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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Now we command you, brothers, s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that you keep away from any ubrother vwho is walking in idleness and not in accord with the tradition that you received from us. 7 For you yourselves know whow you ought to imitate us, because xwe were not idle when we were with you, 8 nor did we eat anyone’s bread without paying for it, but ywith toil and labor we worked night and day, that we might not be a burden to any of you. 9 It was znot because we do not have that right, but to give you in ourselves aan example to imitate.
s 1 Cor. 5:4
t ver. 14; [Matt. 18:17; 2 Tim. 3:5]; See 1 Cor. 5:9; 2 John 10
u 1 Cor. 5:11
v ver. 11; 1 Thess. 5:14
w [Acts 20:35]; See 1 Thess. 1:6
x 1 Thess. 1:5
y See 1 Thess. 2:9
z 1 Cor. 9:4; 1 Thess. 2:6
a ver. 7; 1 Pet. 5: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살후 3:6–9.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살후 3:6–9.
3장 6-15절은 앞선 바울의 기도 요청과 중보 기도에 이어 마지막 본론부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실생활의 영역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게으름을 경고하면서 규모있게 행할 것을 요청한다.
이마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자들에게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기를 명령했었다.
데살로니가전서 4:11–12
11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바울이 동일한 내용을 더욱 강력한 어조로 반복한 것을 보면 앞선 충고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더욱 자세하고 강력하게 이 부분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생 교회였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본이 되는 교회였다. 하지만 그런 교회 안에도 이런 실제적인 문제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땅의 교회는 천상의 교회를 소망하는 공동체이다. 여전히 문제 있는 이들이 모여있기에 문제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느냐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 6절 이하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엄히 명하고 있다.
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울은 지금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매우 강력하게 인식했다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는 대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하노니’, ‘파랑겔로멘’으로 원형은 ‘파랑겔로’이다. 이는 ‘권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도록 지시를 내리거나 명령을 내리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의 어근은 ‘앙겔로스’ ‘사자, 천사’로 동사형은 ‘앙겔로’로 ‘알리다, 전하다’의 의미이다. 천사가 권위를 가지고 옆에서 알려주는 것이 바로 본문의 의미이다. 바울은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위를 힘입어서 이들에게 명하고 있다.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게으르게’에 해당되는 표현은 ‘아닥토스’로 개역한글은 이른 ‘규모 없이’로 번역하였다. 이는 앞서 살전 5:14에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바르게 베치하다’라는 의미의 ‘탓소’와 부정 접두사 ‘아’의 합성어로 ‘대열에서 벗어난, 규율을 지키지 않는’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군사 용어로 대열에서 이탈한 낙오된 병사의 모습이다. 본절에서 이렇게 게으르게 행한다는 것은 교회의 정해진 질서를 따르기 않고 제멋대로 규율없이 행하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단지 게으름으로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제멋대로 행하여 도리어 골치 아픈 일을 만들어낸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기에 이전 번역의 ‘규모없이’가 더 타당해 보인다. 이후에 11절에서 이를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이라고 부연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교회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었다. ‘전통’에 해당하는 ‘파라도시스’는 앞서 2:15에 사용된바있다.
이 단어는 원래 ‘넘겨주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파라디도미’에서 유래한 명사로 ‘전통, 전승, 넘겨줌, 내어줌, 양도’라는 의미이다. 이는 존경받는 권위자들로부터 전해 내력오는 구체적인 관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육과 관련해서는 지식과 교훈이 스승으로부터 학생에게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3번 사용되었는데 복음서 8번, 바울 서신의 2회는 모두 유대 랍비들, 장로들, 조상들이 전해준 전승을 말한 반면 2:15과 3:6, 그리고 고전 11:2에서는 복음의 전승을 나타낸다. 본절에서는 랍비들의 전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바울 일행을 통해서 가르쳐진 복음 진리가 성도들에게 전승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전한 것은 바로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것(고전 11:23)이었다.
고린도전서 11:23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모든 것, 그의 말이나 편지를 통해 전한 것은 그 기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바울은 규모 없이(게으르게) 행하고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한 복음의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날것을 명령한다. ‘떠나라’는 ‘스텔레스다이’로 원형은 ‘스텔로’의 중간태 부정사형이다. 이는 ‘피하다, 조심하다’라는 의미로 이는 앞의 직설법 동사인 ‘파랑겔로멘’에 걸린다. 이를 직역하면 ‘모든 형제들로부터 너희 스스로 물러나라’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공동체 안에 이런 이들에 대해서 떠남으로 자신을 자신을 지킬 것을 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죄에는 오염, 전파성이 강하기에 이런 이들과 지속적으로 교제하고 접촉할 때 필연적으로 죄의 영향력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떠나라는 명령은 영원한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함으로 돌아오게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마 18장 공동체 안의 권징)
앞선 살전 5:14에서는 이 게으름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 바울이 ‘권면’했다면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이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심각한 단계로 이르렀기에 ‘명령’하고 있다. 당시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는 조치는 출교에 해당하는 것일 것이다. 당시는 공동 사회로 교회라는 공동체가 삶의 중심에 해당되며 교회에서 성찬과 같은 공동 식사를 진행했기에 이것에서 제외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징계였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 게으름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본문은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추측해보건데 첫째는 주의 날, 재림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이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일상의 삶을 도외시하고 포기했었을 것이고 둘째는 공동체안에 몇몇 게으른 이들이 교회안의 부유한 이들의 자비심에 기대어 이를 악용했고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일에 부적절하게 참견함으로 교회안에 문제를 일으켰다.
- 3:6 command. The problem of some believers living idly became worse, so Paul switches from the softer language of “urge” (1 Thess 5:14) to the stronger “command” (here and also in v. 12). keep away. This verb, along with “do not associate with” in v. 14, refers to social ostracism or excommunication: exclusion from corporate worship and the meal that was part of the Lord’s Supper celebration (1 Cor 5:11; 11:17–34). Such exclusion would be devastating for the idle in Thessalonica, who lived in a communal culture in which honor and shame were powerful forces controlling social behavior. idle and disruptive. Translates one Greek word whose root (atakt-) occurs three times in this passage (vv. 6, 7, 11). See note on 1 Thess 5:14. Paul never states why some were living in idleness. One possibility is that the Thessalonians’ excitement over the imminent return of Jesus caused them to abandon ordinary earthly activities as not worthwhile. Another possibility is that some were merely lazy and took advantage of the generosity of wealthier believers and then used their free time to meddle in the affairs of others (v. 11; 1 Thess 4:11).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vv. verses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64.
7절) 바울은 규모없이 행하는 자들을 본받지 말고 자신들을 본받을 것을 요청한다.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본받다’라는 표현은 ‘미메이스다이’로 원형은 ‘미메오마이’이다. 이는 ‘흉내, 광대’를 의미하는 ‘미모스’에서 유래한 동사이다. 광대가 어떤 인물을 분장하여 연기하는 것처럼 모방하는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신앙은 본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무엇을 본받느냐이다. 바울은 자신들을 본받을 것을 명하고 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현상의 핵심은 말씀을 듣고 이를 먼저 실천한 이들을 본받고 본이 되고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인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 자신들을 본받을 것을 말한다. 이는 자신들은 규모없이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7-8절은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이다. 여기서 ‘무질서하게 행하다’는 ‘에탁테사멘’으로 6절에사 사용된 ‘아닥토스’의 동사형이다.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대오를 이탈한 패잔병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8절이 부연한다.
- The introductory formulation of v. 7 makes two points. First, γάρ (“for”) implies that what Paul is about to say provides a motivation or reason for avoiding any Christian brother or sister who is living in idleness. Second, αὐτοὶ οἴδατε (“you yourselves know”; cf. 1 Thes. 2:1; 3:3; 4:2; 5:2) evinces that what follows is already recognized among Paul’s readers, that is, it is part of the ethical tradition received from Paul. He and his missionary colleagues had furnished the Thessalonians with an example of self-sufficiency (see vv. 8f.) having the character of an ethical imperative. Thus Paul reminds them that they know πῶς δεῖ μιμεῖσθαι ἡμᾶς (“how [you] ought to imitate us”; cf. 1 Thes. 4:1 for the use of πῶς δεῖ in the sense of an ethical imperative). In 1 Thes. 1:6f. and 2:14 Paul notes the way in which the Thessalonians became imitators of the experience of suffering endured by various other Christians as well as Christ himself, but here he calls for ethical conformity to his own pattern of behavior, as he does in other texts, such as 1 Cor. 4:16; 11:1; and Phil. 3:17.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83.
8절)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음식’으로 번역된 ‘아르톤’은 ‘빵, 떡, 덩어리’를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모든 식품을 의미하고 나아가서 일상의 삶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의미한다. ‘값없이’로 번역된 ‘도레안’은 ‘거저, 값없이, 무익하게, 헛되이’라는 의미인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부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 바로 값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이루어졌다. 바울은 수고하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바울은 동일하게 살전 2:9에서도 수고하고 애씀의 태도로 노력했다. ‘일함’은으로 번역된 ‘에르가조메노이’는 힘을 당하여 일하는 것을 나타내는 ‘에르가조마이’의 현재 분사이다. 이는 그러한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주야로’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뉙토스 카이 헤메라스’라는 표현으로 소유격으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자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이 일을 하면서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함께 병행했다.(행 18:3)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동일한 표현이 살전 2:9에 등장한다.
바울이 이처럼 밤낮으로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은 그의 사역이 돈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에 대한 반박임과 동시에 일하는 것을 거부하고 게으름에 빠져 있는 데살로니가의 일부 성도들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한 목자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본문에서 ‘폐를 끼치다’라는 표현은 ‘에피바레오’라는 표현인데 이는 ‘~위에’를 의미하는 ‘에피’라는 단어와 ‘짐을 지우다’라는 ‘바레오’의 합성어로 ‘~위에 짐을 지우다’라는 의미이다. 앞서 살전 2:7절에서 권위를 주장하다라는 표현이 ‘바로스’이다.
바울이 이처럼 복음 전하는 자가 물질적인 제공을 받는 것이 당연함에도(고전 9:9-11) 이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이유는 1)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줌으로써 복음 전파에 장애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고, 2) 복음의 대적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앞서 살전 2장 3, 5절에서 당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철학이나 값싼, 변질된 복음을 가르치며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었기에 바울의 일행이 이러한 자들과 같다라는 오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다. 3) 미쉬나에서는 유대 랍비들이 돈을 받고 율법을 가르치는 행위를 삼갔다. 이 여러가지 이유들 중에 바울은 아마도 첫번째 이유, 어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위해서 애쓰며 노동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절대적으로 믿는 이들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복음의 사역을 위해서 후원을 받기도 했고(빌 4:16)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위해서 성도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바울이 했던 자비량선교를 이름하여 ’tentmaking’이라고 한다. 이는 그가 밤낮으로 했던 일이 장막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행 18:3) 당시 장막은 주로 길리기아 지방에서 나는 염소 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길리기아 다소 출신인 바울은 아려서부터 이 일을 배웠을 것이다. 당시에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청년들까지도 한가지씩의 기술을 배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했다.
9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이를 직역하면 ‘우리가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이다. ‘권리’에 해당하는 ‘엑수시안’의 원형 ‘엑수시아’는 ‘권한, 권리, 능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는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권한, 능력을 의미한다(마 28:18)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로서 말씀을 전한 사례를 청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세, 권리이다.
마태복음 10:10
10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신명기 18:1
1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바울은 분명히 전도 사역에 필요한 경비 혹은 생계비를 성도들에게 청구하는 것은 마땅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본인은 자신의 복음 사역에 필요한 경비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요청하지 않았으며(고전 9:12-15)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마찬가지 였다. 마땅히 요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바울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ἐξουσία -ας, ἡ; (exousia), 명사. 권한, 권리, 능력. 아람어 등가: שָׁלְטָן (7), שׁלט (1), שַׁלִּיט (1), תִּפְתָּי (1).
명사 용법
1. 판결 기관 — 영역에 드리운 권위나 영향권; 대개 정치적 혹은 종교적 영역과 관련된다. 관련 주제: 정부; 사법권; 주권; 왕좌; 권위.
막 1:22|| ὡς ἐξουσίαν ἔχων καὶ οὐχ ὡς οἱ
막 11:28|| Ἐν ποίᾳ ἐξουσίᾳ
롬 13:1 οὐ γὰρ ἔστιν ἐξουσία
유 25 δόξα μεγαλωσύνη κράτος καὶ ἐξουσία πρὸ παντὸς
계 13:2 καὶ ἐξουσίαν μεγάλην.
2. 통치자 ⇔ 권위 — 타인들에 대한 지배력(행정적)을 행사하는 사람.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κυριότης. 관련 주제: 규칙; 통치하다; 총독; 섭리; 주권; 왕좌; 주권적인; 주권과 힘.
롬 13:1 ἐξουσίαις ὑπερεχούσαις
엡 1:21 ὑπεράνω πάσης ἀρχῆς καὶ ἐξουσίας καὶ δυνάμεως
엡 2:2 κατὰ τὸν ἄρχοντα τῆς ἐξουσίας τοῦ ἀέρος,
골 1:16 ἀρχαὶ εἴτε ἐξουσίαι· τὰ
딛 3:1 ἀρχαῖς ἐξουσίαις ὑποτάσσεσθαι
3. 권위 — 명령이나 결정을 내릴 권리나 권한.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ἐπιταγή. 관련 주제: 정부; 사법권; 주권; 왕좌; 권위.
막 6:7|| καὶ ἐδίδου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τῶν πνευμάτων τῶν
눅 12:5|| φοβήθητε τὸν μετὰ τὸ ἀποκτεῖναι ἔχοντα ἐξουσίαν
요 10:18 ἐξουσίαν ἔχω θεῖναι αὐτήν,
계 9:3 καὶ ἐδόθη αὐταῖς ἐξουσία ὡς ἔχουσιν ἐξουσίαν
계 11:6 οὗτοι ἔχουσιν τὴν ἐξουσίαν κλεῖσαι τὸν οὐρανόν,
4. 권리 ⇔ 권위 —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만을 위한 배타적인 특권(사회적 혹은 법적 성격의). 관련 주제: 사법권.
요 1:12 ὅσοι δὲ ἔλαβον αὐτόν,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요 5:27 καὶ ἐξουσίαν ἔδωκεν αὐτῷ κρίσιν ποιεῖν, ὅτι
고전 9:4 μὴ οὐκ ἔχομεν ἐξουσίαν φαγεῖν καὶ πεῖν;
살후 3:9 ἔχομεν ἐξουσίαν,
계 22:14 ἵνα ἔσται ἡ ἐξουσία αὐτῶν ἐπὶ τὸ
5. 지배하다 ⇔ 권위† — 권위자를 통해 이해되는 통치가 필요한 영역. 관련 주제: 주권; 사법권.
눅 4:6 τὴν ἐξουσίαν ταύτην ἅπασαν
눅 23:7 ἐκ τῆς ἐξουσίας Ἡρῴδου
골 1:13 ὃς ἐρρύσατο ἡμᾶς ἐκ τῆς ἐξουσίας τοῦ
6. 재량 (자유)† —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거나 판단하는 자유. 관련 주제: 자유; 재량.
고전 8:9 ἡ ἐξουσία ὑμῶν αὕτη
7. 권위 (상징)† — 어떤 사람의 권위 아래 있거나 어떤 것을 위한 권한을 부여받은 것을 나타내는 공적인 표시.
고전 11:10 διὰ τοῦτο ὀφείλει ἡ γυνὴ ἐξουσίαν ἔχειν
8. 소유물 ⇔ 권위† — 특정한 재산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행위. 관련 주제: 사법권; 소유물.
행 5:4 ἐν τῇ σῇ ἐξουσίᾳ
칠십인역 참조 구절
• 왕하 20:13; 에스드라 A 4:28; 시 113:2; 시 135:8–9; 지혜 10:14; 단 3:97; 단 4:14; 단 4:28; 단 7:14; 1마카 11:58
명사. 명사
Rick Brannan, ed., 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이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은 자신의 본을 따르는 이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는 ‘헤아우투스 튀폰 도멘’으로 ‘우리 스스로를 본으로 주어’라는 의미이다. ‘본’에 해당하는 ‘튀폰’의 원형은 ‘튀포스’로 이것에서 파생된 것이 영어로 ’type’이다. 이는 ‘모형, 형상, 양식, 본보기’라는 의미이다.
어떤 본을 따르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데 바울은 권리포기를 통한 본을 보여줌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신들을 본받기 원한 것이다. 이후에 ‘본받게’라는 표현은 ‘미메이스타이’로 원형은 ‘미메오마이’로 이 동사는 신약에서 4번 사용된다. 이것의 명사형이 살전 1:6에 사용된 ‘미메테스’이다.
- Through a parenthetical remark Paul distinguishes between his and his colleagues’ rights and their actual practice as an example for their converts to follow. The first part of his statement, οὐχ ὅτι οὐκ ἔχομεν ἐξουσίαν, is elliptical and means “(it is) not that we did not have the right (to be supported).” In 1 Cor. 9:4–18 Paul appeals to the law of Moses and to temple practices for warrants to substantiate his right to support in the sight of God. At the same time he denies ever having invoked this right in his dealings with the Corinthians. From 1 Cor. 9:4–6 it would appear that Paul was exceptional among apostolic missionaries in not exercising this right. His reason, as mentioned above, was twofold: First, as 1 Thes. 2:4f. and 9f. suggest, he did not exercise his right to maintenance as a matter of principle; he did not wish anyone to think that he preached out of an impure motive or for his own gain. Second, as he indicates in the purpose clause of the second part of 2 Thess. 3:9, he did it ἵνα ἑαυτοὺς τύπον δῶμεν ὑμῖν εἰς τὸ μιμεῖσθαι ἡμᾶς (“in order that we might give ourselves as an example to you in order that we might be imitated”). Once again the expression is elliptical, but the context makes it clear that Paul’s ethical example was intended to teach his converts to be self-sufficient. The reason for having inculcated this type of behavior is explained in v. 12.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285.
바울은 형제들을 향해서 규모없이 게으르게 행하고 받은 전통(말씀, 복음)대로 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떠나라고 명한다. 이를 위해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않고 자신이 행한 것처럼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으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말것은 명한다. 바울의 가르침이 힘이 있는 것은 자기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가르치는 이들과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땅히 누릴 권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려놓고 그는 수고하며 애를 썼고 이 본을 따르라고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본을 따르고 본이 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따라야할 본을 찾고 그것을 분명히 찾았다면 이를 마음을 다해서 행해야 할 것이다. 살후 3:6-9 바울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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