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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aham took another wife, whose name was Keturah. lShe bore him Zimran, Jokshan, Medan, Midian, Ishbak, and Shuah. Jokshan fathered Sheba and Dedan. The sons of Dedan were Asshurim, Letushim, and Leummim. The sons of Midian were Ephah, Epher, Hanoch, Abida, and Eldaah. All these were the children of Keturah. mAbraham gave all he had to Isaac. But to the sons of his concubines Abraham gave gifts, and while he was still living he nsent them away from his son Isaac, eastward oto the east country.

These are the days of the years of Abraham’s life, 175 years. Abraham pbreathed his last and qdied in a good old age, an old man and full of years, and was gathered to his people. Isaac and Ishmael rhis sons buried him in the cave of Machpelah, in the field of Ephron the son of Zohar the Hittite, east of Mamre, 10 the field sthat Abraham purchased from the Hittites. tThere Abraham was buried, with Sarah his wife. 11 After the death of Abraham, God blessed Isaac his son. And Isaac settled at uBeer-lahai-roi.

12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Ishmael, Abraham’s son, vwhom Hagar the Egyptian, Sarah’s servant, bore to Abraham. 13 wThese are the names of the sons of Ishmael, named in the order of their birth: xNebaioth, the firstborn of Ishmael; and xKedar, Adbeel, Mibsam, 14 Mishma, Dumah, Massa, 15 Hadad, yTema, zJetur, zNaphish, and Kedemah. 16 These are the sons of Ishmael and these are their names, by their villages and by their encampments, atwelve princes according to their tribes. 17 (These are the years of the life of Ishmael: 137 years. He bbreathed his last and died, and was gathered to his people.) 18 cThey settled from Havilah to dShur, which is opposite Egypt in the direction of Assyria. He settled1 over against all his kinsmen.

l 1 Chr. 1:32, 33

m ch. 24:36

n ch. 21:14

o [Judg. 6:3]

p ver. 17; ch. 35:29; 49:33

q ch. 15:15

r ch. 35:29

s ch. 23:16; 50:13

t ch. 49:30, 31

u ch. 16:14; 24:62

v ch. 16:15

w 1 Chr. 1:29–31

x Isa. 60:7

x Isa. 60:7

y Job 6:19; Isa. 21:14

z 1 Chr. 5:19

z 1 Chr. 5:19

a ch. 17:20

b ver. 8

c 1 Sam. 15:7

d ch. 16:7; 20:1; Ex. 15:22

1 Hebrew fell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5:1–18.

 

 

1-6절)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들

그두라 -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 욕산 :  스바와 드단 

- 드단 : 앗수르, 르두시, 르움미

- 미디안 : 에바, 에벨, 하녹, 아비다, 엘다아

아브라함이 리브가에게서 낳은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이 이삭을 떠나 동방,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다. 

과연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언제 그의 후처로 맞이하였을까? 시간의 흐름상으로는 사라의 죽음 이후에 첩을 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사라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아들을 낳은 것이 불가능함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보아서 그 이후 6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사라의 죽음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37세였으니 그때 이후에 6명의 아들을 낳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맞이한 것이 사라가 살아있을때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여기며 6절에서도 그두라를 아내라고 부르지 않고 그의 첩이라고 부르는 것도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지만 약속의 자녀는 이삭 한명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 상속권을 물려주고 다른 이들, 다른 첩들의 자식들에게는 선물을 주어 동쪽으로 내보냈다. 

 

아브라함은 첩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어 내보냄으로 이삭으로부터 그들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Abraham gives all his possessions to Isaac (as was earlier mentioned in 24:36b), but the sons he had by his concubines he sends away with gifts. Abraham had once given all he had to God (ch. 22). Now the objects are changed: Abraham gives all he has to Isaac. Abraham is concerned that his sons by Keturah not be too close to his son by Sarah. This concern may reflect the same kind of concern of ch. 24 that Isaac not get too close to the locals by marrying a Canaanite.

The expression the land of Kedem (Heb. ʾereṣ qeḏem) may mean “east country” or “the land of the East.” References to it as a place would position it east or southeast of the Dead Sea.14 The difference between sending the servant eastward (ch. 24) and sending his children by concubines eastward is that the latter are sent away never to return. In this respect one might also compare Abraham’s actions with the sons of his concubines, especially Keturah’s, and his earlier action with his concubine with wife Hagar and her son Ishmael (ch. 21). On both occasions he sent his sons by concubinage away, an action expressed by the Piel of šālaḥ (21:14; 25:6), thus distancing them from Isaac. On both occasions Abraham sent the sons away with provisions (water, food; gifts). Abraham apparently viewed both dismissals as permanent.

14 See Gen. 29:1; Num. 23:7; Judg. 6:3, 33; 7:12 (in all three verses parallel with Midianites and Amalekites); Isa. 11:14; Jer. 49:28; Ezek. 25:4, 10; Job 1:3.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67.

 

7-11절)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라. 

아브라함은 1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난 것이 75세로 이제 가나안 땅에서 생활한지 100년만의 일이다. 창세기의 기록이 시간의 순서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창세기의 계보로 계산해보면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그의 손자 야곱의 나이가 15세였다. 본문의 기록만으로 놓고 보면 아브라함이 마치 이삭이 결혼한 후 바로 죽은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는 사라가 죽은 후 38년, 이삭이 결혼한 후 35년을 더 살다가 손자까지 보고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 15:15의 약속의 성취이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의 나이가 40세(25:20), 에서와 야곱 쌍동이가 태어날 때가 이삭이 60세(25:26)이었다. 이삭이 결혼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40세 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죽을때 야곱의 나이는 15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창세기에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서 소할의 아들 에브론으로부터 구입한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함께 합장되었다. 9절 본문은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례를 함께 치렀다고 말하고 있다. 이스마엘의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평생 이삭만 사랑하고 자신은 냉대했던 아버지였다. 자신이 어머니 하갈과 함께 쫓겨나갈때 음식과 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던 원망스런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장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서 서로 원수같던 이삭과 이스마엘이 이후의 야곱과 에서의 만남(35:29)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다. 브엘라해로이 :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이의 우물(16:14)로 하갈이 발견할 우물이다. 

 

이제 11:27부터 시작된 아브라함의 행적은 이제 막을 내린다. 

 

본문 8절에는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10번 등장한다. 8-9절에서는 이 죽음의 프로세스를 4단계로 구분한다. 먼저는 숨이 끊어지는 것(기운이 다하여, breathes his last)-죽어(die)-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is gathered to his people-kin)-장사함(buried)로 나뉜다. 

The expression was gathered to his kin is found only ten times in the OT, and all of them are in the Pentateuch.16 Here in 25:8 it is distinguished from death (v. 8a) and burial (v. 9), and accordingly suggests the reunion of the deceased with his forefathers. A fourfold process is involved here. An individual breathes his last, dies, is gathered to his kin, and is buried. Dying precedes being gathered to one’s kin, and being gathered to one’s kin precedes burial. Therefore, to be gathered to one’s kin cannot mean to be entombed in the grave. That one is gathered to one’s kin/fathers before being buried implies either a belief in a continued existence in the netherworld or that the spirit of the deceased joined the ancestors in the underworld, and that even in death family solidarity was not broken.17 Of the six individuals in the Pentateuch of whom the phrase “gathered to his kin” is used (Abraham, Gen. 25:8; Ishmael, Gen. 25:17; Isaac, Gen. 35:29; Jacob, Gen. 49:29, 33; Moses, Num. 27:13; Deut. 32:50; and Aaron, Num. 20:24; Deut. 32:50), four of them were not buried in an ancestral grave (Abraham, Ishmael, Moses, and Aaron).18

16 Gen. 25:8, 17; 35:29; 49:29, 33; Num. 20:24, 26; 27:13; 31:2; Deut. 32:50. The kindred phrase “he was gathered to his fathers” or “he was buried with his fathers” appears in Genesis (15:15; 47:30) and elsewhere in the OT (e.g., Judg. 2:10).

17 See B. Alfrink, “L’expression neʾĕsap̱ ʾel-ʿammāyw,” OTS 5 (1948) 118–31; G. R. Driver, “Plurima Mortis Imago,” in Studies and Essays in Honor of Abraham A. Neuman, ed. M. Ben-Horin, B. D. Weinryb, and S. Zeitlin (Leiden: Brill, 1962), pp. 128–43, esp. pp. 137–43; N. J. Tromp, Primitive Conceptions of Death and the Nether World in the Old Testament, BibOr 21 (Rome: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1969), pp. 168–69; T. J. Lewis, Cults of the Dead in Ancient Israel and Ugarit, HSM 39 (Atlanta: Scholars, 1989), pp. 164–65; Westermann, Genesis, 2:397.

18 See G. A. Lee, “Gather,” ISBE, 2:41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68.

 

12-18절) 본절은 이스마엘의 족보, 톨레돗을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일생이 시작되면서 데라의 족보(11:27-32)가 기록되었다면 이제 아브라함의 마지막을 기록하면서 이스마엘의 족보(25:12-18)로 끝을 맺고 있다. 

본문은 이스마엘이 이스라엘의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을 ‘애굽인 하갈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확인한다. 비록 약속의 자녀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로 하나님의 은총을 누렸던 사람이다. 우리 한글 개역개정은 아브라함이 아들임을 한번 기록하지만 원문은 그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두번에 걸쳐서 강조한다. 

이스마멜의 12 아들의 이름이 기록된다. 느바욧, 게달, 앗브엘, 입삼, 미스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 / 하갈이 사라에게서 도망가다가 우물가에서 만난 천사가 이스마엘에게서 12 영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것이 성취된 것이다.(17:20)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이들로부터 아라비아 사람들이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마엘은 1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아브라함이 그를 낳은 것이 86세(16:16)이므로 아브라함이 죽은 후 48년을 더 살고 죽은 것이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했다라고 기록한다. 본문의 '맞은 편에’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알 파네’인데 이는 ‘얼굴, 존재를 대항해서’혹은 ‘얼굴의 반대편 쪽’이라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적대 관계를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는 단순히 건너편에 살았다라는 의미인데 이미 천사를 통해서 이스마엘 후손들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며 살아갈 것을 예언되었고(16:12) 이 문장의 마지막 동사, ‘나팔’도 넘어지다, 떨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서로 대립하며 살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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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Then Laban and Bethuel answered and said, “The thing has come from the Lord; we cannot bspeak to you bad or good. 51 Behold, Rebekah is before you; take her and go, and let her be the wife of your master’s son, cas the Lord has spoken.”

52 When Abraham’s servant heard their words, yhe bowed himself to the earth before the Lord. 53 And the servant brought out jewelry of silver and of gold, and garments, and gave them to Rebekah. He also gave to her brother and to her mother costly ornaments. 54 And he and the men who were with him ate and drank, and they spent the night there. When they arose in the morning, he said, d“Send me away to my master.” 55 Her brother and her mother said, “Let the young woman remain with us a while, at least ten days; after that she may go.” 56 But he said to them, “Do not delay me, since the Lord has prospered my way. Send me away that I may go to my master.” 57 They said, “Let us call the young woman and ask her.” 58 And they called Rebekah and said to her, “Will you go with this man?” She said, “I will go.” 59 So they sent away Rebekah their sister and eher nurse, and Abraham’s servant and his men. 60 And they blessed Rebekah and said to her,

“Our sister, may you fbecome

thousands of ten thousands,

and gmay your offspring possess

the gate of those who hate him!”6

61 Then Rebekah and her young women arose and rode on the camels and followed the man. Thus the servant took Rebekah and went his way.

62 Now Isaac had returned from hBeer-lahai-roi and was dwelling in the Negeb. 63 And Isaac went out ito meditate in the field toward evening. And he lifted up his eyes and saw, and behold, there were camels coming. 64 And Rebekah lifted up her eyes, and when she saw Isaac, she dismounted from the camel 65 and said to the servant, “Who is that man, walking in the field to meet us?” The servant said, “It is my master.” So she took her veil and covered herself. 66 And the servant told Isaac all the things that he had done. 67 Then Isaac brought her into the tent of Sarah his mother and took Rebekah, and she became his wife, and he loved her. So Isaac was jcomforted after his mother’s kdeath.

b ch. 31:24; 2 Sam. 13:22

c See ver. 13–15, 42–46

y [See ver. 48 above]

d ver. 56, 59

e ch. 35:8

f ch. 17:16

g ch. 22:17

6 Or hate them

h ch. 16:14; 25:11

i Ps. 77:12; 143:5

j ch. 37:35; 38:12

k ch. 23: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4:50–67.

 

 

50-53절) 아브라함의 종이 식사도 하지 않고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자 라반과 브두엘이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일이기에 우리가 가부를 정할 수 없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리브가를 아브라함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할 것을 허락한다. 

과연 브두엘의 집안이, 라반이 여호와를 믿었을까? 이후에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나올 때 라헬이 그 집안의 수호신 드라빔을 훔쳐서 나온 일을 생각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라반이라는 이름은 달신 숭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대답은 그들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결혼을 요청하는 그 종, 아브라함의 믿음의 이야기를 듣고 이에 맞춘 반응으로 생각된다. 이런 허락의 응답을 듣는 순간 아브라함의 종은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했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 낙탁와 종들을 이끌고 오랜 시간을 여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여정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주인의 아들의  신부를 어떻게 분별할지 고민하며 기도했는데 이제야 그 기도가 정확하게 응답된 것을 확인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한후에 자신이 가지고 온 여러 은금 패물과 의복을 리브가와 그의 오빠와 어머니에게도 주었다. 

 

본문(52)의 종이 여호와께 경배하는 행위는 세번째에 해당된다(12-14, 26).

첫번째는 자신의 여정을 인도해주실 것을 구체적으로 아뢰드린 것이었다면 두번째 세번째는 기도의 내용은 등장하지 않고 행동언어로 보여준다. 두번째는 머리를 숙였다면 세번째는 온 몸을 땅에 엎드려 절했다. 

 

54-60절) 이제야 종과 동행자들은 먹고 마셨다. 고된 여정에 힘들고 배고팠지만 이 중요한 결정이 확인되기까지 그들은 긴장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고 이제야 마음 편히 먹고 마시며 쉼을 누렸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이제 주인에게 돌아가겠다라고 말한다. 라반과 리브가의 어머니는 며칠 혹은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해달라라고 요청한다. 본문에서 '며칠 혹은 열흘’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며칠 혹은 10’이라는 의미로 ‘열흘 정도’가 가장 적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종은 신속하게 주인에게 돌아가기를 청하고 있다. 주인 아들

의 신부를 하루 속히 데리고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종이 강력하게 돌아갈 것을 원하자 가족들은 당사자, 리브가의 뜻이 어떤지를 물었다. 앞서 결혼은 이미 결정되었고 이제 리브가에게는 즉시 떠나는 것을 동의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리브가는 종과 함께 떠나겠다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리브가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리브가의 행동, 남편된 사람의 얼굴도 보지 않고 약속에 의지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은 마치 아브라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리브가는 여자 아브라하이었다. 

리브가의 대답을 확인한 가족들은 이제 리브가와 그의 유모(35:8-드보라)를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한다. 아버지 브두엘이 아니라 라반이 가족을 대표하여 누이를 축복하고 있다. 그는 두가지 복을 빌어주는데 첫번째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두번째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이다. 특별히 두번째 복은 22:17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과 비슷하다. 

창세기 22:17 (NKRV)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The family give two blessings to Rebekah—one, the prayer for much offspring; and two, the prayer for the victory and prosperity of those offspring over their enemies (for which see 22:17). This two-pronged blessing is very close in style and sequence to the blessing of Noah on Shem and Japheth (9:26–27).20 The second part of this blessing also parallels 22:17b: what the messenger said about Abraham’s descendants Rebekah’s brothers now say about her descendants.

20 See C. Westermann, Blessing in the Bible and the Life of the Church, tr. Keith Crim, OBT (Philadelphia: Fortress, 1978), p. 55. Also cf. Ruth 4:11–12 for a marriage blessing involving the acquiring of children.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59.

 

61-67절) 이제 리브가가 일어나 여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종을 따라갔다. 

Rebekah and the servant do not walk together as did Abraham and Isaac (ch. 22). He leads. She follows. Earlier the servant was himself led (vv. 7, 26), but now he is leader. This is the sixth time in this chapter that lāqaḥ has been used in connection with Rebekah. In five of them (vv. 4, 7, 38, 40, 48 [and see also v. 67]) lāqaḥ means “to take in marriage.” On each of these five occasions I translated lāqaḥ as “procure.” Once Abraham used this verb about himself (v. 7) to refer to the time when Yahweh took him from Aram-Naharaim. Now the servant is doing for/to Rebekah what Yahweh had earlier done for/to Abraham.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59.

 

리브가도 유모와 여종들을 데리고 떠났다는 것을 볼때 그녀의 집안도 상당한 재력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때에,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의 집을 출발했을 때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하갈이 사라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여 임신함 몸으로 도망갔다가 하나님을 만났던 샘(16:14)을 떠나 남쪽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브엘라해로이는 헤브론에서 남서쪽(125km)에 위치해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아내 사라를 장사지냈다.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 거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이 이곳으로 이사를 했거나 아버지와 따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삭은 리브가를 맞이해서 어머니 사라의 텐트로 인도했다. 사라가 죽은 후의 장막에 리브가를 들였다는 것은 이제 어머니의 죽음이후에 그 자리를 리브가가 차지하여 여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삭은 해가 저물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서 낙타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본문에서 ‘묵상하다’라는 표현의 ‘수아’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단한번 등장하는 단어로 개역개정은 ‘묵상하다’,  공동번역은 ‘바람 쐬러 나갔다’, 새번역은 ‘산책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삭은 저녁 시간에 산책을 겸해서 묵상을 하러 나간 것이고 바로 이 때에 자신의 아내될 리브가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낙타를 타고 있던 리브가가 멀리서 이삭을 보고서 그가 누구인지를 묻자 종은 이삭을 ‘내 주인’이라고 말하고 리브가는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이스라엘 여자들은 평상시에 너울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행동은 이삭에게 자신이 그의 신부임을 알려주는 행동이었다. 이처럼 약혼한 여인은 너울을 착용했다. 이렇게 베일을 착용한 리브가와 이삭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에 종이 그가 행한 일을 모두 이삭에게 알렸다. 종을 보낸 사람은 아브라함인데 이 종이 그가 행한 일을 모두 고하는 대상은 지금 이삭이다. 그리고 그 이삭을 ‘내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이삭은 이제 리브가를 어머니의 텐트로 인도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했다. 어머니 사라의 죽음이후에 이 집안에는 여주인이 부재한 상태였고 아브라함과 이삭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이제 리브가를 맞이하여 그 빈 자리가 채워졌다. 

 

본문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대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리브가가 종에게 묻고, 종이 이삭에게 여정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리브가는 이삭이 자신의 남편될 사람임을 분명히 알았고, 이삭도 이 여인이 자신의 아내될 사람임을 확신했다. 서로 직접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이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이삭은 모리아산에 희생제물을 드리러 갈때도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었다. 여기서 아내될 여인을 찾기 위한 여정에 대한 설명을 아버지로부터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음을 그는 알았고 이에 순종하여 리브가를 아내로 삼고 사랑했다. 본문에서 사랑했다라는 단어는 ‘아하브’로 헬라어의 ‘아가파오’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Interestingly, the text has no record of any conversation between the prospective spouses. Rebekah speaks to the servant, and the servant speaks to Rebekah (v. 65). The servant also converses with Isaac at length (v. 66). But bridegroom and bride exchange no conversation. The quickness with which Isaac and Rebekah are married matches the quickness with which Rebekah alighted from her camel.

Rebekah knows Isaac’s identity (v. 65) before Isaac knows her identity (v. 66). Accordingly, she veils herself as the prospective bride.14 That particular piece of clothing had not been mentioned among the articles with which Rebekah left home.

Now informed and assured that Rebekah was indeed the person for whom Abraham had sent the servant, Isaac brings her into his home, that is, his tent, and marries her. It was not necessary that the servant go into great detail about his odyssey to Aram-Naharaim and back in order to inform Isaac of his father’s plan and directives for the servant vis-à-vis Isaac. Just as Isaac was kept uninformed of why he and his father headed for Moriah, so he is kept in the dark about Abraham’s arrangement for his marriage. In both cases, when the truth dawns upon Isaac, he consents to the situation. He accepts binding from his father, and he accepts the Aramean wife brought to him from afar.

14 For the veiling of the bride (though a different Hebrew term is used), see Cant. 4:1, 3; 6:7; for the veiling of a harlot (using the same Hebrew term as in Gen. 24:65), see Gen. 38:14, 19. See also de Vaux, Ancient Israel, 1:33–3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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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gel of the Lord found her by a spring of water in the wilderness, the spring on the way to fShur. And he said, “Hagar, servant of Sarai, where have you come from and where are you going?” She said, “I am fleeing from my mistress Sarai.” The angel of the Lord said to her, “Return to your mistress and submit to her.” 10 The angel of the Lord also said to her, g“I will surely multiply your offspring so that they cannot be numbered for multitude.” 11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to her,

“Behold, you are pregnant

and shall bear a son.

You shall call his name Ishmael,3

hbecause the Lord has listened to your affliction.

12  He shall be ia wild donkey of a man,

his hand against everyone

and everyone’s hand against him,

and he shall dwell jover against all his kinsmen.”

13 So she called the name of the Lord who spoke to her, “You are a God of seeing,”4 for she said, k“Truly here I have seen him who looks after me.”5 14 Therefore the well was called lBeer-lahai-roi;6 it lies between mKadesh and Bered.

15 And Hagar bore Abram a son, and Abram called the name of his son, whom Hagar bore, Ishmael. 16 Abram was eighty-six years old when Hagar bore Ishmael to Abram.

f ch. 25:18; Ex. 15:22

g ch. 17:20; 21:18; See ch. 25:12–18

3 Ishmael means God hears

h [ch. 29:32]

i Job 39:5–8; [ch. 21:20]

j ch. 25:18

4 Or You are a God who sees me

k [ch. 32:30; Ex. 19:21; 33:20; Judg. 13:22]

5 Hebrew Have I really seen him here who sees me? or Would I have looked here for the one who sees me?

l ch. 24:62; 25:11

6 Beer-lahai-roi means the well of the Living One who sees me

m ch. 14:7; 20:1; Num. 13:2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6:7–16.

 

 

본문은 사래의 여종 하갈이 사래의 학대를 피하여 도망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고향인 애굽을 향하는 술이라는 지역을 향해 가던중 한 샘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된다. 

 

7절) 아브람이 거주하던 가나안에서 술이라는 지역의 광야의 샘에서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다. 술은 시나이 반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트랜스 요르단에 위치한 보스라에서 이집트와 왕의 대로를 연결시켜주는 지역을 관통한다. 즉 이 길은 브엘세바를 거쳐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목으로 하갈은 자신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은 히브리어로 ‘성벽’을 뜻하는데 이 지역에 벽처럼 늘어서 있는 유명한 이집트의 요새들을 가리키는것 일 수도 있다. 브엘라해로이는 가데스에 위치해 있는데 만일 아브람이 아직 헤브론에 진 치고 있었다면 하갈은 임신한 채 혼자서 이 위험한 지역을 가로질러 110km를 여행한 셈이 된다. 

 

본문에서 천사, 사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말라크’로 ‘소식을 전달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는 사업이나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의사 소통의 중재자를 나타낸다. 

מַלְאָךְ (malʾāk), nom. messenger, angel (#4855); מַלאָכוּת (malʾākût), nom. message (hapleg. in Hag 1:13; #4857).

ANE The mār šipri in Akk. and malʾāk in WestSem. sources denote a mediator of communication in business and political affairs (cf. Heb. מְלָאכָה, business). The messenger delivered an oral message, along with documentation, explaining and defending his master’s word. A god might also send a messenger or vizier (sukkallu) on business.

OT 1. Human leaders frequently send מַלְאָכִים on business or diplomacy (Gen 32:3–6). These human messengers are fully equated with their senders (Judg 11:13; 2 Sam 3:12, 13; 1 Kgs 20:2–40). God can send prophetic or priestly messengers (Hag 1:13; Mal 2:7). The prophetic commissioning and messenger formula (“Thus says Yahweh”) reflect the image of diplomatic protocol (Ross, 99–102). It was sometimes difficult to distinguish between human and angelic messengers (Judg 13:20; Mal 3:1).

2. Angels serve as messengers of revelation, for example, in the role of the angelus interpres of Zech 1:14; 2:3. Most striking is the figure of the מַלְאַךְ יְהוָה, like human messengers, who speaks in God’s name and occasionally appears as Yahweh himself (e.g., Gen 16:7–14). Of the three “men” who appear to Abraham and Sarah, one speaks in Yahweh’s name (Gen 18:22; cf. Dan 12:5), and the other two are called מַלְאָכִים (19:1). Manoah’s wife describes the “man of God” as looking like “an angel of God” (Judg 13:6), but Manoah later learns that he is the מַלְאַךְ יְהוָה, who is closely identified with God himself. While it may be anachronistic to speak of the מַלְאַךְ יְהוָה as a hypostasis of God, he does provide a provocative image of divine agency and hence a proleptic type for NT Christology (Hurtado, 71–92).

3. God’s angel is instrumental in the saving events of Exodus, Sinai, and Conquest (Exod 14:19; 23:20; Josh 2:1–4; cf. Hos 12:14). Angels can also threaten the wicked with destruction and death (Exod 12:23; 1 Chron 21:12; Ps 78:49; Prov 16:14), and they are associated with eschatological judgment (Ezek 9:1–8; Dan 7:9–14).

hapleg. hapax legomenon

ANE Ancient Near East(ern)

WestSem. West Semitic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941–942.

창 19:1에서는 두 천사가, 18:2에서는 사람 셋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여호와의 사자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며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성육신하기 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도 주장한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이 절의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한다. 

 

천사가 샘 곁에서 숨을 돌리고 있던 하갈을 찾아왔다. ‘천사’(호와의 메신저 )(7)는 구약에서 48차례 사용되는 용어다. 창세기에서는 이 이야

기에서 4번(7, 9, 10, 11)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이야기에서 2번 나온다(22: 11, 15). 구약에서 하나님과 천사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하나님과 천사가 동일시되기도 하고, 이 둘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cf. 22:15-16; 3:24와 행 7:30-32; 22:22, 31, 35, 38; 6:11-18; 13:21-22). 이곳에서도 천사와 하나님의 관계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분명히 천사라고했는데(7), 이 천사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고(10), 내레이터와 하갈도 그를 ‘여호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13). 여호와의 메신저’와 평행을 이루는 ‘하나님의 메신저’라는 말의 용도에서도 하나님과 천사의 관계를 정의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엑스포지멘터리 313)

 

8-10절) 여호와이 사자와 하갈이 서로 대화한다. 

먼저 천사가 묻는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천사는 지금 하갈의 신분이 어떤지를 분명히 인식시키고 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사래의 여종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 하갈이 대답한다. ‘자신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고 있습니다.’ 앞선 상황속에서 보면 하갈은 자신이 임신하고 나서 여주인 사래를 업신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상황인지를 다시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천사가 다시 말한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녀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서 하갈에게 여주인 사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꿀것을 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사는 하갈에게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신다.(17:20; 25:12-18) 선택받은 후손의 계보가 그리스도로 연결되어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축복이 넘쳐흘러서 이스마엘과 같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갈의 도주는 창 3장을 연상시킨다. 죄를 짓고 숲으로 도망하여 숨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것 같이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간 하갈에게 천사가 나타나 묻고 있는 것이다. 실망과 좌절의 순간에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임과 동시에 소망이 되는 것이다. 

 

천사는 하갈에게 본인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확인시키면서 마땅히 본인이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고 있다. 하갈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천사가 이름을 불러준 여인이다. 또한 앞으로 태어날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신탁을 받은 최초의 여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은 최초의 여인이다. 

 

11-12절) 이어 천사는 하갈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나을 것인데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너의 아들이 사람중에 들나귀같이 되어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것이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 것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의미이다. 사래의 학대속에 하갈이 하나님께 외친 외침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것이다. 하갈의 아들의 삶은 엄마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마엘은 매우 적대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어머니 하갈과는 다르게 다른 이를 섬기지 않고 다른 이들을 대적하는 삶을 살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 약속은 하갈로 하여금 돌아갈 용기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면 분명히 사래의 학대가 있을 것이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사래의 어떠한 학대도 이겨낼 수 있는 비전이 생긴 것이다. 이스마엘도 아브람의 아들이기에 축복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우리의 작은 한숨과 탄식에도 귀 기울이시는 분이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우리는 고난 중에 위로를 얻게 된다. 

 

이스마엘에 대한 천사의 예언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들나귀는 힘이 세고 두려움이 없고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짐승들 중에 가장 가축화하기 힘들었던 동물에 속한다. 노예로 속박당하고 견디기 힘든 구박을 받다가 도망쳐 나온 하갈에게 그녀의 아들은 그 누구도 속박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예언은 그녀에게 복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멩릐 후손들이 누리게될 자유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적대관계를 형성하여 평생 원수로 살게 될 것을 예언하는데 실제로 이후에 이스라엘은 이스마엘 백성과 수시로 충돌하게 된다. 

 

13-14절) 하갈은 천사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는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엘 로이)’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지금 천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들으시고 이에 관심을 가지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다, 만났다라고 말하고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의 의미는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이의 우물’이라는 의미이다. 이 샘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었다. 

 

지금 하갈을 사래의 학대를 피해 임신 중에 도망가다가 한 샘에서 천사를 만나게 되고 그 천사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듣고 계심을, 또한 자신의 자손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살피시는 분이심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이렇게 실존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들으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심을 머리로는 알지만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지금 하갈처럼 인생의 위기의 순간가운데 우리가 머리로만 고백하여 알던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경험이 있게 된다. 

 

15-16절) 아마도 술 길의 브엘라해로이 샘에서 천사와 만난 이후에 하갈은 주인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브람의 아들을 낳고 천사가 말한대로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였다. 이때 아브람이 86세 였다. 본문은 침묵하고 있지만 도망갔던 여종 하갈이 돌아온 것을 사래와 아브람이 받아준 것으로 보인다. 아브람은 공개적으로 이스마엘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여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으로 옮겨 온지 11년만이었다. 

 

 

위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여러 형태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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