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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So if you consider me zyour partner, receive him as you would receive me. 18 If he has wronged you at all, or owes you anything, charge that to my account. 19 aI, Paul, write this with my own hand: I will repay it—to say nothing of your owing me even your own self. 20 Yes, brother, I want some benefit from you in the Lord. bRefresh my heart in Christ. 
21 cConfident of your obedience, I write to you, knowing that you will do even more than I say. 22 At the same time, prepare a guest room for me, for dI am hoping that ethrough your prayers fI will be graciously given to you. 
z2 Cor. 8:23
aSee 1 Cor. 16:21
bSee ver. 7
cSee 2 Cor. 2:3
dPhil. 1:25; 2:24
eSee 2 Cor. 1:11
f[Heb. 13: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Phm 17–22.

만약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참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들이고 바울의 영적인 자녀들이라면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구원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여 동지가 된 것입니다. 그들 모두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교환(내어줌, 대속)은 빌레몬으로 하여금 그의 구원을 위해 오네시모에 대한 그의 권한을 교환 할 의무가 있다. 바울을 각각의 요구를 통해 빌레몬이 자신을 향한 그리스도의 교환(내어줌)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도록 돕는다. 이는 그의 집의 종을 회중의 삶의 교제(코이노니아)안에서 동역자(코이노모스)로 환영하는 것(17), 다른 부채를 갚는(18-19),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줌(20-21), 객을 위해 그의 집 안에 숙소를 마련하는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연되어야한다. 바울은 지금 빌레몬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그러한 일을 행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에 대한 빌레몬의 신앙을 시험하게 한 다는 것을 분명 인식한다. 심지어 그는 빌레몬이 자발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관대한 내려놓은 것은 그이 집 안에서 더 큰 교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서, 은혜로 변화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이다. 바울은 이 두 사람 모두의 후원자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오네시모의 해방을 요구하면서 그는 빌레몬의 영애와 그의 교회 안에서의 지위를 확보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 The logic of Paul’s words is inescapable: If Philemon and Onesimus are indeed brothers in Christ and spiritual children of Paul, then they are also partnered with Christ to participate together in God’s salvation. Christ’s exchange for their common salvation obligates Philemon (and Paul too!) to exchange his right to Onesimus for his salvation (or manumission). Each demand Paul makes aids Philemon in understanding that Christ’s exchange for him must be concretely demonstrated by welcoming his slave home as an equal partner (koinōnos)in the koinōniaof the congregation’s life (v. 17); or by paying another’s debt (vv. 18–19); or by showing compassion (for a third time, splanchnais used) toward another (vv. 20–21); or by providing a room in his home to a guest (v. 22). Such are the requirements of being a new creature in Christ.
  • Paul surely recognizes that Onesimus constitutes a testing of Philemon’s faith in Christ, even as he knows that Philemon’s willingness to exchange personal rights for a generous response will not only produce greater koinōniain his household but also demonstrate publicly that he has been transformed by God’s salvation-creating grace. Paul is the patron of both men; thus, while he asks for Onesimus’s emancipation, he seeks to secure Philemon’s honor and standing within his church.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Phm 17.

17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가 나를 너의 동역자로 여긴다면, 오네시모를 받아들이기를 네가 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라고 요청한다. 
오네시모는 최근에 바울을 통해서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바울과 빌레몬과 함께 같은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신자이고, 같은 약속들과 확신들을 가지고 있으며 함게 동역자인 것이다. 어떤 이는 선배된 자들이고 다른 이들은 초신자들이다. 
본문에서 영접하라라는 단어는 ‘프로스람바노’로 다른 사람의 집에 갈때 받는 개인적인 환대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환대할 것을 빌레몬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전에 자신의 집에서 종이었던 사람을, 게다가 큰 해를 끼치고 도망간 노예를 환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울은 지금 이러한 요청을 통해서 우리에게 회심한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공개적인 실천,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동체에 속해 있다라는 것은 이처럼 사유화되고 구획화되어진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은 신자들로 하여금 우주적인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구원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의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는 은혜로 변화되어 새로와졌다. 그들은 이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의 한 교제권 안에서 동역자가 되었다. 
  • Yet Paul demands that Philemon welcomeOnesimus as though hewere Philemon’s apostle and patron. The verb translated “welcome” (proslambanō)suggests the personal reception of one into another’s home—a hospitable “homecoming” (Harris 1991:272). There is nothing abstract about this substitution, since it presumes an actual encounter between two persons. Onesimus is a crisis that Philemon cannot avoid; his conversion cannot be acknowledged from afar. Philemon must deal with Onesimus in person, first recognizing and honoring him as Paul’s substitute, but then welcoming him as though he were a spiritual partner like Paul within the very household he once served as a slave.
  • Paul’s challenging request serves a practical end. He realizes that religious conversions, such as those experienced by both Philemon and Onesimus, have very public results; they are not events that just happen to one and are then privatized and compartmentalized so they do not intrude on one’s other activities. Conversion joins the believer with Christ in the cosmic salvation of God, whose grace transforms every aspect of human life. Philemon and Onesimus both must realize, as we all must, that in the crisis of a difficult reunion, we are sometimes forced to admit that how we relate to one another has changed with the changes that have taken place in us. For example, the changes that have taken place in our son, who is away from home at college, and in us, who experience a home without him, have changed forever the way we talk to and think about each other.
  • The previous arrangement between Onesimus and Philemon as slave and owner has been changed by their experience of grace. They are now partners (koinōnoi)in a koinōnia,where they share a new capacity to love one another as never before. The result of granting Paul’s request is envisaged by the coupling of the words partnerand welcomein characterizing the homecoming of Onesimus: he will be included as a member of the congregation, the equal of everyone in the house he once served as slave. Philemon is no longer his lord but a brother; they are partnered together with the Lord Jesus for their mutual salvation.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Phm 17.

18-19절)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잘못하였거나 빚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내가 갚아주겠다라고 말한다. 나 바울은 이를 친필로 쓰는데 내가 그것을 갚을 것이다. 빌레몬 네가 나에게 빚진 것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본문을 보건데 오네시모는 분명히 주인인 빌레몬에게 재정적인 손실을 입혔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자신이 직접 갚겠다라고 그리고 그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 친필로 이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빌레몬이나 오네시모에게 아무것도 빚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빚지고 계시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심으로 구원하신 것처럼 바울도 재정적으로나 관계에 있어서 어떤 빚도 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을 드리신 것처럼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속에서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것은 무엇일까?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 모두의 후원자, 영적인 아비였다. 말하자면 오네시모와 빌레몬 모두 바울에게 구원, 영적인 생명을 빚진 것이다. 본문 19절에서 이러한 빚진 것을 빌미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할 것을 강요한다기 보다는 겸손히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영적 신분의 변화가 사회적인 신분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힘이다. 복음은 그저 개인이 구원받고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구원이 나아가서 사회 구조를 개혁시키는 것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이 빚을 대신 갚아준다고 말하는 것의 핵심은 화해이며 이는 오네시모의 자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의 삶을 이러한 샬롬, 화해, 평화, 자유의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이다. 
  • The second demand Paul makes of Philemon is ironical. On the one hand, the reader supposes that Paul is offering to make good whatever financial or business loss Philemon has suffered as a result of Onesimus’s failure (whatever that might be). While Paul owes Philemon nothing, even as Christ owes us nothing, he involves himself in Onesimus’s affairs in order to pay his debt, whether financial or interpersonal, even as Christ (who knew no sin) took upon himself the sins of us all (so Rom 5:6–11). Paul’s involvement has a firm christological basis.
  •  Robert W. Wall, Colossians & Philemon,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Phm 18.


20-21절) 형제여. 나로 주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어떤 이익을 얻게하고 내 마음이 주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바울, 나는 빌레몬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함으로 네게 썼다. 바울은 빌레몬이 바울이 말한 것보다 더 많이 행할 것을 알고 있었다. 

빌레몬서에는 세번에 걸쳐서 마음(heart, 스플란크논)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앞서 7, 12절에 사용되고 다시 20절에 등장한다. 
  • In v. 7 Paul had rejoiced because “the hearts of the saints have been refreshed through [Philemon]”, and in v. 12 he said, “I am … sending my very heart.” Now in v. 20 Paul picks up this language again, using the Greek splagchna(“heart”) for the third time, and commands Philemon to refresh my heart in Christ. What the Lord has already worked into Philemon’s life is now to become a reality in his relationship with Onesimus.
  •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56.

본문의 기쁨이라는 단어는 ‘오니네미’라는 단어로 유익, 이득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워드플레이이다.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난 종이 이제 다시 돌아와 진정으로 주인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 benefit.Greek oninēmi, another play on the name Onesimus. in the Lord.Paul is interested not in how he might benefit materially but in how the work of the Lord benefits.
  •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488.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과 오네시모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지 확했다. 동일한 의미에게 빌레몬이 다른 이들, 다른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위에서 기초할때 힘이 된다. 선을 행하고 믿음의 길을 가는 성도에게 그를 격려하면서 잘 하고 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옳으니 더 힘내서 그 길을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리더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향해서 오네시모를 동역자로 받을 것을 요청하면서, 지금 이 요청보더 더 나은 삶의 모습을 다른 성도들에게 보일 것을 확신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은근한 압박이 된다. 

22절) 동시에 바울, 나를 위해서 방을 준비해달라. 왜냐하면 나는 너희 기도를 통해서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빌레몬에게 이러한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갈 수 없어 편지를 통해서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요청하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그들을 방문하여 함께 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여러 서신에서 어려 교회들을 혹은 개인을 방문하고 만나기를 소원했다. 이러한 요청은 주님의 재림시까지 그의 사도적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바울은 주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의 방문은 하나님의 다스림의 능력과 진리가 임재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방문을 통해서 그들의 사역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했다. 바울의 이러한 방문 요청은 바로 그러한 맥락으로 사도로서 그들에게 은사를 나누기 위한 이유이다.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사도직이 현대의 교회에도 이어지느냐이다. 어떤 단체들은 이러한 사도직이 지금의 교회에도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교회는 이러한 사도성, 사도직이 종결되었다고 본다. 

빌 1:25; 2:24; 히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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