 부모를 피하게 되는 것과 같다. 날마다 하나님을 맞으며 달려나왔던 날들과 다르게 그날은 하나님의 임재 소리를 듣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에 숨게 되었다. 이것은 이후 1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결과이다. 앞서 아담과 하와 사이에는 벌거벗었음으로 인해 나뭇잎으로 가렸다면 아담과 하와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나뭇잎으로 가리고 나무 사이에 숨게 된 것이다.
9-11절) 이렇게 에덴을 찾으신 하나님께서 아밤을 부르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에 아담은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누가 너으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나?’라고 물으신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눈이 밝아졌다. 이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영적, 도덕적인 눈이 밝아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책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탄은 왜 아담이 아니라 하와를 유혹했고 하와는 무엇을 위해서 이 유혹에 넘어가게 된 것일까? 일반적으로 여자가 유혹에 잘 넘어가는 연약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내용은 아니다. 고전 11:3은 이렇게 말한다.
(고전 11:3, 개정)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사탄은 왜 아담이 아니라 하와를 유혹했을까? 여자가 유혹에 잘 넘어가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는 여자가 선악과 규정을 직접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이 공격하기 더 쉬웠을 것이라고 한다.34) 하와가 선악과 규정을 간접적으로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창세기 2–3장을 비롯한 성경 전체에는 이렇게 생각할만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울 서신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이유를 판단할만한 자료를 제공한다. 바울 서신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에 대한 미스테리 같은 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사탄이 여자에게 접근한 이유는 창조질서를 뒤집으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고린도전서 11:3은 언약적 구속사적 질서라는 측면에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이것은 신분상의 높고 낮음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본체이고 동등하다(빌 2:6).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도 동등한 인간이다. 하지만 언약의 질서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의 대표와 구속의 중보자 역할을 하였고, 아담도 마찬가지로 언약의 대표 역할을 하였다(롬 5:12–21). 언약의 질서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됨은 하와가 아담의 돕는 자였고,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에서 알 수 있다.35) 아담은 각종 동물들뿐만 아니라 하와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고 있다.
인간과 천사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서 8:19–22와 히브리서 1:14 그리고 요한계시록 22:9은 피조세계의 질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롬 8:19–22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히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이를 정리하면 인간과 피조물 그리고 천사의 질서는 다음과 같다.
롬 8:19–22
피조물 → 인간
히 1:14
천 사 → 인간
이를 바탕으로 피조물과 인간 그리고 천사의 질서를 피조물 → 천사 → 인간으로 표시할 수 있다. 사탄은 하나님이 정한 피조 세계의 원래 창조 질서를 바꾸어 세상 → 인간 → 천사의 순서로 만들려고 했다. 제2 성전 시대의 유대인들 중에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구약 외경 ‘아담과 하와의 삶’ 12–16절에 의하면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을 섬기라는 천사 미가엘의 말을 거부하며 자신은 아담보다 먼저 창조되었고 아담보다 더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담을 섬기고 경배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36) 미가엘이 사탄에게 하나님이 진노할 것이라고 경고하자 하늘 별들 위에 보좌를 만들어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말한다. 원래 천사였던 사탄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이 정해준 피조세계의 질서를 저버리고 높아지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사야 14:12–15와 에스겔 28:13–19 그리고 유다서 1:6은 이런 일이 있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겔 28:12–19 13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사 14:12–14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에스겔 28:12–19와 유다서 1:6은 에덴 동산에 있던 사탄이 교만하여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났고, 마침내 뭇별 위에 보좌를 높여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같은 지위에 오르려 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말한다. 이 것은 외경 ‘아담과 하와의 삶’ 12–16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탄은 피조물 → 천사 → 인간의 창조 질서를 바꾸기 위해 언약 질서에서 아담 다음이었던 하와를 유혹하여 창조 질서를 파괴하려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사탄은 이 파괴를 통해 하와가 아담보다 앞서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자로서 자기의 밑에 둠으로 피조 세계의 창조 질서를 세상 → 인간 → 천사의 순서로 만들려고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근거는 고린도전서 11:10과 디모데전서 2:13–14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고린도전서 11:10에서 바울은 여자(아내)의 머리에 쓰는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특이한 말을 하고 있다.
“여자(아내)는 천사들을 인하여 (남자의)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고전 11:10).
여기에서 말하는 권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남자(남편)의 권세이다. 왜 이런 말을 하였을까? 이 말에서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전에 여자(아내)가 남자(남편)의 권세 아래 있었다.
• 천사들이 이 사실을 악용하여 여자(아내)를 자극하고 유혹한 적이 있다.
• 이 표시를 통해 천사들이 남자(남편) 아래 있는 문제로 여자(아내)를 두 번 다시 유혹하지 못하게 해라.
• 그래서 여자(아내)는 머리에 쓸 것을 둠으로 언약의 질서상 남자(남편) 아래 있다는 것을 항상 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났는가? 고린도전서 11:8이 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남자(남편)가 여자(아내)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아내)가 남자(남편)에게서 났으며” (고전 11:8).
바울의 말은 바로 창세기 2–3장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선악과 사건 때문이라고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에 그런 흔적이 있는가? 선악과를 따먹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아담의 대답을 생각해 보라.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이 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왜 아담은 하와가 주어서 먹었다고 말했을까? 아담이 하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깊은 불신과 적개심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하나님이 하와에게 벌을 줄 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남편을 사모할 것이나 아담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이 말에서 ‘사모’는 남편을 애뜻하게 그리워하고 사모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의 히브리어 ‘테수카’(תְּשׁוּקָה)는 사자 같은 짐승이 먹이를 삼키려는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즉 ‘사모할 것이나’라는 말은 남편을 집어 삼키려는 욕망이다! 그런 아내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자(아내)에게 남편의 지배를 받는 벌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와가 이전에 아담을 자신의 발 아래 두려는 시도를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사탄이 유혹할 때 아담이 하와 바로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만 상대하며 유혹하였고, 하와는 아담이 대답할까봐 적극적으로 나서 대답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다. 아담이 그 곁에 있었다는 것은 사탄이 말할 때마다 2인칭 남성 복수 동사를 사용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탄은 하와에게 말하면서 교활하게도 2인칭 남성 복수를 사용하여 아담과 하와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심판할 때는 누구에게 먼저 책임 추궁을 하는가? 하와일까? 아담이다. 하나님은 언약 질서를 염두에 두고 언약 질서의 순서에 따라 아담과 하와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하나님은 뱀을 아예 무시해 버리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벌을 내리고 난 후 아담이 하와에게 다시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언약 질서에서 아담이 대표이고 여자(아내)의 머리됨을 다시 보여 주는 것이다.
34)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Grand Rapids: Eerdmans, 1983), 34–35.
35)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219–222.
36) Life of Adam and Eve 12–16. “Satan then tells them that his fall from heaven resulted from his refusal to worship Adam, the image of God.” Michael went out and called all the angels, saying, ‘Worship the image of the Lord God, as the Lord God has instructed.’ And Michael himself worshiped first, and called me and said, ‘Worship the image of God, Yahweh.’ And I answered, ‘I do not worship Adam.’ And when Michael kept forcing me to worship, I said to him, ‘Why do you compel me? I will not worship one inferior and subsequent to me. I am prior to him in creation; before he was made, I was already made. He ought to worship me.’ … But ‘if you wil not worship, the Lord God will be wrathful with you.’ And I said, ‘If he be wrathful with me, I will se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heaven and will be like the Most High.’ ”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33–138.
12절)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서 아담을 대답한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사탄은 하와를 앞세워 언약의 규정을 깨뜨리고 창조 질서를 파괴하도록 유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언약 질서의 순서에 따라서 심문을 시작하신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여자 때문이고 또 그 여자를 하나님께서 내개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이 아담에게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었을 때, 아담은 선악과 사건이 사탄/뱀 때문이었고 그 자리에 자신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한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문장은 동사+주어 순서로 배열되는데, 아담은 하와가 주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주어인 하이사(הָֽאִשָּׁה, 아내/여자)를 동사 앞에 배치하고 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것 때문에 하와에게 부끄러움을 느껴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어야 했던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 책임 전가에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 전가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아담은 주어 하이사(הָֽאִשָּׁה)다음에 동사를 가져 오지 않고 곧 바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하나님이 돕는 자로 준 이 아내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음을 강조하여 밝힘으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게 된 책임이 하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벌거벗은 것 때문에 부끄러움과 죄책감 때문에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입고 나무 사이에 숨어야 했던 아담은 책임이 하나님께도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최고의 선물 하와를 아담은 최악의 걸림돌이라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다.37) 안타깝게도 아담은 ‘뱀에게 유혹 받은’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이라고 말했고, 선악과를 따먹게 된 이유가 뱀이 하와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겠지만 아담은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를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38) 결국 아담은 이 사건에서 사탄의 역할을 빼버리고 자신의 책임은 축소하거나 외면하고 반면에 하와의 책임을 부각시키고 하나님의 역할을 끌어 들임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왜곡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아담의 대답에 하나님은 침묵을 지킴으로 그의 변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37) John Sailhamer, Pentateuch as Narrative, 106.
38) Sarna, Genesis, 26. Victor Hamilton, Genesis 1–17, 19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39–140.
13절) 이제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질문하신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대답한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제 여자는 뱀이 나를 속임으로 그것을 먹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 아담의 손가락이 하와와 하나님을 향했었는데, 하와의 손가락은 뱀과 자신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문에 하와는 세 단어로 간단하게 대답한다.
הַנָּחָ֖שׁ הִשִּׁיאַ֖נִי וָאֹכֵֽל
한나하쉬 힛쉬아니 봐오켈
개역 성경은 “뱀이 나를 꾀므로”라고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 나사(נָשָׁא)는 ‘꾀다’는 말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훨씬 강한 ‘속이다’이다. 하와는 뱀이 자신을 속였고, 자신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나님께 말한다. 뱀은 속인 자이고 자신은 속았다는 것이다. 하와가 속은 것은 무엇일까? 뱀이 하와를 속인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다. 둘째, 눈이 밝아 엘로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하와가 깨달은 것은 둘째 속임수이다. 아담과 하와 중에 죽은 자도 없으며,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이라는 판결을 듣지 못했다. 벌거벗은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남편 아담의 비난을 들으며 하와는 선과 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규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담과는 달리 하와는 회개의 단계는 아닐지라도 책임이 사탄과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속았다’는 말 자체가 죄를 고백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잘못을 깨닫고 있음을 보여 준다.39)
39) Beverly J. Stratton, Out of Eden: Reading, Rhetoric, and Ideology in Genesis 2–3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161–162.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40–141.
타락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 본성의 변화나 마음의 변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고 그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이른바 ‘실낙원’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낙원을 풍부한 과일이나 음식, 안전한 공간의 상실로 생각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상실이다. 타락 이전,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좇았다. 그분의 임재를 즐거워하며 그분의 소리가 들리면 달려나가 그분을 맞았다. 하지만 이제 그분의 낯을 피하게 되었다. 그분의 출현, 임재가 두려워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락의 결정적인 결과이다. 주님의 구속은 바로 이 문제를 극복하게 하신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그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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