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19 for I know that fthrough your prayers and gthe help of hthe Spirit of Jesus Christ this will turn out for my deliverance, 20 as it is my eager expectation and hope ithat I will not be at all ashamed, but that with full jcourage now as always Christ kwill be honored in my body, lwhether by life or by death. 21 For to me m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live in the flesh, that means fruitful labor for me. Yet which I shall choose I cannot tell. 23 n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My desire is oto depart and pbe with Christ, for that is far better. 24 But to remain in the flesh is more necessary on your account. 25 qConvinced of this, r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sprogress and tjoy in the faith, 26 so that in me uyou may have ample cause to glory in Christ Jesus, because of my coming to you again.
fSee 2 Cor. 1:11
gGal. 3:5
hSee Acts 16:7
iRom. 5:5; [Joel 2:27; 2 Tim. 2:15]
jSee Acts 4:13
k[1 Cor. 6:20]
lRom. 14:8
m[Gal. 2:20]
n[2 Cor. 5:8]
o2 Tim. 4:6
pSee John 12:26
q[ch. 2:24]
r[Acts 20:25]
sver. 12
tRom. 15:13
uSee 2 Cor. 1: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빌 1:19–26.
19절) 빌립보 성도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이것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알고 있다.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먼저는 앞서 계속해서 이야기한 매임에 대한 부분에서의 구원이다. 이는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자유케 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영적인 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후의 구절을 통해서 바울은 23절에서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임을 말하며 영원한 구원, 영생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일시적인 구원과 영원한 구원의 긴장을 담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사나 죽으나 자신의 가장 큰 관심은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바울은 그가 풀려나기를 원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사형을 당하게 되더라도 빌립보 성도들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에 의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더 좋은 곳에 있음을 알게하였다.
Paul, who has prayed for the Philippians, now solicits their prayersfor deliverance(Gk. sōtēria), a term that could mean deliverance from prison (as some commentators understand it) or that could mean deliverance in the ultimate sense of eternal salvation (as others understand it). It seems likely that Paul intentionally left some ambiguity here, in light of the mention of his imprisonment in the preceding verses (see vv. 12–14) and in light of the eternal focus in the verses that follow (e.g., Paul’s desire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which is far better”; v. 23). The tension between temporal deliverance and eternal salvation is, in fact, evident throughout this passage (vv. 19–26), as evidenced by Paul’s words: “whether by life or by death” (in v. 20) and “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in v. 23). Although Paul seems to have alluded to his temporal deliverance, clearly his longing for eternal salvation is “far better” (v. 23). In this regard, Paul alludes to Job 13:13–18 in this passage, where Job clearly speaks of his final destiny; and Paul speaks of his hope of not being ashamed, which is elsewhere related to the final judgment (cf. Rom. 5:4–5). Either way, Paul wants the Philippians to know that even if his expected deliverance from prison fails to materialize, and he is executed, he will still be “saved” to eternal life by Go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81.
바울은 이후의 25-26절을 통해서 볼때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할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갇혀 있지만 다시 너희들과 함께 있음을 통해서 풍성함을 누리기 원했다.
20-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내가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한 온전히 담대해져서 이전과 같이 이제도, 살던지 죽던지 그리스도가 내 몸안에서 존귀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고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삶은 이세상의 가치, 물질적인 안전과 성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영광의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그가 사는 것은 명백하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었다. 그에게 죽는 것도 유익한 이유는 바울이 이 땅의 고통많은 삶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임재안에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온전한 복음안에서의 정의를 하게 될때 이땅에서의 삶을 재정의 할 수 있게 된다.
Paul’s life is not a matter of seeking his own comfort or advancement. It is all about seeking the advancement of Christ’s kingdom: to liveis tantamount to serving Christ. In fact, to dieshould be seen as gain, because it would mean that Paul would be freed from his trouble-filled life on earth to rejoice in Christ’s presenc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81.
바울이 자신의 몸에 대한 관점은 분명했다. 몸 자체가 그의 목적이 아니라 복음의 도구로, 복음 사역의 수단으로 이를 이해 했다.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에게 몸, 건강이 우상이 되어 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성전된 몸을 잘 관리해야할 책임이 있지만 이것이 우상이 되어서 마땅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섬겨야할 기회들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골 1:24, 개정)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3절) 바울은 삶과 죽음, 육신으로 살아가는 것과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사이의 갈등을 토로하고 있다. 그의 개인적인 선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육신으로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있는 것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 더욱 유익함을 알고 있었다.
본문속에서 바울의 부활관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는 신자는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고 멀지 않아 그들의 몸이 그 죽은자들로부터 부활될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고난을 곱씹으며 불평과 불만을 하지 않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섬김을 추구하는 삶의 모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살아가는 신앙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분명하게 신자들의 삶을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종교들은 환생하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복음은 오히려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됨을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은 절대적으로 죄와 고통에 둘러싸여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신자들은 마지막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적이며 타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교제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to depart and be with Christ.Paul here refers to what will happen to him when he dies. Before the final “day of Christ Jesus” (v. 6), those who die go to joyful fellowship with Christ (cf. Luke 23:43). Believers do not cease to exist at death in order to be re-created again from scratch later; rather, they go to be with Christ spiritually, which is “better by far” than being beset by sin and suffering. But that is still not God’s final purpose: ultimately, at the final resurrection of all believers, God will restore fellowship between believers and Christ that is both physical and undisturbed by the effects of the fall.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cf. compare, confer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416.
24-26절) 바울이 육신으로 있는것,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는 것(거하는 것)과 너희 무리와 함께 계속해서 있는 것이 너희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다시 가는 것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한 자랑이 있게 될 것임을 알았다.
(빌 1:24-26, 새번역) 『[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25]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26]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본문에서 자랑거리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을 알기에 오는 자신감을 의미한다. 이것에 반대되는 자랑은 부끄러움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그분을 신뢰하는 이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이 자랑은 내적인 자신감 뿐만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외치는 것이다.
boasting.Not negative, which it usually is in English; it goes back to Jer 9:23–24. First, it means having confidence that Jesus has saved us and will save us from judgment. The opposite of boasting is shame, and God promises that “the one who trusts in him will never be put to shame” (1 Pet 2:6; see Isa 28:16 [in the Septuagint, the pre-Christian Greek translation of the OT]; Rom 9:33; 10:11). Second, in common with our English usage, it is vocal: it is not only an inner confidence but also an eagerness to preach the good news (cf. Gal 6:14).
OT Old Testament
cf. compare, confer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416–2417.
'성경묵상 >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 2:1-4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공동체의 삶의 자세 (0) | 2019.03.07 |
---|---|
빌 1:27-30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0) | 2019.01.18 |
빌 1:12-18 바울의 매임과 복음 전파 (0) | 2019.01.15 |
빌 1:3-11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 (0) | 2019.01.14 |
빌 1:1-2 바울의 인사 (0) | 2019.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