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the Lord Require?
6 b“With what shall I come before the Lord,
and bow myself before cGod on high?
Shall I come before him with burnt offerings,
with calves a year old?
7 dWill the Lord be pleased with1 thousands of rams,
with ten thousands of rivers of oil?
eShall I give my firstborn for my transgression,
the fruit of my body for the sin of my soul?”
8 He has told you, O man, what is good;
and f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but to do justice, and to love kindness,2
and to gwalk humbly with your God?
b [Hos. 5:6; Heb. 10:4]
c Isa. 57:15
d See 1 Sam. 15:22
1 Or Will the Lord accept
e 2 Kgs. 3:27; 16:3; 21:6; 23:10; [Lev. 18:21]
f [Deut. 10:12]
2 Or steadfast love
g [Gen. 5:2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6:6–8.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6:6–8.
앞서 1-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아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출애굽 사건과 광야 생활이후 가나안 입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 언약의 관계안에서 들어와 있는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여호와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6-7절) 그리고 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8절)
6-7절) 본문은 백성중 한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묻고 있다.
첫번째 질문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라는 내용이다. 이는 높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요 절기가 되면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마다 제물을 드려야 했다.(출 23:14-15; 34:18-20; 신 16:16-17)
두번째 질문은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요?’라는 것이었다. 번젬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드리던 제물이다.(레 2) 이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짐승은 소, 양, 염소, 비둘기 등이었다. ‘일 년 된 송아지’는 번제물(레 12:6; 23:12; 민 6:14), 매일 드리는 제물(출 29:38; 젤 46:13), 속건제(민 6:12, 절기 때 드리는 제물(출 12:5; 레 23:18, 19; 민 28-29), 속죄제(레 9:3), 제단을 헌사할 때 드리는 제물(민 7:17) 이 일
년 된 양이나 소여야 한다는 규례를 상기시킨다.
세번째 질문은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였다. 이는 엄청난 양의 재물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소 22,000마리와 양 120,000마리를 드렸다(왕상 8:63) 수천마리의 숫 양과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만한 기름을 드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양이다.
네번째 질문은 크게 둘로 나눠지는데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묻는다. 유다의 아하스 왕이 아틀을 제물로 불살라 바친 기록이 있다(왕하 16:3; 대하 28:3). 암몬 족들은 자신들의 신 몰렉에게 아이들을 바치곤 했다(레 20:2-5; 왕상 11:5). 성경은 아이들을 번제로 바치는 행위를 율법으로 금하고 있지만(레 18:21; 20:2-5; 신 12:31; 18:10), 예레미야가 이러한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보아(렘 7:31; 19:5; 32:32), 이스라엘에서 아하스의 야만적인 행동이 종종 행해졌던 일이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대표자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상대로제기하신 소송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옐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렸다 하지만, 또 그들이 많은 제물은 드렸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요구하신 한 가지(예, 그들의 마음)는 드리지 않았다.
이 질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질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형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 과할 정도로 드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는 예배일 뿐이다.
- The people begin by asking what they should bring12 to the Lord to please him when they come to worship him. They correctly recognize that he is the “exalted God” (cf. Ps 46:10). Then they make some specific suggestions in reply to their opening question. Shall they bring burnt offerings? They think ritual alone is a solution when in reality it is part of the problem. No mere ceremony is ever sufficient. “False worshipers think God’s favor, like theirs, can be bought” or earned. They “offer the Lord everything but what he asks for: their loving and obedient hearts.”13 “Offerings … are no substitute for obedience to God’s will.”14 The burnt offering was wholly consumed and was intended to express one’s devotion, commitment, and complete surrender to God. Yet such total commitment is the one thing the offerers were still withholding from the Lord. Calves a year old were regarded as the best sacrificial animals at the right age (Lev 9:3).
In v. 7 the worshipers “up the ante,” so to speak, by wondering whether a greater quantity of offerings would please the Lord. “Thousands” and “ten thousand” are examples of hyperbole, though King Solomon did offer 22,000 cattle and 120,000 sheep and goats as fellowship (traditionally “peace”) offerings at the dedication of the temple (1 Kgs 8:63)—obviously impossible for average Israelite worshipers. Rams were common sacrificial animals (Lev 5:15), and olive oil was a common sacrificial substance (Lev 2:1, 4, 15).
Finally, the worshipers hypothetically wonder whether sacrificing their firstborn children would atone for their sins (on “transgression” and “sin” see comments on 1:5). This, in fact, is what King Ahaz did (2 Kgs 16:3; 2 Chr 28:3). The Ammonites sacrificed their children to their god, Molech (Lev 20:2–5; 1 Kgs 11:5). The detestable practice spread to Phoenicia, Canaan, and even to the Israelites themselves on occasion. For God’s people to engage in child sacrifice would only increase their sins because God expressly prohibited it (Lev 18:21; Deut 18:10). Jeremiah condemned such a horrible ritual (Jer 7:31; 19:5; 32:32; for the biblical teaching on redeeming the “firstborn” see Exod 13:2, 13; 22:29; 34:20). Since the people of God’s covenant community were willing to bring any of these sacrifices to the Lord, they doubtless believed that he was bringing unjust charges against them. What the Lord really wanted most of all, however, was not the offerings but the hearts, allegiance, and obedience of the offerers (cf. Rom 12:1; Heb 10:4). “They would offer everything (even what God forbade) excepting only what alone he asked for, their heart, its love and its obedience.”15 The truth taught in this passage is basically the same as that expressed in 1 Sam 15:22; Pss 40:6–8; 50:8–15, 23; 51:16–19; Isa 1:11–15; Jer 6:19–20; 7:22–23; Hos 6:6; Amos 5:21–24; Zech 7:4–10.
12 “Come before” translates קדם, a denominative verb related to קֶדֶם, “front, before, earlier, east.” It refers to an act resulting in being in front of something, either spatially or temporally. It is often used in the negative sense of confronting (e.g., Ps 18:5 [6], 18 [19]; 2 Kgs 19:32; Amos 9:10; Job 30:27). It can describe God bringing blessings to someone (Pss 21:3 [4]; 59:10 [11]; 79:8). It is also used of prayer and worship, as here (e.g., Pss 88:13; 95:2; 119:147). See also Deut 23:4 [5]; Job 41:11.
13 B. K. Waltke, “Theology of Micah,”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d. W. A. Elwell (Grand Rapids: Baker, 1996), 527.
14 H. Vorländer, “Gift, δῶρον,” NIDNTT 2:42.
15 E. B. Pusey, The Minor Prophets: A Commentary, 2 vols. (Grand Rapids: Baker, 1950), 2:8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2–113.
8절)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네게 보이셨다. 개역개정은 보이셨다라고 표현하지만 원문을 말씀하셨다, 알게하셨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신다.
8절의 보이셨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나갓’이다.
נָגַד 나갓. nagad, tell, declare, utter, has showed, 알렸느냐, 창(Gen) 3:11, 말하지, 창(Gen) 12:18, 보이심이니이다, 창(Gen) 41:25, 선포하며, 렘(Jer) 4:5, 누설하지, 수(Jos) 2:14.
맹용길, 스트롱 맹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 원어 사전 (맹용길, 2016).
이는 말씀하시고 보이심으로 알게 하다라는 의미인데 본문은 완료형으로 이미 하나님께서는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알게 하셨다. 8절은 그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구하신 것이 정의, 인자, 겸손이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언약적인 충성을 보여야 하는 근거를 4-5절에서 제시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굉야 생활을 꿀내고 가나안에 입성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보호에 의해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분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며, 그분의 모양과 형상에 따라 창조된 모든 사람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것을 바라실 뿐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창조된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선’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은 인간에게 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이름다운 창조 질서에 따라 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선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바라는 선이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정의하기도 하고(사 1:17; 5:20; 암 5:14f.), 두 세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사 5:7; 암 5:24; 호 4:1; 6:6; 13:7).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선은 그분께 많은 제물, 유창한 감사기도, 혹은 화려한 찬양을 드리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서로에게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통행하는 것”이다.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의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공의(미슈파트)를 행한다는 것은 각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적절한 보응/보상을 해준다는 의미이며, 핍박하는 자를 징계하고, 박해 받는 자들을 자유케 한다는 뜻이다. 인자(헤세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
다. 그러므로 인자를 베푼다는 것은 서로 간에 맺은 언약의 세부 조항대로 보호하고 책임져준다는 뜻이다. 함께 한 공동체로 묶인 사람들은 서로의 평안에 대하여 책임을 느껴야 한다. 또한 사랑하다(아하바)는 동사가 감성과 영적인 헌신과 각오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의 백성들은 정열적으로 인자를 추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언약으로 묶여 있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신중히 그분이 원하시는 것에 따라 산다는 것을 뭇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자를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공의를 실천하고 인자를 사랑하라는 요구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자비로워야 하며 공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같은 언약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로워야 하며, 인자를 베풀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의와 인자는 항상 함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비가 없는 공의는 매정할 수 있으며, 공의가 없는 인자는 동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의와 인자는 박해당하는 자를 구원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구제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구제할 때는 행동이 강조되며, 박해당하는 자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는 자세가 부각된다. 이것이 바로 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본분을 다하는 것이요 또한 겸손히 하나님과 통행하는 것이다. ‘겸손히’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차나으)는 ‘지혜롭게, 신중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의롭게 사는 것을 구별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이 두 가지가 결코 나누어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 미가 선지자도 본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자들에게 공의와 인지를 행하는 것과 한가지로 간주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가장 기본적인 성향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와 윤리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 이 두가지는 같은 동전의 양면일뿐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세 가지 성향을 지닌다~ (1)다른 사람들을 공명과 정의로 대하는 것; (2)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선을 행하겠다는 각오와 노력; (3)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며 사는 삶을 위한 부지런함. 우리는 오늘날에도 믿음 공동체에 속한 사람틀에게 이러한 참 종교 행위를 행할 책임을 안고 있다(고전 13:4; 고후 6:6; 골 3:12; 야 1:26-27; 벧전 1:2; 5:5).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며, 이 언약의 조건인 율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렘 31:33; cf. 히 10:14-17). (엑스포지멘터리 239)
- 6:8 The Lord desires the primary forms of love—justice (do justice), mercy (love kindness), and faithfulness (walk humbly)—as the expressed response of his people to his redemptive acts (Matt. 23:23; cf. Deut. 10:12–13; 1 Sam. 15:22; Isa. 1:11–17; Hos. 6:6). On the meaning of “justice,” see notes on Isa. 42:1; Jer. 22:3; Amos 5:7. your God. The complement to “my people” (Mic. 6:3, 5).
6:8 Sacrifices cannot replace the need for justice and kindness. The focus on real righteousness anticipates Jesus’ teaching (Matt. 5:23–24; 9:13; 15:10–20) and is fulfilled in Jesus’ own righteousness (Acts 3:14; Rom. 8:1–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05.
- 6:8 “This verse stands as the motto of the alcove of religion in the reading room of the Congressional Library in Washington.”16 Politicians have quoted it often in their election campaigns (if only more would practice it!). Numerous accolades have been showered on it. For example, von Rad says, “This is the quintessence of the commandments as the prophets understood them.”17 J. M. P. Smith calls it “the finest summary of the content of practical religion to be found in the OT.”18 And Boadt observes, “The rabbis who commented on this verse in the early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called it a one-line summary of the whole Law.”19
The Lord through Micah now announces to Israel (Judah) what he does require (“man” here represents corporate Israel). He does not desire ritual sacrifices divorced from a changed life—a life given over completely to the covenant Lord. Rather, his people must change their ways and actions (Jer 7:3, 5–7). Furthermore, he had already revealed what he requires and “what is good.” Where? In passages like Deut 10:12–13:
And now, O Israel, what does the Lord your God ask of you but to fear the Lord your God, to walk in all his ways, to love him, to ser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to observe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that I am giving you today for your own good.
Three requirements are specified in v. 8. First, they must “act justly” (see comments on 3:1). Boice points out, “To act justly is most important, for it does not mean merely to talk about justice or to get other people to act justly. It means to do the just thing yourself.”20 Second, they must “love mercy.” The Hebrew for “mercy” is ḥesed, which essentially and primarily means “faithful covenant love.”21 Third, they must “walk humbly” with their God (“your God” is relational covenant terminology and is the counterpart to “my people” in v. 3). “Walk” means to “live” in a certain way, but the Hebrew for “humbly” is difficult because it is not the usual word for humility. It almost certainly does not mean “humbly.” Probably the NIrV is as accurate as any version. Here is its rendering of the entire verse: “People of Israel, the Lord has shown you what is good. / He has told you what he requires of you. / You must treat people fairly. / You must love others faithfully. / And you must be very careful to live / the way your God wants you to.” So “walk humbly” would be better rendered “walk carefully (with your God),” which ultimately means “be careful to live the way your God wants you to.”22
The Lion Encyclopedia summarizes the meaning and application of this great text: “Micah is repelled by sacrifices and worship which are not matched by just dealing and real spirituality. His central concerns are for social justice and true religion.”23 So does A. R. Fausset: “Without love, holiness of heart, and righteousness of life, flowing from faith in Christ, all our church-goings, forms of prayer, and almsgivings profit us nothing.”24 J. P. Lewis adds: “Worship and morality cannot be divorced from each other. They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25 C. L. Feinberg provides this summary: “The piety that God approves consists of three elements: a strict adherence to that which is equitable in all dealings with our fellowmen; a heart determined to do them good; and diligent care to live in close and intimate fellowship with God.”26 And T. E. McComiskey maintains: “The standards of this verse are for those who are members of the covenantal community and delineate the areas of ethical response that God wants to see in those who share the covenantal obligations. These standards have not been abrogated for Christians, for the New Testament affirms their continuing validity. We are still called to the exercise of true religion, to kindness, and to humility (1 Cor 13:4; 2 Cor 6:6; Col 3:12; Jas 1:26–27; 1 Pet 1:2; 5:5). Christians are in a covenant relationship with God in which the law (torah) has been placed within their hearts (Jer 31:33; cf. Heb 10:14–17), not abrogated.”27
Jesus probably had this verse in mind when he said (Matt 23:23):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give a tenth of your spices—mint, dill and cummin. But you have neglected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
Here he regards 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as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
What, then, is Micah’s (and the Lord’s) point? Here is how Kaiser concludes his study of vv. 6–8 (see above for his introduction):
Thus this saying is not an invitation, in lieu of the gospel, to save oneself by kindly acts of equity and fairness. Nor is it an attack on the forms of sacrifices and cultic acts mentioned in the tabernacle and temple instructions. It was instead a call for the natural consequence of truly forgiven men and women to demonstrate the reality of their faith by living it out in the marketplace. Such living would be accompanied with acts and deeds of mercy, justice and giving of oneself for the orphan, the widow and the poor.28
As the Lord said to Shallum, King Josiah’s son, “Did not your father have food and drink? He did what was right and just, so all went well with him. He defended the cause of the poor and needy, and so all went well. Is that not what it means to know me?” (Jer 22:15b–16). Two applications of this passage are offered by Stuart:
1. Faithful participation in worship is not enough. It must be accompanied by faithful, proper living.
2. A good look at the past reminds us of God’s loyalty, and of our responsibility to be loyal to him in return.29
16 G. L. Robinson, The Twelve Minor Prophets (1926; reprint, Grand Rapids: Baker, 1967), 100.
17 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trans. D. M. G. Stalker, 2 vols. (New York: Harper & Row, 1965), 2:186–87; also in his book, The Message of the Prophets (London: SCM, 1968), 155.
18 J. M. P. Smith,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s of Micah, ICC (Edinburgh: T & T Clark, 1911), 123.
19 L. Boadt, Reading the Old Testament (New York: Paulist, 1984), 336.
20 J. M. Boice, The Minor Prophets, 2 vols. (Grand Rapids: Kregel, 1996), 2:44.
21 For further study of חֶסֶד see Barker, “False Dichotomies between the Testaments,” JETS 25 (1982): 6–11; see also the references cited there, particularly N. H. Snaith, The Distinctive Ideas of the Old Testament (New York: Schocken, 1964), 94–142.
NIrV New International Reader’s Version
22 The verb צנע occurs only here. The root occurs elsewhere only in Prov 11:2. W. J. Dumbrell notes that the word “has in recent commentaries been interpreted as ‘walk wisely,’ largely based on the Qumran Manual of Discipline rendering and the use of the root in Ecclesiasticus” (“צנע,” NIDOTTE 3:822).
23 P. Alexander et al., eds., The Lion Encyclopedia of the Bible (Batavia: Lion, 1978), 98.
24 A. R. Fausset, “Jeremiah–Malachi,” in A Commentary Critical, Experimental and Practical on the Old and New Testaments, 6 vols., by P. Jamieson, A. R. Fausset, and D. Brown (Grand Rapids: Eerdmans, 1967), 4:606.
25 J. P. Lewis, The Minor Prophets (Grand Rapids: Baker, 1966), 36.
26 C. L. Feinberg, The Minor Prophets (Chicago: Moody, 1976), 179.
27 McComiskey, “Micah,” EBC 7:436–37.
28 Kaiser, Hard Sayings, 228.
29 Stuart, Favorite Old Testament Passages, 13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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