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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Now Lot went up out of Zoar and mlived in the hills with his two daughters, for he was afraid to live in Zoar. So he lived in a cave with his two daughters. 31 And the firstborn said to the younger, “Our father is old, and there is not a man on earth to come in to us after the manner of all the earth. 32 Come, let us make our father drink wine, and we will lie with him, that we may preserve offspring from our father.” 33 So they made their father drink wine that night. And the firstborn went in and lay with her father. He did not know when she lay down or when she arose.

34 The next day, the firstborn said to the younger, “Behold, I lay last night with my father. Let us make him drink wine tonight also. Then you go in and lie with him, that we may preserve offspring from our father.” 35 So they made their father drink wine that night also. And the younger arose and lay with him, and he did not know when she lay down or when she arose. 36 Thus both the daughters of Lot became pregnant by their father. 37 The firstborn bore a son and called his name Moab.2 nHe is the father of the Moabites to this day. 38 The younger also bore a son and called his name Ben-ammi.3 oHe is the father of the Ammonites to this day. 

 

m ver. 17, 19

2 Moab sounds like the Hebrew for from father

n Deut. 2:9

3 Ben-ammi means son of my people

o Deut. 2: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9:30–38.

 

 

본문은 롯이 술에 취하여 자신의 딸들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는 내용을 다룬다. 이 사건은 이전의 노아의 술 취함과 비슷한 점을 지닌다.

첫번째, 두 사건 모두 심판(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심판) 후에 일어났으며

두번째, 술취함과 관련이 있고

세번째, 모두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30절)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여 도망하던 중 산 정상까지 갈 수 없어서 인근의 소알 성에 도피하기를 요청했고 그곳에서 심판을 모면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목도하고 아내를 잃은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렇다면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소알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언젠가 주님의 심판이 타락한 소알에 임할 것을 두려워한 것일까?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과정을 가까운 곳에서 목도한 나머지 그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이찌되었건 그는 두려움에 압도되었고 이로 인해서 두 딸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굴에 거주하였다. 이전의 롯의 모습을 통해서 볼때는 그는 도시의 화려함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그는 소돔의 화려함을, 그 도시가 제공하는 편안함을 선택했었는데 또한 임박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음에도 소돔을 떠나는 것을 주저했었는데 심판의 참상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 그는 소알에 있는 것 마저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 굴에 두 딸과 함께 거주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두 딸을 도시의 죄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31-32절) 롯과 두 딸이 산속의 굴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해 주변에 있는 동굴들이 실제로 피난처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속세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생활하는 것으로 인해서 롯의 딸들은 자신들이 결혼하지 못할 것을 염려했다. 롯이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두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굴을 선택했지만 도리어 이 두 딸은 자신들이 결혼하지 못하여 자식을 낳지 못할까봐, 그래서 당시 자녀 없음으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거나 이후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였다.

언니가 동생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늙었고 우리의 남편될 사람들이 없으니 우리가 아버지를 술취하게 하여 동침하여 후손을 이어갈 것을 권한다.

아이를 낳아 집안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최악이었다. 물론 레위기의 규례나 이후의 유다가 다말을 취한 일들이 이후에 기록된 일이기는 하다. 당시의 상황속에서 롯의 딸들이 그런 선택을 한데는 롯의 책임이 크다. 롯은 자신의 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롯이나 그의 딸은 여전히 소돔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앞서 롯은 자신의 손님을 범하려는 소돔의 사람들에게 딸들을 내놓겠다라고 했었는데 결국 그가 자신의 딸을 범하고 말았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롯의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의 고대 근동 세계에서도 근친상간은 부정적인 관계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시내산 율법이 근친상간을 정죄한 최초의 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함무라비 법전중에 보면 154조에는 '만약 남자가 자기 딸과 성적으로 관계를 가지면, 그 사람을 그 도시에서 추방하라'고 적혀있다.

  • Lot is exonerated in that the daughters realize they have to get him drunk in order to carry out their intentions. This implies that he would not have agreed to the course of action they propose. In fact, by this period, incest is already viewed in negative terms in the ancient world. The Sinaitic law is not the first to condemn it. There are, for example, a number of paragraphs treating incest in Hammurabi’s laws. Paragraph 154 dictates that “if a man should carnally know his daughter, they shall banish that man from the city.”5 Of course, such a punishment would mean little in this case since Lot’s family is already in self-imposed exile.

  • 5 M. Roth, Law Collections From Mesopotamia and Asia Minor (Atlanta: Scholars, 1995), 110.

  •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481.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네 어머니의 하체는 곧 네 아버지의 하체이니 너는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어머니인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너는 네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아버지의 하체니라 너는 네 자매 곧 네 아버지의 딸이나 네 어머니의 딸이나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 출생하였음을 막론하고 그들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네 손녀나 네 외손녀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하체니라 네 아버지의 아내가 네 아버지에게 낳은 딸은 네 누이니 너는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너는 네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아버지의 살붙이니라 너는 네 이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어머니의 살붙이니라 너는 네 아버지 형제의 아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숙모니라 너는 네 며느리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아들의 아내이니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 너는 여인과 그 여인의 딸의 하체를 아울러 범하지 말며 또 그 여인의 손녀나 외손녀를 아울러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들은 그의 살붙이이니 이는 악행이니라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의 자매를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여 그로 질투하게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18:6–18, NKRV)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38:13–26, NKRV)

 

33-35절) 두 딸은 이제 그 밤에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자신의 아버지로 하여금 술에 취하게 하여 먼저 큰 딸이 들어가서 아버지와 동침하고 다음날 작은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였다. 이 사건에서 큰 딸이 적극적으로 이 일을 계획하고 자신의 동생을 이 일에 동참시키고 있다. 죄의 영향력은 그것의 전염성, 오염성에 있다. 본인들도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았기에 혼자만 죄를 저지를 수 없었고 동생도 이것에 함께 동참시키고 있는 것이다. 믈론 자손을 이어가자는 좋은 의도였지만 그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롯은 무력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들의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과연 정말 몰랐을까? 딸들이 이런 계략을 꾸미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눈 감았던 것은 아닐까? 물론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롯의 두 딸로 인하여 모압과 암몬 자손이 일어나게 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발목을 잡게 된다.

 

36-38절) 이 딸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계략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목적대로 두 딸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된다. 큰 딸이 나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인데 이 모압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from father'와 같은데 '아버지로부터 유래한 자'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작은 딸의 아들의 이름은 벤암미로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 벤암미는 'son of my people'로 내 백성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암몬은 같은 족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런 연고로 시작된 이 두 족속을 유난히 싫어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을 미워하신 것을 그들의 출생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훼방했기 때문이다.(신 23:3-6) 하지만 훗날 하나님께서는 모압에서 룻을 불러내신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신명기 23:3–6, NKRV)

 

우리는 본문의 사건, 두 딸이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여 동침함으로 아들을 낳은 사건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본문은 근친상간을 비난하거나 추앙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분명 모압과 암몬은 롯의 계보로 아브라함의 자손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 덕분에(19:2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심으로 롯을 구원하셨고 이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We must see, however, that the point of the passage is not to provide anecdotal material in order to address the evils of incest. Whether they are innocent or guilty, justified or culpable, the account focuses not intrinsically on the act but on the result of the act: the Moabites and Ammonites. As the offspring of Lot, they are related to Abraham; but since Lot is a nephew, these are not among the many nations of whom Abraham is the father. Lot and his offspring are not among those through whom the nations will be blessed; rather, they are among those who will receive blessing through Abraham and his offspring.

  • Thus, it is here, as the text indicates, that Lot is spared because the Lord remembers Abraham by acting favorably toward him (19:29). The Moabites and Ammonites only receive the chance to exist because the Lord has remembered Abraham. In this case the narrator’s main point is not that the Moabites and Ammonites owe their existence to incestuous acts but that they owe their existence to Abraham. This gives the audience of Moses insight into the status of those who live around the land they are entering.

  •  

  •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484–485.

 

 

또한 우리는 본문속에서 두려움이 사람들을 압도할 때 얼마나 비정상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롯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굴에 거주하였으며 두 딸은 자신들이 결혼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술에 취하게 하여 동침한다.

우리는 순간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죄를 지을 수 있다. 이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다가 점점 더 문제가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들을 눈 멀게 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우리는 삶의 두려움 가운데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해야한다. 바로 그런 믿음이 있을때 우리는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온전히 믿음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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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But if zsome of the branches were broken off, and you, aalthough a wild olive shoot, were grafted in among the others and now share in the nourishing root3of the olive tree, 18 do not be arrogant toward the branches. If you are, remember it is not you who support the root, but the root that supports you. 19 Then you will say, “Branches were broken off so that I might be grafted in.” 20 That is true. They were broken off because of their unbelief, but you bstand fast through faith. So cdo not become proud, but dfear. 21 For if God did not spare the natural branches, neither will he spare you. 22 Note then the kindness and the severity of God: severity toward those who have fallen, but God’s kindness to you, eprovided you continue in his kindness. Otherwise fyou too will be cut off. 23 And geven they, if they do not continue in their unbelief, will be grafted in, for God has the power to graft them in again. 24 For if you were cut from what is by nature a wild olive tree, and grafted, contrary to nature, into a cultivated olive tree, how much more will these, the natural branches, be grafted back into their own olive tree. 
zJer. 11:16; [Ps. 52:8; John 15:2]
a[Eph. 2:12]
3Greek root of richness; some manuscripts richness
b1 Cor. 10:12; 2 Cor. 1:24
cch. 12:3, 16; 1 Tim. 6:17
dProv. 28:14; Isa. 66:2, 5; Jer. 44:10; Phil. 2:12
e1 Cor. 15:2; Heb. 3:6, 14
f[John 15:2]
g2 Cor. 3:1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1:17–24.

본문에서 감람나무의 뿌리와 가지의 그림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던은 감람나무를 사용한 두가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번째는 이스라엘이 때로 감람나무라고 불리웠고(렘 11:16, 호 14:6) 둘째로 감람나무가 당시 고대 근동에서 넓게 재배되던 작물로 그 접붙임의 절차를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돌감람나무는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야생 가지가 아니라 재배된, 가지를 접붙임에 사용했다. 이를 통해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랑할 것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에 접붙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 The second half of this section (vv. 17–24) develops the root and branches metaphor into a picture of the current relationship of Jews and Gentiles to God. As Dunn explains (1988b:660–61), there are two reasons for the image of the olive tree: Israel is sometimes called an olive tree (Jer 11:16; Hos 14:6), and the olive tree was widely cultivated in the Mediterranean, so the procedures for cultivating it were well known. Still, as is generally agreed, the olive tree here represents the whole people of God and not just Israel. Paul begins with a lengthy ifclause (v. 17) that assumes the reality of the condition (Israel broken off and the Gentiles grafted in) and then concludes with a warning (v. 18, the thenclause, do not boast). First, some of the branches have been broken off.It is important to note that some ofindicates only those Jews who have rejected the gospel. This is the point of chapters 9–11 thus far (see the introduction to 11:1–32). The majority have turned away from Christ, but many Jewish people have turned to Christ and remain part of the olive tree. The emphasis is on individuals, not the corporate nation. This is also seen in the fact that Gentiles have been grafted in amongthe Jewish Christians (not “in place of” them). Moreover, these Gentiles have been grafted inas a wild olive shoot.Davies (1984:158–63; also Moo 1996) points out that the wild olive tree was quite unproductive, and normally grafting used a cultivated shoot rather than a wild one. So Paul has deliberately turned the imagery around to make his point that the Gentiles have nothing to boast about. They are a wild olive shoot and have done nothing to warrant God’s turning to them. It is only by God’s grace (the passive verbs point to God as the one who performs the action) that the Gentiles can be productive as God’s children. So the engrafted Gentiles share in the nourishing sap from the olive root.The olive tree was famous for the amount of sap it produced, so this is an apt picture of the bounty that the Christian has in Christ.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297–298.

17절)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람나무(올리브나무)로 묘사되고 있다. 바울이 어떤 가지들은 꺾였다고 말할때 그는 아마도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 다수를 마음에 두었을 것이다. 돌감람나무로서의 이방인은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다고 묘사한다. 구약은 여러 본문들에서 이스라엘을 감람나무로 묘사한다. 
  • The illustration of the root and its branchesis elaborated upon in vv. 17–24. The people of God are portrayed here as an olive tree(cf. Jer. 11:16–19; Hos. 14:6–7). When Paul says somebranches were removed, he probably has in mind the majority of the Jews of his day. Gentiles as wild shoots were grafted into the olive tree and now share in the root(the promises made to the patriarchs).
  •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176.
하나님의 완고하게 하심과 그들의 불신앙때문에 어떤 유대인들은 참 이스라엘로부터 떨어져나왔다. 

18절)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와 구원을 받고 초대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면서 그들은 유대인 형제 자매들을 멸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자랑하는 태도를 가지지 말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19-20절) 구원받은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떨어져 나간 것은 나를, 이방인들로 접붙임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그 말이 옳다라고 인정한다. 유대인들은 믿지 않아서 꺾이고 이방인, 너희는 믿으므로 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서있는 너희들이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자랑하고, 유대인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신앙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이다. 조금 은혜를 누리고 복을 누리면 자고해져서 위아래를 무시하려는 우리의 자만심을 극복해야 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굳게 선 우리들의 마땅한 태도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것이다. 

많은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구원에 자고해져서 유대인들을 멸시하기 시작했다. 이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이렇게 저주한 바 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만 한다. 자만심은 가장 근본적인 죄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때문에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보다 자신들이 더욱 우위에 있다라고 여긴다. 19세기나 20세기 선교사들에게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다. 선교사들은 서양문명의 우월성을 복음 만큼이나 강조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이방인들에게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앞서 16절에서도 그 뿌리는 아브라함과 족장들인것을 배웠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축복의 근원이 아님을 상기했다. 그들은 아브람함이 이룬 것을 통해서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특권의 방향은 분명하다. 아브라할으로부터 유대인을 통해서 이방인에게로 이어진다. 사실상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이다. 
  • Many Gentiles began to feel they were now the chosen ones and that the Jewish Christians were inferior (see chap. 14). The Jewish people have already been condemned about such boasting (2:17, 23), and now it is the turn of the Gentiles. All the glory must go to God. This is a very important principle. Pride is one of the basic human sins, and the tendency of all too many is to feel superior to others because of gifts God has given them. It is also common for this to be seen along racial or ethnic lines, for one group to feel their brand of Christianity is superior. This type of paternalism was a problem in missions in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when missionaries often proclaimed the superiority of Western civilization as much as the gospel. So Paul tells the Gentiles the truth: you do not support the root, but the root supports you.In verse 16 we learned that the root was Abraham and the patriarchs. So the Gentiles are reminded that they are not the source of blessing to the Jews; rather, they have received the blessing that has come down to them because of what Abraham has accomplished (see chap. 4). The direction of the privilege is obvious, from Abraham to the Jews to the Gentiles. In fact, the Gentiles are Abraham’s offspring (4:11–13, 16–18; 9:7–8) and dependent entirely on what they have received from him.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298–299.

21절) 하나님께서 원가지인 유대인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잘라버리셨은즉 이방인인 너희들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 이에 마땅한 반응은 바로 경외, 두려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계속해서 믿지 않는 이들중 누구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두려움은 마비적인 두려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 혹은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분의 불만족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겸손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 Fear is the appropriate response, for God will not spareanyone who does not continue to believe, whether they are Jews or Gentiles. Fear here does not refer to a paralyzing fear. Rather, it is the kind of humble fear that does not take God or salvation for granted, or think lightly of his displeasure.
  •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177.
누군가를 보고 두려워서 오금이 저리는, 그를 피하려는 형태의 두려움이 아니라 그분의 지위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분을 존경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 Gentile believers are described as a wild olive shoot that had been grafted into a cultivated olive tree, some of whose branches had been   p 221  broken off. The NIV’s “among the others” (v. 17) inadvertently substantiates Paul’s earlier assertion that Israel’s rejection was neither complete nor final.106Now the Gentiles “share in the nourishing sap from the olive root.”107The root, which supplied the rich and nourishing life to the cultivated olive tree, represented historic Israel, specifically the patriarchs through whom God brought the nation into existence. The TCNT describes the root as “the source of the richness of the cultivated olive.” Paul admonished his Gentile readers not to view themselves as somehow superior to the former branches. After all, they owed their spiritual existence to Israel; it was not the other way around. They did not support the root; the root supported them. How subtle yet powerful is the human tendency to presume that “accomplishments” in the realm of the Spirit are due to one’s own persistence and acumen!
  •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 106For ἐνεκεντρίσθης ἐν αὐτοῖς in v. 17 the RSV has “grafted in their place.”
  • 107The second genitive in τῆς ῥίζης τῆς πιότητος is either adjectival (“the rich root”) or appositional (“the root, that is, its fatness [its nourishing qualities]”).
  • TCNT Twentieth Century New Testament
  •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220–221.

22절)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주목하고, 상고할 것을 요청한다. 동일한 하나님이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으로,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인자하심으로 나타난다.  본문의 인자하심은 ‘크레스토테스’라는 단어로 친절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준엄하심은 ‘마포토미아’로 엄함, 예리하게 자름이라는 으미이다. 

23-24절) 그들, 유대인들도 믿지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다른 말로하면 믿으면 접붙임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그럴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돌감람나무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참감람나무였던 이들을 다시 접붙이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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